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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 지역에서 철폐연대 동지들은

 

벌써 1년, 충전하고 왔습니다

윤지영 (재단법인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철폐연대 회원)

 

 

작년 9월 1일부터 1년 간 휴직을 했습니다. 휴직에 들어가기 전 꽤나 지쳐 있었습니다. 내일은 생각하지 말고 오늘 하루 열심히 산다. 짧고 굵게 산다는 신념이 화근이었습니다. 즐겁게 시작했던 일들도 어느 순간 제가 감당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체력은 바닥났지만 하루 24시간이 모자란 상황에서 꾸역꾸역 버텨 나갔습니다. 그럴수록 제 마음도 각박해져 갔습니다. 만사가 귀찮다는,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4개월 전 미리 휴직 신청을 하고 휴직에 들어갔습니다. 휴직을 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카카오톡, 텔레그램, 페이스북 앱을 휴대폰에서 지운 것이었습니다. 사람들과도 연락을 끊었습니다. 업무와 관련한 일은 일체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딱 한 가지 철폐연대에서 기획한 <노동교과서> 집필만 했습니다. 그러나 집필 작업도 두어 달 바짝 해서 초안을 내놓고는 이후 작업은 복직할 때까지 미뤄 두었습니다.

쉬는 동안 주로 운동과 독서에 집중했습니다. 집 주변을 산책하고 가끔 멀리 등산이나 여행을 가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체력도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이 건강해졌습니다. 휴직에 들어가기 전에는 마음이 무척 가난했는데 잘 쉰 덕분에 잘 회복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이 여러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공유합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한두 달이라도 쉴 수 있는 분들께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분들께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SNS 끊기

 

휴직에 들어가기 전 제가 맡은 업무를 정리하고 인수인계를 끝냈습니다. 그리고 휴직에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핸드폰과 노트북에서 텔레그램과 카카오톡 앱을 지웠습니다. 텔레그램과 카카오톡의 프로필에 “2019년 8월 31일까지 사용 안 합니다”라는 멘트도 넣었습니다. 여기저기 참여하고 있던 방들에, 휴직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남기고 탈퇴했습니다. 휴대폰을 정지시킬까도 생각했지만 연락이 아닌 용도로 쓸 일이 생겨서 휴대폰은 살려 두었습니다. 대신 제 손이 잘 안 닿는 곳에 두고는 아주 가끔 확인했습니다. 1년 휴직에 들어가고 휴직 기간 이곳에도 들어오지 않겠다는 다짐의 글을 남기고 페이스북도 중단했습니다.

세상과 단절하겠다는 일종의 다짐이었습니다. 민망하지만, 당분간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방팔방 소문을 냈습니다. 그래야 제대로 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저는 완벽히 혼자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 있으면 오히려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라 그런지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을 잘 즐기는 편입니다. 그러나 외로움도 정도껏이지 1년 은둔자가 되는 것은 고된 일입니다. 오롯이 저를 위한 시간을 가지겠다고 다짐하면서 단조로움과 나른함도 즐겨보자고 다짐했습니다.

 

 

하루 2시간 이상 운동하기

 

매일 6킬로미터씩 달리기를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확실히 그때는 체력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일 때문에 운동할 시간을 내지 못하면서부터 체력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물론 자연노화의 현상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운동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휴직에 들어갈 무렵 마침 동네에 요가와 필라테스를 병행하는 곳이 생겼습니다. 필라테스는 주로 몸 중심부(코어)의 근력을 강화하는 운동으로 굽은 어깨, 등허리, 거북목을 교정하는 데에도 효과가 있다는 운동입니다. 여성들이 많이 하는 운동이지만 사실 성별 불문하고 모두에게 좋은 운동입니다. 그리고 요가는 유연성을 강화하는 운동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근력을 강화하는 운동이고 무엇보다 마음을 수련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운 좋게도 저는 주 2회 필라테스, 요가 무제한의 1년 회원권을 월 8만 원이 안 되는 금액으로 끊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2시간 씩, 주 5일 필라테스와 요가를 했습니다.

눈에 띄는 효과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땀을 흘리고 힘을 쓰는 것에 희열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요가를 하면서 제 마음을 들여다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뭐든 열심히 하는 터라 요가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제 몸은 요가를 하기에는 너무 뻣뻣했습니다.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열심히 한 게 화근이 되어서 근육이 살짝 찢어지는 부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잘하겠다는 욕심이 사라졌고, 욕심이 사라지니 오히려 조금씩 발전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요가 동작들을 끝내고 매트에 대자로 누워서 눈을 감고 숨을 쉴 때의 그 기분. 세상 편안했습니다.

