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페이퍼] 직무급제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임금체계가 아니다

by 철폐연대 posted Jan 0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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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위원회 이슈페이퍼>

 

직무급제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임금체계가 아니다

 

 

한상규(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촛불과 박근혜 탄핵을 딛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공정경제, 사람중심경제, 소득주도성장 등 대중을 사로잡는 개혁 방향들을 내세워 왔다. 노동과 관련해서 문재인은 후보 시절부터 박근혜식 성과급제를 폐기하되 임금체계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에 근거한 ‘산업 단위 표준 직무급 중심’으로 개편하겠다고 공약했었다. 이런 맥락에서 기획재정부는 공공부문 직무급제 도입에 관한 연구용역을 진행, 그 결과는 2018년 3월에 나올 예정이다.

  본 페이퍼는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하여, 아직 정식 보고서가 나오진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관련 언론 보도들과 공개토론회 논의들, 그리고 특히 직무급제 도입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이것이 핵심이다”(프레시안, 2017년 12월 4일) 등을 근거로 하여 그 어떠한 임금체계 개편도 공정성을 확보할 수 없고 노동계급의 분할과 빈곤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1. 직무급제로의 임금체계 개편, 그 배경과 주요 내용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직무급제 개편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대상인 5개 주요 직종(경비, 사무보조, 시설관리, 조리보조, 청소)을 시작으로 해서 향후 10년 안에 공공부문의 모든 직종으로 확대하여 직무 중심 인사관리 및 직무급체계를 확립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직종 별 각 직무들을 숙련, 자격, 경험과 지식, 책임성, 난이도, 위험도, 작업조건 및 직종의 업무수행내용 등을 고려해 ‘평가’하여 통일되고 표준화된 임금체계와 직무체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요컨대 직무급제는 직무에 따라 임금, 승진체계, 고용구조 등을 달리하는 임금체계로서 직무에 따른 차이가 차별로 고착화 되는 효과를 갖고 올 수 있다. 다른 한편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문제 특히 고용형태에 다른 신분제화 문제 해결을 위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겠다 했고, 이를 국가가 주도할 수 있는 공공부문에서 먼저 주도적으로 진행하겠다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공공부문 정규직화와 직무급제 도입은 맞물려서 진행이 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정규직화의 구체적인 방법은 자회사를 통한 직접고용과 무기계약직화로 가닥이 잡혀져갔다. 본래 공공부문 정규직화는 상시지속업무를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는 문제를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정책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지만, 이내 정규직화의 방법은 자회사 및 무기계약직 전환 방식으로 바뀌었고, 이런 흐름은 직무급제 도입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 이는 정책의 ‘지속가능성’(정규직화 비용 문제 해결)과 ‘공정성’(기관별 동일 직종 임금 격차 문제 해결)의 확보라는 원칙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이 문제들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지속가능성의 문제부터 살펴보자. 이는 공공부문 정규직화가 가져올 비용의 문제를 지적한다. 정규직화라는 선의가 비용 압박이라는 문제에 의해서 지속불가능하면 모두에게 안 좋은 것 아니겠냐는 것이다. 때문에 정부의 재정 문제를 고려하여 정규직화 방식을 정부 기관의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를 통한 고용이나 무기계약직으로의 고용으로 방법을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형된 방식으로 고용을 전환하더라도 여전히 비용 상승의 문제를 우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임금체계 개편을 함께 진행하여 재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정부가 자본의 논리에 따라 재정을 운영해야 한다는, 즉 ‘긴축’을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재정정책 패러다임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울러 ‘비용 문제’는 사실상 두 가지를 은폐하고 있다. 첫째, 정부도 상시지속업무를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정작 그 근본적인 문제를 순차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점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은 정부가 원래부터 직접 고용하는 것이 정상인 것이고 그에 따른 비용은 본래 반드시 필요한 비용이다. 둘째, 반드시 필요한 정상적인 비용이라면 그 비용을 누가 더 부담할 것인가라는 쟁점이다. 우리는 비정상적인 고용형태로 인하여 불안정하고 빈곤한 삶을 살아가는 노동자들에게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절차와 시간을 인내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정상화 시키고 그에 따른 비용을 사회 전체적으로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결국 지속가능성이라는 그럴싸한 원칙 뒤에는 정규직화에 따르는 비용 문제를 자회사와 무기계약직화 그리고 직무급제를 통해서 특정 노동자 집단에게 전가시키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정부와 자본의 지속가능성은 따지면서, 정작 불안정노동자들의 지속가능성은 계속해서 무시하겠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 정책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라는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민간부문, 즉 자본에 대한 영향력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자본은 기업별 직무급제나 성과급과 결합한 직무급제 도입 등으로 이를 악용할 여지가 더 많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와 같은 공공부문 정규직화 방식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디딤돌이 될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무기계약직 전환이나 자회사 고용 방식이라는 이 중간지대는 사실상 회식지대이기 때문이다. 우선 자회사의 경우 본사와 엄연히 다른 법인이고 승진·임금체계와 복지 등에 있어서도 완전히 다른 노동조건을 갖고 있다. 더불어 간접고용→자회사→본사로의 디딤돌 이동이 가능하다 가정하더라도 이미 서울교통공사 안전업무직 정규직화 과정과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본 바와 같이 기존 본사 정규직들의 내부 반발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는가의 문제도 있다. 그렇다면 본사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하더라도 기존 정규직과는 다른 임금과 승진체계를 갖는, 여전히 차별이 존재하는 구조로 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러한 과정들 속에서 정규직화된 노동자들은 정부 정책의 시혜 대상으로 전락할 뿐이고, 그렇게라도 변형된 방식으로 정규직화된 것을 매우 다행이고 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것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게 되며, 당사자들의 생존과 정상적인 정규직화에 대한 요구는 계속해서 억압되고 조금이라도 불만을 표출하면 대중의 손가락질을 받게 되는 문제도 남는다. 이는 노동운동의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

