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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며 사는 법에 가까이 가다

엄진령 (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안식휴가 중)

 

 

총회를 마치자마자 부랴부랴 휴가에 들어섰지만 끝나지 않는 일들이 계속 이어졌다. 이것만 마치고, 저것만 마치고 하다 보니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나가 버린 뒤였다. 그렇게 늘어지던 일들이 얼추 마무리 되고 이제 진짜 쉬는구나 했지만 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일은 방바닥으로 파고드는 몸을 추스르지 못해 손에 잡히지 않았고, 하루 세끼 밥해먹는 것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필요로 하는 일인지 다시 한 번 깨닫는 날들이었다.

마음먹었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매일을 함께하던 옆지기는 같이 가지 못하지만, 일단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재미나던 운동이 지침의 연속이 되고,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 믿었지만 여전히 제자리라는 것을 확인했을 때의 처참함. 그것에서 벗어나야 했다. 옆지기 대신 20년 지기 친구가 함께하기로 했다. 다른 사연으로 휴식 중인 그이 역시 ‘떠나서 쉬는 것’이 필요했었나 보다.

 

‘빈에서 한 달 살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물었다. 왜 오스트리아냐, 빈에서 한 달이나 머무르며 할 것이 있느냐, 더 여러 곳을 다니는 것이 좋지 않으냐 등등. 사실 딱히 답할 말은 없었다. 어딘가를 가고자 했을 때, 2년 전 3일을 머무르고는 아쉽게 떠나왔던 그곳이 생각났을 뿐이고, 여기저기를 가지 않은 것은 그저 피곤하게 여행하고 싶지 않아서였을 뿐이다. 먼 곳 어딘가에 쿡 박혀서, 그곳 사람처럼 그저 한 달을 살다와야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평상심을 가지고 아무렇지 않은 듯 다녀와야지라는 계획은 계속 무너지고 있었다. 출국을 2주 앞두고는 집에서 물이 새서 아래층 천장을 잔뜩 적셔버렸다. 아랫집 화장실에서는 계속 물이 흐르고 원인은 그곳과 맞닿은 우리집 화장실의 방수 불량이었다. 부랴부랴 공사를 마쳐 놓으니, 출국을 며칠 앞두고는 에어프랑스 파업으로 비행기편이 어찌될지 알 수 없다는 이메일이 날아왔다. 한국지사와 40분 대기 끝에 힘들게 전화가 연결되었고, 비행편을 변경할 수 있었다. 이미 평상심은 저 멀리 날아간 뒤다. 어쨌거나 비행기는 떴고, 5월 8일 밤 11시, 나는 빈 공항에 도착했다.

 

숙소는 빈 시내에서 대중교통으로 2~3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조금만 나가면 공원과 숲이 있고, 반대편으로 트램을 타고 나가면 빈 시내로 갈 수 있었다. 하루 일과는 ① 아침에 일어나 과일, 채소나 죽으로 아침을 먹고 ② 잠시 짬을 내 근처 공원을 산책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장을 보고 ③ 점심을 준비해서 먹고 ④ 오후에는 시내로 나가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관람하고, ⑤ 저녁을 먹거나 카페에서 디저트와 커피를 마시고, ⑥ 공연을 보는 것으로 주로 이루어졌다. 도나우 강가에 앉아서 강물을 그저 쳐다보고 있기도 했다.

 

가끔 먼 곳으로 가기도 했다. 잘츠부르크를 관광하고 모차르테움에서 공연을 보기도 했다. 잘츠부르크는 작은 도시이지만 모차르테움이 있어 즐겁다. 우리가 들어서자마자 ‘인터넷?(으로 예매했지요?) 코리아?(에서 왔지요?)’라고 묻는 직원, 그 먼 한국에서 공연을 예매하고 온 것이 신기했나보다. 바트블루마우에서 난생 처음 스파를 즐기기도 했다. 사실 스파가 계획이 아니라 훈데르트 바써가 만든 동화마을 같은 이곳의 건물을 보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고, 스파는 그저 덤. 에곤 쉴레가 태어난 곳이라는 툴른을 찾기도 했다. 그곳을 둘러 흐르는 도나우강은 천천히 또 조용하게 흐르고 있었다.

