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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눈가림 정책들의 ‘종합판’일 뿐이며, 나아가 정부의 노동 유연화 전략을 당혹스러울 만큼 솔직하게 드러낸 정책이기도 하다. 비정규직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난 노동유연화 전략

정부는 지난 9월 9일 추석 연휴를 앞두고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희망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을 쏟아냈었다. 그러나 어느 하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빼앗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근본적 대책을 내놓지는 못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취약계층이라 부르며 보호해 주겠다고 하는 정책들은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을 하나도 짚어내지 못하는 눈가림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이번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눈가림 정책들의 ‘종합판’일 뿐이며, 나아가 정부의 노동 유연화 전략을 당혹스러울 만큼 솔직하게 드러낸 정책이기도 하다.


1. 정책의 추진배경에서부터 비정규직 문제를 왜곡하고 노동유연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종합대책은 그 추진배경과 비정규직 실태를 서술하는 것에서부터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근본적 인식의 부재를 드러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비정규직을 나쁜 일자리로 일반화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비정규직 고용을 선택한 노동자가 48%’에 이르며, ‘일부는 근로조건이 양호한 경우’도 있으므로 비정규직 가운데 ‘보호가 필요한 대상’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한다. 이 대책의 가장 큰 문제점 가운데 하나인 ‘비정규직 노동의 불안정성에 대한 근본적 인식의 부재’가 여기서 드러난다.

정부는 비정규직 일자리가 모두 나쁜 일자리로 일반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고용과 사용이 분리되고, 계약기간이 단절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 자체로 자본에 대하여 약자일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일자리가 나쁜 일자리가 되는 것은 바로 그 단절로 인한 고용의 불안정성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는 것은 고용의 불안정성을 해소하고, 사용자를 상대로 한 노동3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이나, 비정규직 사용에 대한 사유제한, 무한히 확대되는 외주화 ․ 간접고용화에 대한 대책 없이 비정규직 고용형태 그 자체로 인정하고 이를 자본이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차별을 완화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를 위해 ‘노사상생’이라는 명목으로 비정규직의 대칭점에 정규직 노동자들을 세워놓고 공격한다. 노동자들이 알아서 양보해서 차별을 해소해 가자는 것이다. 이는 불합리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정규직 과보호를 줄이고, 직무와 성과에 따른 임금체계로 개편하여 임금격차 자체를 파악할 수 없도록 만들겠다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그리고 이러한 불합리한 차별의 개선은 곧 노동의 유연화로 이어진다. 정부가 차별해소에 중점을 두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가 완화되어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동이 원활해진다. 노동조건에 별 차이가 없다면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자유로이 이동을 시키더라도 노동자들의 반발이 덜 할 것이라는 정부의 계산이다. 그러나 여기에 빠져있는 결정적인 고리가 있다. 바로 정규직에 비해 훨씬 유연한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정성이다. 그렇다면 이는 곧, 정규직 고용의 유연화 절차가 뒤이어 올 것이라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정부가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통해 내놓고 있는 것은 결국 노동의 완전한 유연화이다. 이것이 비정규직 종합대책의 큰 줄기이고, 바로 정부와 자본의 노동유연화 전략의 종합판에 다름 아닌 이유이다.
그러면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불합리한 차별의 개선’, ‘사회안전망의 확충’, ‘노사상생’의 세 가지 방향을 제시하고, 세부 대책을 제출하고 있다. 상세하게 살펴보자.


2. 제목만 ‘사회안전망’ 확충일 뿐, 노동자를 위한 실질적인 복지정책은 없다.

