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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운동을 생각한다

 

파견법 20년의 영향: 비정상이 정상으로

장귀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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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3. 『파견법 폐기, 간접고용 철폐 2018 파견노동포럼』 3섹션, 발제하는 필자 [출처: 철폐연대]

 

1998년, 파견법(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이하 파견법)이 처음으로 제정되었다. 경영상의 이유로 노동자들을 해고할 수 있게 한 정리해고법과 함께였다. 이른바 노동시장 유연화, 기업이 마음대로 노동자를 자르고 고용하지도 않은 노동자들을 갖다 쓰는 건 언제나 자본의 꿈이었다. 바로 정확히 1년 전에도 그를 위한 노동법 개악 시도를 노동자들의 전국적인 투쟁으로 막아낸(정확히는 유예) 일이 있었다. 그런데 1996~97년 총파업 성공의 자부심과 성과가 채 쌓이기도 전에 그해 말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까지 받는 초유의 경제위기 사태가 발생했고, 그것을 빌미로 한 해 만에 노동악법들이 전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중에서 파견법을 보자. 노동자에게 자기 사업의 일을 시키려면 그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말할 필요도 없다. 노동자를 ‘고용’한다는 것의 기본적인 정의다. 그런데 파견이란 일을 시키되 고용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가 있기는 하다. 일시적으로 필요한 일이 발생했을 때 그때마다 정규직으로 고용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사내 컴퓨터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그 시스템을 만들 프로그램 전문가가 필요하다. 하지만 일단 만들어지고 나면 직원들이 그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뿐이지 그런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래머가 상시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또 평소에는 외국과 거래하지 않던 회사에서 특별히 외국 업체와 한두 달 정도 같이 할 일이 생겼다고 해보자. 그를 위해서 통역을 채용하고 한두 달 후에 해고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통역 일이 없는데 통역 전문가를 계속 고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프로그래머나 통역자와 같은 노동자 입장에서도, 물론 고용보장도 중요하지만, 자기 전문지식이 필요 없는 채로 그 회사에서 계속 일하는 것보다 전문성을 살려 일하고 싶어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이나 노동자나 서로 좋은 방법이 있다. 노동자를 파견해주는 파견기업이 존재하는 것이다.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은 파견기업이고 당연히 임금을 주는 것도 파견기업이다. 파견기업의 사업이란 일시적인 일손이 필요한 회사를 찾아서 자기가 고용한 노동자를 보내서 일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일이 끝나면 또 일손이 필요한 다른 회사를 찾는다. 노동자를 실제로 사용하는 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일시적인 일이 끝난 후 더 이상 회사에서 일을 시킬 필요가 없는 노동자를 계속 고용하지 않아도 되니까 좋다. 파견기업은 사업 자체가 자기 노동자들을 보낼 만한 회사를 찾는 것이므로 그 과정에서 이윤을 얻는다. 즉 고용한 노동자에게 노동자를 사용하는 기업과 계약을 해서 받는 금액보다는 적게 임금을 줌으로써 차액을 가져간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일하는 회사에 직접 고용되면 더 많은 금액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어차피 일하는 사업장의 업무는 일시적인 것이고 그 일이 끝날 때마다 다시 구직하는 것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일할 만한 곳을 찾아내서 파견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업체에 취직하여 고용과 임금을 보장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리하여 노동자 사용기업, 파견기업, 노동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해결책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파견노동을 허용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성립하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만족되어야 한다. 파견노동자를 사용하는 업무는 상시적인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이다. 파견노동자는 파견기업에 고용됨으로써 고용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파견법은 처음부터 이러한 조건을 규정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청소와 경비 업무는 일시적이고 전문적인 업무라기보다는 상시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1998년부터 파견 허용 업종에 포함되었다. 업무의 일시성을 지탱하는 규정은 파견노동자를 2년 이상 사용할 수 없게 하는 기간 제한 뿐인데, 이것은 파견노동의 사용 자체를 제한한 것이 아니라 파견노동자를 계속하여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이므로 다른 노동자로 대체하거나 파견업체를 바꾸면 그만이다. 또한 대부분의 파견업체들이 직접 고용한 노동자들의 고용과 임금을 보장해 주지도 않는다. 대개 임시직으로 고용해서 노동자를 사용하는 기업과의 계약이 끝나면 그냥 팽개쳐 버릴 뿐이다.

위에서 말한 논리, 즉 파견노동의 근거에 따르면, 파견기업은 노동자들을 고용해서 다른 기업과 파견 계약을 맺고 노동자를 보내어 일을 하게 하는 과정에서 이익을 얻는 대신 자기가 고용한 노동자들이 일할 곳을 찾아주어야 할 뿐 아니라, 만약 일할 곳을 찾지 못한다 할지라도 고용과 임금을 보장해야 한다. 노동자의 일할 곳을 찾는 것이 바로 파견업체의 사업 그 자체이므로. 그러나 그러한 파견업체는 거의 찾아보기 드물다.

결국 파견법은 파견노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 자체도 무시하고 있다. 일자리와 노동자를 ‘유연하게’ 매치시켜 노동시장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근거. 그렇지만 그러한 논리를 뒷받침할 내용을 전혀 규정하지 않고 있다. 결국 정당한 논리나 근거도 없는 오직 자본을 위한 법이었음이 너무나 명백하다. 해고의 부담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고 노조니 임금인상이니 하는 사용자 책임성에서 벗어나려는 자본의 꼼수를 법으로 제정해 준 것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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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실용적인’ 근거로서, 제정 당시 파견법은 파견이 이미 불법적으로 성행하고 있기 때문에 법을 만들어서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를 내세웠다. 어차피 음지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을 ‘막을 수도 없으니’ 차라리 ‘양성화’해서 규제할 것은 규제하고 보호할 것은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아니 결과를 볼 것도 없이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불법파견을 막을 수 없는 게 아니라 ‘막지 않은 것’이며 양성화했다기보다는 ‘양성’하는 법이었다.

