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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투쟁/이슈

‘노조할 권리’ 쟁취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직화는 계속된다

황수진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대외협력부장)

 

 

삼성에서도 노조하자

2013년 7월 14일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출범을 선포한 날부터 지금까지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쉴 새 없이 싸웠다. 삼성전자 압수수색에서 발견된 6,000건의 노조와해 문건은 파렴치한 범죄의 흔적이지만 우리가 그만큼 투쟁하지 않았다면 생산되지 않았을 자료들이다.

노동운동에 삼성만한 공포의 대상이 있었을까? 삼성은 그야말로 노동권의 ‘암흑지대’였다. 민주노조를 설립하려는 노력은 삼성의 견고하고 강력한 탄압에 번번이 짓밟혔다. 비명과 상흔이 남은 곳에서는 오랫동안 누구도 다시 용기를 내기 힘들었다.

왜 삼성만 헌법이 보장한 ‘노조할 권리’의 예외 지대여야 하나? 삼성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무노조 경영을 한 적이 없’으며 ‘노조가 필요 없는 경영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1987년 작성돼 1997년 삼성코닝 노무관리 책임자 김형극 씨가 폭로한 ‘345지침’, ‘1988 삼성 노사관리지침 제4호’, 1989년 국정감사에서 폭로된 ‘1989 비상노사관리지침’(매일노동뉴스 2018.04.23 ‘삼성 노조파괴 문건의 역사’ 이지영 변호사), 2013년 심상정 의원이 폭로한 ‘2012년 S그룹 노사전략 문건’, 이번에 폭로된 ‘서비스 안정화 마스터플랜’까지 삼성은 일관된 기조로 노조 파괴를 설계하고 실행해왔다.

또한 삼성의 무노조 기조는 계열사를 넘어 삼성이 직‧간접적으로 관계하는 수많은 기업들에 영향을 미쳐왔다.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노조혐오 정서와 다수 기업의 노조파괴 범죄의 뿌리가 바로 삼성이다. 범죄에는 정부를 비롯한 정치권력도 동원되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탄압은 고용노동부, 검찰, 경찰의 협조로 완성되었다.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조할 권리를 요구한다는 것은 거대하고 공고한 권력과의 투쟁을 의미했다.

따라서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생존과 성장은 단지 한 노동조합의 그것을 넘어서는 의미였다. 민주노조운동과 시민사회가 온 힘을 다해 지원했던 이유다. 삼성전자서비스 직접고용과 노조인정이라는 빛나는 승리는 민주노조운동과 시민사회 모두가 함께 일군 것이다.

 

간접고용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역사적으로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투쟁할 때마다 부딪쳤던 한계에 삼성전자서비스지회도 바로 직면했다.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재계약은 노조원들을 솎아내는 기회로 활용되었다. ‘위장폐업’은 조직력 좋은 센터를 공격하는 카드로 심심찮게 사용됐다. 시끄럽게 해고할 필요 없이 업체와의 계약해지로 손쉽게 단결권을 무력화할 수 있으니 삼성에겐 꽃놀이패였다.

결정권이 없는 바지사장은 임‧단협 교섭테이블에 영혼 없이 앉아있기 일쑤였고 중요한 쟁점사항에 대해서는 ‘누군가’의 오더를 필요로 했다. 결정권 있는 원청이 “나 몰라라”하며 지연전술에 들어가면 답이 없으니 노동조합은 자꾸 극단적 투쟁으로 내몰렸다. (염호석 열사의 희생도 2014년 임‧단협 교섭이 교착되었던 국면에 발생했다.) 단체교섭권의 무력화였다.

단체행동권도 온전하지 않았다. 교섭이 막혀 쟁의권을 얻어 파업에 돌입하면 원청은 대체인력을 투입했다. 협력업체와 원청이 법적으로 다른 회사이기 때문에 대체인력 투입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파업효과가 무력화되기 일쑤였다.

이렇듯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겐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 반쪽짜리였다. 간접고용 노동조합의 이 ‘더러운 숙명’을 넘어서는 것이 우리의 과제였다. 한 축으로는 노조법 개정 투쟁이 필요했고, 한 축으로는 법적으로 보장되어있지 않은 원청과의 교섭을 실질적으로 쟁취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삼성과 마주 앉아 임금과 근로조건을 논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비조합원 동료들도 희망을 얻고 우리와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간접고용 노조가 원청 상대로 투쟁하고 교섭하며 조직을 확대하는 모델을 민간 최대기업 삼성에서 만들어 널리 확산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었다.