 

  다음으로 공정성의 문제를 살펴보자. 정부는 기존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노동자들과 이번에 새롭게 전환될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체계와 수준이 다르기에 발생하는 공정성 문제, 그리고 공공부문 내 동일 직무 사이의 임금 수준이 다르기에 발생하는 공정성 문제 두 가지를 쟁점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기왕에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추진하는 마당에 현장의 혼란을 수습하면서 합리성을 확보하고 공정성 문제도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정성과 합리성이라는 포장은 앞서 살펴본 바대로 정부 정책 패러다임의 문제를 은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존 정규직과의 차이, 직무직종간 차이를 가장한 노동계급 내부의 차별이라는 쟁점을 숨기고 있다. 왜 정부청사를 청소하는 5호봉 노동자와 정부청사 내 7급 5호봉 공무원의 월급 수준이 심각하게 차이가 나야 하는가? 우리는 이런 불공정성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해결할 필요도 있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의 논의는 이러한 다양한 직무들 간의 임금 격차 설정의 자의성에 대해서도 함구하고 있다. 직무 별 임금 수준(차이) 설정을 노동자들과의 협상과 논의를 통해 결정하는 게 아니라 정부 독단으로 또는 정부와 자본이 합작하여 자의적으로 정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는 기존의 직무직종간 임금격차를 사회적 합의 없이 위로부터 강제로 합리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시험과 면접 등 이른바 공정한 평가와 선발 방식이라 칭해지는 일련의 선별 과정들은 노동운동으로 하여금 공정성이라는 쟁점만을 갖고 공회전을 하도록 만들고 있다.

