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투쟁 마무리에 대한 철폐연대의 의견

by 철폐연대 posted May 14,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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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정은 ‘몇 명이 회사의 시혜에 의해 복직하게 된 사건’이 아니라, '당당하게 투쟁했으나 결국 힘에 부치고 이 투쟁을 실리와 시혜로 남기려는 시도들을 뛰어넘지 못한 것‘으로 기록되어야, 열정과 삶을 걸고 투쟁해왔던 강남성모병원 동지들의 투쟁의 의미를 살리               패배와 오류를 인정할 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   강남성모병원 비정규 투쟁 타결에 대한 철폐연대의 의견


   강남성모병원 비정규투쟁은 비정규 조합원 동지들이 최종안을 받아들임으로써 마무리되었다. 최종안의 내용은 1)조합원 7명은 5월 1일자로 무기계약직으로 복직한다 2)조합원 대표는 투쟁의 책임을 지고 1개월 사회봉사, 2개월 자숙기간을 거쳐 3개월 후인 8월 1일 복직한다 3)민형사상 고소고발 및 가압류는 취하하지만 가압류 금액 6,000만원 중 일부인 3,000만원은 1년 후부터 2년에 걸쳐 상환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투쟁을 마무리하며>라는 글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이 합의안은 투쟁에 대한 책임 운운하며 투쟁의 정당성을 훼손하였고 복직이 투쟁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병원의 시혜에 의해 이루어진 것처럼 왜곡되어 있고, 당장 손에 쥐는 실리를 중시하는 실리주의적 태도의 결과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우리는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동지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이 안을 선택했는지 알고 있다. 최종안의 문제점을 잘 알았고 그것을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주 힘든 토론을 거쳐서 “7인의 복직과 1인의 징계거부-당장의 복직 거부"라는 수정안을 만들었고 이것마저 거절당하자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종안에 합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조합원들이 왜 이런 고통스러운 선택에 내몰렸는지 살피고 문제제기를 해야 이런 일은 반복되지 않는다.


   이 투쟁의 승자는 강남성모병원

   이 투쟁에서 승자는 강남성모병원 사측이다. 그들은 직접고용 노동자들을 파견으로 전환시키고 2년이 되었다면서 해고하였고, 그 과정에서 계속 비정규직을 늘리고 더 많은 이윤을 착취하였다. 정규직들에게 단협해지 협박을 해서 정규직 지부의 연대투쟁을 가로막고 정규직 지부를 통제할 힘을 갖게 되었다. 1월 22일의 합의안을 뒤집고 가압류를 자행해서 노동자들로부터 투쟁에 대한 사실상의 손해배상도 받아냈다.
   강남성모병원은 조합원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인해 악화된 여론에 밀려서 결국 조합원들을 복직시킬 수밖에 없었다. 조합원들이 승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병원측은 조합원들이 힘을 소진하도록 유도하고 구두합의를 번복하고 손배·가압류를 가함으로써 비정규직 조합원들에게 타격을 입히고, 마지막 타결 과정에서 노동자 대표에게 사회봉사와 자숙을 명령함으로써, 이번 복직을 자신들의 시혜로 인한 것으로 만들었다. 그야말로 자본가들에게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모범이 될 만하다.
   그러나 강남성모병원은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비록 힘이 부족하여 이 투쟁에서 패배했지만 이 패배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임을. 강남성모병원이 얼마나 비정규직을 탄압하고 악랄한 사업장이었는지를 우리는 계속 기억할 것이다. 아니,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에게는 이 선택 외에는 없었는가?

