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 비판

by 철폐연대 posted Mar 31, 201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고용노동부는 지난 3월 19일 ‘새로운 미래를 여는 합리적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정부의 안은 오로지 ‘비용’으로서의 임금을 어떻게 절감할 것인지, 그 절감에 어떤 합리적인 이유들을 붙이면 되는지에 대한 설시와 같다. 정[철폐연대 입장] 고용노동부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 비판

2014년 4월 4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저임금 체계를 권고하는 노동부의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

고용노동부는 지난 3월 19일 ‘새로운 미래를 여는 합리적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발표하였다. 통상임금 개편 및 정년연장 등의 상황 하에서 기존의 연공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의 필요성이 급증하고 있어 정부가 안을 마련, 임금체계 개편을 선도하겠다는 것이다.
이 매뉴얼 발표의 배경에는 최근 노동문제의 핵심 이슈가 되고 있는 통상임금 산정범위 변경의 문제, 60세 정년연장이라는 변화, 아울러 휴일노동을 연장근로범위에 산입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 및 수년간 지속적으로 한국사회에 제기되고 있는 장시간 노동의 해소, 일자리 창출의 필요성이라는 다양한 사안들이 존재한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들이 기업의 비용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며 현실과 맞지 않는 연공급 형태를 유지하다가는 오히려 일자리의 축소, 비정규직 확대 등으로 이어질 것이기에 임금체계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한다. 정부 발표의 취지와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연공급 임금체계는 근속의 증가에 따라 임금이 급격히 상승하는 형태로 주로 구성되는데, 정년이 연장되는 상황에서도 연공급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면 임금을 계속 올려주어야 해서 비용이 증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정부는 이런 즉각적인 비용부담만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연공급 임금체계의 문제점을 공격한다. 연령이 증가할수록 생산성이 떨어짐에도 임금을 상승시켜 주는 구조는 노동자의 능력과 맞지 않는 임금 형태이기에 그 점에서 비용의 누수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상승되는 인건비는 기업의 비용부담을 증가시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을 방해하고, 외부화 된 비정규직 인력을 사용하도록 하는 한편, 기업으로 하여금 고령자의 조기퇴직을 유도하도록 만드는 요인이 된다고 한다. 결국 연공급제는 노동자의 고용을 축소하고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노동시간에 따라 지급되는 임금, 그리고 기본급에 연동된 비율로 지급되는 각종 수당이나 상여금은 기업의 비용부담을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생산성이나 성과 ․ 실적과의 연관성이 떨어져 노동에 동기를 부여하지 못하고, 노동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증가하는 수당 구조는 장시간 노동을 유발하는 문제가 있다고 한다. 일의 가치나 생산성이 반영되지 않는 연공급 임금체계는 노동자의 사기도 저하시키고 기업의 생산성 증가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연공에 따라 상승하는 것이므로 임금격차는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며, 기업의 규모나 고용형태에 따른 격차도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하여 정부는 임금체계 개편의 방향을 크게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 고정급여는 기본급으로 통합하고, 그 외 수당 등은 직무의 가치, 능력, 성과를 반영하는 구조로 만들어 임금 구성항목을 단순화해야 한다. 둘째, 노동자의 능력이나 실적과 무관하게 임금이 증가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므로, 기본급은 연공과 연동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특히 상여금은 지금과 같이 기본급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과와 연동되는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하였다.
연공이 아닌 직무 가치 및 성과를 반영하는 임금체계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다분히 기업의 비용부담을 우려한 결과이다. 기업의 생산성 및 노동자 성과와 무관하게 임금이 지급되어서는 안 되고, 성과와 노동의 연관을 파악할 수 없는 임금체계는 문제가 있는 형태이기에, 일한 만큼이 아니라 그 일의 ‘결과’가 기업의 이윤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느냐에 따라 지급되는 임금체계를 가지라는 말. 이는 임금체계의 개편을 통해 노동 강도를 강화하고 임금자체를 유연화함으로써 저임금으로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는 체제를 기업이 갖출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임금에서 연공 요소를 배제한다는 것의 의미>

