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정부는 노동자를 기만하는 노동시간 개악 정책을 멈춰라.

by 철폐연대 posted Nov 1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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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시간+12시간+@의 장시간 노동, 결국 다시 같은 말을 반복하는 정부

정부는 노동자를 기만하는 노동시간 개악 정책을 멈춰라.

 

 

11월 13일 고용노동부가 “근로시간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 발표와 함께 고용노동부는 조사 결과를 대폭 수용하여 주 52시간을 한도로 하는 현재의 노동시간 제도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일부 업종 및 직종에 한해서는 현행 노동시간 제도로 인한 애로를 언급하며 추가 조사와 사회적 대화를 통해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올 초 69시간에 이르는 장시간 노동을 야기하는 노동시간 개편안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고용노동부가 3개월간 6,030명에 대해 조사한 결과 분석을 내놓은 것으로, 표면적으로는 정책을 대폭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노동시간을 유연화하고 장시간 노동 체제를 ‘선택권’이라는 포장으로 합리화하려는 시도는 지속되고 있다.

 

발표된 조사 결과 및 설문지 내용 등을 보면 조사의 전체적인 흐름은 정부가 시도하는 노동시간 확대, 유연화를 의도하는 방식으로 짜여 있음을 알 수 있다. 현행 노동시간 제도를 준수하기 위한 노력이나 조치 등은 검토되지 않고, 그로 인한 어려움을 확인하는 것을 우선하였다. 현행 주 52시간 한도 노동시간제는 2018년 3월 법이 개정되고, 그 해 7월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부문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이후 이미 5년의 시간을 넘어서고 있다. 50인 이상 사업장에는 2020년부터, 5인 이상 사업장에는 2021년부터 적용되어 제도에 따른 현장 운영이 충분히 감독되고 필요한 조치가 이루어졌어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아직도 정부는 주 52시간 한도 노동시간제 시행으로 인한 기업의 애로를 이야기한다. 이것부터가 선후가 뒤바뀐 것이다. 주 52시간 한도 노동시간제 자체도 작은 사업장에 한동안 유예를 두었고, 작은 사업장에 만연한 장시간 노동을 해소하지 못하는 문제가 지적되었음에도, 그나마 더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 노동시간을 늘리고 유연화하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도가 조사결과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주 52시간 한도에 따라 기존의 과도하고 탈법적인 연장근로를 축소하기 위한 조치들을 해야 했고, 그 결과 적절한 대응이라 할 수 있는 추가 인력 채용은 이 조사에서 응답의 36.6%로 약 3분의 1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다분히 정부가 변화된 제도에 따른 감독과 정책적 안내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이다. 오히려 포괄임금계약을 활용해 장시간 노동을 낮은 임금으로 유지하려는 시도(39.9%), 제도를 무시하는 경우(17.3%), 명확한 시간 관리 없이 연장근로 운영(10.6%), 퇴근처리 후 업무 수행 등 공짜야근(5.8%) 등 위법, 탈법적인 형태의 운영이 대다수인데도, 이는 오히려 현행 근로시간 제도의 한계를 드러내는 근거로 삼고 있다. 심지어 현행 주 52시간 한도 노동시간제 이후 노동시간이 단축되었고, 업무 시간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에 대해 긍정적 응답이 다수였고, 업무량의 증가에 대해 대처 정도에 대해서는 애로점이 있다는 응답과 그렇지 않다는 부정적 응답이 큰 편차를 보이지 않음에도 현행 노동시간 제도가 문제가 있다는 듯 시사하며, 업종별로 유연한 노동시간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제도 개편에 대해 의견을 묻는 문항에서는 그 의도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평소보다 바쁠 때 더 일하고 그렇지 않을 때 적게 일하여 연장 근로시간을 주 평균 12시간 이하로 하는 방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주 최대 근로시간 제한, 휴식권 부여 등 근로자 건강권 보장 전제)” 라는 질문은 다분히 긍정적인 변화만을 내세워 개편을 설명하고 있을 뿐, 그로 인한 생활의 불안정성이나 건강 영향, 소득 변화 등의 문제는 전혀 설명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항에 대한 긍정적 응답은 절반을 넘지 못했다. 노동자가 41.4%, 국민으로 분류된 응답이 46.4% 동의를 보였고, 사업주는 38.2%의 동의에 그친다. 이어 관리 단위 확대에 대해 긍정적 응답과 보통의 의견을 밝힌 노 ‧ 사에 확대 범위에 대해 의견을 물었을 때, 가장 많은 응답은 월 단위에 집중되었다.(노동자 62.5%, 사업주 59.3%) 분기, 반기, 연 단위 등 노동시간을 극도로 불안정하게 하는 관리 단위 장기화에 대해서는 실무적으로 노사, 어느 쪽도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그럼에도 총 노동시간을 더 줄이고, 소득을 안정화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는 조금의 검토도 없이 일방적인 설문이 계속된다.