 

 

2. 공정하고 합리적인 임금체계? 노동의 대가로서 임금이라는 환상

 

  무엇보다 우리는 더욱 본질적인 쟁점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우선 직무급제로의 임금체계 개편이 불러올 노동자 내부 분할의 재편 문제와 능력주의라는 쟁점이 있다. 정부는 신분제나 마찬가지인 현재와 같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무급제 도입이 시급하다 말하고 있지만, ‘이마트 사례’*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직무급제는 직무에 따른 또 다른 신분제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능력주의는 개인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선발되어 위계적 사회체제에 배치·분배받는다는 원칙이라 할 수 있는데, 결국 시험 등과 같은 제도 속에서 능력에 근거한 공정한 경쟁과 입직(입사)을 통해 직무 위치가 달라지는 것이니 그에 따른 차이도 공정하다는 믿음을 사회 전체가 공유하도록 만든다. 그런데 이것은 그 전제도, 과정도, 결과 역시도 전혀 공정하지 않은 것이기에 차별, 즉 또 다른 신분제를 만들어내고 만다.

  특히 기업규모와 고용형태에 따른 차이를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의거한 직무에 따른 차이로 치환한다고 해서 전자의 차이가 사라지는 것도, 노동자 내부의 분할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자본뿐만 아니라 노동계 일각에서도 사회적 직무급제라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한편 정부는 현재 공공부문 정규직화 대상 직종 대부분이 미숙련·저임금이라는 이유를 들면서 “미숙련이기 때문에 연공급이 아닌 직무급제가 적합하고, 저임금이기 때문에 직무급제를 통한 상향평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독이 든 성배’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능력주의를 궁극적으로 인정한다면 이는 축배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최악의 저임금 상황을 약간 개선하면서 직종과 직무에 따른 차별과 직무 신분제를 인정해야만 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최근 일련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논의와 과정들 속에서 기존 정규직들이 제기한 불만의 기저에는 궁극적으로 능력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어쩌면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의 득세는 현재 자본주의와 지배이데올로기로서 자유주의가 얼마나 위기에 빠져 있는지를 반증해주는 표지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의 경제적 성장이 어려운 구조적 모순 속에서 자본은 노동에게 넘겨주는 몫은 줄여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자본은 노동에게 주는 몫의 축소를 추진하기 위해 노동 계급의 저항을 원천적으로 분쇄시키고 약화시킬 수 있는 최고의 방법, 즉 노동의 분할을 통해 노동자들 서로 간의 갈등과 분열을 확대시켜 나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노동의 분할은 ‘능력에 따른 분배’라는 그럴싸한 구호 속에서 줄어드는 파이를 가지고 몫의 배분을 위해 노동자들 서로 피 튀기는 경쟁을 지속시키기 위한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가능해진다.

  결국 직무급제는 성과급이나 다른 임금체계와 마찬가지로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확대 강화할 것이고, 이는 현재 노동운동이 직면한 노동계급 내부 분열의 문제를 더욱 더 심각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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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으로, 왜 우리는 계속해서 노동 내부 격차나 노동 내부 분배의 문제에만 집중하고 있는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 근속년수에 따른 임금 차이에서부터 산업별, 기업규모별, 고용형태별, 성과별, 직무직종별 등에 따른 임금 차이와 그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의 문제는 노동자 내부의 임금 분배 비율을 조정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들 사이의 임금격차라는 익숙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그 쟁점 보다 자본과 노동 간 분배, 즉 노동소득분배율의 문제가 중요하다.

  <그림 1>과 <그림 2>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정부와 자본은 1997년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전환 과정 속에서 노동자들에게 던져주던 전체 파이의 규모조차 계속해서 줄여왔었다. 전체 파이는 항상 노동자들이 만들어내는데, 정부와 자본은 인구의 다수인 노동자들에게 매우 적은 파이만 던져 놓고 “능력에 따라 나눠 가지라”고 떠들면서 근속년수, 산업별, 기업규모별, 고용형태별, 직무직종별, 성별, 성과, 인종 등에 따라 노동자들끼리 피 튀기며 나눠 갖도록 해왔던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정말 쟁점으로 삼고 추진해야 할 것은 자본으로부터 노동 전체가 가져가야 할 몫을 늘리는 흐름의 전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환은 소수의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들만의 임금상승을 통해 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는 광범위한 상대적 빈곤화에 빠져 있는 다수의 저임금 불안정노동자들 전체의 조직화와 제대로 된 정규직화 그리고 재생산비용의 사회화를 근간으로 하는 임금상승 등을 근간으로 해야 가능할 것이다.