연공급제는 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문제가 많은 임금체계인가? 그렇지 않다. 한국에서 연공급제라는 임금체계가 발달한 것은 기업의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80년대 후반 새로 형성된 중공업 분야에서는 고숙련 노동자들을 필요로 했고, 그에 따라 노동자들의 장기근속을 유도할 필요가 기업에 존재했다. 말하자면 소위 고급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기업의 방책이었던 것이다. 나이가 들고 근속이 증가하면서 노동자의 숙련이 증가한다는 전제, 그에 따라 임금을 올려준다는 규칙. 이는 노동자의 투쟁의 결과이기도 했지만, 오랜 노동의 결과 얻어진 숙련에 대한 보상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전제하에 근속이 낮은 노동자들은 실제 노동에 비해 낮은 임금을 감수해야 했다. 근속이 올라가면 높은 보상이 주어진다는 연공급제 하에서의 약속이 노사 간에, 또 사회적으로 유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연공급제를 과거의 임금체계로만 치부할 수도 없다. 연공급제는 노동자의 생애주기에 가장 가까운 임금형태로 사회보장이 지극히 열악한 한국 사회에서, 거의 전적으로 임금에 의존해 살아가야 하는 대다수 노동자들에게 가장 적당한 임금체계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연공급제라는 임금체계가 공격받는 이유는 연공이 올라갈수록 기업의 비용부담이 늘어난다는 이유 때문인데, 현재 한국의 노동자들의 경우 한 기업에서 장기간 근속하는 경우가 일반적인 것이라 할 수는 없다. 한국의 임금노동자들의 평균 근속년수는 5.57년이며, 정규직은 8.24년, 비정규직은 2.41년으로 조사되고 있다. 1년 미만의 단기근속자도 정규직이 15.1%, 비정규직은 무려 53.5%이다.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기업에 장기간 눌러앉아 생산성이 떨어지는데도 높은 임금을 받아가고 있다’는 정부의 가정은 현실과 어긋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정부는 연공에 따라 임금격차가 심화되는 것의 문제를 지적한다. 그러나 이 연공에 따른 기업 내부 임금격차의 문제는 비단 연공에 따른 임금인상 폭이 커서가 아니다. 현재 수준에서 인상폭을 줄인다는 것은 청년층의 초임은 그대로 둔 채 노동자의 임금 총량을 깎겠다는 것이다. 연공급의 불합리성이 있다면 청년층의 초임이 지나치게 저임금이라는데 있다. 초임을 충분히 인상한다면 인상폭을 둔화시키는 것도 일면 일리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노동부가 제시한 방안은 임금격차의 문제를 연공에 따른 상승에만 이유를 돌려 노동자의 임금을 깎아 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으로, 전체적인 저임금화를 의도하는 것일 뿐이다. 게다가 기업들은 여전히 근속이 낮은 노동자들의 저임금 상태를 그대로 두고, 비정규직 활용을 통해 근속이 올라가도 만년 저임금 신규채용 노동자 신세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이미 형성해 놓지 않았는가.

즉,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안은 연공급제를 부정하면서 노동자의 생활 자체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임금체계를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성과와의 연동성을 최대한 강화한다는 것, 그저 노동시간에 연동되는 방식으로 임금을 짜서는 안 된다는 것, 기본급에 연동되는 방식으로 성과급이나 수당을 지급하는 것은 낡은 방식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임금의 불안정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곧바로 노동자 생활의 불안정성으로 연결된다.