먼저 정부가 이 대책에서 가장 크게 내세우고 있는 것이 사회안전망의 확충, 즉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사회보험료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노동자들의 사회보험 가입률이 저조한 이유를 정부는 조금 착각하고 있다. 기업규모에 따라 가입률이 저조하므로 영세사업장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은 사실이나, 가입률 저조의 원인에는 기업규모 뿐만 아니라 고용불안정과 저임금의 문제가 존재한다. 저임금으로 일하면서도 언제 짤려나갈지 모르기 때문에 사업장에서 4대 보험을 드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는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현실이 있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임금의 기본 베이스인 최저임금을 현실화해서 생활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첫 번째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고용되었을 때의 기여분(보험료 납부)에 기반한 협소한 복지가 아니라 폭넓은 사회보장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러나 당장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벌어진 양상을 보라. 자본은 동결을 주장하고, 노동계는 노동자 임금 평균의 50%를 주장하는 가운데, 노사공익위원들의 줄사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정부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저조한 사회보험 가입률을 진정 걱정한다면 최저임금이 생활임금이 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가장 우선일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오히려 최저임금을 더욱 하락시키는 개악법을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의지를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서 비정규직 대책에서는 사회보험 가입을 위한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어불성설이다.
그것마저도 그렇다고 치자. 그러면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영세사업장의 지불능력이 약하고 그로 인해 기업규모가 영세한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저임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영세사업장의 지불능력을 취약하게 만드는 것은 누구인가. 바로 다단계 하도급의 제일 꼭대기에 있는 대규모 원청회사들이다. 이들은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대해 무엇을 책임지는가? 정부는 그들에게 무엇을 책임지게 할 것인가? 이에 대해 정부는 답하고 있는가?
정부는 영세사업장 저소득 노동자의 사회보험 가입을 위해 비용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영세사업장의 취약한 지불능력 문제와 노동자의 생활임금 보장 문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접근을 기피하고 있다. 이는 비용 지원이 노동자 가입분에 대한 지원이 아니라 1:1:1이라는 방식에서도 알 수 있다. 정부는 비정규직 대책이 아니라 사회통합이라는 대의를 들이밀며 원청 대자본의 책임을 묻는 것을 피하고 영세사업장의 노사 모두를 사회적 취약계층으로 보아 비용지원을 하겠다는 것일 뿐이다. 이는 사회안전망 확충이 아니라 영세사업장 사용자에 대한 지원책이며, 그 지원의 효과로 노동자 부담분이 일부 줄어드는 것으로 현상하는 것일 뿐이다.


3. 차별해소가 아니라 차별의 판단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두 번째로 차별을 해소하겠다고 한다. 차별의 해소는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데 정부는 정규직과 동종 ․ 유사 업무를 수행하는 비정규직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면서 용역, 가내, 일용직 노동자 등 불안정한 노동에 놓여있는 노동자들을 비교대상이 없다고 하며 배제해 버린다. 기존의 차별시정제도가 안고 있던 문제, 즉, 자본의 직무 분리, 업무에 따른 고용형태 분리를 통해 피해갈 수 있었던 차별시정제도의 문제를 그대로 안고 가고 있다.
또 차별시정을 강화하겠다고 하며 ‘임금 및 근로조건 차별개선 가이드라인’을 제정해서 노사가 차별 시정의 준거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의 주요 내용 예시에서는 법 준수사항은 기존에 법령에 있는 내용이고, 그 전부터 한나라당이 비정규직 대책으로 홍보했던 복리후생 및 상여금 등의 비정규직 적용은 권고사항일 뿐이다. 물론 애초에 가이드라인이라는 것 자체가 강제성이 없기는 하다. 이 가이드라인이 어떻게 제정될 지는 보아야겠으나, 결국 차별을 피해갈 수 있는 방안을 지도해주는 것이 될 우려가 크다.
특히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으로 내놓은 ‘불합리한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무조건 ․ 보수조건 등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불합리한 보수지급 기준 개선’이라는 내용에서 그런 의도를 잘 읽을 수 있다. 불합리한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업무를 세분화하여 차이를 형식화하고, 그에 따라 근무조건이나 보수기준을 차별화하여 제도화하면 결국 불합리한 차별이란 존재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비교대상 자체가 없어지거나, 비교대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만들어진 기준에 의해 ‘이유 있는 차별’로 현상되는 것이다.
이에서 더 나아가 상생협력의 노사문화를 확산하겠다는 마지막 7번째 대책에서는 ‘연공급 임금체계를 직무 ․ 성과를 반영한 임금체계로 개선’할 것을 유도한다. 결국 모두가 직무에 따라 성과에 따라 개별화된 임금을 지급받게 된다면 더 이상 차별이라는 것은 언급될 여지가 없어지게 된다. 그러면서 노동자의 임금은 더욱 불안정해 지게 될 것이다.
근로감독관에게 지도 감독 권한을 부여하고, 차별이 일괄 해소될 수 있도록 하며, 신청기간도 6개월로 확대하겠다고 일부 제도개선책을 내놓고 있지만 그것도 결국 무의미해지고 차별시정제도의 활용은 더욱 멀어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4. 불법파견 규제 강화를 이야기하지만, 사내하도급과 불법파견 분리정립을 통해 간접고용은 더욱 확산될 것이다.

