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투쟁사업장 공동투쟁, 손소희 동지의 72시간의 기록 1

by 철폐연대 posted Mar 3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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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폐연대의 멋진 회원, 손소희 동지가 공동투쟁에 참여한 뒤 남긴 기록이 뉴스민에 실렸어요, 동지들과도 나누고자 1-2회차 기고글을 공유합니다. 링크를 클릭하시면 사진과 함께 담긴 더욱 생생한 기사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뉴스민









아사히비정규직지회,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 하이디스지회, 동양시멘트지부, 콜트콜텍지회, 사회보장정보원분회, 세종호텔노동조합 등 7개 장기투쟁사업장이 ‘정리해고! 비정규직 철폐! 민주노조 사수! 노동탄압 민생파탄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공동투쟁’을 결성하고, 구미에서 시작해 경주, 울산, 부산, 거제, 창원, 청주, 충남, 서울까지 지난 3월 23일부터 26일까지 3박 4일간 전국 순회 투쟁을 벌였습니다. 철폐연대의 멋진 회원, 손소희 동지가 공동투쟁에 참여한 뒤 남긴 기록이 뉴스민에 실렸어요, 동지들과도 나누고자 1-2회차 기고글을 공유합니다. 글 말미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사진과 함께 담긴 더욱 생생한 기사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기고/뉴스민] 72시간 만큼의 긴 이야기 ① 야바위가 판치는 선거판 속, 노동자들의 공동행동

2016년 3월 23일 수요일 오전 일찍 구미의 4차 국가산업단지에 있는 아사히비정규지회 천막농성장에 도착했다.
식당천막 안 두 남자의 손이 분주하다. 커다란 빨간다라이에 배추우거지와 고사리 같은 나물이 듬뿍 담겨있고, 남자의 손은 고춧가루도 뿌리고 마늘도 한 국자 투척하고 있다. 소금과 간장을 부으면서 간을 본 건지 안 본 건지 알 수 없으나 두 손으로 조물조물 치대기 시작한다. 김치인가 했더니 닭개장을 끓이는 중이라고 했다. 닭 세 마리 푹푹 삶아서 살코기를 다 찢어 넣고 닭육수에 양념을 버무린 나물을 철퍼덕 투척해서 팔팔 끓이는 중이었다.
아사히비정규직 투쟁의 꽃, 밥하는 노동자. 두 남자는 3박 4일 동안 전국에 흩어진 장기투쟁사업장을 찾아 나설 공동투쟁 동지들이 출발하기 전 배꼴 든든한 식사준비 중이었다. 밥하는 일은 잘 보이지 않는 고된 노동이다. 이를 잘 아는 가사노동 19년 차인 나는 그 노동으로 ‘힘들어하지 않을까?’, ‘스트레스받지 않을까?’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 아는 척했더니 그들은 “이것이 나의 투쟁방식입니다”라고 했다.
자신의 방식대로 투쟁하고 있다는 그 남자의 말은 멋있었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하나의 역할로 규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 해봤다. 때로는 밥하는 노동자로, 청소하는 노동자로, 마이크 잡고 선동하는 노동자로, 때로는 책 읽는 노동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각각의 역할을 누군가 규정하지 않고, 인간이 자유롭고 의식적인 노동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실현하는 사회적 존재임을 이해할 수 있는 투쟁이 되기를 바래본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서울, 창원, 경기도 이천에서. 군산, 삼척에서도. 그 먼 거리를 달려 출발 집결지인 구미 아사히비정규직 천막농성장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식당천막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고, 점심시간 때맞춰 나온 닭개장 국밥 한 그릇씩 먹고 나온 동지들은 입을 맞춘 듯 간이 딱 맞고 맛있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간을 딱 맞춰 맛나게 그 많은 닭개장을 끓인 그 남자의 전직은 뭘까? 궁금해졌다.
사람들이 모였다. 전국 곳곳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모였다. 투쟁하는 노동자가 자신의 현장만 지키지 않고, 또 다른 사업장을 찾아 나선 까닭이 궁금해졌다. 그들은 무엇을 하고자 했던 것일까?
이제부터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만난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한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철폐! 민주노조 사수! 노동탄압 민생파탄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공동투쟁’은 아사히비정규직 동지들이 먼저 나섰고,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 하이디스지회, 동양시멘트지부, 콜트콜텍지회, 사회보장정보원분회, 세종호텔노동조합 등 7개 장기투쟁사업장이 의기투합해 투쟁사업장 전국순회를 제안했다고 한다. 거기에 구미KEC지회, 한국GM비정규창원지회, 한국GM비정규군산지회, T-브로드와 SK브로드밴드, 현대제철비정규지회 등 12개 사업장 노조와 취지에 동의하는 개인이 함께했다.
아사히비정규직 농성장에서 닭개장 한 그릇 잡숴 배가 든든해진 동지들은 버스에 탑승했다. 버스는 구미에서 출발해 영동으로 향했다.
