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페이퍼] 불안정노동의 확산만 가져올 규제완화

by 철폐연대 posted Sep 1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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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노동의 확산만 가져올 규제완화

- 규제완화가 아니라 권리보장이 필요하다

 

 

최근 한국의 고용 상황이 심상치 않고, 경기 침체와 대량실업이 동반될 수 있다는 ‘위기론’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이에 작금의 한국 경제를 어떻게 회생시킬 것인가를 둘러싼 토론에서 화두가 되는 것은 ‘규제완화’다. 정부와 자본, 그리고 이데올로그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경제와 관련된 다양한 규제들을 없애거나 완화하면 기업들이 더욱더 자유롭게 비즈니스를 하고 그에 따라 고용도 늘어나고 경제도 성장할 수 있다’고 떠들고 있다.

결국 이 논리는 다시 ‘낙수효과로 경제를 살리자’는 잠시 잊혔던 슬로건을 소환한다. 그런데 현재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 기조 중 하나인 ‘소득주도성장’은 그 이념에서부터 ‘낙수효과’에 기대는 경제정책은 실패했다는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 대기업, 고소득자 등 자본의 성장에 의한 낙수효과를 경제성장의 주요 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정책 패러다임은 노동자들의 소득을 높여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소득주도성장의 목적과 상충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 기조들 사이의 불협화음, 즉 ‘혁신성장’과 ‘소득주도성장’ 간의 충돌에 기인한다. 그리고 이는 혁신성장을 강조하며 자본을 위한 대대적인 정책 전환 없이는 현재의 경제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하는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정부의 기존 정책 노력들을 좀 더 믿고 기다려 달라고 호소하는 장하성 정책실장 간의 갈등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이 맥락에서 또 다른 정책 기조인 ‘공정경제’는 이질적인 두 정책 기조의 접착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규제완화와 불안정노동의 확산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3월 8일 ‘비정규직보호법이 취약계층의 고용에 미치는 영향 분석과 시사점’을 발표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비정규직보호법은 기업의 부담을 증가시켜 기업의 고용창출 여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진단하며 비정규직보호법이 취약계층 취업에 부정적이고 고용감소를 유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용증대를 위해서 향후 비정규직보호법을 개정하고 정규직의 고용경직성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현재 불안정노동을 양산하는, 비정규직을 전혀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는 비정규직보호법을 완화하여 더욱더 불안정노동을 확산시켜야 한다는 주장일 뿐이다. 정부, 국회, 경제단체 등 그 어디에서도 아직 본격적으로 현재의 규제완화 논의 속에서 비정규직보호법 등 불안정노동의 확산과 관련한 규제의 완화를 말하고 있진 않지만, 정부의 규제완화 강조와 친재벌정책 기조로의 선회와 더불어 비정규직대책 발표가 지연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자유한국당이 차지하고 보수야당을 중심으로 최저임금과 관련된 각종 개악법들이 제출되고 있는 점 등을 미루어볼 때, 불안정노동 확산을 불러올 규제완화가 본격적으로 논의 선상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이는 혁신, 4차 산업혁명, 경제먹거리, 신산업동력 등 각종 미사여구로 포장될 것이다.

 

규제완화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까?

 

사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지난 정부들과 현 정부가 일편단심으로 공유하는 ‘규제완화’의 내용은 JTBC에서 방영중인 <라이프>라는 드라마를 봐도 이해할 수 있다. 강성노조 화물연대를 깨부순 이력을 가진 구승효(조승우 분)가 대형종합병원의 사장으로 간 후 구조조정, 병원 내 건강보조식품 및 보험 판매와 광고, 자회사 설립을 통한 영리 추구와 재벌 회장 비자금 조성, 의사들의 성과급제 시행과 간호사들의 초봉 삭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자회사가 취급하는 약들만 처방하는 가이드라인 등이 시행되고, 이에 공공 복지와 시장 사이에 위태롭게 놓여있던 병원이 확실하게 시장 쪽으로 나아가는 모습들이 그려진다. 구승효 사장의 보스인 재벌 회장 조남형(정문성 분)은 “의료를 서비스업으로 인식시키려고 우리 기업들이 수십 년 공들였어. 이제 시장 만들어졌어. 키워서 먹어야 돼”라고까지 말한다.

규제완화의 두 가지 핵심, 즉 공공재를 상품으로 바꾸는 시장의 확대, 노동의 힘을 약화시키고 불안정노동을 확신시키는 것이 여기에 다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과연 우리를, 노동자와 시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까? 화상을 통한 원격진료가 최근 KT의 5G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위급하고 험난한 구조 현장에서 영리와 전혀 상관없이 활용이 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값비싼 화상 원격진료를 돈 없는 이들이 활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문제, 반대로 가난하고 일에 바쁜 사람들이 병원에서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하고 화상을 통해 간단한 진료와 처방만을 받을 수 있다는 문제는 모두 영리, 즉 시장화와 관련되어 있다. 결국 규제완화는 자본의 힘만을 강화시켜 자본만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규제완화가 만병통치약일까?