 

해외 유심이라는 고급템을 소유한 여행동무는 중간중간 많은 정보를 내게 주었다. 지금의 빈의 모습은 약 150년 전, 프란츠 요제프 황제 당시에 만들어졌다는 것, 빈 시내를 둥그렇게 돌아가는 링은 그 당시에 필요 없어진 성벽을 허물고 그 자리에 설계되었다는 것, 약 50년에 걸쳐 많은 건물들이 세워졌고, 지금 우리가 보는 건물들은 대부분 100년 남짓의 나이를 먹었다는 것 등등.

‘둘이 싸우지 말고 잘 다녀와’라는 친절한 조언과 충고들이 있었지만, 낯선 땅에 둘이 있는데 그런 소용없는 짓을 할 만큼 우리는 어리석지 않았다. 적절한 역할 분담과 대충 넘어가기라는 수완을 통해 우리는 한 달을 잘 보냈다. 물론 동무가 숙소 열쇠를 집 안에 두고 나왔을 때 당황스러웠고, 시간이 급한데 내가 뭉그적거릴 때 동무는 짜증이 났을 테다. 우리는 20년 지기라는 게 무색할 만큼 서로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기도 했지만, 그 역시 다시 있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와중이었기에 곱게 말하기 기술을 서로에게 선보이기도 했다.

 

나의 여행 동무를 소개하자면, 첫 번째 동무는 당연히 20년 지기다. 몸이 아파 쉬고 있는 동무를 위해 다급하게 굴지 말고 ‘느리게 또 느리게’를 다짐하고 갔는데, 이 녀석, 나보다 더 씩씩하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니 시간의 소중함을 더 느껴서일까, 나는 빠른 발걸음을 따라잡는 것에 늘 신경을 써야 했다. 동무는 그림을 그렸다. 선 하나하나, 빛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을 쓰면서, 꼭 자기 성격처럼 그림을 빚어냈다. 그 옆에서 덩달아 나도 그림일기를 붙잡았다. 색연필로, 크레용으로 엉망진창이지만 하루하루를 그렇게 기록하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었다.

두 번째 여행동무는 트램 2번이다. 숙소에서 조금 걸어 나가면 바로 트램 2번을 타고 시내로 나갈 수 있다. 2번 트램은 빈 시청과 국회의사당, 왕궁과 미술사 박물관을 지나 오페라 하우스, 빈 뮤직협회 등 주요 여행지를 지난다. 부르크 극장과 콘서트하우스, 레오폴트 미술관과 현대미술관 무목이 있는 박물관 지구도 2번 트램을 타면 갈 수 있다.

 

그렇게 빈에 머물다 보면 계속 듣고 보게 되는 몇몇의 이름이 있다. 오토 바그너, 구스타프 클림트의 이름을 가장 많이 보게 되는데, 느끼기엔 이들이 지금의 빈을 만든 것만 같았다. 건축가인 오토 바그너는 빈의 대표적인 많은 건물들을 설계했고, 그곳에 클림트의 벽화가 그려졌다. 에곤 쉴레 역시 이곳의 대표적인 화가다. 그리고 올해는 이들이 사망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그해 유럽을 잠식했던 스페인독감은 당시 빈의 대부분을 설계한 유명한 건축가와 이름 높은 화가, 그리고 그 뒤를 있는 천재 화가를 한 해에 모두 빼앗아가 버렸다. 100년이 지난 지금 한낱 여행자인 내가 느끼는 상실감이 이렇게 깊은 것은, 허망하게 사라진 것만 같은 그 삶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2 에곤 쉴레 뮤지움, 툴른 [출처 필자].JPG

