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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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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운영하는 ‘비정규노동센터’가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는데 실질적인 효과도 누리지 못할 뿐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올바른 경로도 아니라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표합니다.     서울시로부터 예산을 지원받는 민주노총 서울본부의 비정규노동센터 추진 중단을 촉구합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7월 17일 민주노총 서울본부 운영위원회는 ‘서울시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비정규센터’를 운영하는 계획을 통과시켰습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비정규센터 운영의 취지를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서이며, 복지혜택 및 각종 프로그램을 노동조합 확대에 기여하도록 만들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철폐연대에서는 지자체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운영하는 ‘비정규노동센터’가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는데 실질적인 효과도 누리지 못할 뿐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올바른 경로도 아니라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표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주체로 세우기보다 시혜의 대상으로 만들며, 조직사업의 힘을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에서 구하기보다는 외부의 재정에 기대게 만들고, 노동운동의 가장 중요한 과제인 미조직·비정규노동자 조직화의 과제를 정부의 심의와 관리가 가능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자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지자체와 맞서 싸워야 할 전선을 흐리고 있으며, 지역에서 그동안 애를 써온 운동단위들과의 관계도 매우 배타적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민주노조운동은 자기 혁신과제로서 ‘미조직·비정규 노동자 조직화’와 ‘기업단위를 넘어서는 지역운동으로의 확장’을 많이 이야기해왔습니다. 이번 민주노총 서울본부의 결정은 이제 그러한 혁신과제의 구체적인 내용과 방식을 둘러싼 논의가 필요한 시점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민주노조운동 혁신을 위한 노력이 편의적인 방식으로 경도될 경우 민주노조운동의 후퇴를 가속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민주노총 서울본부의 결정은 그런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한 철폐연대의 견해를 입장 글에서 밝히고자 합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서울시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운영하는 비정규노동센터의 추진을 중단하기를 촉구합니다. 민주노총, 그리고 미조직·비정규노동자 조직화와 지역운동에 대해서 깊이있게 고민하고 활동하는 이들 모두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와 지역운동의 확장에 대한 진지하고 발본적인 토론을 진행하기를 요청합니다.  



<입장>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와 지역운동으로의 확장은 어떻게 가능한가?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7월 17일 비정규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해서 서울시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비정규센터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운영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서울시에서 지원받는 예산은 20억원(서울시 지원 15억원과 이후 구 사업응모를 통해 추가확보하는 5억원)으로서 ‘노사정간 긴밀한 협력체제 구축과 지역 노사관계 안정을 위한 서울지역 노동단체 사업활동 지원비’로 책정한 금액이다. 서울시는 한국노총 서울본부에도 20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고 한다. 이 예산을 집행하는 곳은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운영하는 ‘비정규노동센터’이며, 정책연구사업과 교육사업, 법률구조사업, 비정규직 노조보장사업, 그리고 노동자 복지지원사업으로 건강활동과 의료지원, 그리고 장학사업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서울본부는 10월 1일부터 비정규노동센터 사업을 운영한다는 것을 목표로 현재 16명 직원채용공고도 내놓은 상태이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는 이 사업계획안을 통과시키면서, 비정규노동자들을 조직하려면 임금 및 복지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하고, 지역공동체운동을 조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이런 조직사업은 소선거구체제 하에서 진보정당의 집권 기반을 만드는 데에도 결정적으로 유효하다고 한다. 조합원들에게 복지혜택을 제공하여 노동조합 조직확대에 기여하고, 교육과 상담·조사사업 등을 통해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공간으로서 비정규노동센터를 만드는 바, 센터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우므로 과도기적으로 우호적 지자체와 협약을 맺어 재정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도 이야기하듯이 경남과 포항, 대전 등에서는 건물 이외에 복지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므로 이런 재정지원은 이미 양해되어 있다고 말한다. 서울본부가 이야기하는 대로, 이미 건물 이외의 사업비로는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민주노총의 원칙이 어느 순간부터인가 ‘미조직·비정규 노동자 조직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슬그머니 풀리고 있다.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가 명분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이런 방식의 운동이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는데 올바르게 기여할 것인지를 질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이 정말로 지역운동으로 노조운동을 확장해가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1.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어떻게 조직해야 하는가?

