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권리증진에 걸림돌일 뿐인 가이드라인

by 철폐연대 posted Apr 1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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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제 가이드라인,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은 당장 폐기되어야 할 지침이다. 정부가 이를 통해 노동개악을 밀어붙이고, 현장을 길들이고자 한다면 더 많은 노동자들,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대를 반드시 마주하게 될 것이다.비정규직 권리증진에 걸림돌일 뿐인 가이드라인
- 기간제 및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은 당장 폐기되어야 한다.
- 상시지속적 업무에 상시고용,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을 법제화하라!


정부는 지난 4월 8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및 고용안정 ․ 처우개선을 위한 「기간제 근로자 고용안정 가이드라인」 제정 및 「사내하도급 근로자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 개정을 발표했다. 정부는 노동개혁 입법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기간제 및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를 위해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한다고 밝히며, 이를 통해 노동개혁 현장실천을 가속화하고자 한다는 취지를 밝혔다.
하지만, 정부의 노동개혁 입법안은 비정규직을 더욱 확대하고, 모든 노동자들의 권리를 후퇴시키는 것이기에 수많은 노동자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강행하다 이제는 입법절차를 무시하고 정부의 행정지침으로 수행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부 정책은 현장의 실천이 아니라 현장에 혼란을 더할 뿐이다. 내용에 있어서도 당연히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권리를 축소하거나, 정부정책의 효과를 포장하기에 급급하다.

기간제 근로자 고용안정 가이드라인의 경우, 지금까지 비판받아왔던 공공부문 무기계약직 전환의 한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상시지속적 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제 근로자를 무기계약으로 전환하는데 있어서 상시지속적 업무는 “2년 동안 지속되어 왔고, 향후에도 지속될 것”이라는 요건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향후 지속성에 대해 불투명하다고 기관이 판단해 버리면 무기계약 전환대상인 상시지속적 업무로 인정되지 못한다. 기간제법이 2년이 지나면 해당 노동자를 무기계약으로 전환하는 것에 비해 ‘업무’를 기준으로 한다는 점은 인정되나, 오히려 상시지속적 업무의 판단 자체를 좁히면서 대상자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또한 상시지속적 업무라면 애초에 정규직으로 채용했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무기계약 전환시 선심을 쓰듯 기간제 근무경력을 반영한다고 한다. 그것도 오롯이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정규직에 비해 불합리한 차별이 없도록 하면 된다고 한다. 이는 동등한 근로조건을 형성하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기간제 기간 동안의 차별이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무기계약 전환 후에도 적정하다고 그들이 판단하는 선에서 어느 정도 처우개선을 해주면 된다는 것이다.
또 전환절차를 마련하되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 평가를 토대로 전환 대상자를 선정하도록 하고 있다. 근무실적, 직무수행능력, 직무수행태도, 근무기간 등으로 제시되고 있는 선정의 기준에서 객관적인 것은 오로지 근무기간일 뿐 그 외의 사항들은 모두 사용자가 자의적으로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는 요소들에 지나지 않는다.
차별에 있어서는 동종 유사 업무 정규직이 없더라도 해당 사업장 모든 근로자에게 적용함이 타당한 복리후생은 불합리한 차별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당연한 것이고, 이미 기간제법 개정에 따라 시행되고 있거나 해석상으로도 당연히 인정되는 것이다. 또 무기계약 전환자에게는 비교대상이 없을 경우 해당 업무의 종류, 난이도, 책임도, 자격 등을 고려하여 유사업무를 판단하도록 하고 있는데, 기간제 근로자일 경우에는 그를 규정하지 않고 있다. 기존에 있는 내용만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무기계약 전환자에 있어서 비교대상을 확장했다고 해서 반드시 근로조건이 개선된다는 보장도 없다. 비교대상자가 있는 경우에는 불합리한 차별이 없도록 하고, 비교대상이 없는 경우에는 해당 업무의 종류, 난이도, 책임도, 자격 등을 고려하여 유사업무를 판단한다고 하지만, 이 역시 업무의 난이도, 책임도 등 주관적 판단의 요소들을 상당부분 포함하고 있어, 결국 유사한 수준의 노동조건을 가진 노동자들을 끌어와 실질적인 개선없는 말뿐인 개선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국 기간제법을 보완하지도, 개선하지도 못했고, 무기계약 전환 대상 업무 판단에서도 기존 정부 정책과 달라진 것이 없다. 즉, 기간제 근로자 보호를 위해 민간영역을 선도할 수 있는 내용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가이드라인이 필요했던 이유는 마지막에 드러난다. ‘기간제 근로자 근로조건 개선과 고용안정을 위해 임금체계 합리화 등을 노사가 협의, 강구’하도록 하고 있는 마지막 문구가 바로 이 가이드라인을 제정해야만 하는 이유였던 것이다. 임금체계 개편으로 모든 노동자의 임금을 축소시키고, 기간제 근로자의 무기계약 전환이나 처우개선 등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일들을 그 핑계로 삼는다.
가이드라인 시행을 통해 모범사례를 발굴한다고 하지만, 기간제 근로자를 무기계약으로 잘 전환하는 것이 모범이라 오해해서는 안 된다. 모범사례의 방점은 무기계약 전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임금체계 개편’에 있다. 이를 연동’시켜야만 모범사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내하도급 근로자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 개정 역시 마찬가지다.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은 이미 2011년 8월 제정되어 시행되어 왔는데, 그 사이 자동차 완성차 공장 모두에서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법원의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은 불법파견해소를 위한 가이드라인으로 대폭 수정되거나 폐기되어야 옳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개정하여 사내하도급이 불법이 아님을 여전히 포장하고 있으며, 불법파견의 증거로 인정되어 왔던 원청의 교육훈련, 안전에 대한 책임 등 원청의 책임 등은 원청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수행하는 도덕적 의무로 전환된 채 그대로 남아 있다.
원청에게 주어지는 책무라는 것은 “동종 유사업무 수행 원하청 근로자 간에 불합리한 차별이 없도록 정보를 제공, 상호 협력, 적정한 도급대금 보장, 확보”를 위한 “노력”일 뿐이다. 여기서 사용하는 “불합리한 차별이 없는 적정한”이라는 표현은 적정한 수준의 차별을 내포한다. 원청은 그저 적정한 도급대금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할 뿐, 불합리한 차별없는 임금을 지급해야 할 책무는 다시 하청사업주에게로 돌아간다. 즉, 하청업체가 사회보험료 납무를 회피하거나, 최저임금조차 지급하지 못하는 수준이 되지 않도록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차별에 대한 비교대상 역시 ‘동종 유사업무를 수행하는 원청 근로자’로 한정되기에 업무를 분리하는 등의 방식으로 충분히 빗겨갈 수 있는 지점이 된다.

