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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승무원은 왜 정규직이 되어야 하는가?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KTX를 타면 승무원들이 깔끔한 복장과 친절한 미소로 승객들을 맞이한다. 하지만 그 복장은 계절에 맞지 않아 춥거나 덥고, 이 미소 안에는 이들이 코레일관광개발이라는 하청업체 소속으로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린다는 현실이 감춰져 있다. 2006년 파업투쟁에서 정리해고되고 아직도 복직하지 못한 승무원들의 눈물이 담겨 있고, 안전업무는 하지 말고 오로지 안내업무만 하라는 철도공사의 억지가 들어 있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을 밝혔고, 기관별로 정규직전환심의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했다. 철도공사도 정규직 전환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KTX승무원들은 ‘자회사’ 소속이라서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우리는 KTX승무원들의 권리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고속열차를 타는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승무원들이 반드시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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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9.20. 해고승무원 직접고용‧원직복직 촉구 KTX승무지부 서울역 농성 [출처: 철폐연대]

 

승무업무를 외주화하고 파업파괴를 위해 정리해고를 한 철도공사

2000년 초반 김대중 정부는 ‘공공부문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하위직군의 노동자들을 해고하거나 외주화하면서 인력을 계속 줄여나갔다. 2004년 철도청에서 KTX를 개통할 때 3,000명의 신규인력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되었지만, 정부의 공무원 억제정책에 따라 553명만 충원하고 다른 인력은 전환배치 혹은 외주화로 충원했다. 그 외주화 대상 중에 KTX승무업무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승무업무는 철도청의 고유업무이므로 설령 외주화를 하더라도 이 업무를 담당할 역량을 가진 업체가 없었다. 따라서 퇴직간부들의 모임인 홍익회와 도급계약을 맺고 철도청이 교육훈련을 담당해야 했다. 형식적으로는 외주화되어 있으되, 실질적인 책임은 철도공사가 지면서 채용과 교육훈련에 관여해왔던 것이다. 외주화하지 않아야 할 업무를 외주화한 것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홍익회가 승무원을 고용하는 것이었지만, 철도청은 KTX승무원 채용 과정에서 자신들이 채용의 주체인 것처럼 행세했다. ‘지상의 스튜어디스’를 뽑는다고 광고하고 ‘1년 계약직으로 일하면 이후 정규직이 되어서 공무원 수준의 후생복지와 정년을 보장받는다’고도 했다. 공무원 인원을 늘릴 수 없으니, 공사로 전환할 때 정규직화를 하겠다는 의미였다. 이 약속을 믿고 무려 1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승무원들은 곧 형편없는 노동조건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1년 후 정규직화 약속을 믿고 견뎠다. 그런데 철도청은 2005년 철도공사로 전환한 이후에도, 정규직화는커녕 불법파견 논란을 피하기 위해 2004년 홍익회에서 철도유통으로, 2006년 KTX관광레저로 노동자들의 소속만 바꾸면서 비정규직으로 계속 일을 시켰다. 약속은 거짓이었다.

2006년 3월 1일 KTX 승무원들은 KTX관광레저로 이직하라는 철도공사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약속을 지키라’면서 파업에 돌입한다. 그런데 철도공사는 파업에 동참한 KTX승무원 280명에 대해 ‘전원해고’로 응수한다. ‘철도유통’이 사업권을 철도공사에 반납했기 때문에 정리해고를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지만, 파업 과정에서 노동자들을 해고하라고 지시한 것도, 파업을 깨기 위해 승무원들을 협박한 것도, 심지어 승무원들의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내 불이익처분 협박을 한 것도 모두 철도공사였다. 파업을 파괴하는 부당노동행위의 당사자가 철도공사였던 것이다. 2007년 12월 노사합의가 진행되어, 승무원들은 눈물을 머금고 ‘그 때까지 파업대오에 남아있던 80명 승무원의 역무직 채용’이라는 후퇴한 안에 합의했으나, 서명을 하루 앞두고 회사가 연기를 요청하면서 최종합의가 무산되었다. 부당해고도 철도공사의 책임이다.