세 번째로 사내하도급과 불법파견의 문제이다. 정부는 사내하도급과 불법파견을 분리 정립하여 사내하도급을 제도화하기 위한 발판을 놓는다. 지속적으로 사내하도급이라는 회색지대가 존재하는 것처럼 이를 명문화, 제도화하려고 하지만 독립성 없이 노동력만 공급하는 노무도급이라는 것은 용어 자체가 성립될 수 없으며, 파견 혹은 도급이 존재할 뿐이다. 정부가 사내하도급이라는 것을 명시하고, 또한 불법파견에 대한 대책과 분리하면서 얻으려는 것은 바로 사내하도급이라는 이름으로 파견허용업무의 확대 없이도 제조업까지 파견을 자유로이 활용할 수 있도록 열어주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에 대한 불법파견 대법원 판결 이후,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연속공정 작업 외에도 포장 등 주변업무까지 불법파견 사실이 인정되고 있다. 사내하도급을 활용해 업체를 분리하는 형식을 취하였지만, 결국 원청 자본의 영향력 아래 놓여있고, 실질적으로 원청이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조금씩 인정해 가고 있는 것이며, 노동자들의 ‘모든 사내하청은 정규직’이라는 주장이 사실임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 정책은 이를 뒤집고 불법파견의 소지가 없는 사내하도급이라는 것이 마치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그를 자본이 취할 수 있는 생산방식의 하나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런 입장 하에서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

그러면서 불법파견인 경우 애초에 직접고용 된 것으로 보아야 함에도 불법 파견으로 확인된 즉시 직접고용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겠다고 하며 일부 제도를 개선하는 모양새를 취한다. 그러나 곧이어 상용형 파견에 대해서는 규제를 완화하여 활성화를 유도하겠다고 한다.
파견이라는 것 자체가 고용관계에 제3자가 개입하여 중간에서 이득을 착취하는 구조로 노동조건과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어야 할 고용형태이다. 그런데 정부는 파견사업주가 상시 고용하는 상용형 파견의 경우에는 모집, 등록형에 비해 근로여건이 양호하다는 이유를 들며 활성화시키겠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말하듯이 상용형 파견이 양호하다는 전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해고와 정리해고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상용형이라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파견할 장소가 없다는 이유로 휴업수당 지불을 기피하며 경영상 이유를 들어 정리해고 할 수 있다면 모집, 등록형과 다를 것이 없다.

그 외에도 사내하도급에 대해서는 임금체불에 대하여 원청이 연대책임을 지도록 개선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재해예방을 위해 원청의 재해율 산정시 사내하도급 업체의 재해를 포함하도록 하겠다고 한다. 일부 개선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사내하도급의 재해를 원청 재해율에 포함한다면 오히려 원청에 의해 하청 노동자의 재해사실이 감추어질 우려가 있고, 사내하도급 업체 역시 재계약을 위해 재해사실을 덮을 우려가 더욱 크다.