  끝으로, 재생산비용의 사회화를 근간으로 하는 임금상승은 자본과 노동 간 분배율의 역전 흐름을 만들기 위한 주요한 방법 중 하나이다. 저임금 불안정노동자들의 임금상승 뿐만 아니라 노동계급 재생산비용의 사회화 확대가 함께 진행될 필요가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임금’이란 무엇인가라는 쟁점과도 맞물려 있는데, 우리는 노동의 대가 또는 시장임금이나 정책임금 등과 같은 기존의 임금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인 이해 방식을 넘어서야만 한다. 임금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이해 역시 노동자 내부의 분할과 경쟁, 갈등만 가져올 뿐이다.

  임금은 노동의 대가가 아닌 노동력 재생산비용이다. ‘노동의 대가’라면 임금은 내가 어떠한 일을 했기 때문에 받는 비용이 된다. 이에 따르면 어떠한 일을 했는지에 따라 임금을 달리 받는 것도 정상적인 것으로 이해될 것이다. 노동시장에서 수요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노동의 가격대로 받는 대가라는 이해 방식도 맞는 것이 된다. 그러나 임금을 노동자로서 온전하게 노동을 할 수 있는 상태를 갖추기 위한 ‘노동력의 대가’, 즉 ‘노동력 재생산비용’으로 이해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자본과 노동자의 고용관계는 노예주와 노예 사이의 인간에 의한 인간의 소유관계와 달리 자본이 노동자라는 인간 자체가 아닌 노동자가 보유한 노동력을 계약을 통해 특정 기간과 시간에 특정 장소에서만 활용하여 생산을 조직하기 위해 성립되는 것이다. 따라서 임금은 그 고용관계 성립에 의해 해당 노동자가 계속해서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생산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노동력을 재생산할 수 있기 위해 지급되는 것이고, 그 이면에는 자본이 생산과정에서의 착취 이후 자신의 확대재생산이 가능한 수준에서 설정한 가변자본의 크기만큼 노동자에게 지급한다는 점이 숨겨져 있기도 하다.

  이러한 재생산비용에는 한 인간으로서 노동자가 온전하게 자기 자신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것을 넘어서,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자신의 피부양자도 부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과, 이러한 노동자 가구의 구성원 전체가 발전하는 사회적 생산력으로부터 배제되지 않고 상대적 빈곤에도 놓이지 않을 수 있는 권리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서 개별 노동자들이 획득하는 화폐로서의 임금으로는 이러한 수준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별 자본들이 노동자들에게 이러한 수준 만큼 임금을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장치들이 부재하다는 문제에 기인한다. 그리고 자본 간 역랑의 차이라는 문제와도 맞물려 있다. 따라서 재생산비용을 국가를 통해 사회적으로 해결하는 것, 즉 재생산비용의 사회화가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사회화의 범위가 좁을수록 노동자간 격차와 불평등 그리고 경쟁과 분할은 심하며, 그 범위가 넓을수록 노동자들의 임노동으로부터의 상대적 자율성 확대와 더불어 노동자간 연대의 가능성도 커진다. 

 

 

3.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공정한 임금체계로의 전환이라는 선의 뒤에 숨겨진 사실을 분별할 필요가 있다. 그 어떠한 임금체계로의 개편도 국가와 자본이 점점 줄여가며 던져주는 떡고물을 어떻게 ‘공정하게’ 나눠 가질 것인가라는 해결 불가능하고 전제부터가 잘못된 문제를 노동자들끼리 피 흘리며 계속 붙들고 싸우도록 만드는 전략이라는 점 말이다. 그 어떠한 임금체계도 노동의 분할을 통해 노동자들의 단결을 분쇄할 뿐이다. 자본은 노동의 분할을 통해 효과적으로 노동자들을 통제하려 하고, 그러한 기반 위에서 노동에게 주는 몫은 줄여가며 자신의 손실 비용은 사회화를 통해 노동 계급에게 끊임없이 더욱 더 많이 전가해오고 있는 것이다.

