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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의 투쟁

 

 

대학원생들의 투쟁은 계속된다

 

신정욱 •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대학원생노조지부 지부장

 

 

 

대학원생들은 왜 국회 앞 농성을 시작했나

 

대학원생노조가 국회 앞 농성을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2019년 12월 발생한 경북대 실험실 폭발사고였다. 이 사고로 4명의 학생이 화상을 입었는데 2명이 전신 3도 중증화상을 입었다. 학생들의 피해 정도가 극심해 6개월 치료기간 동안 약 6억 원의 치료비가 발생했다. 문제는 사고 당시 치료비 전액 지급을 약속했던 경북대가 돌연 말을 바꾸면서 시작되었다. 이미 피해 학생 가족은 총장의 무책임한 언행 때문에 극도로 분노해 있던 상태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며 경북대 구성원들은 총장실을 점거했고 마침내 총장의 지급 약속을 받아내었다. 그러나 경북대는 규정 마련과 내부 절차 등을 핑계 대며 치료비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대학원생노조는 2020년 4월 무렵부터 이 문제에 결합해왔다. 우리는 경북대의 만행을 폭로하는 구성원들의 작업에 동참하면서도, 실험실에서 연구와 노동을 병행하는 학생연구원들을 노동자로 보지 않아 산재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에 집중했다. 결국 법제도 개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국회를 주목했다. 당해 7~8월부터 국회의원실을 돌며 경북대 사고의 심각성과 학생연구원의 산재보험 적용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마침내 몇몇 의원실과 연결되어 경북대 건이 국정감사 의제로 선정되었고 산재보험법 개정법률안까지 만들어졌다.

또한 우리는 전남대에서 발생했던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조직적 2차 가해 사건도 주목했다. 이미 연초부터 피해자와 함께 대응해왔던 사건이었고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전남대의 문제를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학부 단위들과 함께 발표했던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근절 요구안의 내용들을 모 의원실에서 법안으로 발의하는 등 국회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투쟁을 위한 외부조건이 서서히 무르익고 있었다. 이런 재료들을 모아 대국회 요구안을 구성했다. 남은 건 조직적 결의였다. 조합원 총회를 소집하여 대국회 투쟁을 결의하면서 드디어 닻을 올렸다.

 4 오늘, 우리의 투쟁_2 대학원생노조지부01.jpg

2020.10.23. 국회 앞 농성투쟁 중인 대학원생노조지부 선전전에 함께한 조합원과 연대자들의 모습. [출처: 철폐연대]

 

75일간의 국회 앞 농성

 

처음 국회 투쟁을 기획하며 조합원들이 농성이라는 투쟁 방식에 너무 거리감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소위 대학원생과 농성은 무언가 어울리지 않은 조합 같다는 생각 말이다. 또 입법투쟁의 특징상 자신의 노동조건과 직결된 사안도 아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우리 조합원들은 내 우려가 무색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농성투쟁에 결합했다. 그러기에 지난 75일간 조합원들과 함께한 경험을 잊을 수 없다. 이들은 각자 사정에 맞게 오전․점심 선전전에 참여하기도 하고 농성장 당번을 맡기도 했다. 급박한 원고 청탁에도 기꺼이 기고글을 보내준 조합원들도 있었다. 특히 마침 휴강이 되었다며 농성장에 왔다는 조합원, 조교 근무 출근 전에 짬 내어 오전 선전전을 함께한 조합원, 농성장에서 논문을 읽고 수업과제를 한 조합원 등이 기억에 남는다. 아마도 ‘흔한 대학원생들의 농성장 풍경(?)’이라고도 이름붙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농성을 준비하면서 사실 가장 걱정되었던 건 투쟁 자금이었다. 사업 예산이 충분치 않아 고작 몇십만 원으로 시작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러 사람들, 단체들의 후원이 이어지며 투쟁 자금이 모였다. 이것이 바로 ‘연대의 힘’이라는 걸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75일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했다. 그간 연대해왔던 대학 단체들, 민주노조 동지들, 정당․시민단체 관계자들 그리고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는 대학원생들까지. 그들은 연대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쟁취했던 노하우를 알려주었다. 때로는 농성장에 우리와 함께 있어주기도 했다. 너무나 고맙고 든든했던 경험이었다.

