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자본의 입장을 대변한 노사정위원회 전문가 검토 의견

by 철폐연대 posted Nov 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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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을 더 확대하고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을 더 열악하게 만드는 의견을 소위 ‘공익 전문가 검토의견’이라는 형태로, 마땅히 거쳐야 할 노사정위원회의 최소한의 절차조차 없이 마치 그것이 상당히 전문적이고, 공익적인 의견인 것처럼 포장되어 제출되었다. 의도는 단
[노사정위원회 전문가 검토 의견 비판]
- 전문가 검토의견은 공익 전문가의 탈을 쓰고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만일 뿐



11월 16일 ‘비정규 고용 및 차별시정제도 개선’ 관련 노사정위원회 전문가그룹 논의 결과가 발표되었다. 그러나 이는 최소한 노사정위원회 특위의 전체회의조차 거치지 않은 것으로 소위 ‘전문가’의 이름을 빌어 정부 입장을 대변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논의되던 것보다 더 심각한 수준의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 차별시정제도 관련하여 노동조합에 차별시정 신청권을 부여하는 문제이다. 2007년 비정규직법 개악시 차별시정제도를 가지고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법인 것처럼 비정규직법을 포장했었다. 그러나 차별시정제도는 도입되자마자 그 첫 차별시정신청 사례에서부터 노동자 전원의 해고를 막지 못하는, 비정규직이라는 열악한 고용형태 하에서는 권리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되었을 뿐이다. 시행 첫 해인 2007년에 145건, 2008년에는 1948건에 달했지만 이후 100건 이내로 신청이 미미한 것은 차별시정제도가 비정규직을 해고의 위험에서 보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차별규정을 회피하기 위해 업무 자체를 정규직과 완전히 분리하거나 아예 외주화를 하는 등 제도를 피해갈 수 있는 여지는 너무도 많다.
이를 막고 제대로 평등한 노동조건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은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이 있을 때이다. 차별시정제도의 8년 여간 운용 속에서도 노동조합을 통해 단결된 힘을 가지고 차별을 개선하려고 할 때 그나마 제도가 의미 있게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차별시정 시청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당연하게 등장했고, 이는 차별시정제도를 유의미하게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다.
그러나 전문가 검토의견은 노동조합을 차별시정신청의 당사자가 될 수 있도록 신청권을 부여하면 오남용의 우려가 있다면서 노동조합의 활동 자체를 왜곡하고, 다만 노동자를 대리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정도를 내고 있다. 또 근로감독관의 직권조사를 통해 차별개선 기능을 강화하면 노동조합도 신고 당사자가 될 수 있고, 제도 오남용의 우려도 없다고 한다. 노동조합의 신청권을 막고 개별 노동자의 익명의 제보를 열어 두는 방식으로 제도의 그간의 한계가 과연 극복될 수 있겠는가.
노동조합의 신청권 확대는 최소한의 필요한 조치일 뿐이다. 제도의 실효성을 위해서는 차별판단기준을 현실화하고 하나의 차별 사례가 발견되더라도 사업장 전체의 차별을 개선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최소한의 조치조차 오남용 운운하며 막아서는 결코 차별을 해소하는 것으로 나아갈 수 없다.

둘째, 기간제 노동과 관련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희망’을 핑계로 4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정부안을 지지하고 있다. 게다가 35세에서 54세까지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정부 안에 대해서는 오히려 34세 이하인 자를 차별하는 것이라는 비상식적 발언도 덧붙이고 있다. 진정한 노동자의 희망은 안정된 일자리에 있지 비정규직으로 더 길게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전문가 검토의견은 이러한 진짜 희망은 무시한 채 2년 내 정규직 전환, 4년 내 정규직 전환, 그리고 정규직 미전환시 이직수당이라는 체계를 통해 정규직 고용을 촉진할 수 있다고 바라보고 있다.
지금까지 2년이라는 기간제한 하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기간만료로 해고를 당해온 것은 기간제한 2년이 짧아서가 결코 아니다. 비정규직 사용이 제도화되면서 사용자들은 비정규직을 교체 사용해 왔고 그 계약기간은 점차 단기간화 되어 왔다. 4년이 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사용자는 노동자를 교체 사용할 더 많은 여유기간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노동자들이 기간이 만료되면 해고되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2년 후, 4년 후 정규직 전환, 이직수당을 통한 정규직 전환 강제가 아니라 비정규직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을 자본에게 더 쥐어주는 것일 뿐이다.
또 쪼개기 계약 방지를 위한 갱신횟수 제한에 대해서는 일반화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갱신횟수 제한은 쪼개기 계약 방지보다는 계약만료로 인한 해고를 더 많이 남발하게 할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기존 정부 안이 비판을 받았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오히려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업종별 특성을 고려해서 쪼개기 계약을 여전히 방치해도 되는 업종과 제한할 업종을 분류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전반적으로 비정규직 사용을 규제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발상들이다. 무엇보다 생명 ․ 안전 분야 기간제 사용 제한에 대해서 사회적인 공감대가 높고 필요성이 절실한 이때에 전문가들은 오히려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산업 안전 및 보건관리자에 대해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하는 방식은 사실상 사용사유 제한에 해당하기 때문에 극히 제한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비정규직 사용을 규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 바탕에 깔려 있기에 나올 수 있는 발상들인 것이다.