(1) 시혜가 아니라 노동자들을 주체로 세워야 조직화는 의미를 갖는다.

서울본부는 비정규노동센터에 대해 “상담과 교육, 정책, 조사 등 각종 프로그램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 확대 강화에 기여하도록 하며, 각종 복지혜택은 무작위 노동자가 아닌 민주노총 조합원에 한해 제공됨으로써 노동조합 확대에 기여한다”고 한다. “비정규노동자를 장기지속적 관계로 조직하기 위해서는…임금 및 복지에서 일정부분 해결할 수 있어야…”라고 이야기한다. 지자체 단위의 노동자들에게 복지혜택을 부여하면서 조직하는 방식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노동자들에게 복지혜택을 준다고 해서 노동자들이 조직되는 것은 아니다. 반노조정서가 강한 한국사회에서는 노조에 가입하는 것도 해고될 각오를 해야 한다. 장학금 등의 혜택이 조합원들에게만 선별적으로 주어지면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할지 모르지만 그 혜택이 줄어들면 언제라도 노조를 떠날 것이다. 노동조합이 혜택을 계속 유지하려면 계속 재정을 조달해야 하고, 그로 인해 재정을 대는 곳에 의존하게 된다. 이미 노동자 조직화를 목표 정부 재정지원을 받았지만 오히려 정부재정의존도만 커지고 조직화에는 실패한 실업센터를 우리는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민주노총은 지금 2기 전략조직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비록 반밖에 걷히지 않았으나 50억 기금 모금운동을 통해 조직사업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가산디지털단지(구로공단)의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과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활동에 기금이 사용되고 있고, 조직사업은 조금씩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구로공단에서는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사업을 통해 주체를 모으고 현장투쟁을 조직하는 등 ‘지역의 작은 투쟁에서 지역의 큰 투쟁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인천공항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단조직화를 통해서 직접고용 투쟁으로 나아가고 있다.
조직화는 조합원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권리의식을 갖고 주체가 되는 이들을 늘려나가는 것이다. 풍부한 재정에 기반하여 이익을 보장함으로써 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비록 어렵게 나아가더라도 현장 노동자들 스스로가 투쟁의 주체가 되도록 일깨우고, 지역투쟁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가고, 조직화 과정에서 이미 조직된 노동자들이 함께 투쟁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렵지만 그런 전형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2) 조직화는 센터 방식이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의 자기 과제로 해야 한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는 비정규노동센터를 조직화의 허브로 만들겠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이미 지역본부 차원에서 비정규센터를 위탁받은 경남본부에서도 동일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상담과 조직활동을 하는 센터들은 많이 있다. 이 센터들은 힘겹게 지역 노동자들과 만나면서 조직사업을 해왔다. 그런데 울산북구에서 지자체와 현대자동차노조의 기금으로 비정규센터가 만들어진 이후 부천과 울산동구 등에서도 조례로 비정규지원센터가 만들어졌고, 그 이후 유행처럼 ‘비정규직 지원센터’가 조례로 시도되거나 통과되고 있다. 지자체로부터 그 센터를 위탁받아서 운영하려는 생각 때문이다.
지자체에서 재정지원을 받는 센터들은 주로 상담과 실태조사를 업무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담과 실태조사는 지자체 조례를 통하지 않더라도, 많은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센터들에서도 하고 있는 사업이다. 이렇게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을 굳이 ‘조례’로까지 만들어서 진행해야 할 이유는 별로 없다. 그리고 이 경우 지자체의 예산이 깎일 경우 상근자를 줄이거나 혹은 사업의 유지가 어려워진다. 이미 민주노총 경남지부의 센터들이 예산 축소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센터방식이 조직사업의 핵심 방안이 되기는 어렵다.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는 민주노조운동의 중요한 과제이다. 이것은 민주노조운동이 사활을 걸어야 할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력과 재정마련에 있어서도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민주노총 전략조직사업’의 원칙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전략조직사업을 하는 동지들만의 몫으로 두지 않고, 민주노조운동의 조직문화를 혁신함으로써 민주노조운동 전체를 조직사업에 매진하는 구조로 만들자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었다.
물론 민주노총의 전략조직사업이 2기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도 여전히 조직화는 일부의 몫으로 여기지고 조직문화혁신 사업은 충분히 진행되지 못했지만 이미 의미있는 변화들이 시작되고 있다. 이미 조직되어 있는 대학청소노동자들이 미조직된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서 첫차를 타는 선전전을 하고 있다. 서울남부에서 미조직노동자들의 근로기준법 준수협약을 맺는 투쟁을 할 때 그 협약이 좌초될 위기에 처하자 조직된 노동자들이 투쟁을 결의했다. 금속노조 경기지부의 경우 매주 화요일 미조직노동자들을 만나는 ‘화요실천’을 통해서 미조직노동자 조직사업을 실천하고 있다. 조직화를 외부로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의 구조를 변화시키고 모든 이들이 조직사업에 함께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나갈 때 조직화는 진전되는 것이다.

