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파견법 25년, 다시 파견법 폐기의 목소리를 높인다.

by 철폐연대 posted Jun 3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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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파견법 25년, 다시 파견법 폐기의 목소리를 높인다.

 

 

올해 초 고용노동부는 주요 업무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파견제도에 대한 개선을 포함해 발표했다. 정부는 이를 오래된 노동법제의 ‘현대화’ 과제로 다루고 있는데, 파견의 확대를 비롯해 차별해소, 중간착취 방지 등을 우선 그 내용으로 담겠다고 한 바 있다. 지금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전체적인 파견법에 대한 좀 더 폭넓은 개정작업인 것으로 짐작된다. 그 가운데 정부 논의의 주된 방향은 파견의 확대에 있다. 차별 해소나 균등대우, 중간착취 방지 등도 논의에 포함하고 있지만, 고용형태나 직무에 따른 임금 차별이 합리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노동력을 외부에서 공급받는 구조 자체가 노동관계에 대한 제3자의 이익을 목적으로 한 개입을 허용하는 것이기에 ‘중간착취 방지’라는 논의 목적 자체가 파견법의 개정이라는 방향 속에서는 의미를 갖기 어렵다. 결국 현실에서는 파견노동을 확대하는 양상으로만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32개 업종에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파견을 넓게 허용하고(가능하면 네거티브 방식으로의 전환을 통한 전면적 확대까지), 자본이 불법파견 시비에 시달리지 않고 간접고용 형태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파견법 정비의 주된 방향이 될 것이고, 그것이 ‘현대화’라 이름 붙인 제도 개선의 방향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정이든, 개악이든 파견법의 규율을 통해서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것은 사실 본질적으로 무용한 논의가 될 수밖에 없다. 파견제도의 본질 자체가 자본의 유연한 인력 활용에 목적을 두고 있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노동자 권리의 파괴는 수습해야 할 부산물에 불과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고용을 일터에서 분리해 내고, 단기노동으로 만들고, 사용자를 다수화 하는 것에서 이미 노동권은 침식된다. 안정된 직업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노동자의 삶의 안정성을 무너트리는 것이 파견제도이다. 그렇기에 파견고용형태를 제도적으로 허용하는 가운데에서 노동권을 말하는 것은 공허한 논의에 불과하다. 돌이켜 1993년 파견법 도입이 최초 제기될 때부터, 1997년 파견법이 논의되고 외환위기 상황에서 제도화되는 그때에도, 파견법이 노동자를 위한 법이 아님은 분명히 확인된 바 있다. 1993년 정부가 발의한 법안을 검토한, 당시 노동위원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에서는 노사간 이견이 분명한 제도이기에 법제정에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보았고, 구체 법안 검토에서도 정부가 파견 산업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1998년 법제정 당시 환경노동위원회 심사보고서에서는 ‘파견근로의 법제화로 정규직 근로자의 고용불안 및 노동조합 활동의 저해 등의 문제점이 우려’된다는 점을 보다 분명하게 확인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자본의 유연화 의도에 부합해 제정되고 확대되어 온 것이 파견법 제정과 시행, 25년의 과정이었다. 파견노동자 권리문제에 대해 정부가 접근하는 방법은 늘 불법을 합법화하고, 파견 산업을 대규모로 양산하는 쪽에 맞추어져 왔었다. 1998년 법 제정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는 파견허용 대상을 확대하는 조치를 취했고, 이명박 정부 하에서는 파견허용대상을 전면적으로 확대하는 시나리오를 검토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4, 50대 노동자들의 파견을 허용하고, 뿌리산업에 파견을 확대하는 제도 개악을 시도했다. 불법파견이 큰 쟁점을 이루었던 사내하청에 대해서는 사내하도급이라는 이름을 붙여 파견도 직접고용도 아닌 새로운 고용형태로 합법의 모양새를 덧씌우려 했으며, 합법파견이 불법파견 상태보다 낫다는 거짓으로 파견범위 확대조차 노동자를 위한 것으로 포장하기도 했다. 노동자를 위한 방편으로 이야기되었던 것은 고작 파견업체가 상시적으로 고용하는 상용형 파견이나, 파견업체의 대형화라는 오히려 시장을 키우는 방식 정도에 그쳤다. 그 대부분의 시도는 노무현 정부 당시의 법개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노동자 투쟁에 가로막혔지만, 파견법 자체는 여전히 건재한 상태로 계속해서 간접고용을 양산해 내는 제도적 틀이 되고 있다.

 

현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는 해외 자본의 투자를 위해 파견이 확대되어야 하고, 자본이 더 유연하게 활동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모든 노동법제는 낡아서 현실을 담지 못한다는 주장을 덧붙이고 있다. 물론 지금의 노동법제가 확산되는 불안정노동의 양태를 모두 담지 못하는 상태에 있음은 많은 이들이 입을 모으는 지점이다. 시대의 변화, 노동의 변화에 따라 노동법은 유연하게 변화해 가야 한다. 지금까지 그렇지 못했기에 많은 불안정노동자들이 노동법 밖으로 밀려나 권리를 박탈당해 왔던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변화의 중심은 ‘노동자 권리 보장’이라는 노동법의 목적과 취지에 부합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그래야 ‘현대’라는 시대 위에서, 자본의 불안정노동 확산에 대응해 노동자의 ‘권리’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낡은 제도로 공격하는 노동법제는 정작 노동권을 배제하는 낡은 부분이 아니라 바로 노동법의 본 취지인 ‘노동자 보호’에 관한 것이며, 시대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는 것은 자본의 의지가 반영된 자본 중심의 제도 변화일 뿐이다.

 

더 이상 안정적인 일자리 형성을 자신의 책무로도 여기지 않는 정부의 모습을 보며, 불안정노동 확대의 제도적 시작을 알렸던 파견법 25년의 과정을 되짚는다. 그 시간 동안 파견법 폐기의 목소리가 늘 높았던 것은 아니다. 정부가 파견법을 확대 개악하려 할 때는 그에 맞서 싸웠지만, 그 이상의 투쟁을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파견법의 규정을 딛고 불법파견을 주장하며 정규직 노동자 지위를 확인하는 과정이 계속 되는 가운데, 어느새 파견법이 사라진 빈 지점을 어떻게 규율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노동자들 내부에도 생겨났다. 지난 불법파견 투쟁의 경험들은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를 확인하는 과정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파견법이 노동자의 권리 쟁취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 아픈 시간을 돌아보며, 다시 한 번 폐기해야 할 악법의 가장 첫 줄에 파견법을 세운다. 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한 운동의 흐름 속에, 파견법 폐기의 목소리가 늘 빠짐없이 함께 외쳐지기를 바라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역시 파견법 폐기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벼려 나갈 것이다.

 

2023년 6월 30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 리스트 사진은 철폐연대가 보유하고 있는 <고 이정원 동지>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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