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18. 통상임금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한 철폐연대의 견해

by 철폐연대 posted Jan 0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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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18일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의 임금 및 퇴직금 등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었다. 이 판결은 많은 이들이 평하듯이 자본의 이해를 100% 대변한 것이며, 통상임금 문제에 대한 노동자들의 제기를 거의 전면적으로 가로막은 판결이다.통상임금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한 철폐연대의 견해


지난 12월 18일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의 임금 및 퇴직금 등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었다. 상여금 등에 대한 통상임금 포함 여부가 핵심 쟁점이었고, 이는 2012년 3월 금아리무진 판결 이후 줄 잇고 있는 현장의 통상임금 소송의 향방을 가를 문제였기에 노사 및 정부 모두의 뜨거운 관심 속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2013년 9월 공개변론을 진행, 전원합의체 판결에 이르기까지의 경위는 사안의 판단을 기다리던 노동자들에게는 불안한 과정이었고, 그 결과는 노동법의 원칙을 지키기 보다는 사용자의 경영의 이익을 고려한 판결로 결론이 났다.

이 판결은 많은 이들이 평하듯이 자본의 이해를 100% 대변한 것이며, 통상임금 문제에 대한 노동자들의 제기를 거의 전면적으로 가로막은 판결이다. 특히 다음과 같은 점에서 그러하다.

첫째, 먼저 대법원은 통상임금에 대해 ‘소정근로의 대가로 지급하기로 약정한 금품으로서 정기적 ․ 일률적 ․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을 말하며, 1개월을 초과하는 기간마다 지급되는 임금도 그 요건을 충족한다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운데 특히 ‘고정적으로 지급되는가’의 요소를 중요하게 보고 이의 해당성 여부를 판단하였는데, 이에 사용한 주된 근거가 ‘퇴직한 자에게도 지급하기로 확정된 것’이라면 통상임금에 해당되고, 지급 당시 재직하고 있는 자에 대하여만 지급하기로 한 것이라면 고정성을 결여하여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기존 대법원 판결에서 근무성적에 따라 지급 여부 및 지급액이 달라지는 항목의 임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여 온 것도 고정성을 결하였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대법원이 사용한 재직하고 있는 자에게만 지급되는 것인가의 문제는 ‘일률적으로 지급되고 있는가’에 대한 판단이면 족한 것이지, 이를 지급여부 및 지급액이 달라지는 변동적 성격인가의 판단 근거로 사용한 것은 오판이다. 오히려 정기적 ․ 일률적 ․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을 퇴직한 자에게 지급하지 않은 것에 대한 문제를 따지는 것이 옳다. 이는 현재 재직 중인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이미 퇴직한 노동자들의 소송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의도된 해석이라는 의심이 들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둘째, 이러한 고정성의 판단은 사실상 기존에 통상임금으로 인정되는 범위조차 축소시켰다. 전원합의체 판결은 본 판결에 배치되는 기존의 판결들을 변경하였는데, 기존 판결 가운데 “효도제례비, 연말특별소통장려금 및 출퇴근보조여비는 모두 근로자들에 대하여 근로의 대가로서 정기적ㆍ일률적ㆍ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이라고 할 것이어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대법원 2007. 6. 15. 선고2006다13070 판결)한 것에 대해 재직 중일 것을 지급 요건으로 하는지 여부를 심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변경하였다.
이는 위에서 밝혔듯이 고정성 판단의 요소가 아닌 것을 끌어와 판단의 근거로 삼은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일상적인 법위반의 소지를 강화시키고 이로서 모든 노동자의 노동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문제가 있다. 사용자는 노동자가 퇴직할 때 지급하기로 확정된 임금에 대하여는 그 지급시기가 도래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근무일에 비례하여 지급함이 오히려 타당하다. 노동현장에서 중도 퇴직시 이미 확정된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강행법규의 위반 소지가 다분히 강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러한 법위반 소지를 오히려 통상임금 해당여부의 판단 근거로 끌어와 고정성을 부정하는 요소로 사용하였으며, 이는 1월 이상의 기간을 정하여 지급하는 고정적 임금을 퇴직시에는 지급하지 않는 잘못된 관행을 강화시킬 우려를 낳을 뿐만 아니라 이후 이러한 사례가 더욱 빈번하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본 판결에서 대법원이 수차례 강조하고 있는 소정근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유도한다.

