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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 없는 휴가, 큰 휴식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처음 비행기를 탈 때만 해도 마음이 무거웠다. 전전날 대한문에 김주중 님의 분향소를 차린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보수세력에게 둘러싸여 온갖 욕을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몸도 지쳐가고 마음도 팍팍해지는 것을 느끼며, 근 10년 만에 가까스로 만든 장기휴가인지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마음이 딴 곳에 있어서 그런지 이스탄불 공항에서도 계속 텔레그램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이제 한국의 소식에서 멀어져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베를린에 도착해서 낯선 풍경을 마주했을 때에야 이제 휴가가 시작되었구나 실감했다. 작년 가을에 홀로 되신 엄마, 그리고 베를린에 살고 있는 동생과 한 달을 같이 생활하게 되었다.

 

 

잠깐 지나가는 이의 눈에는 좋은 것만 보이는 법

 

겉핥기로 본 베를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조금 우습다. 더 오래 있었다면 제대로 숙고할 만한 경험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짧은 기간을 머무르다 보니 서울살이와 단순한 비교밖에는 하기 어렵다. 동생이 살고 있는 집 아래층에는 학생이 산다. 학생인데도, 방이 두 개이고 거실이 있는 공간을 세 내서 살고 있다. 부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베를린에서는 성인이 되면 대부분 독립을 한다고 한다. 서울처럼 월세가 비싸거나 학비가 비싸면 엄두를 못 낼 일이지만 베를린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대학 학비가 전혀 없고, 월세도 정말 싸고, 학생들은 여러 할인혜택이 있으니 베를린 학생들은 독립하는 데 큰 부담이 없는 것 같다. 전역한 지 두 달 된 청년이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물류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감전해서 사망한 소식을 들으며, 무상교육은 언제 가능할지 고민한다.

상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다르다. 베를린 상점의 노동자들은 친절하지 않다. 웃으면서 응대하지도 않고, 개인적인 전화를 받으면서 계산을 하기도 하고, 물건을 사는 사람들의 요청에 단호하게 “기다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노동자들이 친절할 필요가 없다’고 늘 생각해왔지만 막상 이런 상황에 부딪치면 조금은 당황하게 된다. 하지만 물건을 사러 온 사람 그 누구도 노동자를 채근하지 않고 기다린다. 한국의 기업들은 소위 ‘고객’에게 “당신이 지불한 비용에는 이 노동자의 친절이 포함되어 있다”고 속삭이며, 노동자들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친절’을 강요하는 통제장치들을 빼곡하게 만든다. 소위 ‘고객의 갑질’은 몰지각한 손님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만드는 것이었음을, 감정노동이 별로 없는 독일에서 새삼 느끼게 된다.

베를린은 이동하기 좋은 도시이다. 오래된 집들이 많다 보니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도 꽤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은 휠체어로 모두 갈 수 있다. 상점들은 문턱이 없다. 횡단보도가 많고 차들이 느리게 가기 때문에 길을 건너기도 어렵지 않다. 지하철이 오래되어 역사들은 매우 낡았지만 어딘가에는 엘리베이터가 꼭 있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버스를 타려고 하면 운전자가 내려서 저상버스에 쉽게 오를 수 있도록 돕는다. 안전하게 탔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에 출발한다. 아무도 불평을 말하지 않고 기다린다. 그저 당연한 일상이다. 장애인에게만 편한 것이 아니다. 노인들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고, 유모차를 밀고 가는 부부도 쉽게 이용한다. 모든 사람이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가 일상에서 지켜진다는 느낌이 든다.

 

1 베를린 시내 한복판에 있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출처 필자].jpg

베를린 시내 한복판에 있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출처: 필자]

 

베를린에는 성찰과 반성이 깊게 배어있다. 동생의 집 어귀에는 사람이름과 글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는 투명 아크릴 판이 있다. “이곳에 살던 빵집을 하던 아무개는 유태인이었다. 그는 우리의 이웃이었으나 돌아오지 못했다”. 아프고 부끄러운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저 멀리 아우슈비츠 기념관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다시 기억하고 새기도록 하는 것이다.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는 공간이 베를린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기억과 반성은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 이후, 가장 많은 희생자들이 나고 자란 안산에 4.16 생명안전공원을 만들어 생명과 안전에 대한 다짐을 하고자 했다. 거기에 대고 ‘납골당 반대’를 외치는 이들의 악다구니가 참으로 부끄럽다. 기억과 반성의 공간은 저 멀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삶의 자리여야 한다.