요가와 필라테스 외에 따릉이도 운동 겸 놀이로 자주 탔습니다. 따릉이 1년 정기권을 30,000원에 사서 틈나는 대로 탔습니다. 집에서 한강까지 1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는 게 행운이었습니다. 해질녘 따릉이를 타고 한강변을 자주 달렸습니다.

 

 

1 따릉이를 타고 한강변을 달리다 [출처 필자].jpg

따릉이를 타고 한강변을 달리다 [출처: 필자]

 

 

책 읽기

 

하루 수 시간 책을 읽는 것, 평소 제 희망이었던 일을 휴직하고 나서야 할 수 있었습니다. 휴직하고 한동안은 집에 쌓아두었던 책을 읽었습니다. 책이 소진될 즈음 저는 동네 도서관을 찾았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는 광진정보도서관이 있습니다. 2주에 책 4권을 무조건 빌려 읽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데에는 장점이 있습니다. 일단 의무적으로 책을 읽게 됩니다. 독서를 강제하는 효과로써 도서관 책 대출만한 것도 없습니다. 또한 오며 가며 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광진정보도서관은 한강변에 바로 위치해 있는데 한강 따라 2~3시간 걷거나 따릉이를 타는 그 시간이 꽤나 즐거웠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재미도 있습니다. 요즘 도서관들은 독서하기 좋게 시설이 잘 되어 있습니다. 사서가 추천해 주는 책들 중에도 읽을거리도 많습니다. 다만 인기가 많은 책은 대여하기가 힘듭니다.

또한 출판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책을 빌려 읽는 것이 마냥 즐거운 건 아닙니다. 그래서 한 달에 두 권은 무조건 책을 사서 읽는다고 계획하고 실행했습니다. 오전에 음악을 틀어 놓고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린 다음 사과잼을 바른 식빵 두 장을 곁에 두고 독서를 하는 시간. 그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나홀로 여행

 

혼자 산행을 즐기는 편입니다. 혼자 산행을 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제가 원하는 때에 같이 갈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휴직 기간에는 더더욱 그랬습니다. 지금과 같은 단풍철에는 온 산이 인산인해입니다. 설악산을 특히 좋아하는데 단풍철 주말에 설악산 대피소를 예약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그래서 평일 한적한 때에 혼자 산행을 했습니다. 함께 갈 이는 없지만, 어차피 평일 산에는 혼자 온 사람들만 드문드문 보입니다. 단풍이 들 때 인적 없는 산행은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산행 말고도 혼자 한 게 있습니다. 바로 여행입니다. 차를 몰고 다니기 어려운 여행지를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여행상품들이 많습니다. 굿모닝 여행사라는 곳을 통해 혼자 구례 산수유 마을도 가고, 진해 벚꽂도 보고, 고창 청보리밭도 갔습니다. 복직을 앞두고는 일주일간 제주에서 올레길과 사려니숲길을 걸었는데 그것도 좋았습니다. 평일에는 제주도 비행기도 싸고, 게스트하우스의 빈 침대를 구하는 것도 쉽기 때문에 더는 없을 기회를 마음껏 누렸습니다. 집 근처 아차산, 서울숲, 동구릉, 올림픽공원에도 가끔 가고, 팔당역부터 운길산역까지 옛날 경춘선 철길을 따라 종종 걸었습니다.

 

 

공부

 

유튜브에 김수행 교수의 <자본론> 강의가 41편 올라와 있습니다. 저는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혼자 <자본론>을 공부하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 강의가 반가웠습니다. 하루 한 편씩 강의를 보고 책을 읽으면서 <자본론> 공부를 했습니다. 잠을 설칠 때 동영상을 틀어 놓으면 어느 순간 잠들게 됩니다. 수면제로도 효과가 좋지만, 이제는 접할 수 없는 김수행 교수의 강의를 집에서 편하게 시청할 수 있다니 참 고마운 일이지요. 덕분에 <자본론>을 완독할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 일본어 공부에도 도전했습니다. 일본어를 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고독한 미식가>를 일부러 찾아보고, 일본어로 된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도 읽었지만 도중에 귀찮아서 접었습니다.

 

 

정리하며

 

인생의 반환점을 돌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 잘 살고 있는 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동시에 노동 착취의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휴직을 하고 온전히 저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차분하게 이 문제를 짚어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생각을 많이 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이 많아지면 고민만 깊어질 수 있습니다. 휴직 초반에는 지쳐서 생각하기가 싫었는데 몸과 마음에 힘이 붙으면서 좀더 편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은 노동자들이 내몰릴수록 노동으로 세상을 바꿀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노동자들을 위해 사는 것. 현장에서 함께하는 것입니다.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살피면서 오히려 활동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번 휴직의 가장 큰 성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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