(3) 정부 역할을 대리하는 것은 권리보장을 위한 투쟁전선을 왜곡한다

조직화를 위해서는 민주노조운동이 당연히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보장 사업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자칫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우리가 대리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지자체들이나 노동부는 해야 할 역할이 있다. 우리가 고용보험료를 내는 것은 단지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구할 때 공적인 고용서비스를 제공하라고 하는 것이다. 지자체들도 노동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처럼 발뺌을 하지만 이미 대다수 지자체들은 기업들에 대한 각종의 지원제도들을 두고 있다. 세제 혜택에서부터, 직접적인 재정지원에 이르기까지 지자체들이 기업에 부여하는 혜택은 매우 크다.
그렇기 때문에 지자체나 노동부가 해야 할 역할을 노동자들이 위탁을 받아서 대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책임있게 그 역할을 공공적으로 수행하도록 요구하고 투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 노동청에 ‘공공고용서비스를 확충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지자체들에게 노동법을 준수하지 않는 업체들에 대해서 경고를 하거나 혹은 각종 혜택을 줄여 압력을 행사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업체들에 대한 지원이 아니라 노동자들에 대한 지원을 통해서 보육이나 교육, 의료등의 복지를 책임있게 수행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지자체나 지방노동청이 책임있게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감시하고 기업에 대한 강제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또한 가장 많은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있는 사용자로서 지자체에 맞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보장과 정규직 전환을 위한 투쟁을 지속해야 한다. 물론 노동조합이 ‘정책연합’을 맺었다고 하는 지자체들은 어느 정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보장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 그렇지만 광주시청과 전주시청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과정에서 야당 지자체장의 폭력적 노조탄압을 보았다. 그리고 서울시립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과 다산콜센터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서 서울시가 모르쇠하면서 버티는 모습도 보고 있다. 지자체들은 지역 토호세력들의 이해관계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지역 토호들에게 위탁된 민간위탁을 되돌리기도 매우 어렵고, 정부가 예산 통제를 통해서 인력을 관리하기 때문에 지자체들이 개선안을 내는 것은 곧 한계에 부딪친다. 그래서 우리는 당장의 개선 효과에 머물지 않고 투쟁 주체들을 세우고, 지자체들을 대상으로 하는 투쟁들을 연계하여 정부의 제도와 정책을 바꾸는 투쟁으로 확장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2. 정부의 기금으로 자주적인 조직화를 할 수 있을까?

(1) 비정규직투쟁과 서울시가 충돌할 때 노동자의 요구를 온전히 지켜낼 수 없다

민주노총은 현재 정부로부터 건물에 대한 비용 외에는 사업비를 받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그동안 정부는 노동조합을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적대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설령 가끔씩 노사정위원회와 같은 구조로 노동조합을 끌어들이더라도 이것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순치하기 위함이었다. 그래도 나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김대중·노무현정부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들을 희생양으로 삼기 위해 가장 가혹한 탄압을 했고, 비정규직을 양산했다. 지금 사회는 법과 제도, 그리고 심지어는 경찰력이라는 물리력까지 활용하여 노동조합을 탄압한다. 민주노조운동이 정부 기금을 받지 않는 것은 정부를 상대로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하겠다는 선언이며 의지의 표현이다.
지금 서울시를 상대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 다산콜센터 노동자들의 사용자는 분명히 서울시인데도 서울시는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며 교섭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고 있다. 서울시립대 청소노동자들은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면서 나이드신 조합원들을 해고했다. 그리고는 이미 규정에 있는 것이라서 어쩔 수 없다면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있다. 서울시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매우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같지만 시혜적으로 베푸는 몇가지 조치를 뛰어넘는 요구에 대해서는 오히려 탄압과 무응답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시혜조차도 투쟁을 순치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조합원들의 요구와 서울시에서 베풀 수 있는 시혜의 범위가 충돌할 때, 그래서 결국 노동자들의 요구가 정부의 지침 등을 뛰어넘거나, 지역 토호세력들이나 자본가들의 반발을 달래야 하는 상황이 올 때 지자체들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억누르려고 시도한다. 그런 충돌 과정에서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수많은 기금과 이미 고용한 센터의 상근자들의 임금 등을 포기하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온전하게 지키고 투쟁할 수 있을 것인가가 자주성의 핵심이다. 그 시기에 과연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서울시의 재정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결정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요구와 지자체의 요구가 충돌할 때 너무나 당연하게 노동자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기보다 한 번 더 고민하거나 토론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 그것이 바로 자주성이 훼손되는 과정이다.

