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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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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이겨내시라!”

박선봉 (문화활동가, 철폐연대 회원)

 

 

박창수 열사 27주기 추모식이 진행됐던 지난 5월 10일, 추모공연을 마친 박준 선배를 만났다. 항상 활기차고 따뜻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 바이러스를 마구마구 뿌려대는 선배가 웬일인지 침울해 보였다. 추모식장 구석으로 부르더니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황현 동지 건강 상태가 많이 안 좋다는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잠시 동안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언제나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공연을 하고, 연대 활동을 다니던 동지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더 심각한 것은 황현 동지의 상태를 알게 된, 남편이자 동지인 김호철 선배의 상태란다. 아예 몸져누웠단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증에 빠져 식음을 전폐하고, 칩거중이라고 했다. 호철 형이라면 충분히 그럴 거란 생각이 들었다. 대체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도대체 왜 이 지경까지 됐단 말인가. 당사자인 황현 동지와 반려자인 김호철 선배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일단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기로 하고 박준 선배와 헤어졌다.

 

1 후원주점에서 상영된 영상 [출처 철폐연대].jpg

후원주점에서 상영된 영상 [출처: 철폐연대]

 

김호철 선배의 명성을 귀가 따갑도록 듣고 지내다가 실제로 만난 것은 아마도 내가 민주노총에 들어가면서부터였을 거라고 생각된다. 형은 한국 노동운동과 노동자문화운동에 지대한 역할을 하신 분이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이 전국을 휩쓸면서 연인원 100만 명이 넘게 파업을 벌였는데, 그 때 노동자들이 부를 수 있는 제대로 된 노동가요는 하나도 없었다. 오죽했으면 애국가와 군가를 부르면서 파업을 했을까. 그들의 요구와 정서에 정확하게 부응했던 사람이 바로 김호철 선배다. “흩어지면 죽는다”로 시작되는 <파업가>는 순식간에 파업 투쟁의 필수곡이 되었다.

 

“작가들의 욕심으로는 뭔가 끝까지 불릴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싶어하는 그런 것들, 이런 것이 알게 모르게 개인적인 작가들에게 풍미해 있어요. 해방된 사회에서도 애국가로 불릴 수 있는 노래, 이런 것을 어떻게 만들어볼 수 없을까? 그러다 보니까 자꾸 머릿속에서는 웅장한 생각이 들어가지요. 그 웅장한 생각은 노동자스러운 것, 노동자로서의 삶 속에서 획득해낸 계급성을 토대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예술가적 개인으로서 갖고 있는 개인적인 영감의 발전으로서의 예술적 사고지요. 물론 어떤 경우에는 오케스트라가 될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풍물판이라든가 하는 데서 나오는 집단성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다 보니까 지금 바로 중요한 노래들, 두 달을 부르고 말더라도 투쟁 속에서 나름대로 노동자들의 운동에 기여할 수 있는 그런 부분들을 놓치고 있는 것이지요.”

 

1991년 2월 25일, 하늘땅 출판사 회의실에서 진행된 “예술창작, 혹은 예술운동의 핵심에 대하여”라는 좌담회에서 김호철 선배는 노동가요 작곡가들에게 역사에 남을 노래보다는 당장 노동자들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중요함을 역설했다. 노래 스타일이 편중되었다느니, 만날 그 노래가 그 노래라느니, 예술성이 떨어진다느니, 단 몇 달 만에 사라질 노래를 왜 만드는지 모르겠다느니, 행진곡 일색이고 심지어는 왜색풍이라느니 하는 갖은 중상모략과 깎아내리기, 인격모독 수준의 평판에도 굴하지 않고, 선배는 꿋꿋하게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 수위를 높이기 위한, 노동해방세상 평등세상을 쟁취하기 위한 노래 만들기를 중단하지 않았다.

 

“짱돌을 던지는데 적들이 잡았던 짱돌이기 때문에 나는 더러워서 안 던진다고 해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이고, 일단 우리가 무기로 쓸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동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차원에서 일단 창작가로서 우리 민족음악의 형식이나 내용, 그리고 어떤 것이 진짜로 노동가요의 전형이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하겠지만 결코 당면한 투쟁을 방기할 수는 없고, 당면한 노동자들의 일상생활을 방기할 수 없단 말이지요. 필요하다면 뽕짝이 아니라 팝송이라도 동원해서 우리 노동자들의 계급성을 당기는 데 도움이 된다면 만들어 나가는 것이지요.”

