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의 파견노동자 부당해고에 면죄부를 부여한 행정법원 판결을 규탄한다

by 철폐연대 posted Feb 0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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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불법파견으로 일해오다 SK에 의해 하루아침에 해고된 노동자들에 대해, 직접고용을 인정할 수 없으니 부당해고가 아니라는 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것을 보고,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불법파견인데 직접고용 안된다니!"

"아무 존재 의미가 없는 파견법을 폐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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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으로 착취당하고 고용불안에 시달려온 파견노동자들은 결국 이대로 죽어나가란 말인가. 수년간 불법파견으로 일해오다 SK에 의해 하루아침에 해고된 노동자들에 대해, 직접고용을 인정할 수 없으니 부당해고가 아니라는 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것을 보고,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지난 10월 중노위가 파견대상업무 이외의 업무에 대한 불법파견에는 파견법상의 직접고용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해괴한 판정을 내린데 이어, 행정법원마저 이를 승인하는 반동적인 판결을 내리고 말았다.

  이번 법원 판결은 파견법 제정 이후 더욱 불법파견이 만연하고 이에 대한 규제가 전무한 현실에서, 이와 관련해 내려진 최초의 법원 판결로 그 파장이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법원 판결대로라면 법으로 금지한 불법파견을 사용한 회사는 벌금 몇 푼 이외에 어떤 불이익도 없고, 파견노동자들은 몇 년을 일했건 어떤 보호도 받을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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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에서 불법파견으로 근무해온 인사이트코리아 소속 파견노동자들은 그간 불법파견은 무효이므로 처음부터 SK에 고용된 것으로 보아야 하고, 또한 파견법상 2년의 파견기간이 경과하면 그때부터 사용업체에 직접고용된 것으로 간주되므로, 이미 SK 직원이 된 상태인데 부당해고한 것이다라고 주장해왔다.

  SK(주)에서 운영하는 전국 13개 물류센터에서 저유원 등의 업무를 해온 인사이트코리아 노동자들은 불법파견으로 일해왔고, 전적으로 SK의 지휘 감독 하에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소속업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극심한 차별대우를 받아왔다. 이에 대해 2000년 8월 서울지방노동청은 "불법파견이므로 직접고용 등으로 시정하라"고 판정했고, 2001년 3월 서울지노위는 파견기간 2년의 경과로 이미 직접고용된 파견노동자들에 대한 SK의 해고는 부당하다고 결정을 내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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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번 법원 판결은 대상업무 이외의 파견은 불법으로 엄격히 금지되고 SK의 경우 이에 해당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불법파견이 무효이므로 처음부터 SK에 고용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아예 일체 언급도 하지 않았다. 파견노동자 보호는 처음부터 안중에 없는 듯, 그저 불법파견에 따른 벌금만 운운하고 넘어갔다.

  나아가 파견법 제6조 제3항의 직접고용조항은 실질이 파견에 해당하면 모두 적용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 해석상 불법파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해괴한 결론을 내렸다. 이유인즉 파견법이 예외적으로 파견을 허용하면서 그 허용된 파견을 전제로 규정한 것이기에, 직접고용조항에 '파견대상업무에 한해'라는 표현이 없더라도 그렇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불법파견은 기간의 장단을 불문하고 금지된 것인데 위반 기간이 2년을 넘어섰다고 해서 고용의제를 하여 적법한 근로관계로 변화를 가한다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한 대목에 이르러는, 기가 막힐 지경이다. 불법파견은 원천 무효이므로 처음부터 직접고용된 것으로 보아야하고 설사 그게 안되더라도 파견법상 2년의 기간이 경과하면 직접고용된 것이다라고 주장한 것인데, 이같은 이야기는 쏙 빼고 "불법행위가 2년 지났다고 어찌 적법행위가 되느냐"고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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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 당시 SK는 정규직 전환은커녕 파견노동자들에게 사직서 제출 및 계약직 전환을 강요했다. 그리고 이에 항의한 조합원들 4명만 해고를 함으로써, 이들 조합원들은 2000년 11월부터 현재까지 1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거리로 내몰려왔다. 더욱이 노조의 지속적인 SK 규탄 투쟁에 부담을 느낀 SK는 계약직으로 전환했던 파견노동자들을 모두 작년 11월자로 정규직 발령을 냈고, 중노위에서 일부 승소한 조합원 1명도 형식적이지만 복직 조치를 취했다.

  그런데 이같은 성과를 이끌어낸 당사자들에 대해서만 SK는 일체의 대화를 거부한 채, 할테면 해봐라는 식으로 대응해왔다. 조합원들은 사회 정의와 양심이 살아 있다면 법이 응당 이같은 SK의 불법·부당행위를 응징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중노위 판정에 이어 법원 판결마저 불법으로 일관한 사측을 철저히 옹호하면서, 당할 대로 당하고 법에라도 호소하려 했던 파견노동자들에게 오히려 칼날을 들이대었다.

  이번 행정법원 판결은 단지 인사이트코리아노조 해고자들뿐만 아니라 수백만에 이르는 파견노동자들의 권리를 송두리째 짓밟아버렸다. 지난번 골프장 경기보조원이 노동자가 아니라는 판결에 이어 이번 판결로 법원은 본연의 임무를 저버린채,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대우와 부당·불법행위를 제도적으로 정당화하는 기관에 불과하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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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법원 판결로 파견법은 존재해서는 결코 안될 악법이라는 사실이 다시금 확인됐다. 파견노동자 보호를 위해 파견법을 제정해야 한다라고 했던 정부와 자본의 논리는, 이번 법원 판결로 철저히 허구임이 드러났다. 파견법 제정으로 마치 모든 파견이 허용된 것처럼 위장도급, 불법파견은 횡행했고, 노조의 진정에 의해 마지못해 불법파견 판정이 나도 당국의 방치 속에 오히려 파견노동자들만 해고된 것이 지금까지 과정이었다.

  게다가 법으로 금지한 불법파견을 했는데도, 불법파견 노동자들은 아예 직접고용이 안되고 2년이 됐든 10년이 됐든 하루 아침에 해고돼도 아무 보호 방안이 없다니, 사측의 불법을 방치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조장하는 판이다. 간접고용에 따른 중간착취와 이로 인한 노동조건 저하, 고용불안을 제도화한 파견법은 이제 폐지 이외에는 다른 운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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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법적 근거도 없이 철저히 사용자 편에 선 정치적 판단으로 파견노동자들의 권리를 짓밟은 이번 행정법원 판결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으며, 이에 대한 대대적인 항의 및 규탄 투쟁을 벌일 것이다. 아울러 불법파견을 사용한 것도 모자라 부당해고, 부당노동행위를 일삼고 이번 법원 판결에 기대 여전히 이같은 불법을 자행할 SK에 대한 투쟁 또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오늘도 수많은 불법파견을 양산하고 있는 자본과, 이를 정당화하면서 제도화하려는 정권에 대해 파견법 철폐를 기치로 파견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전면적으로 전개해나갈 것이다.

2002년 2월 5일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과 불안정노동철폐를 위한 전국연대(준)

(약칭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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