<임금에 직무가치를 반영한다는 것의 의미>

그렇다면 정부가 방향으로 제시한, 그리고 모든 기업들이 입을 모으는 직무가치와 성과를 반영한 임금체계는 과연 타당한가. 정부는 일의 가치와 능력 및 성과에 따른 임금체계가 굉장히 합리적인 것처럼 포장하지만, 이는 기업 중심의 주관적 판단일 수밖에 없다. 일의 가치 평가를 위한 기준을 얼마나 합리적이고 타당하게 만들어 내며, 그 판단 기준의 적용에서 기업 구성원 모두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가라는 문제는 임금체계를 변경하는 과정을 법적 절차를 잘 지켜 진행한다고 하여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그 합리적인 평가기준이라는 것 역시 현실을 토대로 하며, 기업의 필요에 따라, 또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평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와 자본은 지금까지도 노동자의 일을 핵심과 비핵심, 전문 비전문 등으로 나누면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고령 노동자 등이 종사하는 직종에 대해 특히 낮은 가치를 부여해 왔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낮은 가치의 노동이라는 인식은 다시 그 일에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용하고 쉽게 해고하는 것을 용인해 왔다. 그렇게 이미 직무에 따라 노동자의 임금이 나뉘어지고 서열화되며, 그에 따라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일자리가 생겨나고, 노동자들은 기업이 정한 일의 가치 기준에 따라 줄세우기를 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점차 확대되어 모든 노동의 불안정화가 가속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철도의 안전을 담보하는 핵심적이고 중요한 업무인 정비업무나 승무원의 업무는 그렇게 비정규직화 되고 저임금화 되었다. 학습지회사의 이윤을 벌어들이는 학습지 교사들은 저임금의 특수고용이다. 시설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필수적인 업무인 청소노동은 최저임금, 용역형태의 간접고용이 당연시 되고 있다. 이처럼 기업은 스스로 핵심 업무라고 평가하는 부위까지 외주화하하고 비정규직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이런 저런 논리를 갖다 붙여 그를 합리화해 왔던 것이다. 결국 직무의 가치를 평가하여 직무에 따라 임금수준을 달리한다는 것은 기업의 잣대에 따라 노동자의 일의 값이 매겨지고, 그 속에서 발생하는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물론 개별 기업 단위에서 더 세분화하여 직무를 분석 ․ 평가하고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일의 가치를 정하고 임금 수준을 짜 맞출 수는 없을 것이다. 기업 구성원의 동의가 없다면 충돌이 발생할 수박에 없고, 결국 그것은 기업에게 또 다른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합리적인 모양새를 가지기 위한 기업의 직무 평가는 현재 각 직무들이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가를 기반으로 하여, 해당 직무에 대한 사회적 가치 평가, 타 기업에서의 동종 업무에 대한 평가와 임금 수준 등과 같은 요소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결과는 마찬가지다. 결국 현재 사회적으로 저평가 되고 있는 인식이나, 기업이 기존에 주어오던 임금 수준을 탈피하여 재평가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결국 그렇게 사회적으로 고착화된 노동자의 일에 대한 저평가를 반영하는 것이 될 뿐이다. 직무급이란 한없이 합리적인 모양새를 띠지만 결국 낮은 임금을 정당화하고, 노동자간 임금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일 뿐인 것이다.

<임금에 성과 중심성을 높인다는 것의 의미>

정부는 성과를 반영한 임금체계, 노동자가 스스로 자신의 임금에서 노동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어 동기부여가 되는 임금체계를 구성하는 것을 무엇보다 강조하고 있다. 그저 시간에 따라 지급되는 임금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노동시간에 따라 지급되는 임금체계를 또한 낡은 것으로 규정한다. 그것이 마치 불합리한 것처럼 ‘노동시간에 따른 임금지급’이 장시간 노동을 야기하고, 기업의 비용부담을 늘리는 것처럼 말한다. 그 모든 배경에는 노동자가 혹시라도 일을 하지 않고 거저 받아가는 임금이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자리 잡고 있다.
성과에 따라 임금의 변동성을 높여야 노동자들의 근로 의욕이 유발되어 생산성이 높이지고, 또 그만큼 임금이 합리적이 된다고 하는 것인데, 이미 그러한 임금체계를 가지고 있는 노동자들의 상태는 어떠한가. 성과를 높이기 위해 노동자들은 스스로 자신의 노동강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린다. 당연히 노동시간은 휴식과 생활을 침탈해 장시간이 될 수밖에 없다. 성과급 중심의 임금체계에서 기본급은 절대 충분한 정도를 보장하지 않는다. 기본임금만으로 충분한 임금 수준이 된다면 그만큼 성과급에 대한 유인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낮은 기본급과 성과에 따라 변동성이 강하고 성과에 따른 차등이 큰 임금체계를 기업은 선호할 수밖에 없다. 성과에 따른 보상이라는 빛 뒤에 숨은 것은 보이지 않는 무수한 무료노동이고, 노동자의 골병이다.

그리고 그 성과측정은 결국 노동자의 고용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에 사용된다. 성과가 낮은 노동자는 회사에서 쫓겨나거나 퇴사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실제로 많은 기업이 성과에 따라 재계약을 거부하거나, 노동자에게 패널티를 부과하거나 임금을 깎기도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비정규직을 무기계약화하는 과정에서는 평가 하위 등급을 2회 이상, 또는 3회 이상 받으면 해고된다는 것과 같은 규정을 신설하여 노동자들을 해고하였다. 또한 삼성전자 서비스 센터 노동자들의 마이너스 성과급처럼 성과 및 실적 평가에 의해 실제로 임금이 깎여나가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 성과에 대한 평가라는 것 역시 자본이 만든 기준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기에 노동자가 반발하여 부당함을 증명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평가의 기준은 노동자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세워지는 것이 아니며, 위와 같은 각 기준을 적용하는 세부 지표는 대부분 공개되지도 않는다. 결국 객관성을 담보하지 못한 평가 시스템은 결국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권력 행사를 의미할 뿐이다. 그래서 대다수 연봉제를 실시하는 사무직들의 경우 자신의 연봉을 공개하는 것을 절대 비밀로 하고 있고, 연봉액을 밝히는 것을 해고사유로 정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서로 비교해서 평가의 부당함을 인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애초에 성과의 측정이라는 것이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명백하게 작업의 양이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면 평가에 사용되는 기준이란 ‘업무지식’, ‘책임감’, ‘협동심’, ‘친철도’, ‘성과달성도’ 등과 같은 기준인데, 이는 애매하고 모호한 개념들이다. 그래서 성과 평가란 이 모호한 개념들을 적용하는 사용자나 관리자의 임의적, 주관적 판단에 상당부분 기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 판단의 결과 문제없이 잘 일해오던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하자 갑자기 성과평가가 최하위가 된다거나 임신이나 출산 등의 사유가 생기면 갑자기 성과가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는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최근 한국지엠사무직노조와 회사가 합의를 통해 성과중심 연봉제를 폐기하고 연공제로 전환하기로 한 사례는 성과중심 임금체계의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이 사례에서 성과중심형 임금체계 하에서 발생하는 임금격차는 노동자간 경쟁을 통해 노동강도를 높이려는 기업의 의도에 따라 도입되지만, 고용불안을 가중시키고 업무의 협조성을 저해하여 결국 기업이 중시하는 효율성까지도 침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직무 ․ 성과 중심형 임금체계로 장시간 노동과 일자리 창출은 가능한가>

