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단체성명서]현대중공업의 일방적인 회사분할 추진 중단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촉구한다.

by 철폐연대 posted Jun 0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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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

현대중공업의 일방적인 회사분할 추진 중단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촉구한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5. 31.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회사분할 안건을 통과시켰다. 조선 사업부분을 분리시켜 자회사(신설회사)로 만들고, 기존 현대중공업은 사명을 '한국조선해양(존속회사)'으로 바꾼 뒤 연구개발부분 및 현대중공업 등 조선 사업부분을 지배·관리하는 중간지주 역할을 맡는다는 계획이다. 한국조선해양은 본사도 울산에서 서울로 이전하게 된다. 특히 현재 현대중공업그룹이 추진 중인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성사될 경우, 한국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의 최대주주이자 지주회사가 된다. 그러나 이번 회사분할을 둘러싼 여러 문제들을 종합해 볼 때, 과연 이번 회사분할이 내용적으로나 절차적으로 타당하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첫째, 현대중공업은 기존 부채의 대부분을 조선사업 부분과 관련된 것으로 분류하고, 거의 모든 부채(약 7조원)를 자회사인 사업회사로 배정했다. 그렇다면 같은 논리로 선수금이나 차입금 등을 통해 조달된 현금성자산 역시 사업회사에 더 많이 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현대중공업은 현금성자산 창출의 원천인 매출이 대부분(약 95%) 자회사로 이전되는 사업부분에서 발생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한국조선해양에게 약 8,800억원의 현금성자산을 배정한 반면, 사업회사에게는 그보다 약 1,200억원이 적은 7,600억원의 현금성자산을 배정했다. 이로 인해 신설되는 사업부분에서는 분할 전에 비해 상당한 자금압박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현대중공업은 사업회사에 자금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지금과 같이 비정규직 확대를 통한 인건비 절감, 협력업체에 대한 갑질 횡포를 지속·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회사분할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 및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통해, 현대중공업은 중·장기적으로 조선산업 구조조정을 보다 용이하게 추진할 수 있는 배경조건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즉, 향후 현대중공업그룹 조선사들의 신규투자 및 선박 수주는 사실상 한국조선해양을 통해 결정되거나 통제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국조선해양은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염두에 두고, 각 조선사별 신규투자나 선박 수주를 진행하고자 할 것이다. 이미 여러 사업장에서 기업 구조변동은 구조조정을 용이하게 하는 방편 내지 수단으로 사용돼 왔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회사분할 후에도 고용 등 근로조건에는 변동이 없다.’는 회사의 항변을 믿기 어렵다.

 

셋째, 현대중공업 노동자들과 노동조합 입장에서 볼 때, 이번 회사분할은 노동3권 실현에 큰 위협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기존에 생산직 노동자들은 현대중공업과 전국금속노동조합이 체결한 단체협약의 적용을 당연히 받아왔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소속하게 될 자회사가 신설회사라는 이유만으로 기존 단체협약의 당연 적용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현대중공업은 ‘노동조합이 회사분할에 관한 합의를 해야만 단체협약 승계가 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노동조합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합의 없이 회사분할 안건이 일방적으로 주주총회를 통과된 현재로서는, 현대중공업이 단체협약 승계를 부인할 가능성이 높다. 회사분할시 단체협약 승계에 관한 법제나 법리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하나, 노동3권 행사의 결과물인 단체협약을 협상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현대중공업의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넷째, 현대중공업은 노동자들과 지역사회가 회사분할을 적극적으로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주주총회라고 볼 수 없는 과정을 통해 이번 분할 안건을 통과시켰다. 노동조합 측이 회사분할 및 주주총회 진행에 반대한 것은 사실이나, 그렇더라도 회사는 상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주주총회를 진행할 의무가 있다. 나아가 정상적이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된 주주총회에서 가결된 안건만이 유효하다고 할 것이다. 특히 회사는 주주총회에 참석하려는 주주들에게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어도 시간과 장소는 사전에 충분히 고지할 의무가 있다. 주주총회 참석권 및 의견표명권은 지분율이 얼마인지, 의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모든 주주에게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당초 개최시각(오전 10시)을 30분 넘게 경과한 이후에 갑자기 주주총회 장소 및 시각을 변경하고, 최대주주 등 회사분할 안건에 우호적인 주주들 일부만이 참석한 상태에서 주주총회를 진행했다. 회사가 주주총회 장소 및 시각을 변경한 시점에는 이미 기존 주주총회 장소(한마음회관)에서 변경된 장소(울산대학교 체육관)로 주주총회 개최 시각(오전 11시 10분)까지 이동하기가 사실상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에 따라 우리사주조합을 통해 약 3% 주식을 보유한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을 비롯해 대다수의 소수주주들은 당연히 주주총회에 참석조차 할 수 없었다. 나아가 변경된 장소 및 시각에 개최된 주주총회에서는 안건에 대한 어떠한 논의도 이루어지지도 않은 채, 10분도 되지 않아서 회사분할을 포함한 모든 안건이 통과되고 주주총회가 종료됐다. 이처럼 주주들의 자유로운 참석조차 보장되지 못한 주주총회는 결코 적법하다고 볼 수 없고, 위법한 주주총회에서 통과된 회사 분할 안건 역시 유효하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현대중공업은 상법이 정한 결의 요건을 충족했다는 입장으로 보이나, 회사분할과 같이 법인격 자체를 변경시키는 중대한 안건을 아무런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처리하는 것은 결코 타당한 방식의 의사결정이라고 할 수 없다.

 

현대중공업은 이제라도 지난 5. 31. 임시주주총회의 중대한 절차적 하자를 인정하고, 회사분할 추진을 중단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현대중공업이 노동자들과 지역사회의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를 충분히 수렴한 후에, 회사분할의 필요성 및 구체적인 방법을 검토하기를 바란다. 노동조합이 우려하는 단체협약도 문제이나, 협력업체와 체결했던 상생협약 등의 승계 여부도 현대중공업은 명확히 밝혀야 한다. 현대중공업은 회사분할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각종 절차(국내·외 기업결합 심사)가 완료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지금 당장 시급히 회사분할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 현대중공업은 소속 노동자들의 삶의 터전이자,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대표기업으로서,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한 기업이다. 이제라도 현대중공업은 회사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19년 6월 03일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법률원(민주노총·금속노조·공공운수·서비스연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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