 

지난 8월 17일 여야 3개 교섭단체 원내대표가 지역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규제프리존특별법’)과 지역특화발전특구규제특례법(‘지역특구법’) 등 규제개혁 관련 3개 법안을 병합하여 오는 8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규제프리존특별법은 박근혜 정권에서 추진된 것으로 사회·경제적 약자 보호, 의료·보건 및 환경, 개인정보 등 우리 사회의 공익을 위해 제정된 현행법과 제도를 특정한 지역 안에서 무력화시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에 지난 19대 국회와 현 20대 상반기 국회에서는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과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의 반대로 무산되어 왔다. 하지만 집권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다시 꺼내들고 추진하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마도 경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규제완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 쪽으로의 분배를 늘려 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소득주도성장의 효과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정부와 여당은 이제 규제완화를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사실 충분히 예상이 됐었다. 현 정부의 집권 후에 공약과 달리 노동 문제 해결에 대해 보인 어중간한 행보들과 배신들, 경제 위기를 빌미로 재벌들과의 접촉을 늘리고 혁신성장을 강조하며 규제완화를 노래 부르고, 정의당 이정미 의원을 정부의 우클릭 행보와 노동 현안들에 있어 불편한 존재라 낙인찍고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배제하기는 것까지.

그러나 규제완화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이미 전세계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판명 난 이념과 정책인 ‘낙수효과’를 ‘혁신성장’이라는 그럴싸한 말로 포장하여 재추진하려는 것일 뿐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노동 쪽으로의 분배 강화 그리고 불안정노동의 철폐를 제대로 추진해보지도 않고 이를 벌써 실패한 것으로 낙인찍기 위한 프로파간다에 자본과 보수야당뿐만 아니라 현 정부와 여당 그리고 자유주의 이데올로그들까지 모두 혈안이 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경제가 정말로 좋지 않은 위기 상황이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 위기의 원인과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하게 규명해야 할 것이고, 그에 따라 처방을 내려야 할 것이다. 사실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노동계급에게 100% 좋은 정책이라 평가하긴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경제 위기의 원인과 책임이 지난 신자유주의 정책들과 자본에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따라서 처방도 노동 쪽으로의 분배를 강화하고 불안정노동을 어느 정도 감소시키기 위한 것들로 제출되어 있었다. 자본과 보수야당의 거센 저항은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자신들의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과 굳건했던 믿음과 신념이 공격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고용 불안 등 경제가 심각하다는 징조가 확실해지자 본격적인 반격에 나섰다. 그런데 경제 위기를 강조하면서, 그 경제 위기의 원인을 자신들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과 피해자이자 약자인 노동자들에게 돌리고 있다. 황당한 것은 바로 그러한 반격에 정부와 여당이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을 적으로 돌리면서 말이다.

 

규제완화가 아니라 권리보장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 초기,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자본과 노동 사이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공정경제는 대자본과 중소영세상인들 사이의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정책적 의지를 담고 있었다. 혁신성장은 시장화와 불안정노동의 확대를 추동하는 규제완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기보다 4차 산업혁명 등 기술변화 속에서 한국 경제의 전반적인 산업구조를 변화시켜나가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모든 것들을 규제완화가 삼켜버렸다. 오로지 경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하여 자본에 모든 힘과 무한한 자유를 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스탠더드가 되어가고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소득주도성장 정책도 바뀔 필요가 있다 얘기했는데, 소득주도성장 정책에서 말하는 소득이 이제는 노동의 소득이 아니라 자본의 소득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그러면 혁신성장에서의 혁신은 이제 희미해서 찾기 힘든 노동에 대한 보호를 완전히 없애버리고 얼마 남지 않은 공공 영역을 모두 시장화해버리는 것을 가리킬지도 모른다. 공정경제에서의 공정은 지금까지 어중간하고 불완전하게 추진된 노동 정책을 자본에게 매우 불공정한 것들이라 규정하고 이제는 자본에게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공정하게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미로 변질될 수도 있다. 정부와 여당도 이를 바라는 것일까?

사실 현재의 고용 불안 등 경제 위기의 원인은 노동에게 불리하거나 반대로 저들이 거짓말하고 있는 자본에게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 그 어느 쪽에도 있는 게 아니다. 원인과 관련해서는 더 이상의 자본주의적 성장이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려운, 주체들의 노력이나 정책들로 해결이 힘든 구조적 측면들을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대자본과 금융 및 부동산에 집중된 경제적 힘들과 기업들의 막대한 사내유보금 등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노동에게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은 경제 위기의 현상이자 결과이고, 소비와 분배라는 측면에서 경제 위기를 가속화시키는 기제이다. 그렇다면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경제 위기를 가속화시키는 기제에 대한 정책적 개입이자 경제 위기로 인한 결과로서 사회적 문제를 관리하기 위한 것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소득주도성장은 미몽이었을 지도 모른다. 더 이상의 고성장이 어렵다면 이름부터 잘못된 것이다. 성장이 아니라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노력들이 필요한 것이고, 정부가 자본주의를 계속해서 유지하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면 이제 저성장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현재로서는 정상상태라는 것을 인정하고 저성장 속에서도 노동자 시민들의 고용 안정과 사회보장을 위한 정책들을 실행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의 권리만을 강화시킬 규제완화가 아니라 노동자 시민의 권리 강화와 보장이 필요하다. 노동 쪽으로의 더 많은 분배를 강력하게 추진하여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지속적으로 맞춰나가야 한다. 시장화가 아니라 사회보장과 공공 영역의 확대를 통해 그리고 불안정노동 철폐를 통해서 위기와 불안정노동을 확산시키는 자본의 힘을 제어해야 한다.

 

* 사진은 참세상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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