장시간 노동을 없애기 위해 시간외근로를 많이 해서 임금을 벌어가는 구조를 없애야 하고, 그래서 직무, 성과에 따른 임금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임금의 압박으로 장시간 노동이 억제되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지금도 시간외 근로에 대해 초과 수당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고, 이는 임금 압박으로 작용하도록 하여 기업이 노동자를 장시간 노동시키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노동시간은 세계 최장시간을 기록해 왔다. 이렇게 장시간 노동이 만연하다는 것은 기업은 정규인력충원보다 그것이 싸다는 계산을 하는 것이고, 노동자들은 저임금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에 기대어 왔다는 것이다. 결국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장시간 노동문제는 해결될 수가 없다.

또 고용노동부는 임금체계 개편안에서 수당이 기본급을 훨씬 상회하고 있으며, 이것이 기업의 임금 부담을 늘리는 문제가 되고 있고, 장시간 노동 해소를 위한 노사합의점을 끌어내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이 드러내는 바는 오히려 법정노동시간에 상응하는 임금 자체가 지독한 저임금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실 각종 수당이라는 것들은 대부분 그 저임금을 보충하기 위한 것들이다. 기본급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 각종 수당들이 기본급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것이 현재의 한국 임금체계의 상태이다. 그래서 이를 정부의 말처럼 기본급을 중심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필요하다. 단, 조건은 기본급이 충분한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저임금 - 저비용 구조에 발을 딛고 있는 상태에서의 직무급이나 성과급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무료노동과 장시간 노동을 늘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성과중심으로 임금체계를 바꾼다는 것은 임금체계를 바꾸는 것만이 아니라 노동시간 구조까지 깨뜨린다. 이미 연봉제나 포괄임금제 등으로 인해 노동시간 규제를 무시하고 깨뜨리는 임금형태가 얼마나 장시간 노동을 유발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근로시간에 따른 임금지급’을 문제시하는 고용노동부의 태도는 ‘임금’의 기본 개념 자체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즈음에서 ‘임금’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다시 되짚지 않을 수 없다. ‘임금’은 노동자에게는 생활의 기본이 되는 소득이다. 장시간 노동이 증명하는 것은 기본적인 노동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 많은 소득을 얻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하고, 여러 개의 노동에 매여 살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그 임금을 사용자의 비용을 억제하기 위해 기업이 중요하게 평가하는 지표를 가지고 평가하여 지급하게 한다면 노동자의 생활은 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 결국 저임금의 일자리를 전전하게 될 것이다.

직무 ․ 성과중심의 임금체계가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된다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다. 노동자를 최대한 쥐어짜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면 기업이 새로이 고용을 창출해야 할 유인은 훨씬 줄어들고 기업은 오히려 고용을 더 축소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장시간 노동에 기대 실현하던 단위시간당 노동비용의 하락을 이제는 성과급을 통한 노동강도 강화를 통해 달성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임금의 변동성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고용유지 여부에 연동된다면 노동강도를 더욱 극대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고용을 유연하게 하는 결과도 초래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임금체계 개편이 의도하는 것이다. 정부는 직무 가치에 따라 임금이 책정되면 어느 회사에서든 동일한 일에 동일한 임금수준을 확보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고, 그래서 노동자의 이동이 용이하다고 이는 고용유연화의 확대에 다름 아니다. 기업은 노동자의 직무를 변경하여 임금 수준을 하향시키는 것만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퇴사 압박을 행할 수 있게 된다. 성과 평가에 따라 임금이 낮아지면 노동자는 자신을 더 닦달하거나 스스로를 회사에 불필요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고, 성과 달성이 어려운 직무로 배치되면 이 역시 회사를 그만두라는 무언의 압력이 된다. 고령자의 고용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는 임금피크제가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이제는 회사를 스스로 알아서 그만두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처럼 말이다.

