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가 죽인 또 한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 박정식열사 전국노동자장

by 철폐연대 posted Sep 0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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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5일 ‘열사정신 계승! 비정규직 철폐! 정몽구 구속!’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박정식 열사 전국노동자장>을 치렀습니다, 차디찬 냉동고에서 53일. 동지들의 마음과 손길을 모아 피눈물로 열사를 보내고 새로운 투쟁을 다짐합니다.박정식 열사를 보내드렸습니다.
정몽구가 죽인 또 한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므로 정규직'이라는 2010년 7월 22일의 대법원 판결을 정몽구가 이행했다면 지금도 팔팔하게 살아 뛸 서른 다섯의 심장입니다. 함께 좇았던 꿈과 희망을 놓지 말라는 유언을 동지들에게 남기고 간 열사를, 차디찬 냉동고에 53일 간 모시고도 분통하고 억울한 장례를 치러야 했습니다.

정몽구가 죽였으니, 정몽구에게 사과를 받아야 했습니다. 함께 투쟁하던 동지들은 환히 웃는 열사의 영정사진을 품고 투쟁조끼 대신 상복을 입었습니다. 현대자동차 본사가 있는 양재동으로, 열사가 십 년 동안 일했던 아산공장으로, 희망버스가 열린 울산으로, 촛불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서울시청으로. 살아생전 열사와 함께 투쟁했던 곳곳에서 열사의 한을 풀기 위해 투쟁했습니다. 착한 아들이 마지막까지 버릴 수 없었던, 함께 투쟁했던 동지들에게 당부한 꿈과 희망을 지키고 싶었던 열사의 어머님도 함께였습니다.

하지만 법 위의 현대자동차는, 불법대마왕 정몽구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자동차의 성실한 일꾼이었던 청년 박정식이, 대법판결이 났으니 지긋지긋한 차별의 비정규직 굴레를 벗어버릴 수 있으리라 꿈꾸며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한 조합원 박정식이, 노동조합의 선전부장을 맡고 사무장을 맡으며 헌신적으로 투쟁한 박정식 동지가... 열사가 되었지만 현실은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너무나 부족한 우리들의 힘을 절감하며, 그러나 지극한 마음과 모자란 힘을 모아 9월 5일 ‘열사정신 계승! 비정규직 철폐! 정몽구 구속!’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박정식 열사 전국노동자장>을 치렀습니다. 비통하고 부끄러운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열사의 뜻을 가슴에 새기고 열사와 함께 꾸었던 꿈과 희망, 비정규직 철폐의 그 날을 위한 다짐을 새롭게 하는 자리였습니다. 우리들의 투쟁으로 부활한 열사와 함께 환히 웃는 승리의 날까지, 부디 평안하소서.


- 조시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누가 날더러 죽었다고 이야기합니까
한여름 그 무더운 7월의 뙤약볕 아래
서른 다섯 청춘을 잠시 내려놓고
나는 어디에도 없는 내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 내 이름을 찾아 나는 살아있습니다.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이날 이때까지 내가 살아왔는지
얼마나 뜨거운 분노의 거리를 내가 달려왔는지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는
파업의 현장에서 노숙농성장 보도블럭에서 여전히 머리띠를 두르고
피켓을 들고
단단한 주먹으로 서 있습니다.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50일이 넘게 꽁꽁 얼어붙은 냉동고에서
나는 이렇게 나의 두 발로 걸어나왔습니다.
나를 죽이고자 눈을 부릅뜬 자들 앞에서
내가 죽었다고 하지 마세요.
나보다 먼저 죽어간 친구들 앞에서
내 영정을 놓고 한송이 꽃을 바치지 마세요.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내가 지나온 길은 죽음의 길이 아닙니다.
비정규직 철폐투쟁 10년의 길입니다.
대법원 판결이행 정몽구 구속의 길입니다.
저 끝없는 광야의 시간이 멎은 길
빛나는 태양이 가리키는 대지의 길
내가 가혹하게 사랑했던 노동자의 길입니다.

아,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나를 위한 눈물은 곧 나의 죽음입니다.
죽어도 결코 이대로는 죽을수 없는 나는
환한 내 웃음이 머물던 자리
정의와 승리가 피를 흘린 자리
그 자리를 내 목숨으로 영원히 지킬 것입니다.


임성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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