지난 3월 17일 새벽 유성기업의 한 노동자 자살소식을 접했다. 그 노동자는 2011년 유성기업의 신종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맞서 싸워왔던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 조합원이자 노조간부였던 한광호 동지였다.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노조파괴에 맞서 현장에서도 끊임없는 사측의 괴롭힘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은 현장파업에 돌입했다.
노조 간부와 해고자들은 신종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만든 현대-기아차가 故 한광호 열사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임을 사회적으로 알리기 위해 서울시청 앞 분향소를 설치하려 했다. 그러나 자본은 용납하지 않았다. 국가공권력을 총동원해 분향소를 설치하는 노동자들에 폭력으로 막아섰고, 깔개와 비닐 한 조각도 용납하지 않고 다 빼앗아 가버렸다.
고 한광호 열사의 영정을 땅바닥에 패대기쳐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고 한광호 열사 분향소 설치를 위해 투쟁하는 수많은 사람이 공권력의 폭력에 깨지고 다치고 연행되었고, 맨몸으로 밤새 추위를 견뎌야 했다. 영동공장 조합원 동지들은 너무나 무거웠다. 어두운 긴 터널 속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은 침울했다. 착잡한 심정으로 ‘공동투쟁’ 버스는 영동을 벗어나 울산을 향했다.
자본주의 위기가 심화할수록 박근혜 정권은 자본의 이해와 집권여당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동자들을 쥐어짠다. 노동자들을 쥐어짜는데 민주노조는 장애물에 불과하다. 장애물은 치워야 할 대상이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가볍게 치울 거라고, 믿었는데 5년이 지나도 7년이 지나도 저항하고 분노하는 세력들에 그들은 철저하게 자본가 계급 이해를 대변하는 정권으로서 계급이해에 복무한다.
선거가 시작되자 온갖 기만과 사기가 판치는 야바위꾼들의 놀이터가 됐다. 선거판은 전국의 민중투쟁 전선을 교란하며, 철저하게 부르주아정치에 복무했다. 그리고 죽어가는 노동자들을 외면한다.
나의 마음은 서울시청을 향하지만, ‘공동투쟁’ 버스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장기투쟁사업장이 있는 곳으로 떠난다. 더 많은 장기투쟁사업장을 찾아서 각개각전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면 함께 투쟁해서 승리하는 판을 만들어 힘을 모으는 버스가 되어 서울시청으로 향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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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뉴스민] 72시간 만큼의 긴 이야기 ② 성주에서 울산 찍고, 부산까지…연대가 만든 힘

설레는 마음은 버스를 타고 틈새 없이 빡빡한 일정표를 보는 순간 사라졌다. ‘’공동투쟁’’ 버스는 첫날 유성영동공장에서 성주EMG지회 파업 현장을 향해 달렸다.
참가자들 역할도 자연스럽게 나뉘고, 조를 짜서 하루 평가도 하면서 첫 만남의 낯섦이 점점 풀리기 시작했다. ‘공동투쟁’ 참가자들은 시골동네 작은 공장 EMG전선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이 좀 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에 마음이 쓰였다.
금속노조 EMG지회는 파업 중이다. EMG지회는 지난해 여름 노조를 만들고 사측과 원만히 협상하여 임금-단체협약 체결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사측이 새로운 인물을 내세워 노조탄압을 시작했다. 직장폐쇄, 부분폐쇄로 노동자들을 내쫓았다.
월 매출 100억이 넘는 알짜배기 기업이지만, 노동자는 주야 맞교대로 최저임금을 받았다. 이 노동자 중에 상당수는 성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라 기숙사 생활을 많이 했다. 주야맞교대에 쉬는 날 없이 일하다 보니 한 달에 한두 번 집에 가는 것도 어려울 때가 많았다고 한다. 노조를 만든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인권침해와 모욕적인 환경 속에 지내왔던 것이다.
농촌지역은 구석구석이 공단이다. 공단은 별다른 규제 없이 들어서고, 지역의 부동산투기를 부추긴다. 폐수처리, 폐기물처리 등 기반시설에 대한 문제발생 및 위험도 부지기수다. 환경오염 물질 사용에 대한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뿐 아니라 규제도 없어 문제를 발생시키는 원인과 재발방지 대책도 제대로 갖춰놓지 않았다.
요즈음 시골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살려면 시골 들어오면 안 되고 도시 한복판에서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도시의 온갖 쓰레기가 시골로 몰려들고 있다.
아쉽지만 성주를 떠나 울산으로 내려갔다. 이동하면서 김밥 반줄과 왕만두 하나를 먹었지만,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공동투쟁’에 500만원이나 지원했다는 소식에 배가 불러 음식이 남기도 했다.
