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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질라라비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피해노동자 구술기록 활동을 시작합니다

“2017년 5월 1일, 무너져 내린 노동절, 당신을 잊지 않고 기억하려 합니다”

마창거제산추련

 

 

1년, 달라진 것 없이 살인자는 멀쩡합니다.

365일,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갑니다.

8,760시간, 아직 2017년 5월 1일 2시 52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마틴링게 P모듈 위에서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017년 5월 1일, 노동절, 노동자의 하늘이 무너졌습니다.

 

 

“갑자기 어디선가 쿵 하는 엄청 큰소리가 났었지만 조선소 작업 환경이란 것이 소음과 진동은 워낙에 빈번한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던 중 또다시 한 번 더 쾅 소리가 나기에 무슨 일이 났다 싶어 저와 마주보고 있던 어릴 때부터 동네 선배이자 조선소 입사동기인 절친한 형에게 피하라고 소리치며 저와 형은 동시에 뒤로 뛰었습니다. 뛰고 난 후 바로 또 쿵 소리가 났으며 정신 차리고 앉아 있던 자리를 둘러보니 그 자리로 크레인 붐대가 무너져 있었습니다.

이동 중 쓰러져 죽어 있는 저와 같은 팀인 막내가 보였습니다. 미동도 없이 머리 쪽에서 피를 많이 흘리며 누워 있는 모습에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고 먼저 형만 부축하여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데 한쪽에서 멍한 얼굴로 얼굴에 피를 흘리며 앉아 있는 모르는 작업자가 절 보며 팔에 감각이 없어요……. 제 팔은 괜찮은가요……. 살려 주세요……. 라고 하는데 외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형을 옮기고 부축하는 것만도 벅찼으니까요…….

나만 안 다친 것에 대한 미안함과 내가 조금 더 빨리 움직였더라면 둘 다 안 다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와 유난히 나와 형을 잘 따르던 막내를 챙기지 못한 죄책감과……. 날 보며 살려 달라고 말하던 작업자를 외면했던 나 자신을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보이는 곳은 외벽이나 주위에서 뭐가 떨어지거나 무너질까……. 건물 안에 있으면 여기서는 무슨 사고가 생기지 않을까……. 어디로 대피해야 되나……. 그런 것만 생각하고 있는 제 모습에 놀라며……. 죽은 막내가 꿈에 자꾸 나타납니다. 아무런 말없이 원망스런 눈빛으로…….”

(ㄱ○○님 사고 트라우마 피해노동자)

 

“삼성중공업(조선) 마틴 플랜트 작업 중 화장실을 가기 위해 계단을 통해 3층에 도착한 직후였습니다. 뭐가 찢어지는 소리에 뒤를 보니 크레인 와이어 줄이 끊어지며 내리치기 시작했고 작업자 몸의 일부가 잘려나가고, 거대한 휴지통이 떨어지고, 크레인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면서 사람들이 그 밑에 깔리고 아우성치기 시작하였습니다. 빨리 다친 사람을 후송해야 한다고 소리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대우로 파견을 갔다가 다시 삼성 셀에서 일하는데 사고 현장이 보이고 집에서 잠을 자도 귓속에 와이어 줄 끊어지는 소리가 계속되면서 불안하고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6월 말에 정신과 진료를 받고 현재까지 계속 정신과 약을 먹고 있으나, 스스로 이겨 보려 노력도 했지만 힘겹기만 하고 크레인이 무서워 옆에 가질 못하고, 증세가 심하여 일을 할 수가 없어서 너무 힘든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어느 날 친구와 밥을 먹던 도중 TV에서 흘러나오는 크레인 사고 뉴스에 정신이 하애졌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제가 먹던 밥을 모두 토해서 친구가 그걸 닦고 있었습니다.”

(ㄱ△△님 사고 트라우마 피해노동자)

 

다단계 하도급 착취구조가 불러온 집단살인이었습니다.

살인자는 온전하고 동료를 잃은 노동자들은 아직 고통 속에 있습니다.