   비판적 평가는 단지 조합원들만의 몫은 아니며, 이 투쟁을 확대하지 못해서 결국 이런 선택으로 조합원들을 내몬 철폐연대를 비롯한 지원대책위원회의 몫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합원들의 선택에 대해 입장을 내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 의견이 그동안 치열하게 투쟁하고 자신의 힘으로 조금씩 전진해온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어렵게 스스로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내놓은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동지들의 용기에 더해, 철폐연대와 우리 운동 전체가 고민해야 할 바를 이야기하려는 것이기에 의견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하나는 최종안 수용 과정이다. 조합원들은 처음 최종안이 나왔을 때에는 이 투쟁에 함께한 동지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토론해서 수정안을 제출했으나, 수정안이 관철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 순간 함께한 단위들의 견해나 판단 없이 일방적으로 최종안 수용을 결정하고 다른 단위에 그 결정을 통보했다. 최종적인 결정은 당사자들의 몫일 수 있으나, 조합원 동지들이 연대와 지원을 해왔던 동지들을 마지막 순간에 대상화한 것이 왜곡된 선택으로 자신을 내몰았던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강남성모병원 동지들은 수정안이 거부된 이후 “투쟁을 선택해야 하는 길과 굴욕적인 안을 받는 두 가지의 길만이 놓였”고 투쟁할 수 없기 때문에 굴욕적 안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투쟁인가, 실리인가”라는 선택지는 비정규직 투쟁의 성과를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바라보는 이들이 투쟁하는 이들에게 강요하는 전형적인 이분법이다. 우리는 투쟁에서 모두를 쟁취하기 어렵기에 타협을 한다. 그런데 그 타협안이 우리의 성과와 의미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면 그 때에는 ‘실리냐 투쟁이냐’가 아니라, 실리를 선택하거나 아니면 어렵더라도 투쟁하고자 하는 동지가 단 하나라도 있다면 그 의지를 존중하여 다시 투쟁을 일으켜보거나, 혹은 패배를 선택할 수도 있다. 때로는 깨끗한 패배가 우리의 삶을 가치있게 만들 수도 있고 이후를 기약하게 하기도 한다.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마지막 승리를 확신하는 순간, 혹은 자신들이 노동자들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노동자 투쟁의 정당성을 훼손할 방법을 찾는다. 바로 그 시점에 우리의 투쟁의 성과와 의미가 어떻게 남는가가 결정되기도 한다. 마지막 결정에서는 그것이 개인의 이후 삶이나 보건의료노조나 강남성모병원 사측이나 전체 비정규운동에 미칠 영향이 충분하게 고려되었어야 한다. 그런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고 ‘굴욕적인 안을 받거나 투쟁하거나’ 하는 이분법으로 자신들의 선택을 좁혀놓은 것은 자칫 굴욕적인 안을 받는 것을 정당화하는 언사가 될 수도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 투쟁을 치장하지 말라!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통스러운 선택으로 내몬 것은 '투쟁에 대한 자신 없음'이었다. 이 투쟁에 함께 해왔던 단위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 그런데 조합원들에게 “투쟁할 수 없다면 굴욕적인 안이라도 받으라”고 강요하고, 이 결정을 좋은 빗깔로 치장하고 심지어 악랄한 자본인 강남성모병원에 면죄부를 주는 보건의료노조의 태도는 노동자적이지 않다.
   보건의료노조는 투쟁 초기에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지부 설치를 요구하였을 때 거절했고, 12월 집중투쟁 계획을 잡을 때 “CMC다운 문제해결을 해보겠다”면서 그 계획을 폐기했다. 1월 22일 노사교섭안을 갖고 4월 15일까지 병원을 상대로 한 일체의 투쟁을 하지 못하게 했으며 심지어는 구두합의 내용이 사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파기되고 가압류가 들어왔는데도 사측에 책임을 묻지 않고 투쟁을 조직하지 않았다. 평화기간 동안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조합원들에게 흘렸는데 그것은 보건의료노조가 사측이 제시하는 바 ‘대표의 사회봉사’와 ‘자숙’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거나 혹은 그와 유사한 방식의 사측의 강제가 있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투쟁의 전과정에서 보건의료노조는 조합원 동지들을 투쟁의 주체로 인정하고 강남성모병원 투쟁을 확산시키기보다는 철저하게 8명의 복직 문제로만 가져가려고 했으며, 심지어는 조합원 동지들에게 끊임없이 "당신들 목적이 투쟁이냐 복직이냐"는 부당한 혐의를 제기했다. 이런 태도는 비정규직 문제를 오로지 ‘문제해결’로만 바라보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보건의료노조는 조합원들에게 최종안을 받으라고 강요했다. 많은 경우 대표나 간부들이 투쟁에 책임을 진다. 감옥에 가기도 하고, 해고를 당하기도 한다. 투쟁의 힘이 부족할 때 간부들이 원직복직 대상에서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러한 책임과 ‘자숙’ 및 ‘사회봉사’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자숙'과 '사회봉사'는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이 투쟁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합의가 병원의 시혜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정상적인 상급단체라면 조합원들이 이런 요구를 단호하게 거부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우리는 사측에게 일자리를 구걸한 것이 아니라 투쟁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조합원들에게 흘리고, 조합원들이 어렵게 토론하여 제출한 ‘수정안’도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하게 한 것은 사측이 아니라 바로 보건의료노조였다.
   우리가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것은 우리가 정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투쟁을 의미없는 것으로 만들고 원직복직조차도 투쟁의 성과로가 아니라 강남성모병원의 시혜로 만들어버리는 잔인한 짓을 한 것은, 보건의료노조가 원래 비정규직 투쟁에 대해서 시혜적 태도를 갖고 있거나 혹은 이 투쟁의 의미나 사회적 파장에 대한 고려는 하지 않고 다만 ‘비정규직들의 일자리마 지키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 아닌가?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보건의료노조의 조합원이고 스스로가 주체였고 투쟁으로 권리를 쟁취하고자 했다. 그런데 결국 노동자들에게 반성과 자숙을 요구하는데 동참함으로써 보건의료노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의 존엄성을 의미없는 단순한 일자리 구걸로 만들었다.  
   여기에서 더하여 보건의료노조는 성명서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양극화를 비롯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톨릭중앙의료원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 표명은 가톨릭 이념을 구현한 것으로서 우리 사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모범으로 기록될 것이다. 보건의료노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해결하려는 가톨릭중앙의료원의 결단이 병원 사업장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굴욕적이고 왜곡된 합의안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비정규직 투쟁을 ‘시혜’로 전락시킨 강남성모병원의 작태와 노동자들의 굴욕이 ‘우리사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모범이 될 것’이라니. 정말로 보건의료노조는 제정신인가?


