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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시화공단의 평범한 회사 이야기

유월 (반월시화공단 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

 

 

올해 최저임금 위반 실태조사 과정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서게 된 업체가 있다. 30인 미만의 조그만 회사다.

실태조사 과정에서 상여금을 매월 지급하는 것으로 전환하는 문제를 확인했다. 상여금을 기본급으로 넘기기 위한 첫 단계거나 최저임금 산입범위 변경을 예상한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문제도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근로계약서, 임금명세서 등을 확인하려 했다. 근로계약서는 쓴 적이 없었다. 취업규칙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노동조건을 정한 어떤 문서도 없는 회사였다. 물론 반월시화공단에서 이런 건 생소하지 않다.

 

1 반월시화공단 [출처 월담].jpg

반월시화공단 [출처: 월담]

 

쓰다버리는 산업기능요원

임금명세서를 확인하니 최저임금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분명 회사에 최저임금을 못 받는 노동자가 더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확인 결과 특성화고 현장실습으로 시작해 지금은 병역특례 산업기능요원으로 몇 년 째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임금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었다. 회사는 이들을 ‘어차피 나중에 나갈 놈들’이라며 막말을 일삼았다.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 여기지를 않았다. 툭하면 ‘위장폐업을 하거나 병역특례 업체 선정 취소를 하면 공장에서 다 내보낼 수 있다’며 산업기능요원들을 협박했다.

물론 저임금에 굴려먹을 수 있는 젊은 노동자들을 계속해서 고용할 수 있는 기회를 회사라고 쉽게 저버릴 리는 없다. 임금을 많이 줄 수 없는 작은 업체들이 군말 없이 일할 젊은 노동자를 고용하는 방법은 이주노동자를 받거나 현장실습생, 산업기능요원을 받는 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협박은 산업기능요원들이 회사에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기 어렵게 만든다. 폐업, 근로기준법 위반, 산업재해 등으로 업체를 변경해야 하는 경우 3~6개월 안에 다른 업체를 찾아야 하는데 이 자체가 불안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복무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경우 다른 업체에서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아져 불안감은 더 커진다.

‘임금 많이 줘봐야 어차피 나갈 놈들’, ‘막 굴려도 문제 제기 못할 놈들’로 여기며 최저임금도 주지 않는 이 업체의 모습이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을 것 같다. 공단에서 만나는 산업기능요원들은 하나같이 ‘군복무 문제가 아니라면 당장 그만뒀을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신고하니 바뀌는 것들

월담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나 최저임금 미지급 문제가 확인된 업체를 노동부 안산지청 최저임금신고센터에 신고했다. 이 업체도 신고대상에 포함했다.

신고가 들어가자 회사는 가장 먼저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근로기준법을 위반하지 않는 내용으로 작성했기에 자연스럽게 노동조건이 좋아졌다. 잔업, 특근을 적게 해도 예전보다 많은 임금을 받게 됐다. 이것만으로도 최저임금을 못 받던 노동자들에게는 큰 변화였다.

회사는 취업규칙이 없는 점도 지적을 받아 제정에 들어갔고, 체불임금 정산도 시작했다. 회사는 지역의 한 유명 노무사를 불러 취업규칙 제정과 체불임금 문제를 맡기는데, 이 노무사가 노동자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기 시작한다.

 

체불임금 사라지는 노무사의 계산법

노무사는 노동자들에게 ‘지금까지 근로기준법보다 좋았던 노동조건이 있고 나빴던 노동조건이 있기 때문에, 회사에 다시 돌려줘야 하는 임금과 노동자들이 더 받아야 하는 임금을 계산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회사가 연차 이외에 휴가를 더 보장하거나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수당을 지급했다면 부당이득이기 때문에 회사에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못 받은 임금에서 회사에 돌려줘야 하는 이 금액을 빼는 계산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노동자들이 받을 임금이 없거나 오히려 회사에 돌려줘야 하는 임금이 생길 것이라고 겁을 줬다. 이에 노동자들은 대부분 체불임금 계산을 신청하지 않았다.

취업규칙이나 근로계약으로 정하지 않았더라도 어떤 기준으로 수년간 노동조건을 보장했다면 암묵적인 계약이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그런 기준에 따라 지급한 임금을 노동자가 회사에 다시 돌려줘야 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이 노무사는 신기한 계산법으로 노동자들의 체불임금을 한순간에 사라지게 만들었다. 사장들에게 이보다 더 감동적인 마술도 없을 것이다.

 

회사 말을 너무 믿는 노동부

하지만 노동부는 이 과정을 자세히 살피지 않았다. 노동부는 회사의 보고를 받고 종결처리하려 했다고 밝혔다. 월담은 이 체불임금 계산법의 문제를 노동부에 알렸고, 노동부는 우리가 제시한 자료를 보고서야 회사 측의 사기행각을 알게 됐다. 월담이 자세하게 과정을 파악하면서 끝까지 문제 제기하지 않았다면 회사의 정산 자료와 입금내역, 취업규칙 제정안을 확인하고 끝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물론 거의 예외 없이 문제를 대충 확인하고 끝내버리는 노동부의 태도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노동부를 어떻게 물고 늘어져야 무책임하게 빠져나가지 못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바꿀 수 있는 가능성

회사의 시도가 가로막히고 노동조건이 나아졌다. 마음대로 불법을 저지르지는 못하는 현장으로 바뀌었다. 물론 노동자가 직접 나서서 회사에 문제 제기하고 싸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 의미가 작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결국 스스로 나서서 회사 안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한다’고 외치며 선두에 설 노동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면, 지금 낼 수 있는 작은 용기가 공장과 공단을 조금이나마 바꾸는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함께 경험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 이 글은 철폐연대가 발행하는 기관지 <질라라비> 179호(2018-07)호 '불안정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전략과 실천'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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