 

“하청노동자들을 개돼지 취급한다고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임시천막 휴게실도 철거하라는 압박을 넣고 그래도 철거 안 하면 칼로 천막 찢어버리고 추운 겨울 따뜻한 커피 마시겠다고 정수기 있는 곳에 가면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뜨거운 물을 써버려서 따뜻한 커피 못 먹고 그래서 전기포트 갖다놓으면 사진 찍어서 5대 위반행위라 하여 처벌하겠다고 으름장 놓고 7시 30분부터 청소를 시키고 그걸 돈으로 환산도 안 해주고, 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사고는 은폐하고 전부 하청업체 책임으로 돌리고……. 한때 삼성에서 근무한다고 뿌듯해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고 한심스럽습니다.”

(ㄱ◇◇님 사고 트라우마 피해노동자)

 

“예기치 못한 사고로 동료를 잃었고, 직업을 잃었고 더 나아가 다시는 조선소에 돌아가지 못할 만큼의 트라우마를 갖게 된 사람……. 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 TV에서나 들어본 병명이었고 한 번도 겪어보지도 접해보지도 못한 병이었는데, 사고를 겪고 난 후 저에게 나타난 여러 가지 정신적 육체적 변화들……. 그 병이란 걸 알게 됐을 땐 이미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난 후였습니다. 소리에 민감하고 예민하게 반응을 하게 되면서 어린 아이들에게 매일매일 화를 내게 되고, 순간적으로 신경질이 났다가 더러는 화가 주체가 안 될 만큼 나는 경우가 잦아지고, 그런 저를 무서워하고 피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미안함도 자괴감도 들고, 우울한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조선소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 직업에 대한 걱정도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공단의 늑장 대처에도 너무 화가 나고 담당직원의 안일한 일처리 또한 고통을 겪고 있는 작업자들에게 고통만 더해주는 격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재해자들의 치료가 제일 먼저 이루어졌어야 했고 또 저를 포함한 마음의 병으로 인해 조선소로 돌아가기 힘들어진 분들에 대한 국비지원교육이나 재취업 문제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더 중요한 건 산업재해를 은폐해선 안 된다는 거죠. 최대한 빠르게 대처해서 신속한 치료와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ㄱ▢▢ 사고 트라우마 피해노동자)

 

“내일 딱 그 사건 이후 1년이 지났는데 제 삶은 거기서 못 벗어나고 있어요. 그 이후로 악몽이랑 불안에 시달리고 남들은 청춘이 소중하다고 하는데 저한테는 잃어버린 1년이었습니다. 언제쯤 그때 크레인 사고로부터 벗어나서 다시 살 수 있을지 너무 고통스럽네요.

외적으로는 다친 것도 없으니 다른 사람들한테 어떻게 힘든지 말도 못 하고 제가 나약한 것 같아서 자책감만 들고 이렇게 살 바에는 그냥 다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뿐이네요. 약 먹어야 조금 나아지는 현실이 너무 지겹고 괴로워요……. 저와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이 없었으면 합니다.”

(ㄴ○○님 트라우마 피해노동자)

 

삼성중공업은 사고를 은폐하는 것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치료를 가로막았고, 고용노동부를 비롯한 정부의 안일한 대처는 노동자의 고통을 가중시켰습니다.

 

“사고 당일부터 불면증에 시달렸고 화도 치밀어 오르기도 하고 분노가 조절되지도 않기도 하고 극심한 우울감에 빠지기를 반복했습니다. 10일간 쉬었고 생계를 위해 바로 현장에 복귀하였으나 계속된 불면증과 소리 등에 대해 과한 예민함에 제대로 출근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작업 도중에 타작업자와 마찰도 생기고 P블럭 주위에서의 작업은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노동부에서 실시한 설문결과 제가 심각하다는 통보를 받았고, 거제시 보건소에 방문하라는 이야기를 들어 7월 중순 경에 조퇴 후에 보건소를 방문하였습니다. 며칠 후 출근을 못 하고 보건소에 방문하여 정신과 선생님과 상담을 진행했습니다. 약물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모든 것은 자비로 충당하여야 하고 후에 계획은 수립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보건소를 다녀온 다음날 00기업 사무실에 들러 상황을 설명하니 00부장님께서 조퇴 한 번 한 것과 하루 근무 빠진 날은 임금을 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였고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면 하고 난 후 영수증을 사무실에 갖다 주면 돈을 내어주겠지만 이런 거는 버틸 수 있지 않느냐며 압박했습니다. 생계에 대한 고민과 팀 내 불이익이 갈 것을 우려하여 가지 않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 뒤 8월 중순경 삼성중공업에서 이 사안에 대해 피드백을 하려 한다며 사무실에 올라오라고 하여 보건소에 같이 갔던 동료와 함께 부장을 만났습니다. 부장은 치료가 필요 없다는 각서를 한 장 쓰라고 요구하였고 동료와 저는 생계유지와 불이익 우려 때문에 각서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ㄴ△△님 사고 트라우마 피해노동자)