<진짜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저임금화를 방지하고 기업을 규제하는 것>

정부는 임금체계 개편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것처럼 말하고 지도하고 지원해 나가겠다고 하지만, 그 내용은 저임금 고강도 노동을 임금체계라는 방식으로 실현하도록 해주겠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은 바로 그 방법을 설명해 주는 해설서이다. “정년 60세를 대비하고 장시간 근로 개선과 일자리 창출 등 노동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라는 것이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에서 당당히 밝히고 있는 바이다. 그러나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업종별 모델에 대한 해설 부분을 보면, 기존 임금체계를 유지하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경우보다 임금체계 개편과 함께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비용이 훨씬 절감된다는 것을 친절히 알려주고 있다. 그렇게 비용을 절감해 놓고 일자리를 창출해서 다시 비용을 지출할 기업이 있겠는가. 임금체계 개편으로는 절대 장시간 노동의 문제나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기 힘들다. 오히려 더 유연한 고용, 더 질 낮은 일자리를 만들어 낼 뿐이다.

이미 노동자들의 임금체계는 상당히 다양해져 있고, 완전한 100% 성과급제부터 수당 하나 없이 시간당 최저임금만 받는 시급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고 편차도 크다. 그 속에서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과 지속적인 저임금화, 고용불안이 발생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직무의 가치를 이윤을 잣대로 매겨놓고 그에 따라 고용형태를 달리하여 비정규직의 저임금을 합리적인 것으로 포장하려는 기업의 의도가 있다. 그리고 수차례의 다단계 하도급을 통해 단가를 후려치는 원청 대자본의 횡포가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임금체계 개편으로 해결될 수 없다.
또 노동조합이 없는 대다수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임금체계랄 것도 없다. 노동자의 임금은 그저 기업이 지불하고자 하는 총액에 맞추어 이리 저리 쪼개지고 짜맞추어 진다. 수당이나 상여금도 없이 무조건 최저임금인 노동자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수당이나 상여금이라는 이름으로 지급되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금액수준은 총액을 맞추기 위해 들쭉날쭉 하거나, 최저임금에 조차 이르지 못하는 기본급을 보충하기 위해 지급되는 것들에 불과하다. 이런 작은 사업장들이 장시간 노동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이 역시 임금체계 개편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은 이러한 사실들을 외면하고, 기본임금에 연동된 각종 수당을 가진 연공급제라는 한 가지 지점만을 부각하여 왜곡시키고 있다. 모든 기업 내외의 차별을 합리적인 것으로 포장하고, 고용과 임금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임금 자체에 대해 많은 규정들을 상세히 두고 있지는 않다. 노동자에게 최소한 생활 가능한 수준 이상을 지급하고, 정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지급되도록 하는 정도의 규정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간소한 규정들이 가지는 의미는 몹시 크다. 그 구체적인 지급형태나 지급 방식 등은 자유롭게 정하되, 임금이 노동자의 생활의 기본을 이루는 소득이기에 그 생활을 해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기준을 두고 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또한 이에는 임금의 수준만이 아니라 적정한 노동시간의 의미 또한 포함된다. 적정한 시간 노동을 하고, 그로부터 얻는 임금으로도 충분히 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직무 ․ 성과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이 아니라 충분한 기본급여의 보장이라는 비용 압박, 그리고 법정노동시간의 단축이야말로 장시간 노동을 해소하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유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임금에 대해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따로 있다. 바로 저임금화를 방지하고, 임금 격차를 축소하고, 기업규모나 고용형태에 따른 불합리한 격차를 해소하고 규제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 최저임금을 생활 가능한 수준으로 획기적으로 인상하여 지키도록 규제하고, 기본임금이 지나치게 저임금이 되지 않도록 규제하고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앞장서야 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기업의 임금 부담을 우려하는 것이 아니라, 저임금으로 노동자들을 쥐어짜 정년 연장이나 장시간 노동 해소 등의 사회적 흐름에 맞서려는 기업의 의도를 적극적으로 막기 위한 정책을 제출해야 할 것이다.<끝>


Articles

2 3 4 5 6 7 8 9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