 

 

예술가의 도시 베를린

 

몇 년 전 시청광장에서 투쟁사업장들이 함께 문화제를 할 때였다. 저녁 바람은 살랑 불고, 어스름한 하늘은 무척 아름다웠다. 우리는 앉거나 혹은 서서, 그리고 약간 비스듬히 누운 채로 이야기를 듣고 공연에 함께했다. 아코디언과 기타가 어울리고, 멋진 목소리와 환호가 함께했다. 그때 한 동지가 이야기했다. “나는 해고자이지만 좋은 사람들과 아름답고 힘 있는 공연을 보고 듣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집과 회사만을 왕복한다. 돈이 없거나 시간이 없어서, 그리고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문화예술을 멀게 느낀다. 투쟁하는 이들이 문화예술가들과 만나면서 몸과 마음이 충만해지듯,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일상에서 문화예술을 만날 수는 없을까? 돈이 없는 사람을 위해 오페라의 최종리허설 표를 무료로 나눠주고, 10유로짜리 좌석을 만드는 베를린에서 우리 삶의 충만을 기원했다.

베를린에서는 아침에 눈을 뜨기 전에 거리에서 연주되는 악기 소리를 먼저 만나게 된다. 거리를 나서면 바이올린을 연주하거나 플루트를 연주하는 이들과 만난다. 사람들은 바삐 걷기도 하지만 잠시 멈춰 박수를 보내고 작은 돈을 악기통에 넣는다. 거리거리마다 예술가들을 만난다. 지하철에도 연주를 하는 이들이 있다. 연주만이 아니라 성악 공연을 하는 사람도 만났다. 물론 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모든 노래들이 이런 연주인 것은 아니다. 상점의 스피커에서는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흘러나오기도 하고, 그룹 아바의 노래도 들린다. 베를린은 1990년대와 2018년의 노래, 그리고 클래식이 함께 연주되는 다채로운 소리의 도시이다.

도시 곳곳의 건축물도 관심거리지만, 미술관과 박물관이 많은 것은 정말로 부럽다. 서울에서도 틈나는 대로 전시를 가보고 싶었지만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오랜만의 휴가라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서 그런지 미술관에 마음이 끌렸다. 현대미술을 끌고 가는 앤디 워홀이나 요셉 보이스도 훌륭했지만, 피카소와 샤갈, 자코메티, 마티스 등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에도 마음이 끌렸다. 파울 클레의 작품을 원 없이 볼 수 있었던 것도 행복했다. 선을 중심으로 분할하고 다시 연결하는 파울 클레의 그림에 빠져 한국에 와서도 클레의 작품을 다시 검색하면서 보고 또 봤다. 구내셔널갤러리에서 만난 특별전의 제목은 ‘방랑벽(Wanderlust)’. 이름만으로도 어떤 전시일지 짐작이 가지 않는가. 평온한 일상을 내던지고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이들의 용기, 두려움, 피곤함, 설렘, 자연에 대한 공포감이 느껴진다. 그들은 왜 길을 떠난 것일까?

‘방랑벽’이라는 특별전은 프리드리히 등 유명한 이들의 작품을 감상하게 되어서 좋았던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제를 다룬 여러 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좋았던 것이다. 그만큼 작품이 많기 때문에 ‘주제 중심의 전시’를 하는 것도 가능하겠지. ‘아프리카 특별전’을 하는 보데박물관에서도 마찬가지의 느낌을 받았다. 보데 박물관에서는 아프리카 유물과 왕가의 유물 중에서 유사성을 가진 유물을 나란히 전시했다. 예수를 안은 성모마리아와 단순하지만 아이를 안은 어머니의 모습이 조각된 아프리카의 전시물이 나란히 있을 때, ‘아, 그렇구나’ 하는 탄성이 나온다. “문화의 유사성”이라는 건조한 말로는 그 느낌을 설명할 수 없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마음이 어떻게 예술로 표현되고, 그 감동이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보여주는 ‘보데박물관’에서 큐레이터가 정말 중요하구나 깨닫게 된다.