 

책임자 처벌을 명확히 하고, 더 이상 지난해 5월 1일이 반복되어선 안 됩니다.

 

“사고가 발생한 지 1년이 되어가는 시점이네요……. 근로자의 날 열심히 살기 위해 쉬지도 못 하고 일하러 가서 사고를 당하고 지금까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휴일에 일하러 가서 사고 당한 근로자들이 죄인인가요? 아니면 저희가 잘못을 했나요? 왜 아무 죄도 없는, 잘못한 것도 없는 근로자들이 사고 이후로 경제적으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괴로워해야 하나요? 동일한 사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안전 대책도 없이 근로자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삼성중공업 담당자, 책임자 분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사고가 날 수도 있다고 인지하고 계셨던 분들은 지금 기억이나 하고 계신가요? 삼성이라는 대기업의 울타리 안에 숨어서 여전히 잘 살고 계시겠지요……. 카메라나 언론에서 이슈 될 때만 잠깐 보여주기로 끝나는 현실이 안타깝네요. 사람 죽인 놈들은 처벌을 안 받고, 죄 없는 근로자들만 고통받고. 삼성이라는 세계일류를 지향하는 대기업……. 당신 가족들이 그 현장에 있었어도 그리 했을지 궁금합니다.

끝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있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없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좀 더 강력한 처벌과 경제적 손실이 더 크게끔, 차라리 근로자가 죽는 게 더 싸게 먹힌다는 인식이 사라지도록 과징금이나 해당 공사 중단 명령 및 책임자들의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강력한 처벌을 바라며, 사고 근로자들이 현실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의 재검토 부탁드립니다.”

(ㄴ◇◇ 사고 피해노동자)

 

“사고 이후 여러 자리에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동생과 내가 일했던 현장이 얼마나 열악한 곳이었는지, 그리고 언제든 이러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남아있는 분들이 가장 걱정이 된다고,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도 변한 것은 없습니다. 동생이 보고 싶어 추모공원에 혼자서도 자주 찾아옵니다. 그 사고는 우리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었습니다. 사고 이후 저는 사회의 고통받는 분들과 함께하려고 사회복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통과돼서 우리와 같은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노동자가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그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하시는 다른 분들에게도 희망의 시간이 함께 할 수 있기를 멀리서라도 기원합니다.”

(故 박성우님 형이며 재해노동자)

 

생명과 안전은 시혜가 아니라 권리입니다. 그동안 웅크리고 있던 목소리를 듣고, 기록하고, 세상에 알리려 합니다. 그리고 당당한 권리의 주체로 설 수 있게 지지하고 연대하고자 합니다. 지난해 5월 1일, 크레인 사고를 온전히 기억하고 더 이상 이러한 참혹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이 되는 세상을 향한 작은 발걸음을 시작하는 이유입니다.

故 박성우님, 고현기님, 박규백님, 복창규님, 서영건님, 박인호님의 명복을 빕니다.

 

 

2 삼성중공업 해양플랜트 크레인 사고 1주기 ‘추모와 투쟁 주간’ [출처 거통고조선하청지회].jpg

 삼성중공업 해양플랜트 크레인 사고 1주기 ‘추모와 투쟁 주간’ [출처: 거통고조선하청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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