바지사장과의 현장투쟁과 대삼성 투쟁은 성격이 다른 싸움이었다. 둘 다 필요하지만, 전자는 눈앞의 작은 적에 몰입해 정작 중요한 싸움의 상대를 잊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따라서 우리의 ‘진짜 상대’는 삼성임을 늘 강조했다. 우리가 보기에는 삼성전자서비스조차 ‘원청’이 아니었다. 실질적 결정은 모회사인 삼성전자, 나아가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전실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요구는 이재용을 향했다. 삼성 입장에선 어처구니가 없었겠지만 우리는 과장이나 ‘뻥카’가 아니라 진지했다. 물론 당장은 교섭 자리에 삼성을 앉힐 수 없었다. 여론을 주도하는 기획들과 대삼성 투쟁을 통해 우리의 목표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길을 고민했다.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 대한 접근도 세심하게 고민했다. 우리는 당연히 삼성이 직접 고용해야 하는 노동자이지만 법의 판단에 전적으로 기대진 말자고 했다. 그래서 근로자지위확인소송 1심에서 패소했을 때 심적 타격은 있었지만 노조 탈퇴는 거의 없었다. “여기서 실망해 그만둘 거였으면 시작도 안 했다” 누군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사법부 또한 삼성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투쟁을 통해 체득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우리의 임금과 근로조건 향상을 넘어 노동조합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했다. 한국 사회를 주물러온 삼성그룹의 권력을 견제하고 개혁하는 주체가 되자고 했다. 지난 5년 간 임‧단협 투쟁은 언제나 곧 삼성재벌개혁 투쟁이었다. 단 한번도 ‘우리 임금 올리라’는 요구만을 놓고 싸우지 않았다. 경영권 승계 작업이 한창이었던 2016년에 “이병철-이건희-이재용 3대 세습 대국민 찬반투표”를 진행한 것도 이러한 고민에서 나온 실천이었다.

정세를 민감하게 읽는 실력과 기동력도 중요했다. 국정농단을 ‘이재용-박근혜 게이트’로 규정하고 몇 달 동안 거리에서 수십만 장의 선전물을 뿌렸다. “이렇게 한다고 우리한테 뭐가 돌아오냐”는 질문도 있었다. 당장 무엇으로 돌아온다는 확신은 없지만,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싸워야 한다고 서로를 북돋는 하루하루였다. 촛불시민들과 한 목소리로 “이재용 구속”을 외쳤고 진짜로 이재용이 구속됐다.

이러한 투쟁을 통해 조합원 한 명 한 명이 변화하며 조직적 정체성으로 확립된 ‘정신’이 있다. 우리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지만 삼성을 움직이고 사회를 움직이는 노동조합이다. 우리는 노조탄압의 피해자를 넘어 삼성의 무노조를 깨부수고 있는 다윗들이다. 우리는 더 많은 동료들, 더 많은 간접고용 노동자, 더 많은 삼성노동자들과 함께할 것이다. 우리가 제대로 싸우면, 시민들은 우리의 편이 되어준다.

 

준비된 자가 기회를 잡는다

조직 확대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지만 5년 동안 전쟁이 끊이지 않았기에 실행이 쉽지 않았다. 비조합원들에게 다가서려는 노력도 잘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노조 가입의 이익이 크지 않고 현장의 관리‧통제가 워낙 견고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직화는 꼭 필요했다. 조직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면서 필연적으로 역동성을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이 수세에 몰린 현 정세를 이용하지 않으면 언제 다시 공격 타이밍이 올지 모른다는 진단도 있었다. 이런 판단으로 2018년 초부터 조직화 계획을 수립하고 지역마다 기금을 모았다. 4월 초 삼성 노조와해 문건이 터졌고 조직화에 박차를 가하자는 결의로 이어졌다. 그러던 중 삼성전자서비스가 직접고용을 제안한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게는 직접고용 못지않게 노조인정이 중요한 요구였다. 우리의 뜻에 따라 합의서에 직접고용과 노조인정이 모두 담겼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완전한 승리라 평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양손에 각각 직접고용과 노조인정이라는 무기를 쥐고 비조합원들을 만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다.