법이 아니라 현실이 중요하다는 말은 일면으로는 맞고 일면으로는 틀린 것이다. 분명 법이 현실을 못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법으로 정해졌다고 다 지켜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분석의 수준에서 법적인 규정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양태를 분석해야 하는 것은 맞다. 또한 법적인 규정이 생겼다고 해서 다 해결된 것처럼 생각해서도 안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법의 준수 여부를 떠나서 법은 그 자체로도 현실에 효과를 미친다. 법이 현실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정당하고 부당한지에 대한 기준을 정한다고 하면 너무 과대평가하는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무엇을 해도 되고 무엇을 안 해도 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고는 할 수 있다. 파견법 제정은 그동안 금지해오던 간접고용을 원칙적으로 허용한다는 신호였다. 물론 파견법 제정의 ‘실용적 근거’가 말한 대로 당시에도 간접고용은 성행하고 있었다. 파견법 제정 이후에도 법과 무관하게, 즉 파견허용 업종에 해당하지 않는 전 업종에 도급, 사내하청, 용역 등의 이름으로 간접고용이 유행처럼 확산되었다. 하지만 그러면서 파견법은 간접고용을 사용하는 방식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해 주는 기능을 해왔다. 직접지시를 하지 않으면 파견이 아닌 도급으로 간주될 수 있다, ‘출근부를 없애라, 일정 기간마다 새로 파견계약을 하면 일시적인 일로 인정받을 수 있다, 3개월이나 6개월마다 갈아치워라.’

그에 따라 쟁점은 불법파견이냐 진성도급이냐 하는 것으로 협소화되었다. 불법파견에 대한 투쟁은 일부 성과를 거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기업들에게 불법이 되지 않게 하는 지침들을 계속해서 쌓아주었을 뿐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마치 파견법을 어기지 않으면 간접고용이 정당한 것처럼 인식되게 만들었다. 투쟁의 쟁점이 ‘불법’ 파견이냐 아니냐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자기 사업의 일을 시키려면 노동자를 고용해야 한다는 원칙, 아니 당연한 ‘상식’이 차츰 무너졌다. 한 기업이 사업장을 경영하면서 자기 기업의 직원은 매우 극소수만 채용하고 거의 모두 다른 기업들에 고용된 직원들로 운영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이제 자연스러워졌다. 동희오토에 동희오토 직원은 별로 없고, 방송사에 다니면서 방송사 피디라고도 말할 수가 없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홍길동 같은 서자는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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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파견법 20년은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적인 것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노동자를 ‘고용’해서 일을 시킨다(‘사용’)는 것은 자본주의 고용관계의 정의 그 자체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일시적이고 특별한 상황에서 일종의 방책으로 파견이 고안될 수는 있다. 하지만 이것은 예외적인 경우다. 그런데 20년 동안 이것은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상황에서 보통의 흔한 고용-사용 관계가 되어 버렸다.

불법파견이냐 합법파견이냐가 문제가 아니다. ‘합법’ 파견이라는 개념이 있으니 그 틈 사이에서 ‘불법’ 파견이 생겨나는 것이다. 파견을 합법으로 만드는 마법은 아주 많고 판례들이 친절하게 그 방법을 알려준다. 그마저도 귀찮은지 파견법이 처음 제정된 후로 수차례 개정을 통해서 파견허용 범위를 넓혀왔다. 그러나 투쟁의 쟁점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불법파견이냐 아니냐, 파견허용 범위를 얼마만큼 할 것인가가 아니다. 그렇게 하는 순간 간접고용의 ‘정상성’을 인정해 버리는 것이 될 위험이 있다. 법의 내용에 너무 천착하면 오히려 법 자체의 효과에 맹목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

다음과 같은 지점들에 초점을 맞추어 투쟁하고 쟁점화해야 한다. 우선, 파견법 개정 때마다 확대 반대라는 소극적 저항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파견법 폐지를 내세워야 한다. 적어도, 파견법의 전면 개정이라는 공세적 쟁점을 가져가야 할 것이다. 노동자 파견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 특정한 예외적 상황에서만 정당한 근거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알릴 필요가 있다. 이미 20년이 지난 지금 파견법 폐지를 얘기하는 것이 때늦고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20년은 비정상적인 것을 관습적으로 정상적인 것처럼 여기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파견법은 원래 파견을 정당화하는 논리와도 전혀 부응하지 않는다.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에는 때가 따로 없다.

더불어, 사용하는 노동자를 고용한다는 정상적인 상황을 정상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간접고용의 사용자 책임성 강화를 투쟁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지금 기업들이 파견을 비롯한 간접고용을 확대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정당한 어떠한 근거도 없다. 단지 해고를 쉽게 하고 사용자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유에서이다. 결국 오랜 투쟁 끝에 시민권이 된 노동권과 노동법을 파괴하는 행위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 고용을 하지 않더라도 실제로 노동력을 사용하여 기업을 운영하는 사용자는 노동법상 고용관계에 준한 책임을 지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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