 

일부 업종이나 직종에 한해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동의하는 비율은 국민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가장 높은 54.4%, 사업주 47.5%, 근로자 43% 순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본인이 속한 사업이나 업종에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가 필요하다는 응답에서 비율은 더 올라간다. 제조업의 경우 무려 63.6%의 노동자가, 건설업은 55.5%, 숙박 및 음식점업이 35.5%의 순으로 노동자 응답이 나타나고 있다. 이 문항에 대한 응답 결과가 실제 일부 노동자들이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에 대한 요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근거 문항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응답은 개개인의 욕구로 설명될 수는 없다. 오히려 사업, 직종 등의 실태를 반영하는 것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대다수가 부품, 하청업체인 제조업에서 물량에 따라 노동량이 들쭉날쭉해질 수 있고, 그에 따라 장시간 노동을 해야만 납품기일을 맞추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건설업의 경우 역시 공기를 맞추기 위해 투입되어야 하는 극한의 노동량을 소화하기 위해 장시간 노동이 필요해지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환경은 불가피한 것일까? 불안정한 사업 환경을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겠지만, 원하청 불균형의 문제, 노동권을 중심에 둔 제도 설계 등을 통해 불안정한 환경 자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의문은 전혀 제기되지 않은 채 손쉽게 노동자들에게 더 일을 시켜서 장시간 노동의 현실을 유지하는 방안만 검토되고 있을 뿐이다.

 

포괄임금계약에 대한 의견은 노 · 사가 다르게 나타나, 노동자 응답에서는 분명한 노동시간의 기록과 관리가 1순위로(44.7%), 사업주 응답에서는 현실적으로 포괄임금계약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응답이 1순위로(41%)로 나타났다. 그런데 분명한 노동시간의 기록과 관리는 사업주들 역시 2순위(34.2%)로 꼽고 있어서, 포괄임금계약에 대한 현실적으로 필요라는 것이 반드시 노동시간의 기록이나 관리가 불가능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없다. 공짜야근을 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라 하더라도, 관리 업무를 덜기 위해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큰 포괄임금계약을 손쉬운 방식으로 선호하고 있다는 점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조사결과는 포괄임금계약을 통한 임금과 실 노동시간을 비교하며, 정부가 이전에도 변명처럼 일삼았던 ‘노동자에게도 유리한 경우가 있다’는 말을 다시 되풀이한다. 한편 근로시간의 엄격한 기록, 관리가 업무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부분도 조사에서는 나타나는데, 노동자들도 창의적인 업무 등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또 사업주 역시 창의성, 재량성, 조직문화 등을 부정적 이유로 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의 노동시간을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시간 계산에 대한 특례조항(58조)이 이미 존재한다. 수많은 노동시간 유연화에 대한 법규정을 정비해야 할 마당에 포괄임금 ‘계약’을 허용해 편의와 저비용을 위해 활용되는 포괄임금계약을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시간의 산정이 분명한 경우 포괄임금계약은 명시적인 금지가 타당함에도 오히려 규제는 하되, 허용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는 식으로 활용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을 방안으로 논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정부가 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말하는 바는 일부 업종, 직종에 대해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유연화가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 노동시간 유연화 제도와 결합될 경우 노동시간의 불안정화는 가히 파괴적일 수 있다. 그래서 정부가 장시간 노동이나 건강권 문제 등에 대한 방안으로 논하는 주당 최장 노동시간 제한이 반드시 곁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행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경우 2주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48시간, 3개월 이내 혹은 6개월 이내의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52시간을 한 주간 최장 노동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에 주당 12시간의 연장근로가 가능하므로, 한 주에 최장 64시간까지의 노동이 가능한 것이 현행 근로기준법의 내용이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연장근로’의 관리 단위 확대를 논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정노동시간 자체의 유연화 제도에 더해 현행 주당 12시간 한도로 정하고 있는 연장근로의 단위기간을 유연화하겠다는 것으로, 이렇게 추진되는 정책이 기존의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과 결합할 때 노동시간은 최장 52시간+12시간+@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다시 69시간 장시간 노동 정책 추진으로 돌아오게 되고, 주 52시간 한도 노동시간제를 유지하겠다는 정부의 선언은 허언에 불과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이로 인해 직접적인 권리 침해에 노출될 노동자들이 일부 업종, 직종으로 제한될 것이라는 예고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처음은 일부겠지만 제도를 허문 틈으로 일부는 점차 영역을 넓혀가고 결국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에 이르게 될 것이다.

 

추가 조사를 진행하고, 사회적 대화를 통해 대안을 마련해 가겠다고 한다.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한다. 고용노동부는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에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일하는 사람이 대다수를 이루는 국민들의 삶과 노동에는 또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가.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존재하는 노동조합을 억압하고 혐오 발언을 일삼으면서, 한국노총은 대화상대로 끌어들이며 사회적 대화의 형식을 갖추려 하고 있다. 오로지 자본의 편의를 위해 제도를 기획하고, 근거를 만들고, 형식을 짜 맞추는 행태를 이제라도 제발 멈추기 바란다.

 

 

2023년 11월 15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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