결국 달라진 것은 없다. 정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가이드라인에서 조차 제대로 노동자를 보호하고 있지 못하며, 오히려 완전한 비정규직 체제로 가기 위한 시스템을 다듬는데 열중하고 있다. 그들이 노동개혁이라 부르는, 모든 노동자를 불안정한 고용상태로 만들고, 비정규직을 더욱 확대하고, 유연하게 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받침돌을 기업들의 발 앞에 더 단단히 놓아주기 위한 수순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차별해소를 위한 정책 역시 계속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에 포함이 된다.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이 워낙 열악하기 때문에 차별에 맞서는 사회적 대응이 중요하지만, 정부의 정책은 오히려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을 적정한 수준에서 관리하여 사회적 불안을 없애고 비정규직 고용형태를 무난하게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한 것에 치중하고 있다. 그러나 그 실내용 역시 실질적 개선이 아닌 포장을 두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 비정규직 문제를 해소하고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면 상시지속적 업무에 정규직을 채용하도록 강제해야 하고, 비정규직 사용 사유를 제한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그 속에서 비정규직으로 사용할 사유가 있는 경우, 그에 대한 충분한 보호를 행해야 한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정규직의 임금을 깎고, 유연하게 하는 방식으로 메워지는 차별해소는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 증진에도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기간제 가이드라인,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은 당장 폐기되어야 할 지침이다. 정부가 이를 통해 노동개악을 밀어붙이고, 현장을 길들이고자 한다면 더 많은 노동자들,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대를 반드시 마주하게 될 것이다.

2016년 4월 16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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