(2) 민주노조운동의 핵심사업을 감사받는 것 자체가 자주성 침해의 위험을 지닌 것이다

경제위기 이후 대규모로 실업자들이 양산되었고, 운동진영은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실업센터들을 만들어서 실업노동자들을 지원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실업자들을 조직하고자 했다. 하지만 대부분 조직화에 실패했다. 그 이유는 재정지원을 빌미로 하여 실업센터의 사업에 정부가 개입해왔기 때문이다. 조직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계획서는 쉽게 통과되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재정을 확보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센터들은 조직사업이 아닌 다른 명목으로 사업을 하게 되고, 조직사업은 센터 상근자들의 의지로만 남게 된다. 그러나 정부가 해야 할 각종 지원사업을 대행하는 센터의 상근자들이 조직사업까지 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고, 그러면서 애초에 조직사업을 목표로 했던 것에서 멀어지게 된 것이었다.
정부로부터 재정을 지원받아 위탁된 센터들은 수탁받을 때 명시된 사업내용에 따라 사업을 진행해야 하고, 그 사업의 결과는 심의대상이 된다. 정부가 사업비로 지원을 하게 되면 민주노총에서 진행하는 각종 사업에 대해서 감사를 요청할 수 있다. 2009년 지방자치법과 관련 조례에 따라 강북근로자복지관을 피감기관으로 선정해 민주노총 서울본부장이 시의회에서 감사를 받았던 사례도 있다고 한다. 시의회는 수시로 사업의 내용을 문제삼아 예산을 깎거나 사업에 간섭하려고 하게 된다. 그리고 수탁기관이 다른 곳으로 바뀔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애써서 진행하던 사업의 연속성도 갖기 어려워진다.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서 만든다고 하는 센터는 정부 재정지원을 받는 이상 이렇게 취약한 구조 안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민주노총 서울본부나 경남본부 모두 지자체로부터 예산을 받을 때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의 필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렇다.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야말로 현시기 민주노조운동에서 제일 큰 과제이다. 절반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80%가 넘는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를 조직하지 않고는 노동운동의 미래가 없다. 그런데 그런 민주노총의 핵심사업, 즉 민주노총의 자기 과제에 해당하는 사업을 지자체에서 심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지자체 예산으로 하겠다는 것은 자신의 핵심과제를 적의 손에 맡기는 일이다.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야말로 민주노조운동이 최선을 다해 자기 과제로 삼고, 자신의 노력과 열정으로 진행해야 할 일이다. 사람과 예산을 마련하는 일도 자신의 역할로 삼아야 한다.

(3) 공공성을 훼손하고 신자유주의 관철에 일조할 수 있다.