물론 농성 기간에 힘든 일도 꽤 있었다. 농성은 처음이었기에 많은 것들이 낯설고 또 어설펐다. 때때로 투쟁 전술과 조직 운영을 두고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실무적인 부담에 허덕이는 일도 있었다. 농성이 길어지면서 우리 내부는 서서히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가 누적되었다. 특히 겨울 한파가 닥쳐오고 코로나가 재확산되면서 조합원들의 결합도가 서서히 떨어지는 게 눈에 보였다.

10월~11월 국정감사 기간에는 대학원생 이슈, 특히 경북대 실험실 폭발사고 건이 교육위, 과방위에서 ‘핫이슈’였다. 여당 이낙연 대표가 피해자 아버지, 경북대 총장, 그리고 나를 만나 산재보험법 통과를 환노위원장에게 당부하는 일도 있었다. 사실상 민주당 당론으로 채택되었다며 보좌관들은 법안 통과가 꼭 될 거라 확언했다. 심지어 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 세 곳에서 학생연구원에게 산재보험을 적용하는 법안을 모두 발의했기에 여야간 의견충돌이 있을 일도 없었다. 자연스레 기대감이 높아졌다. 법안 심의로 넘어가는 시점에서는 이슈 재확산이 되지 않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고용노동부에서 법안을 좀 더 검토하여 차기 국회에서 다루자는 의견을 내비치면서 기류가 달라졌다. 법안심사소위 불과 며칠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게 감지되면서 투쟁 수위를 보다 올리는 전술 변화가 필요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내․외부의 조건이 악화되어 실현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노동부 의견이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받아들여지면서 우리의 법률 개정안은 차기 임시국회로 넘어갔다. 황망한 순간이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컸다. 분한 마음으로 몇 날 며칠을 보내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농성 투쟁은 법률 개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투쟁의 발단이 되었던 경북대 실험실 폭발사고도 제대로 수습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2월 24일 경북대가 피해 학생들에게 치료비 전액을 입금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나 경북대의 내부 규정에는 여전히 구상권 청구 조항이 남아있고 학교는 향후 발생할 치료비 지급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제2의 경북대 사고 예방을 위한 조치, 산재보험법 개정 전망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피해 학생 아버지 앞에서 산재법 개정안 통과에 힘쓰겠다던 이낙연 대표의 말도 공허해 보인다. 이런 조건 속에서,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실 가슴 먹먹한 심정이다.

 

4 오늘, 우리의 투쟁_2 대학원생노조지부02.jpg 

2020.10.19. ‘실험실 폭발사고 피해 학생 치료비 미지급’ 경북대학교에 대한 엄중한 국정감사 촉구! 학생연구원 산재보험 적용 촉구! 대학 구성원 공동 기자회견. [출처: 대학원생노조지부]

 

농성장은 철수했지만 이제 새로운 투쟁의 군불을 지펴야 할 때

 

원고 청탁을 받을 시점 대학원생노조 내부에선 한창 농성장 철수 논의를 하고 있었다. 정기국회에서는 우리 요구를 쟁취하진 못했지만 잠시 호흡을 가다듬어 다가올 임시국회 때 다시 투쟁하자는 취지였다. 결국 우리는 국회 앞 농성장을 철수했다. 짐을 정리하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75일간의 여정 속에서 보다 더 현명하고 뾰족한 선택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자괴감, 좀 더 싸워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이 끊임없이 맴돌았기 때문이다. 옆 농성장에서 지금도 혹한에 맞서가며 곡기를 끊은 채 싸우는 동지들을 보니 더욱 그랬다.

조직이 지쳐있다는 건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지만, 국회 농성장에서 돌아서는 발걸음이 참 무거웠다.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서였는지 모르겠다. “투쟁은 시작할 때보다 마무리할 때가 더 어렵다.” 어느 동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마무리…’ 참 무서운 말이다. 우리는 투쟁을 마무리한 것인가? 라는 자문을 던져본다. 끝이 아니라 잠시 숨을 고르는 거라는 자기 암시를 하면서, 정말 마무리가 안 되려면 투쟁의 군불을 어떻게 땔 것인지를 스스로 고민해야겠다고 다짐한다.

12월 27일은 경북대 사고가 발생한 지 1년째 되는 날이다. 12월 정기국회는 학생연구원 산재보험 적용법을 차기 국회로 넘겼다. 아직 쟁취할 게 남아있고 과제는 산적해 있다. 투쟁할 이유는 이미 충분하다.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걸어가야겠다고 다짐한다. 대학원생들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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