5. 공공부문 대책에서는 실태조사를 통해 이후 노동자들을 차등화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네 번째로 공공부문에서 실태조사를 통해 공공부문 비정규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반복적으로 계약이 갱신되는 업무는 상시업무 여부를 검토해서 무기계약화 하겠다고 한다. 반복적으로 계약이 갱신되어 왔다는 것은 업무의 상시성을 증명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도 그 가운데 상시성을 다시 판단하겠다고 한다. 이는 지난 노무현 정권에서 공공부문 비정규대책이 나왔을 때와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결국 업무를 상시업무 비상시업무로 구분하고 (구분 기준은 지난 정부하에서도 그랬지만 사용자(해당 기관) 마음대로다) 다시 그에 고용형태를 연결시켜 정규직 - 무기계약직 - 만년 비정규직의 차등을 만든다. 여기에 동일한 직종이라 하더라도 근무조건과 보수 등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여 불합리한 차별이 생기지 않도록, 즉 합리적인 사유로 위장하여 노동자들을 차별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금도 공공부문은 민간보다 외주화 비율이 높고, 비정규직 사용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앞장서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 민간부문을 선도하겠다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이야기인지 정부는 알아야 할 것이다.


6.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노동권 보장 방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또한 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노동권 보장을 위한 정책이 아예 전무하다. 여전히 노동자성 인정은 않고, 산재보험 일부 적용과 사업자로서의 일부 보호뿐인 것이다.
산재보험을 확대 한다고 하지만, 노동자가 아님에도 열악한 사업자이므로 특별히 적용받게 해 준다는 취지의 업종별 특례 방식을 그대로 고수한 채 해당 업종만 늘리겠다는 것일 뿐이다. 적용제외 신청을 우선하던 것에서 당연적용을 원칙으로 하는 것으로 바꾸겠다고 하지만, 현재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산재보험 가입률이 저조한 것은 반쪽짜리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절반을 부담하게 되어 있는 반쪽짜리 산재보험이기 때문에 저임금의 노동자들은 가입을 꺼리게 되거나, 사측이 오히려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민간 보험에 가입을 권유하며 그 비용을 대겠다고 유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당연 적용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노동자들의 마지막 선택은 제외 신청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게다가 근로조건 보호를 위해 표준계약서 제정을 확대한다고 하지만, 이 역시 개별의 사업자가 대자본과의 관계에서 약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준다는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자로서의 권리 보장이 아닌 사업자로서의 성격을 강화하는 정책은 결국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은폐시키는 근거를 보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7. 상생협력이라 하지만, 결국 전체 노동자의 고용 및 임금 불안정성을 강화하는 정책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상생협력을 이야기하며, 공생발전을 위해 ‘노사자율적’으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한다. 사용자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저임금과 열악한 조건으로 고용하면서 사회의 안녕에 미친 영향이 크니 사용자는 그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노’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인가. 정부는 대기업의 ‘노’사가 양보 ․ 협력하라고 한다. 정규직이 과보호 되고 있으니 정규직의 노동조건을 깎아서,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을 조금 올려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노’의 노동조건을 깎아 내리고 불안정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직무 ․ 성과연동형 임금체계로의 개선을 이야기한다. 정규직의 노동조건도 유연하게 만들어 비정규직과의 차별을 완화시키고, 그 사이에 직무훈련과 고용서비스의 활성화를 통해 정규직-비정규직간 이동이 원활해지는, 즉, 국가고용전략2020에서부터 이어지는 정부의 노동유연화의 완성을 향해 가는 전략이 비정규직 종합대책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 번 나온 것이다.


8. 의도된 목적에 잘못된 전제, 결국 이름만 비정규직 대책인 노동유연화 정책이다.