지자체가 만드는 비정규노동센터는 필요하다. 지자체가 비정규직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기관을 만드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지키는 일 자체가 지자체가 해야 할 중요한 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런 역할을 방기하고 있었던 지자체에 문제제기하며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는 센터 구성에 대해서 요구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위탁’ 받는 데에 있다. 지자체의 비정규노동센터는 공적 조직이 되어서 지역의 사용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에 대해서 고소고발 조치도 할 수 있어야 하고,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는 사용주들에 대해서 지자체의 각종 지원을 철수시키기도 하고, 그 사업장이 지역 공단에 있다면 철수명령을 내릴 수도 있어야 한다. 지자체는 기업에 대해 각종 지원을 하기 때문에 그런 권한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민간위탁된 비정규노동센터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없다. 공적인 권리를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공적업무로서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는 조직을 만들면서 아무런 힘과 권한이 없도록 만드는 것은 스스로 공적 사무를 공공적으로 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던 원칙을 파기하는 것이다. 공공사무를 민간에 위탁하는 것 자체가 공공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은 공공서비스의 민간위탁을 반대하고, 직영으로 돌려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싸움을 해왔다. 그런데 비정규노동센터를 위탁받는 것은 비정규노동센터가 해야 할 공공성을 훼손하는 것이며, 민간위탁 반대전선을 흐리는 행위이다.
정부는 지자체에 대한 예산 통제로 신자유주의를 지역에서 관철시키려고 시도한다. 민주노총 차원에서 허울좋은 노사정위원회 참가를 거부할 때 지역으로 ‘지역노사민정 위원회 구축’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러한 ‘노사민정 위원회’ 시도는 대부분 지역 노동단체들에 대한 지원을 전제로 하여 진행되는 것이다. 이번에 서울시에서 사업비로 책정된 예산은 ‘노사정간 긴밀한 협력체제 구축과 지역 노사관계 안정을 위한 서울지역 노동단체 사업활동 지원비’이다. 단지 명분인 것이 아니다. 전반적인 투쟁의 국면에서 노사민정체제를 구축하는 데 사용되는 비용을 지원하는 것을 민주노조운동이 쉽게 받아서야 되겠는가.


3. 노동운동은 지역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1) 지자체는 유리한 공간인 것만은 아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는 ‘정책협약’을 맺은 지자체는 우리가 훨씬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지자체는 중앙정부보다 만만하여 우리가 언제라도 휘두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각 지자체들은 정부의 재정 교부금에 의존하고 있다. 지자체들은 예산확보를 위해 경쟁적으로 기업유치 전략을 세우고 있다. 기업유치를 위해 세금감면 혜택도 주고, 각종 지원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기업 유치 전략의 핵심에는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한 무시와 탄압이 있다. 지자체들이 예산을 위해 기업 유치 경쟁을 지속하는 이상, 지자체는 노동자들의 투쟁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물론 몇몇 의지가 있는 지자체장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서울시의 경우 예산상의 자율성도 다른 곳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높은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자체장과의 정책협약으로 어느 정도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이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예산통제를 빌미로 한 중앙정부의 지침,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지자체간의 경쟁들 속에서 지자체의 관심 추가 자본가들이 아니라 노동자들에게로 기울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튼튼한 지역사업을 통해서가 아니라, 지자체장과의 협약으로 이루어지는 권리라면 그야말로 허약하기 그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경상남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도지사가 바뀌면 노동자들이 쟁취했다고 믿는 권리들도 금방 훼손된다. 그리고 시의회나 도의회의 구성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노조운동이 지역에서 힘을 갖기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우선 지자체의 민간위탁과 외주화를 다시 되돌리기 위한 싸움, 그 과정에서 주체들을 다시 조직하기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지자체 안에서 투쟁하는 주체들이 있을 때 권리도 확장될 수 있다. 물론 지자체와 무조건 싸움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우리가 참여하거나 혹은 참여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부분도 있다. 그런 점에서 지자체의 각종 심의기구를 통한 적극적인 개입전략이 필요하다. 스스로 민간위탁을 받아서 심의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자체의 다양한 영역에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심의기구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고, 그것을 통해서 지자체 활동의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사업 방향을 끌고나가는 적극적인 개입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이해를 투명하게 반영하여 지자체 안에서 적극적인 투쟁을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각종 심의기구에 참여하여 감시하고 제안하고 투쟁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2) 조직노동자들이 직접 미조직노동자들과 만남으로써 지역운동으로 확장된다.