   패배와 오류를 인정할 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는 강남성모병원 동지들의 끈질긴 투쟁이 이번 복직의 힘이자 원천이었음을 알고 있다. 많은 동요가 있었으나 8명의 동지들이 결단을 하면서 투쟁에 끝까지 함께하였고, 복귀 후 활동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결의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이들의 복직이 현장 노동자들에게 자극을 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동지들의 투쟁은 어떤 이유로도 폄훼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최종 합의 과정에서 조합원들은 비록 자신들의 힘으로 쟁취한 복직의 의미와 정당성을 훼손하는 선택을 했지만, 이 결정을 합리화하지 않고 문제점을 온전하게 드러내고 스스로 비판적 평가를 했다.
   강남성모병원 조합원 동지들의 투쟁의 정당성에 동의하며 함께 투쟁했던 철폐연대는 이 합의안에 모욕감을 느끼고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이 합의안을 되돌릴 수 없다 하더라도 이것이 비정규직 투쟁의 원칙과 정당성을 훼손하고 있음을 밝히는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 동지들을 보면서 그 동지들이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우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투쟁을 제대로 확대하지 못하고 이 동지들이 ‘더이상 투쟁할 수 없겠구나’ 생각하게 만든 우리들의 무기력함과 무능력함에 뼈아프고 고통스러웠다.
   그렇지만 이 투쟁이 평가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왜곡되거나 변질되는 것을 막고, 잘못과 오류를 제대로 밝히는 것만이 이 투쟁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다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이 결정은 ‘몇 명이 회사의 시혜에 의해 복직하게 된 사건’이 아니라, '당당하게 투쟁했으나 결국 힘에 부치고 이 투쟁을 실리와 시혜로 남기려는 시도들을 뛰어넘지 못한 것‘으로 기록되어야, 열정과 삶을 걸고 투쟁해왔던 강남성모병원 동지들의 투쟁의 의미를 살리고 그 동지들의 반성적 평가를 의미있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철폐연대도 이후 투쟁하는 동지들과 함께 우리의 한계와 오류를 넘어서기 위해서 더욱 고민하고 분투할 것이다.



                           2009년 5월 13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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