 에곤 쉴레 뮤지움, 툴른 [출처: 필자]

 

그렇게 내 마음의 세 번째 여행동무로는 스물 여덟에 세상을 떠난 에곤 쉴레가 자리 잡았다. 레오폴트 미술관에서 그의 많은 작품을 볼 수 있고, 벨베데레 궁에서도, 빈 시립 미술관에서도 그의 작품을 조금씩 볼 수 있다. 툴른에 있는 에곤 쉴레 박물관은 그의 삶을 소개하는 작은 박물관이다. 에곤 쉴레의 흔적을 따라 오스트리아를 여행해 보자는,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 여행 계획을 미리 세워 본다.

 

지금의 나에게는 충분한 휴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하루하루는 바빴지만, 여행이 끝나갈 때쯤 내게서 많은 것이 비워져 있었다. 나는 19개의 공연을 보았고, 10개의 미술관 및 박물관을, 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쇤부른 동물원과 빈이 가장 사랑하는 슈테판 성당, 그리고 빈의 오랜 골목골목을 돌아보았다. 오랜 시간 전에 예술가들이 즐겨 찾았다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빵집, 아직도 남아 있는 그리헨 바이젤(술집이다), 베토벤이 합창을 작곡했다는 호이리게 술집, 모차르트가 레퀴엠을 작곡한, 그리고 사망한 곳(지금은 백화점이다), 여러 흥미로운 역사를 가진 곳곳의 건물과 골목.

관광지를 돌아보는 여행이 아니라, 흘러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길에 머무르는 여행이 하고 싶었었다. 부족하지만 어느 정도는 비슷해진 것 같다. 한 달이라는 시간 덕분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대미술의 난해함과 고전이 동시에 존재하고, 오페라 하우스의 오랜 관습과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신호등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곳, 모든 것이 흘러가지만 여전히 멈추어 있는 이곳에서, 나도 하나의 구성물인 것처럼 놓여 있는 것이 그저 참 좋았다.

 

오히려 이 좋은 여행지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고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지 않은 것이고, 우리에게는 왜 빈 필하모닉이 없는가라는 질문은 우리는 왜 만들고 키우지 않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뒤이어 일을 마치고 가족과 공연을 즐기는 일상이 아니라, 허겁지겁 저녁을 때우고 야근에 돌입해야 하는 우리의 일상이 겹쳐졌다. 다시 돌아가는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질문이 마지막에 나에게 던져졌다. 그 답은 아직 찾고 있다. 다만 지금은, 내가 살아가는 그 일상에서, 너무 복잡하지 않게, 조급하지 않게. 그저 하나의 구성물처럼 잔잔히 놓여 있을 수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가난한 단체활동가의 여행 경비를 공개한다. 여행은 모두에게 다른 시간과 경험으로 주어지겠지만 혹시나 마음만 있고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① 비행기편: 약 80만 원 (1회 경유)

② 숙소: 약 65만 원 (에어비앤비 이용, 2인 분담 시)

③ 여행자 보험: 약 25천 원

④ 생활비: 약 13만 원

⑤ 외식비: 약 40만 원 (21회, 집에서 밥을 열심히 먹으면 줄일 수 있다)

⑥ 시내교통비: 약 85천 원

⑦ 공연관람비: 약 68만 원 (앞서 밝혔다시피 무려 19개의 공연을 보았지만, 음악을 즐긴다면 이 비용을 줄일 것을 권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더 비싸고 좋은 자리에서 보지 않은 것을 많이 후회하고 있다)

⑧ 미술관 등 관람료: 약 20만 원

⑨ 기타 도시 이동 경비: 약 32만 원 (오스트리아 내 3개 도시 기차 이동)

⑩ 그 외 기념품 및 선물은 본인의 선택이다.

(1유로를 1,300원으로 계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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