요즘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조직 역량을 풀가동하고 있다. 전국 간부들은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니며 예비조합원들을 만나고 있다. ‘비노(비노조)’라고 대상화해 부르던 명칭은 ‘예비조합원’, ‘우리 동료’로 바뀌었다. 물론 여전히 비조합원들과 관계가 껄끄럽다는 토로도 없지 않다. 5년 동안 쌓인 소원함이 그리 쉽게 좁혀질 수 있겠나. 하지만 노력하는 모습이 좋다. “남북도 만났는데 우리가 못 만날 이유가 있나”라며 만남을 제안하고, 갈등관계였던 동료들에게도 우리가 먼저 손 내밀자고 서로를 보듬고 격려한다. 삼성이 갈라놓았던 우리 사이에 다리를 놓고 있다.

낮에는 각 센터를 방문하고 밤에는 설명회와 간담회, 술자리가 열린다. 센터가 전국에 분포해있어서 조직화에 필요한 돈과 시간이 상상 이상이다. 미리부터 모아놓은 조직화 기금과 금속노조의 지원, 그리고 간부들의 뜨거운 열정으로 돌파하고 있다. 조합원 수는 금세 기존의 두 배를 훌쩍 넘어섰다. 현재 약 80개의 센터가 노동조합과 함께하고 있다.

 

두 마리 토끼

아직 직접고용의 세부내용은 정해지지 않았다. 우리가 원하는 임금체계와 노동조건이 온전하게 담긴 임금‧단체협약을 체결하기까지 어려운 협상과정이 전개될 것이고 늘 그랬듯 강력한 투쟁도 필요할 것이다. 더 많은 동료들이 함께할 때 더 많이 쟁취할 수 있고, 더 많이 쟁취할수록 더 많은 동료들이 함께할 것이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

현장에는 아직 사장과 팀장의 권력이 살아있다. 오랫동안 형성된 현장권력은 ‘합의서’만으로 바뀌지 않는다. 아직도 비조합원 동료들은 직고용 이후의 미래를 상상하기 어려워한다. 함께하자는 노동조합의 호소보다 “직고용 되어도 내가 너의 실적을 평가할 테니까 괜히 노조 가입하지 말고 나만 따라와” 라는 협박이 더 피부에 와 닿는 듯하다. 우리가 한 명의 동료라도 더 만나야 하는 이유다. 노동조합은 매주 1회 ‘직접고용 소식지’를 통해 실무협의 내용을 공유하고, 노동조합과 함께해야 하는 이유를 전파하고 있다.

몇 가지 난관은 있겠지만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자신 있다. 간부들은 탄탄하게 단련되어있고 교섭이든 투쟁이든 무서울 것이 없다. 사장과 팀장의 몸부림은 결국 오로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에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변화의 흐름을 읽는다면 답은 노동조합일 수밖에 없다. 아직 주저하는 동료들도 곧 대세를 깨닫고 함께하게 될 것이다.

지난 5월 17일은 염호석 열사 기일이었다. 19일에 양산 솥발산에서 추모제가 열렸다. 나두식 대표지회장은 방명록에 염호석 동지에게 바치는 약속을 남겼다. “삼성그룹-국가권력 정경유착 고리를 끊고, 우리와 같은 간절한 노동자들, 그리고 모든 노동자들이 해고되지 않고 마음 편히 노동조합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

최종범, 염호석이 살아생전 고된 삶에서 손에 쥐었던 마지막 희망이 노동조합이었다. 삼성의 악독한 탄압으로 그 희망이 좌절되어가던 시점에 그들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 희망을 지키려 했다. 누군가는 “노동조합 그게 뭐라고 목숨까지 바치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노동조합이 난생 처음 움켜쥔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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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28. 염호석 열사 [출처: 지회]

 

최종범, 염호석 열사의 꿈을 더 크게 계승하는 것은 무엇일까.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연대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우리가 갖게 된 ‘힘’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고민할 때다. 우리의 어제를 기억하며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온전하게 노조할 권리를 갖는 세상을 만들고, 더 많은 삼성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단결할 수 있도록 든든한 구심이 되는 것. 그것이 두 열사와 이 땅의 평범한 노동자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역할이다.

더 큰 꿈을 향해 전진하는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자들을 지켜봐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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