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법제도, 뒤집어보면 다른 내용

by 철폐연대 posted Sep 2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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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9일부터 비정규직과 관련하여 일부 개정된 법률들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바로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과 시간제 노동자의 연장노동에 대한 가산임금제도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그 제도가 시행될 현실달라지는 법제도, 뒤집어보면 다른 내용

2014년 9월 19일부터 비정규직과 관련하여 일부 개정된 법률들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바로 비정규직 차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과 시간제 노동자의 연장노동에 대한 가산임금제도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그 제도가 시행될 현실은 제도의 의미를 이미 깨트리고 있다.

먼저 차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명령제도부터 살펴보자. 기간제법 제 13조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행위가 있을 시 차별적 행위의 중지, 임금 등 근로조건의 개선 또는 적절한 배상을 차별에 대한 시정조치로 명할 수 있고, 특히 사용자의 차별적 처우에 명백한 고의가 인정되거나 차별적 처우가 반복되는 경우에는 손해액을 기준으로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을 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른 바 악질 사용자에 대해 손해액의 최대한 3배까지 벌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파견법 역시 마찬가지 규정을 포함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벌어지는 차별의 실상은 제도를 넘나들며 벌어진다. 현재의 차별시정제도란 ‘차별’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비교대상’이 있어야 한다. 누구에 비해 얼마나 차별받고 있는가를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애초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한 고용형태를 정상적인 고용형태로 사회가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비정규직법이다. 그리고 그렇게 비정규직 사용을 제도화하기 위해 정부는 비정규직이 주변업무나 부수적 업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만들어 왔다. 업무를 핵심/주변, 전문/비전문, 상시/비상시 등으로 구분하며, 비정규직 사용에 합리성을 부여해 온 것이다. 그 과정이 비정규직 노동자가 중요하지 않은 단순 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노동조건에 차이가 있더라도 ‘합리적’이라며 용인하도록 만들어 온 과정이다. 그러니 비정규직이 ‘얼마나 차별받고 있는가’를 증명한다 하더라도 그 차별에 갖은 이유를 붙이면 ‘합리적인 이유’에 의한 차별로 제도를 비껴갈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비교할 ‘누구’가 이미 없어지고 있다. 정부 출연연구기관 사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데, 최근 연구 비정규직의 무기계약 전환 계획을 제출하고 있지만, ‘정규직과 동일한 연구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를 기준으로 설정하면서 전환 대상은 5~6% 정도에 그치고 있다. 예산의 제약이 비정규직 사용을 확대하도록 부추겼고, 더불어 기간제법상 전문직을 기간제한의 예외로 두면서 연구기관의 비정규직이 무한히 확대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정규직과 혼재하여 연구작업을 진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비정규직만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상당수다. 이 사례만 보더라도 비정규직이 확대된 상태에서 정규직 비교대상을 찾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시적으로 지속되는 업무에 대해 상시고용-직접고용 원칙을 명확히 하고 비정규직 사용을 규제해야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문제에 제대로 접근할 수 있다. 비정규직 사용을 확대해 놓고, 그렇게 확대된 비정규직 채용에 법적으로 또 제도적으로 근거를 붙여 온 것이 정부의 정책이었다. 차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악질적 사업주에 대한 처벌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그 전에 차별이 발생하는 원인을 정부가 만들어 왔고, 그 정책의 근본적 수정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시간제 노동자의 초과노동에 대해 가산임금을 부과한다고 한다. 이전까지는 시간제 노동자가 8시간 이내로 일할 경우에는 시간외수당의 지급을 의무화하지 않았었다. 즉, 6시간을 일하는 시간제 노동자는 법정근로시간인 8시간 이내에서 이루어지는 2시간까지의 연장노동은 가산임금 없이 수행했다는 것이다. 그를 초과할 때야 비로소 연장근로수당이 발생한다. 이를 수정하여 6시간을 일하기로 한 시간제 노동자라면 그 시간을 초과하여 일할 경우 모든 초과노동에 대해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해야 하도록 했다. 일하기로 한 시간을 초과하여 일할 경우 연장노동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는 것은 분명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를 왜 시간제 노동자에 한정하여 실시하는가. 그것은 시간제 노동에 대한 연장수당이라는 것 역시 시간제 일자리 확대 정책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고용률을 70%로 끌어올리겠다고 하며 시간제 노동을 확대하고자 했고, 이는 질좋은 시간제 일자리가 아닌 열악한 비정규직 일자리만 늘리는 것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 경력단절 여성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내고 그를 위해 적절한 일자리를 마련해야 하는데, 풀타임 노동을 하기 어려운 조건이니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어낸다는 정부의 주먹구구식 정책은 여성노동자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기회를 다시 한 번 박탈한다. 그리고 시간제 일자리 확대에 집중하는 정책과 제도들은 정규직 일자리 확대를 줄이고 전체 노동의 질을 떨어뜨린다. 그렇게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정책을 가장하여 모든 노동자들을 불안정한 일자리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작 풀타임 노동이 필요한 노동자들은 시간제 일자리를 여기 저기 전전하며 다시 장시간 노동에 매몰되고 있다.
게다가 시간제노동을 만들어 놓고 다시 연장근로수당을 운운하는 것은 오히려 저임금의 시간제로 노동자를 고용하여 상시적으로 연장노동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을 당연시 하게 될 우려가 크다. 기업으로서는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한다 하더라도 저임금으로 고용한 시간제 노동자이니 수당을 조금 더 주더라도 정규직 한명을 채용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역시 안정적인 일자리를 헤치는 것이 된다.
노동자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짧은 시간 일하더라도 생활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이다. 시간제 노동자로 고용되어 저임금으로 일하면서 연장노동을 통해 연장근로수당을 또 채워야 한다는 것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모든 노동자의 법정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연장노동을 제어하는 것이 건강한 삶과 노동현장을 만들고 일자리를 늘리는 방법이다.

2014년 9월 25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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