 

 

2 베를린의 퀴어퍼레이드 ‘크리스토퍼 스트리트데이’ [출처 필자].jpg베를린의 퀴어퍼레이드 ‘크리스토퍼 스트리트데이’ [출처: 필자]

 

 

이유도 목적도 없는 휴식

 

아무런 계획 없이 떠났다. 휴가 가기 전에 일을 마쳐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전날까지 정신없이 일을 하고 바로 비행기를 탔으니 계획 같은 것을 할 여유도 없었다. 이런저런 일로 피곤함이 과해서 그저 쉬고 싶었고, 머리를 식히고 싶었다. 그런데 글을 쓰고 보니 무척 많은 일을 한 것 같다.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만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쓰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에너지가 더 많이 충전되기도 한다. 운이 좋아 베를린의 퀴어퍼레이드인 ‘크리스토퍼 스트리트데이’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작년 퀴어퍼레이드에서 민주노총이 판매한 “지금 당장” 티를 입고 무지개 깃발을 따라 걸으며 즐겁고 또 즐거웠다. 그렇게 충전했다. 서울에도 여러 미술관이 있고 공연장이 있지만 마음이 여유롭지 못하니 제대로 가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음에 공간이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많이 보고 듣고 만나는 것만큼, 휴식에는 ‘뒹굴거리기’가 중요한 것 같다.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서 빵에 버터와 잼을 발라서 진한 커피와 함께 아침을 먹었다. 때로는 침대에서 서울에서 가져간 두터운 <민중의 세계사>를 다시 읽었고, 이영도의 환타지 소설 <피를 마시는 새>와 <눈물을 마시는 새>를 다시 읽었다. 막장이라고 욕도 하고 낄낄대면서, 때로는 푹 빠져서 드라마들을 섭렵하기도 했다. 엄마와 동생과 한자리에 앉아 수다를 떨기도 했다. 잘 기억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도 끄집어내고, 내가 동생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일까를 고민하게 만든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내 삶의 조각들이 맞춰지기도 하고 더 두터워지기도 했다. 이런 일상이 도대체 얼마만인지 알 수 없었다. 일상이 있는 삶을 살아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또 하나의 휴식은 ‘산책’이었다. 산책은 발로 걷는 것이며, 눈으로 풍경을 담아 몸에 축적하는 것이며, 손과 머리를 쉬게 하는 것이다. 베를린도 이상기온이어서 무척 더웠기 때문에 낮에 산책을 하기는 어려웠다. 베를린은 서울보다 위도가 높아서 밤 9시가 되어도 해가 완전히 넘어가지 않는다. 그때가 가장 산책하기에 좋은 시간이다. 가게들은 대부분 문을 닫지만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매일 저녁 식물원에 가기도 하고, 주택가의 고즈넉한 길을 걷기도 하고, 큰 키의 나무들이 울창한 숲길을 걷기도 하고, 문 닫힌 시내 상가들 사이를 걷기도 했다. 발바닥이 경쾌하게 길을 두드리고 걷는 리듬에 몸을 맡기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저 걷는 일에 집중하게 된다. 그렇게 한 시간을 걷고 나면 몸에 다시 활력이 생기는 것 같다. 베를린에서의 산책은 선물이었다.

 

3 베를린의 흔한 산책길 [출처 필자].jpg베를린의 흔한 산책길 [출처: 필자]

 

특별한 이유도 목적도 없는 휴가였기 때문에 더 잘 쉴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그 목표에 집중하고 그것을 잘 하기 위해서 계획을 짜고 제대로 되었는지 판단하고 다시 계획을 수정하는 일을 반복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훌쩍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기에 잘 쉬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서울에 돌아온 후 몸과 마음은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너무 더웠고, 일은 다시 쌓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급하지 않게 천천히 일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언제 이런 기회가 또 올지는 모르겠다. 나는 인권활동가들을 지원하는 인권재단 사람의 <일단, 쉬고> 기금을 통해 좋은 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 더 많은 활동가들이 이런 기회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 세상은 ‘내’가 없어도 움직이고, ‘내’가 조바심내지 않아도 앞으로 나아가니, 모두들 잘 쉬기를 강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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