셋째, 파견 및 도급과 관련해서도 정부 입장을 되풀이 하거나 더 심각한 방안을 제출하고 있다. 먼저 산업안전이나 직업훈련 등을 원청의 ‘배려’라고 정부의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이것이 불법파견의 징표로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자기의 기술과 영업을 통해 독자적 사업을 하는 업체와 원청의 도급계약이라면 산업안전이나 직업훈련을 원청이 시행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렇지 않고 다만 노동력만을 공급하고 실상 불법파견에 해당하는 경우들이 태반이기 때문에 원청이 안전, 훈련 등에 개입하는 것이 불법파견의 중요 증거들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부정하면서 사실상 노동력 공급 외에는 업체가 하는 일이 없는 사내하청까지 ‘다양한 고용형태’에 해당한다면서 불법파견으로 규제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 파견허용업무 조정 및 확대와 관련해서는 도급이나 용역 등의 영역을 파견으로 흡수 ․ 제도화하여 노동조건이 개선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고 있다. 현재 한국의 도급이나 용역, 파견은 이름이 무엇이든 사실상 노동력만 공급하는 형태로 불법적 노동력 공급 혹은 불법파견으로 규제되어야 할 영역들이다. 제도적으로 파견을 확대한다는 것은 불법의 영역을 합법화하는 것으로 오히려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면죄부를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뿌리산업의 열악한 조건과 인력난을 핑계로 제조업에까지 파견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가뜩이나 열악한 업종에 파견이라는 열악한 고용형태를 주입하면 노동조건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인력난 역시 해소될 수 없다. 전문가들은 검토 의견으로 양질의 파견 일자리 모델이라며 ‘상용형’ 파견을 제시하고 있지만, 파견업체가 파견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상용형’이라는 것은 말장난일 뿐 파견처가 없다는 이유로 언제든지 정리해고 될 수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는 상용형 파견이 좀 더 나은 조건을 보장한다는 것은 책상머리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애초에 ‘양질의 파견’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적이다. 파견이라는 제도 자체가 고용관계에 제3자가 개입하게 되므로 중간착취나 노동권 실현에 문제가 있어 열악한 고용형태라는 사실은 파견법 도입시에 이미 국회 논의 과정에서도 확인된 것이다. ‘양질’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고용형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파견 확대가 마치 고령자나 고소득 전문직에게 취업기회를 부여하는 장점이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뿌리산업의 인력난을 해소할 수 있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이는 자본에게 더 낮은 노동조건으로 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말일 뿐이며, 불법파견을 합법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불법을 자행한 사용자들을 면책하겠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취업기회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다만 모든 일자리가 파견이 되면, 노동자들은 정규직 채용이 없기 때문에 파견으로밖에 일할 수 없게 되는 것일 뿐이다.

비정규직을 더 확대하고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을 더 열악하게 만드는 의견이 소위 ‘공익 전문가 검토의견’이라는 것으로 제출되었다. 마땅히 거쳐야 할 노사정위원회의 최소한의 절차조차 없이 마치 그것이 상당히 전문적이고, 공익적인 의견인 것처럼 포장되어 제출된 것이다. 의도는 단 하나다.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겠다는 것, 그렇게 노동개악을 시도해 나가는 정부의 입장을 편들어 주겠다는 것, 그것일 뿐이다. 청년을 위해서, 비정규직을 위해서라며 공익 전문가의 탈을 쓰고 자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만을 어떻게 보아 넘길 수 있겠는가. 그런 입장이 공익의 이름으로, 전문가의 이름으로 발언되는 것이 지금의 한국사회라면, 그 사회를 바꾸기 위해 우리는 행동할 수밖에 없으며, 그 저항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15년 11월 20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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