지역운동의 중요성이 많이 이야기되고 있다. 공장의 담벼락을 넘어 사업장의 틀을 깨고 지역으로 나가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하는 민주노조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데에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 민주노총 서울본부도 ‘구 및 광역단위의 공통의 요구로 투쟁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사업장 수준에서의 조직화가 아니라 최소 기초단체 단위로 조직해나가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즉 사업장단위를 넘어서는 조직화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즉 지자체와의 정책협약에 근거하여 지역 미조직노동자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운동을 만들겠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지역운동으로의 확장이 ‘지자체와의 관계’로 협소해져서는 안 된다. 광범위한 지역 미조직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운동을 고려한다고 해서 복지혜택을 제공하는 편의적 방식으로 접근되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민주노조운동이 지역으로 나간다는 것은 조직된 노동자들이 미조직노동자들의 요구와 과제를 갖고 지역 노동자들과 함께 만나고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그런 경험을 많이 갖고 있다. 두원정공 노동자들은 공장의 담벼락을 넘어 평택지역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역할로 규정하고 활동을 하고 있고, 금속노조 서울지부 동지들은 ‘천원 영화제’등 일상활동에서 지역 미조직노동자들로 참여 대상을 확장하고 적극 조직해가고 있다. 지역본부 차원에서 전교조와 함께 노조 임원들이 학교운영위원회 참가를 결의하고 학교운영위원회와 관련한 공부도 같이 하는 것도 있다. 지역 이주노동자와 함께하는 문화제나 체육대회를 여는 지역본부도 있다.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이 상층중심의 사업과 상층 중심의 대응이 아니라 현장조합원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듯, 지역으로의 확장도 마찬가지이다. 상층의 정책협약을 통해 지자체에 일정하게 발언력이나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고 믿는 것은 신기루와 같다. 지역의 민주주의와 지역의 생활과, 지역의 노동문제가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님을 확인하면서 민주노조운동이 자기 혁신을 통해 공장의 담벼락을 넘어 지역 노동자들과 다양한 의제로 만날 수 있을 때, 노동운동은 지역으로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 지역본부가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상층의 협약이 아니라 바로 이런 지역투쟁을 만들어나가는 지난한 노력이다.

(3) 노동운동이 지역과 만나려면 지역 운동단위들과의 소통과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는 비정규노동자에 대한 조직전략으로서 ‘일상적 소통구조 및 투쟁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사회단체와 함께 지역에서의 공동체운동을 조직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생협 등의 사례를 들고 있다. 그리고 그런 조직사업은 소선거구체제 하에서 진보정당의 집권 기반을 만드는 데에도 결정적으로 유리하다고 이야기한다. 공동체운동도 매우 중요하고, 노동운동이 관심을 가져야 할 영역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민주노조운동이 지역 안에서 일상적 소통구조를 만들어나가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미 민주노조운동은 그런 역할을 많이 해왔다. 부산보육노조는 ‘보육노동자 권리보장과 보육공공성 쟁취 공대위’를 만들어서 활동한 경험이 있다. 보육노동자들의 권리와 보육의 공공성이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에 지역의 여성단체 등 다양한 단위들과의 소통과 교류를 함께할 수 있었다. 진주의료원 폐업에 항의하고 투쟁하는 것은 단지 병원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지역 노동운동 전체였다. 지역의 의료공공성이라는 점은 모든 지역민들의 필요에도 부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경기남부의 노동자들은 평택 에바다 투쟁 때 가장 헌신적으로 싸워서 ‘에바다’라는 농인 교육시설을 민주화시키기도 했다. 지역의 환경문제에 함께 싸워온 이들도 노동자들이다. 노동자들은 다양한 투쟁에 함께함으로써 지역운동단체들과 만났고, 자신의 시야도 넓혀왔다. 그렇게 만날 때 서로간의 신뢰도 높아졌다.
그런데 민주노총의 비정규노동센터는 과연 지역의 운동단체들과 충분히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인가. 경상남도에서 비정규센터를 위탁받기 위해 민주노총과 경쟁했던 한 단체에서는 ‘다른 단체들이 그 역할을 하게 하고 민주노총은 자기 돈을 들여서 그 역할을 함으로써 더 많은 센터가 생기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정부의 재정 지원 없이 애를 써가면서 지역에서 역할을 담당했던 지역 비정규센터들에게 민주노총이 만들겠다고 하는 비정규센터는 매우 배타적이고 패권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민주노총 서울본부의 비정규노동센터가 지역사회단체들과 진정으로 함께하기 위한 방안은 아닌 셈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원칙이 갖는 의미를 고려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은 무너져가는 민주노조운동을 다시 세우는 가장 큰 힘일 수밖에 없다.


* 사진은 [참세상]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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