숙소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해고자로 구성된 해투위(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조합 해고자 복직투쟁위원회) 사무실이다. 해투위 안쪽 사무실은 여성이, 바깥쪽 사무실은 남성이 숙소로 사용했다. 바닥에 깔판을 깔고 사회적파업연대기금이 제공한 침낭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남자들의 코 고는 소리는 벽을 뚫어 귓가에 맴돈다.
울산노동자공동행동의 활동이 무척 부러워 보였다. 노동개악 내용을 조합원에게 교육할 수 있는 소책자도 발행하고, 현장교육 강사단도 있다고 한다. 사업장을 넘어 지역 차원에서 정치활동을 하려는 그 시도 자체가 의미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둘째 날, 새벽 5시 40분에 일어나 현대중공업 앞으로 갔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와 출근선전전을 하기로 했다. 내가 처음 현대중공업을 마주한 때가 2004년 박일수 열사 투쟁이었으니 12년만이다.
“나의 한 몸 불태워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이, 착취당하는 구조가 개선되길 바란다”는 유서를 남기고 2004년 2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박일수는 분신했다. 그러면서 당시 현대중공업노조의 어용성이 만천하에 폭로됐고,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을 바로 세우기 위한 문제제기로도 확산됐다. 노동운동사에 질곡을 가져왔던 기억, 많이 아프다.
조선업 위기 속에 현대중공업도 기로에 서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5,000여 명이 소리소문없이 잘려나갔다. 조선업 일용직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찾아 울산에서 거제, 통영으로 날품팔이 생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어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 부산의 생탁과 택시노동자들, 만덕지역 재개발을 반대하며 투쟁하는 만덕어르신들, 그리고 부산교육청에서 단식농성 중인 학교비정규직 급식노동자를 만났다.
평균연령이 64세라는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은 2년을 넘기고 있다. 13년을 최저임금만 받고 일했는데, 그 세월 동안 2,500만 원의 빚이 늘었다. 왜 청소노동자는 최저임금만 받고 일해야 하나? 이 노동자들이 의문 제기는 대한민국 사회를 울렸다.
300억을 대학에 기부해도 막걸리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밥 대신 고구마를 주는 사장 놈! 고구마에는 김치도 없다. 노조 만들어 임금과 노동조건을 올리겠다는 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사장 놈! 사장 수가 40여 명이나 되는 부산 생탁. 노동자 두 명이 사장 한 놈씩을 먹여 살려왔다.
그 사장들은 부산에서 젤로 비싼 금싸라기 땅에서 젤로 좋은 전망이 바라보이는 아파트에서 떵떵거리며 살지만, 노동자들의 집은 재개발로 뜯겨나간다. 만덕주민들은 70-80대이지만, 평생을 일궈 남은 것은 집 한 채다. 이것마저도 빼앗아 고층아파트를 짓고 이윤을 창출하려는 LH토지주택공사. 그러나 “내 집에서 살고 싶다”는 만덕주민들의 외침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은 될 수 있는, 국가가 택시 대중교통정책으로 마련한 전액관리제는 택시현장에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는 자신이 만든 제도를 적극 활용하기 보다는 훨씬 후퇴한 또 다른 법 ‘택시발전법’을 만들어 노동자를 힘들게 만들고 있다. 택시노동자들은 사납금을 맞추기 위해 최저임금조차도 벌어갈 수 없는 노예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액관리제 시행과 완전월급제를 목표로 투쟁하고 쟁취할 때만이 지금 상황을 타파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모든 투쟁 현장에 분노가 치밀지만, 특히 밥하는 노동자에게 밥값을 받겠다는 부산교육청! 부산교육청 앞 경비실에는 바람에 펄렁이는 비닐을 지붕삼아 빼빼마른 한 여성이 9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십 수년을 학교 급식실 조리노동자로 살아온 그녀가 단식을 하는 이유는 하나다. 부산교육청이 예산 부족을 이유로 밥하는 노동자에게 밥값을 내라고 했다는 것. 국가공공기관부터 모범이 되어야하는데, 시대를 역행하는 행동을 부산교육청 그것도 진보라 탈을 쓰고 있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공동투쟁’ 동지들과 부산교육청 지지방문을 하고 즉석에서 단장이 교육청 면담을 제안했다. 그동안 구호 외치기를 시작으로 작은 집회를 열었다. 끼가 만발한 동지들이 수두룩 빽빽인지라 알아서 척척 “비정규직철폐연대가”에 맞춰 C급 몸짓을 했고, 분위기를 달궜다. 곧 교육청 면담도 이뤄졌다.
무엇보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절실한 상황에 연대하는 우리 자신에 대한 자부심도 커지겠지만, 부산교육청의 전교조 탄압 역시 예상되고 있어서, 전교조 부산지부와도 함께 한 결과를 만들었으니 일석이조에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연대란 이렇게 시너지효과를 팍팍 올려주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우리도 밥값 했다는 뿌듯함으로 부산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창원을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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