정리하자면 정부의 이번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이렇다.
먼저, 비정규직 차별해소라는 미끼를 통해 그나마 안정된 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고용을 불안정한 것으로 만든다. 불합리한 차별해소와 공공부문의 정규직화 추진을 명목으로 이루어지는 업무 재편과 직무 ․ 성과 연동 임금체계로의 변경, 그리고 대놓고 말하는 정규직 과보호의 완화는 그 이면에 정규직 고용의 유연화와 임금의 불안정성 강화를 뜻한다. 그를 통해 모든 노동자의 고용 ․ 임금 유연성을 높여 정규직 - 비정규직의 이동의 원활화시킨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교육훈련 정책 등을 내놓지만, 사업장 내외부의 이동의 원활화를 포함하는 고용형태간 이동은 노동시장 전체의 불안정성 강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비정규직의 정규직으로의 이동은 정규직의 비정규직으로의 이동으로 상쇄되거나 오히려 마이너스의 결과를 부르게 된다.
직무의 재편은 또 한편 유사 ․ 동종업무를 가리기 위해서도 이루어지는데, 유사 ․ 동종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의 차별을 개선하기보다 비교대상 자체를 없애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이 대책은 명확하게 비교대상이 없는 노동자는 ‘제외’하고 있다. 결국 차별해소에 있어서는 한 치도 나아간 것 없이 전반적인 불안정성만을 강화시킬 뿐이다.
다음으로, 파견을 확대하고, 사내하도급이라는 이름으로 제조업의 파견을 용인하고자 한다.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을 실효성 있게 만든다고 하지만, 가이드라인 자체는 무의미한 권고사항에 지나지 않을 뿐 아니라 사내하도급을 제도화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또한 상용형파견의 활성화라는 명목으로 파견허용업무의 확대는 지속적으로 시도될 것이다. 이 대책은 근본적으로 6개월, 3개월, 아니 그 보다 짧은 기간 단위로 현장을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파견 노동자들의 고통을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다. 오히려 원청 업체들이 그런 식으로 법을 피해 돌려쓰는 파견노동자들을 파견회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인력수급하면서 ‘상용형 파견’이라는 이름만 갖다 붙이는 것일 뿐이다. 오히려 상용형 파견을 이야기하면서 자본이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제조업, 병원, 유통업 등에 파견허용업무를 열어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정부는 목적하는 노동유연화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된다. 비정규직 종합대책의 기본방향에서 밝히고 있듯이, ‘탄력적 인력운용’과 ‘유연성’을 위해 노동자는 ‘자발적인 비정규직 노동자’로 포장되는 것이다.

정부는 이 대책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획기적으로 좁혀냈다. 기업의 인력 활용의 유연성을 도모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전제하면서, 다만 ‘불합리하게 차별받거나 취약계층인 경우’에만 문제가 되는 것으로 만들어 냈다. 의도된 목적에 잘못된 전제가 뒷받침되면서 노동유연화를 위한 이름만 비정규직 대책인 정책을 들이민 것이다.
이는 정부가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고자 하는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법안’에서도 잘 드러난다.
정부는 기간제 사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확대하고, 파견 사용기간도 4년까지 연장하는 비정규직법 개악을, 그리고 노동시간의 유연성을 확대하는 근로기준법 개악을, 또 최저임금제도를 더욱 개악하는 최저임금법 개악안을 정기국회에서 처리하려고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상반기 고용노동부가 입법예고한 시간제법,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유연근무제,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논의되고 있는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 계산 특례 조항 조정 및 재량근로제도 개선 등은 고용유연화에서 더 세부적으로 노동시간에 대한 유연한 활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작업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시간제법 제정을 통해 정부가 목적하는 것이 기간제, 파견, 시간제 노동의 비정규직 고용형태의 삼박자를 고루 갖추는 것이라면, 비정규직법의 개악과 함께 근로시간 관련 법제를 다듬고, 임금 체계를 개편함을 통해 고용과 노동시간, 임금의 유연화라는 삼박자를 또 한편에서 갖추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이 종합대책은 한 치도 벗어나 있지 않다.


9. 정부가 진정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노동유연화의 기조를 폐기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할 일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시작된 지 1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다. 그 속에서 노동자들은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및 노동기본권 보장, 파견법 폐지와 간접고용 규제, 원청의 사용자 책임 인정, 비정규직 사용 사유제한 규제를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제출하고 요구해 왔다. 이는 그저 원칙적이기만 한 비현실적인 방안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투쟁의 과정에서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찾은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다. 이것이 아니면 노동자의 권리 박탈을 제어할 수 없기에, 삶과 노동의 질이 곤두박질치는 것을 막을 수 없기에 10년이 넘도록 절절하게 이 요구들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희망하는 이들은 이 요구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사회 통합과 상생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정부는 제대로 알아야 한다. 사회통합을 위해 노동자들의 생명을 포기하는 것은 통합도 상생도 아니다. 통합과 상생을 이야기하는 사회라면, 우리 사회가 그런 사회가 되고자 한다면, 정말 포기해야 하는 것은 바로 정부의 유연화 전략이며,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몰아넣는 비정규악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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