 

황현 동지를 만난 것은 호철 형을 만난 지 몇 년 후였던 것 같다. 공연장이 아니라 사석이나 메이데이,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 등에서 가끔씩 뵈었다. 공연장에서 자주 보게 된 것은 2012년 과천 코오롱 본사 앞에 코오롱 정투위 동지들이 천막을 친 뒤부터였다. 황현과 박은영의 ‘다름아름’을 비롯하여 박준, 지민주, 연영석, 이혜규 등이 코오롱 투쟁에 함께하기 위해서 자주 과천에 내려왔었다. 그러다가 작년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로 치러진 ‘87년 노동자대투쟁 30주년 문화한마당’을 힘들게 준비하면서 황현 동지의 열정과 헌신성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황현 동지의 쾌유와 김호철 선배의 그간의 노고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문화운동 선후배들이 모였다. 논의 끝에 세 가지를 준비하기로 했다. 병원비와 당장의 생계비를 빠르게 마련해야 해서 후원주점을 열기로 했다. 마침 올해가 <파업가>가 탄생한지 30년이 되는 해여서 <파업가 30주년 기념 김호철 헌정음반>도 제작하기로 했다. 음반작업의 성과를 가지고 10월 말이나 11월 초에 대규모 문화집회 형식의 공연을 광화문광장이나 시청광장에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2 2018.7.21. 후원주점 과일안주를 담당한 필자 [출처 철폐연대].jpg2018.7.21. 후원주점 과일안주를 담당한 필자 [출처: 철폐연대]

 

세 가지 사업 중 첫 번째이고 가장 시급했던 후원주점을 7월 21일에 ‘문화활동가 황현 쾌유 기금마련 후원주점 - 아름답게 이겨내시라!’라는 이름으로, 을지로에 위치한 태성골뱅이에서 진행했다. ‘꿀잠’ 동지들을 중심으로, 장기투쟁사업장 동지들과 문화일꾼들이 몇 번에 걸쳐 기획회의를 했다. 주점 전날,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꿀잠’의 좁은 주방에서 씻고, 다듬고, 썰고, 삶고, 끓이는 작업들이 대규모로 진행됐다. 기록적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아침부터 주점 준비에 들어갔다. 집기와 재료 들을 나르고, 안내 포스터를 붙이고, 메뉴판을 테이블에 붙이고, 각자 역할을 정하고, 도우미들 교육도 했다. 오후부터는 본격적인 안주 만들기가 시작됐다. 참치회, 연어회 등 섬세하고 고도의 숙련이 필요한 작업은 세종호텔노조 등 요리사 동지들이, 월남쌈 같이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떼거지로 붙어서, 과일 안주 등 단순한 것은 나와 몇 동지들이, 모두가 꺼려하는 에어컨이 없는 3층에서 하루 종일 먹태를 구워야 하는 작업은 기륭의 맏언니가, 고품질의 라멘은 ‘천지인’의 보컬이었던 동지가 담당으로 정해졌다.

 

지금도 곳곳에서 문화활동을 하고 있는 문화일꾼들은 물론, 과거에 문화활동을 했던 사람들, 투쟁 현장의 동지들, 연대동지들, 그날 집회가 있었던 사업장 동지들을 비롯해서 연인원 1,000명이 넘는 동지들이 주점을 찾아주셨다. 가격에 비해서 가성비가 높은 안주부터, 차마 민망하고 너무 후려치는 것 같아서 미안함을 느끼게 하는 안주까지, 오신 동지들의 넓은 아량과 따듯하고 훈훈한 마음씨로 준비한 음식들은 남김없이 소비가 됐다. 평소 마이크를 잡았던 가수들도 이 날은 쟁반을 들고 땀을 흘리며 서빙을 하고, 손님들을 접대했다. 등에 소금꽃이 피도록. 밤 11시가 넘어 청소까지 마치고, 시원한 맥주로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문화일꾼들의 열정과 진심이 아낌없이 발휘된 잊지 못할 주점이었다. 주점을 성황리에 마치고 지금은 헌정음반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황현 동지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힘겹게, 그러나 힘차게 병과의 투쟁을 하고 있다. 호철 형도 기운을 차리고 있다고 한다. 싸워서 이기겠다는,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는 굳은 마음으로 병과 싸워 이겨서, 다시 무대에서, 투쟁의 현장에서 황현 동지의 밝고, 씩씩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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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가’ 30년 기념 김호철 헌정음반] 공동제작자가 되어 주십시오.

 

* 음반 발매일시: 10월 예정

 

* 음반 제작자로 참여하시려면: 1구좌에 5만 원 단위로 가능한 구좌수에 해당하는 금액 약정 및 입금

예) 1구좌는 5만 원, 2구좌는 10만 원, 3구좌는 15만 원 ……

 

* 음반 공동제작자가 되시면

1) 음반 부클릿에 제작자로 이름을 올려드립니다.

2) 참여 구좌별로 음반을 보내드립니다(1구좌는 음반 1매, 2구좌는 음반 2매).

* 음반 제작 계좌 안내: 국민은행 014-21-1599-194 (예금주 민정연)

* 문의: 민정연 (010-4190-6600) / 이사라(010-7277-3719)

 


** 김호철 헌정음반 공동제작자 신청하기 http://bit.ly/파업가-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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