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노동자대회에서 벌어진 공권력 탄압이 의미하는 바

by 철폐연대 posted May 1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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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 바로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을 열사는 죽음으로 말했고, 또 그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투쟁하고 있다. 자본과 정권은 얼마나 더 많은 목숨을 노리는 것인가. 노동유연화라는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벌어진 공권력의 탄압, 대대적 연행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박종태 동지가 열사가 되어 우리 곁을 떠난 지 20여일이 되어 가고 있다. 함께 고락을 같이 하고, 투쟁의 전망을 밝혔던 동지를 떠나보내는 마음이 어찌 달래질 수 있을까. 하지만 열사의 뜻을 이어받아 그 투쟁의 의미를 밝히고 열사의 한을 풀 수 있는 투쟁을 다짐 했기에, 16일 전국 노동자 대회의 투쟁은 더욱 뜨거웠다.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탄압한 공권력에 맞서는 당당한 투쟁, 그리고 끊임없이 대한통운으로 진격하여 노동자 해고와 열사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했던 투쟁이었다. 대한통운을 눈앞에 두고, 열사가 항거 자결한 야산 앞에서 발길을 돌리지 못한 노동자 대오는 화물연대의 총파업을 비롯한 더 강력한 투쟁을 결의하며 노동자대회의 투쟁을 마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후 벌어진 공권력의 악랄한 탄압은 말로 형용하기 힘들 정도였다. 노동자 수백 명을 폭력적으로 연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은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이때 불현듯 떠오른 것은 바로 2001년 건설운송노조 레미콘 동지들에 대한 공권력의 도끼만행이었다. 노동기본권을 요구하며 여의도에 상경투쟁을 전개하던 노동자들을 손도끼를 들고 위협하며 끌어내려 마구잡이 연행하였고, 차량을 박살냈다. 테러범은 바로 그들이었다. 또 2006년 화물연대 투쟁에 대한 탄압이 있었다. 수십미터 굴뚝에서 죽음을 각오한 고공농성으로만 권리를 주장할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을 공권력은 무자비하게 짓밟았고, 3명만 모여 있어도 불법시위라며 연행해가는 작태를 저질렀다. 또 2007년 안산 서울우유 투쟁에서는 투쟁하는 대오를 폭행하고 집회에 참가한 노동자들 중 투쟁 조끼를 확인하여 화물연대 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연행해 갔다. 또 최근 서울에서는 500일이 넘도록 투쟁하고 있는 학습지 재능교사 노동자들의 농성장을 짓밟고 신고 된 집회를 가로막고 연행해 가고 구속자가 발생하는 일이 연일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처럼 잔인하게 짓밟히는 것은 왜인가.
노동열사에 정규직-비정규직 나눌 일이 없고 고용형태를 나눌 일이 없지만, 지금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 분명히 존재하기에 부득이하게 구분을 잠깐 해보려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기억하는 비정규 열사가 열다섯 분이 된다. 그리고 그 가운데 8명의 열사가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문제로 분신하거나, 자결하거나, 투쟁의 과정에서 공권력에 의해 살해되었다. 또 그 가운데 화물노동자가 4명이다. 박상준 열사, 최복남 열사, 김동윤 열사, 그리고 박종태 열사. 그 하나하나 이름에 피눈물이 맺힌다.
이유는 분명히 있다. 이 땅에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이 거셀 수밖에 없는 이유, 탄압이 잔인할 수밖에 없는 이유, 많은 노동자들이 죽음으로 권리를 외쳐야만 했던 이유. 바로 가장 기본적인 노동의 권리조차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수고용 형태가 도입된 지 거의 20년 가까이 되어 가고 있다. 그간 특수고용이 노동자들을 개별화하고 노동자 스스로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시스템을 만들면서 자본은 엄청난 이윤을 누려왔다. 그렇게 자본이 이윤을 누리는 새 우리는 열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일상적으로 너무 많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죽음을 경험하고 있다. 밤늦게 까지 업무를 하는 과정에서 범죄에 노출되어 세상을 떠났던 보험모집인 노동자, 회사의 실적 강요로 과로사 했던 학습지 노동자, 그리고 장거리 야간 노동으로 매일 아침 뉴스에 나오는 화물 노동자의 죽음. 이 삶을 끝장내기 위해, 기본적인 노동자의 권리가 인정되는 세상을 위해 노동자들은 지금도 싸우고, 다치고, 또 죽어가고 있다.

흔히 특수고용 노동자를 노동자와 사업자의 경계에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들이 놓여있는 경계점은 노동자냐 아니냐가 아니라 자본과 정권의 노동권 박탈이 가장 극대화 된 그 지점이다. 그렇기에 노동자의 투쟁은 이렇게 치열할 수밖에 없고, 정권의 탄압 또한 이렇게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하기에 우리가 더 큰 목소리로 외쳐야 할 것은 노동기본권 쟁취이다. 자본과 정권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끊임없이 사각지대로 몰아내고, 사업자로 위장하여 노동자의 이름을 거세하고자 하고 있다. 이에 맞서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 바로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을 열사는 죽음으로 말했고, 또 그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투쟁하고 있다.

자본과 정권은 얼마나 더 많은 목숨을 노리는 것인가. 노동유연화라는 미명하에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노동권을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는 정권의 입장은 필연적으로 더 많은 죽음을 부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또 다른 죽음을 막기 위해 더 강력하게 투쟁할 것이다. 더 위력적인 투쟁으로 노동자의 삶을 지켜낼 것이다. 공권력은 결코 그 앞길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5월 18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 이 글은 미디어 충청에 기고된 글이며, 관련 기사는 미디어 충청 (cmedia.or.kr) 에서 찾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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