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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절망이 아닌 희망의 한 해가 되기를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15차 정기총회 후기

지수 (사회변혁노동자당 당원, 철폐연대 회원)

 

매서운 추위로 인해 한강과 서해바다 연안까지 꽁꽁 얼어붙은 1월 27일, 민주노총 13층에서 철폐연대 15차 정기총회가 진행되었다. 날씨 탓인지 동파사고와 가족들의 건강 악화 등으로 참가를 예정했던 동지들의 연이은 불참소식이 들려와 안타까웠다. 30분여 동지들을 기다리다 시작된 총회의 첫 시작은 유명을 달리한 철폐연대 회원들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는 순서였다.

정종태 동지, 이상현 동지, 강동일 동지, 지태환 동지, 이정원 동지, 이병권 동지, 이승원 동지까지……. 치열한 삶을 살다 지금은 우리 곁을 떠나간 동지들의 이름과 삶이 하나씩 호명되었다. 이젠 10년도 더 넘은 기억이 되어버린 학습지노조 정종태 열사에 대한 기억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재능본사 앞에서 단식과 농성을 반복하며 악화된 건강은 결국 암으로 발전했고, 6개월도 채 되지 않는 투병생활 끝에 마흔한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던 정종태 동지였다. 시간이 훌쩍 흘러 어느덧 마흔두 살의 나이가 된 나보다도 더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던 정종태 동지의 죽음이 더욱더 안타깝게 다가온 시간이었다. 주변 동지들의 건강에 대한 서로의 염려, 그리고 활동가들에 대한 건강검진 지원 등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하게 했다.

 

총회 시작에 앞서 감사패 증정의 시간이 있었다. ‘질라라비 그림판’을 통해 소중한 한 컷의 그림으로 <질라라비>를 풍성하게 만들어주셨던 이동슈 화백님과 언제나 열악한 철폐연대의 재정 상황에 아낌없이 큰 도움을 주시는 송경용 신부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는 시간이었다. 철폐연대의 활동이 알게 모르게 많은 동지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이어 사업기조와 방향 관련한 사전토론을 진행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대표하기 위하여’라는 주제로 기본 발제가 진행되었다. 함께 싸우고 공동의 목소리를 내는 비정규노조 연대체를 만들자는 제안과, 노조가 없는 노동자와 함께하는 경로를 개발하고 조직하자는 두 가지 제안이 제출되었다. 공공부분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 한국GM의 인소싱과 비정규직 해고 문제, 최저임금 인상을 핑계 삼은 해고, 특수고용 및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제도 개선 투쟁 등이 놓여있는 상태에서, 비정규직 노조들의 전국적 연대조직을 통해 개별적인 투쟁을 모아내고 비정규직 공동의 의제와 투쟁을 조직해야 할 필요성이 제안되었다. 또 한편으로 민주노조운동에 편입되지 못한 채로 남아있는 수많은 미조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기 노동의 권리를 찾는 과정에서 조직을 만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기획과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이 주요하게 제기되었다.

 

토론 과정에서 노조 없는 노동자 조직의 대표적인 사례로 직장갑질119의 활동 사례가 공유되었다. 하나의 기업 단위로 조직화하기 어려운 한계가 드러난 직종의 노동자들을 오픈채팅방을 통해 모으고, 동종업종 노동자들을 업종별 밴드방으로 묶어 소통을 강화해서, 이후 이 흐름이 오프라인 모임, 나아가 노조 건설로 나아갈 수 있는 교두보를 만들고자 한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이미 몇몇 업종은 오프라인 모임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실천적인 자기 요구를 만들고 실물화하는 단계로 진전하고 있기도 함을 확인했다. 이러한 현상이 온라인에서의 흐름으로만 남을지, 실제 노동조합 등의 조직으로 유의미하게 발전해 나갈 수 있을지 여부는 이후 진행 과정의 과제로 남겨져 있는 상황이다.

또한 토론 과정에서 충북지역에서 진행된 정규직전환심의위원회 개입과 공공부문 민간위탁 문제에 대한 고민도 엿볼 수 있었다. 노조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나기 위한 고민은 지역에서도 주요한 고민사항이지만, 그 흐름이 수도권 중심으로만 진행되고 있는 것에 대한 한계도 지적되었다.

 

토론을 접하면서 비정규직 노조 간의 최소한의 소통 창구조차 없는 현재 상황에서, 비정규직 노조의 주체들이 전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공동대응의 필요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자기투쟁으로 받아 안게 할지 고민스러웠다. 또한 초기 비정규직 노조들의 전국적 연대체였던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가 유명무실화된 과정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다시금 되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 노조 조직률 10%도 되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미조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는 시도로서 직장갑질119의 시도는 의미 있게 다가왔다. 이러한 흐름이 의미 있게 정착되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의 권리를 집단화해서 요구하고 투쟁할 수 있는 자기조직을 풍부하게 건설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18년 사업계획 논의에서 철폐연대는 비정규직 조직화에 매진하는 것,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는 것, 그리고 비정규직 노조의 연대조직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것, 이렇게 세 가지 큰 활동방향을 잡았다. 주요하게는 반월시화공단 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 활동과 직장갑질119 활동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기로 결의했다. 파견노동포럼을 통해 파견법 폐기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비정규직권리연구소(준)의 건설로 불안정 노동자들의 권리 쟁취와 노동권 재구성을 위한 정책적 결과물을 생산하기로 했다. 또한 비정규운동의 주요쟁점에 대한 토론을 정례화하여 비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활동가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기로 했다.

2018년에 비정규직 사회헌장 및 노동교과서 단행본 발행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의식을 사회적으로 확장하기 위한 기획을 실행하기로 한 부분 역시 의미 있게 다가왔다. 노동교과서 발행에 대한 관심은 총회 과정에서 회원 질문으로 이어져, 사회적 확산의 필요성이 다시금 환기되기도 했다. 또한 텔레그램 채널 개설과 운영을 통해 회원들과의 공유지점을 넓히고자 하는 시도, 연대활동으로 인권더하기와 인권운동장, 빈곤사회연대, 생명안전시민넷 등에 함께하는 계획도 공유되었다.

 

철폐연대 출범 15년이 흘렀다. 초창기 비정규직 운동을 자임했던 활동가들이 지금은 여러 다른 공간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철폐연대 회원으로서의 자기활동을 고민하며 총회 자리에 모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 빈 수레만 요란한 비정규직 대책의 홍수 속에서 목도한 현실은, 오히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대책과 최저임금 인상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로 내몰고,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고 나서는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정권 교체 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꿈꾸었던 희망이 절망과 분노로 바뀌고 있는 2018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과제가 무엇인지 다시금 확인하는 자리였다.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찾기가 조직된 흐름으로 만들어지는 2018년,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좋은 전형을 만드는 2018년, 문재인 정부 비정규직 정책의 근본적인 문제를 폭로하고 직무급제를 중심으로 한 임금체계 개편 논의 국면의 투쟁에 대한 고민이 풍부하게 이뤄지는 2018년이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새롭게 조직된 많은 비정규직 노조의 활동가들을 철폐연대 총회에서 많이 만나지 못했다는 것은 가장 아쉬운 지점이었다. 비정규직 운동의 성장과 변화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비정규 노조 활동가들과의 접촉면을 넓혀서, 철폐연대가 새로운 주체들과 만나고 비정규운동의 주체로 정치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기대해 본다. 내년 총회는 새로운 비정규직 주체들과 더 많이 함께할 수 있는 자리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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