  노동운동은 더 이상 자기파괴적인 조건들을 재생산하는 것을 멈춰야만 한다. 이제 공정한 임금, 능력주의라는 환상을 넘어서서 노동자들의 연대를 회복하고 단결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우선 미조직된 불안정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최우선시하여 이들이 정부와 자본의 단순한 시혜 대상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요구하는 주체로 거듭날 수 있게 하고 자본에 대항하는 노동 전체의 힘이 강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편 노동계급의 연대는 재생산비용의 사회화를 요구하고 쟁취하는 과정과 그 사회화를 작동시키고 현실화시키는 과정 모두에 있어서도 관건이 된다. 다음으로 임금결정의 기준을 노동의 대가나 시장임금과 같은 자본의 이해 속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에게 차별 없이 보편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수준과 방법이라는 관점 속에서 설정해야 한다.

  이러한 조직화 방향과 임금결정의 기준이라는 설정 위에서 노동운동은 무엇보다 현재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 간 격차와 왜곡돼 있는 임금체계를 바꾸고 노동자들에 의한 대안적 임금체계를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 현 정부가 주장하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실현을 위한 직무급제와 노동운동 일각에서 요구하는 사회적 직무급제는 궁극적으로 노동자간 격차/차별의 유지라는 동일한 가치를 공유하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이와는 다른 대안적 임금체계, 임금에 관한 운동의 원리를 만들어 나가는 데 있어서 다른 가치들이 필요하고, 철폐연대는 ⓵안정성 원칙, ⓶집단성 원칙, ⓷생활보장의 원칙 등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우선 안정성 원칙은 임금 변동성을 축소시키고 과도한 노동시간과 노동강도를 축소시켜 노동자가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계획하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집단성 원칙은 인종, 성별, 능력 등 다양한 방식의 분할을 통해 노동자 내부의 차별을 만들어내는 자본과 국가에 대항하는 운동과, 개별적 생존을 통한 노동자 전체의 파괴가 아닌 노동시간 단축이나 자본에 대한 전체 노동자들 몫의 확대 등과 같이 노동자 전체의 연대를 통한 모두의 생존과 번영을 만들어내는 운동 등을 통해서 노동자 내부의 단결과 계급적 형성을 지향하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생활보장 원칙은 개별 노동자들의 임금이 서로 다를지라도 기본적으로 모든 노동자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고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임금 수준의 보장과 국가를 통한 사회적 보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임금 수준과 사회적 보장의 비용은 자본, 특히 대자본의 책임을 명확하게 제시할 필요도 있다. <끝>

 

 

*) 지난 2007년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을 목전에 두고 자본은 정규직 전환에 따른 인건비 부담 증가를 감당하기 위해 직무급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신세계 이마트는 비정규직 계산원 5천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직무급제를 시행했는데, 기존 정규직과는 완전히 다른 임금과 승진체계를 적용받게 되었고, 해당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이 인상되는 만큼만 임금인상이 되는 악조건 속에 놓이게 되었다. 이후 2015년에는 ‘신인사제도’라는 것을 도입하여 공통직(정규직 관리 사원)과 전문직(게산원과 매장 진열 노동자)로 직무를 통합-분리하였는데, 전문직 노동자들은 해당 직무에서 계속 근무하는 한 계속해서 저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공통직으로의 직무 이동은 불가능에 가깝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자료

류동민, 2016,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의 위기: 탈조선의 사회심리학”, <황해문화> 90호.

민주노총, 2016, <노동분할시대, 노동조합 임금전략>(민주노총 총서 047)

 

- 이 글은 <질라라비> 173호(2018.01) 정책포커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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