셋째, 더 나아가 대법원은 노사합의의 존중과 신의성실의 원칙이라는 두 가지로 노동자들의 권리 주장도 가로막았다. 강행법규인 근로기준법에 위반하는 합의는 무효라고 밝히면서도, 강행법규 위반으로 인해 상실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노사간 신뢰를 깨는 것이므로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노사간 합의의 숨은 배경과 심리를 억지스럽게 밝혀내는 과정과 다수 법관들의 일방적 가정을 통해 노사합의의 존중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이 가정에 사용되는 것은 어차피 사용자가 노동자들에게 제공할 비용의 총액은 정해져 있고, 결코 노동자는 그 이상을 구할 수 없다는 논리에 기반한다. 경영상태에 따라 정해진 총액 안에서 사용자와 노동자가 협상을 하고 인상분을 결정할 때 작용하는 것은 그를 기본급으로 지급받을 것인지, 다른 명목의 수당이나 상여금으로 지급받을 것인지 등을 정하는 것일 뿐이고, 만약 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것을 노사가 명확히 인지하였다면 ‘정해진 총액’ 안에서 다른 방식으로 협상을 하였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기에 이러한 과정을 뒤집고 노동자들이 상여금 등의 통상임금 해당 여부를 다투는 것은 신뢰를 깨는 것이고, 예상외의 이익을 구하는 것으로 “정의와 형평 관념에 비추어 신의에 현저히 반하고 도저히 용인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회사가 위태로워지면 결국 노동자들에게도 손해이기에 결국 좋은 것이 좋은 것 아니냐는 말로 무마한다. 이에 이르러 더 이상 대법관으로서의 법적 논리를 기대할 수는 없게 되었다.

넷째, 결과적으로 이러한 판단은 노동현장에 만연한 상시적 초과노동 자체를 용인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앞선 2012년 11월 서울고법은 한국지엠의 판결에서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넣지 않는다면 기본근로에 대해서는 상여금이 고려되지만 연장근로 등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음으로써 연장근로의 시간당 노동가치가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 온다’고 적시한 바 있다. 기업들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지 않음으로써 임금도 저하시켰지만 장시간 노동의 이득도 챙겨왔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본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오히려 초과노동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지는 점을 감안하여 상여금 등의 통상임금 포함에 대한 청구를 인정한다면 기업이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이유로 노동자의 권리를 부정하였다. 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만들고, 저임금의 초과노동을 현실적인 것으로 당연시하면서 그를 용인하는 판결을 해 준 것이다. 이것이 과연 강행법규를 무너뜨리면서까지 대법원이 내려야 하는 판결이었을까.

이는 통상임금 문제에 그치지 않게 될 것이다. 노동자의 권리 주장에 있어서 신의칙에 위배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 셈이며, 법이 정하고 있는 최소한의 권리는 ‘예상외의 이익’으로 치부되어 노동자의 권리 주장의 길이 가로막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통상임금의 판단 기준을 제시하며 그에 따라 여러 명목의 상여금 및 수당 등에 대해 통상임금 해당 여부를 판단하고 있지만, 기준의 사용에서 ‘재직 논리’를 들이밀며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 그러나 이는 사소한 법 논리의 오해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대법원 판결이 자본의 이해를 대변한 정치적 판결로 보이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계약의 자유와 노동법의 논리 혼동에 있어 보인다. 노사간의 집단적 교섭이라는 노사자치가 서 있는 영역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에 있으며, 노동자와 사용자의 힘의 대립 및 그 균형을 이루어내는 과정은 기본적으로 개별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한 단결의 과정이다. 사용자와 노동자는, 그리고 사용자와 노동조합은 자유롭게 계약과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지만, 결과물로서의 근로계약, 단체협약 또는 기타 노사합의는 강행법규에 위반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위반되어서는 안 되는 ‘노동법’이라는 법은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한 것이지 사용자가 안정된 사업을 영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하기에 개별적이든 집단적이든 ‘몰랐다’는 사정으로 용인될 수 있는 것은 없다.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지급한 사용자가 최저임금액을 몰랐다는 이유로 미지급을 용서받을 수 없듯이 설령 노사간의 합의로 이루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근로기준법이라는 강행법에 위반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것이 노동법이다. 하물며 뒤늦게 권리를 깨달은 노동자가 그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가로막는 것은 절대 용인될 수 없다. 그것이야 말로 “정의와 형평 관념에 비추어 신의에 현저히 반하고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것이다.
폭넓은 노동3권의 보장을 통해 노사자치를 보장하는 것은 노동법의 근간이며, 개별 노동관계에 대한 강행법규는 노동자들의 권리의 최저기준을 형성함으로써 개별 노동관계에 개입하여 법 위반이 없도록 노동자를 보호하여야 한다. 그러나 본 판결은 노사자치를 근거로 강행법규를 일탈하고 규범력을 위협하는 위험한 결론을 내렸다. 법원이 단체협약이라는 계약의 과정과 숨은 의도와 배경을 모두 추측하여 용인하는 것은 노동법의 강행법규로서의 성격을 왜곡한 것일 뿐만 아니라 노사자치의 본뜻 역시 훼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법원 판결은 통상임금은 노동자와 사용자가 소정근로시간에 통상적으로 제공하기로 정한 노동의 가치에 대한 평가라고 끊임없이 되뇌이고 있다. 하지만 그 가치는 이번 판결에 의해 결정적으로 훼손되었고,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주장은 횡재를 얻고자 하는 무분별한 요구로 치부되었다. 수십장에 달하는 판결문 어느 곳에서 대법관다운 판단을 구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다.


2014년 1월 6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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