 

‘승무원은 안전업무를 하지 않는다’는 2015년 최악의 판결

합의가 무산된 후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은 법원의 판단에 맡겨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도 불법파견으로 판정을 내렸고 고등법원에서까지 불법파견으로 판정을 내린 사안에 대해서 2015년 2월 26일 대법원은 ‘KTX 승무원은 철도공사의 근로자지위에 있지 않다’는 판결을 내렸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서 선정한 2015년 최악의 판결이자, <한겨레21>과 법학교수‧변호사‧시민단체활동가 들이 함께 선정한 2015년 ‘문제적 판결’에 포함된 판결이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최악의 판결 안에도 손꼽히는 판결이다. 대법원은 ‘열차팀장은 안전업무를 담당하고, 안전과 직결되지 않는 승객서비스 부분은 철도유통에 소속된 여승무원이 담당한다’고 하면서 승무원의 업무와 열차팀장의 업무를 분리한 철도공사의 입장에 손을 들어주었고, 따라서 철도공사의 정규직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것은 단지 승무원들의 노동권뿐만 아니라 승객들의 안전까지도 침해한 매우 심각한 판결이다. KTX는 1,000명 가까운 인원이 타고, 무려 300km로 달린다. 무엇보다 승객들의 안전이 중요하다. 응급상황이 생기거나 위험한 일이 벌어졌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은 철도공사에 있다. 그런데 열차에 단 1명인 열차팀장이 이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인가. 모든 승객들은 승무원들이 이런 역할을 해주리라고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철도공사는 승무원들이 안전업무를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 위해 승무원에게 안전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고 안전매뉴얼도 제대로 숙지시키지 않고 있다. 심지어 위험상황에서도 승무원의 업무는 ‘안내업무’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승무원의 정규직 전환을 막기 위해 승객들을 위험에 내모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이 대법원의 판결은 의미가 없다. 2013년 대구역에서 발생한 무궁화호와 KTX열차 추돌사고에서도 2차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을 막은 것은 KTX승무원이었다. 매뉴얼에 따르면 승무원은 단지 안내만 하면 되지만, 승객들이 자의적으로 창문을 깨고 탈출하는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출입문을 열어 승객을 대피시킨 것이다. 승무원들은 지금도 최선을 다해 안전업무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15년 7월 철도안전법이 개정되었다. ‘철도사고 등이 발생하는 경우 여객승무원은 현장을 이탈하여서는 안 되고, 후속조치를 이행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시행규칙에서도 기관사와 열차승무원이 함께 승객의 안전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서 규정하고 있듯이 더 이상 승무업무가 안전업무가 아니라는 철도공사의 주장은 의미가 없다. 승무업무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생명안전업무이다.

 

공공부문 정규직화는 KTX승무원의 정규직화로부터

2017년 현재 철도 외주용역 인원은 9,269명에 이르고 있다. 승무원에서 시작된 외주화는 KTX정비, 선로와 전철선 유지보수, 신호제어 유지보수, 기관사 등 전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고속열차의 안전과 승객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을 내놓은 것은, 전체 시민의 생명 안전과 연관이 있는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이 확산됨으로 인해 나타나는 문제들을 직시하고 노동자들의 침해된 권리를 되돌려야 한다는 문제의식일 것이다. 그러므로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이 제대로 실현되려면 11년 동안 이 문제로 싸워온 정리해고된 승무원들이 반드시 복직되어야 하며,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KTX승무원을 포함한 철도공사의 비정규직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지금 각 기관에서는 ‘상시업무는 정규직이어야 한다’는 원칙이 훼손되고, 온갖 근거로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되는 노동자들을 늘리고 있다. 철도공사에서도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에 오로지 생명안전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들만 정규직 전환을 하겠다고 말한다. 철도공사가 대중교통인 철도 운송을 담당하는 이상 철도공사의 모든 업무는 시민들의 ‘생명안전’과 연관될 수밖에 없다. ‘생명안전업무’를 특정하여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고 하는 것도 매우 자의적이다. 우리가 요구한 것,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사항으로 내건 것은 ‘상시업무를 정규직화 하겠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업무가 무엇인가를 논하는 것은 정규직화의 취지에 맞지 않는 것이다. 철도공사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은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것이 공공부문의 공공성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그런데 철도공사는 ‘생명안전업무’만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자회사 소속’ 노동자는 제외하겠다고 한다. KTX승무원들은 철도유통에서 관광레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정리해고’를 당했다. 자회사라고 해서 고용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추석을 앞두고 코레일관광개발 노동자들이 이틀간의 파업투쟁을 한 것은 저임금 때문이었다. ‘자회사’가 노동조건이 좋은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용역업체에 불과한 ‘자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정규직이라고 호도하는 것은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노동자 권리 보장과 승객 안전을 위해서 KTX승무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또한 2006년도에 ‘정규직화’를 외치다 해고된 200명의 KTX승무원들도 정규직으로 함께 복직해야 한다.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이 제대로 의미를 살리려면 지난 10여 년 간 고통 받았던 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회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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