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과 ‘중간착취’의 대체용어를 만들겠다는 노동부의 의도는 참으로 극악하다

by 철폐연대 posted Feb 1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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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과 ‘중간착취’는 부정적인 ‘어감’이 아니라 실제로 부정적인 행위이고 부정적인 고용형태이다. 그런데 이것을 바꾸겠다는 것은 비정규직이나 중간착취 등이 원래는 괜찮은 것인데 단어의 의미만 부정적이라는 뜻이 된다.          ‘비정규직’과 ‘중간착취’의 대체용어를 만들겠다는 노동부의 의도는 참으로 극악하다




  조지오웰의 소설 [1984]에 보면 통치권자인 빅브라더는 말을 줄이거나 없애도록 하는 부서를 만든다. “좋다, 기쁘다, 만족하다, 행복하다”는 등의 단어를 ‘good'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고 다른 말을 없애는 것이다. 말이 없으면 사람들의 생각도 단순해지고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어려워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쁜 짓을 저지르면서도 국민들을 속이고 호도하려는 꿍꿍이가 있는 정부일수록 이렇게 말을 줄여버리거나 혹은 그럴듯한 말을 만들어내려는 법이다.  

  노동부에서는 2월 초, 정책용어 중 어렵거나 의미가 모호한 용어, 오해의 여지가 있거나 부정적인 어감의 정책 용어 중 107개를 선정해서 대체어 개발에 들어간다고 한다. 난해하고 낯선 법령 용어들을 고치는 일은 중요하고 의미 있다. 하지만 노동부는 대체어 개발에 ‘부정적인 어감’을 가진 단어를 포함하면서 ‘비정규직’ ‘중간착취’와 같은 단어를 바꾸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부정적인 어감의 단어를 대체한다는 말 안에는 ‘원래는 정상적이고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부정적인 어감의 단어를 사용하여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언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 과연 비정규직과 중간착취가 부정적인 어감을 가진 말인가? ‘임금체불’이 부정적인 ‘어감’을 가진 말이 아니라 실제로 부정적이며 해서는 안 되는 행위이듯이, ‘비정규직’과 ‘중간착취’는 부정적인 ‘어감’이 아니라 실제로 부정적인 행위이고 부정적인 고용형태이다. 그런데 이것을 바꾸겠다는 것은 비정규직이나 중간착취 등이 원래는 괜찮은 것인데 단어의 의미만 부정적이라는 뜻이 된다.

  그렇다. 노동부에서 이야기하는 핵심은 바로 그것이다.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는 정상적인 것이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이다. 이미 너무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단지 고용형태가 비정규직으로 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임금은 정규직의 50%에도 미치지 못하고, 4대보험 가입률도 30%대에 머물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고용불안에 떨고 있는데, 대체어를 만들어서 이런 현실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은폐하고 위장해보겠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그런 방식으로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를 당연한 것으로, 사회 전체가 지향해야 할 것으로 만들어버리겠다는 것이다.

  이미 노동부에서는 비정규직을 정상적인 고용형태로 만들기 위해서 말을 바꾸려는 시도를 해왔었다. 이미 2000년에 ‘비전형근로자’라는 이름을 만들어서 정규직과 대비되는 고용형태가 아닌 자유로운 고용형태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때로는 ‘취약근로자’라는 표현을 써서 이 노동자들은 대단히 불쌍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이기에 우리가 나서서 ‘도와주어야 할’ 노동자들인 것처럼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비정규직’으로 선언했다. 이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야 할 안정적인 고용의 권리와 생활의 권리를 불합리하게 빼앗기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그러면서 비정규직은 시혜의 대상도 아니고 스스로가 그러한 권리를 찾기 위해서 노력하고 투쟁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렇게 ‘비정규직’이라는 모순의 근원이 제대로 드러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정부는 그러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말바꾸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중간착취’라는 말은 어떠한가? 중간착취란 타인의 고용관계에 끼어들어서 임금을 착취하는 것을 말한다. 당연히 용서되어도 안 되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정부는 파견법을 만들어서 중간착취를 당연하게 인정해버렸다. 최근에는 ‘직업안정법’을 개정하여 직업소개 요금을 인상하기도 하였다. 사회적으로 점차 중간착취가 늘어나는 것을 조사하고 막아야 할 정부가 오히려 이것을 장려하고 합법화하다보니, 정부의 눈에는 ‘중간착취’라는 부정적인 단어는 사라져야 하고 어감이 좋은 말로 바꿔서 현실을 호도하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찌보면 해프닝처럼 느껴질 수 있는 사소한 문제이지만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비정규직 ‘보호’입법이라는 이름을 가진 비정규법이, 실은 그 법안이 비정규직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고 해고하고 비정규직을 늘리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도구가 되어서 국민들을 혼돈하게 만들듯이, 지금 노동부의 시도는 우스운 짓이라고 가볍게 치부하기에는 비정규직과 중간착취를 정상적인 것으로 만들겠다는 그 의도가 너무나 극악하다.

  이것은 단지 언어를 둘러싼 투쟁이 아니라, 이후 고용형태의 방향과 관련한 문제이다. 중간착취는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용인하는 파견법은 없어져야 한다.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는 정상적인 고용형태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투쟁으로 안정된 권리를 찾아나가야 하며, 비정규직을 반드시 철폐해야 한다. 그러한 우리의 결의를 만들어나갈 때 노동부는 말로 현실을 은폐하려는 시도를 더 이상 못하게 될 것이다. 작은 것으로부터 우리의 투쟁의지는 새롭게 만들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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