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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 지역에서 철폐연대 동지들은

 

15년 해직 공무원의 삶과 복직의 희망

김은환 (전국공무원노동조합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 위원장, 철폐연대 집행위원)

 

 

“아빠, 오늘은 어디가?”, “청와대.”

“아빠, 오늘은 어디가?”, “국회.”

“아빠, 오늘은?”, “법원.”

……

“오늘은 몇 시에 나가?”, “응…….”

 

딸이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아침마다 주고받던 대화다. 이제 중학교 3학년이다. 아빠가 대답한 청와대, 국회, 법원……. 뒤에 말하지 않은 구체적 장소를 어렴풋이 알고 있는 듯하다.

 

2005년 1월 7일 해임 통보를 받았다. 당시 직책은 지부장이었다. 2004년 11월 15일 공무원노조 특별법 제정 반대, 노동3권 쟁취 총파업 투쟁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 12월에 소청까지 끝난 상태라 이미 해직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현실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잘린 놈이 무슨 충성을 다하겠다고 업무 인수인계를 위해 보름 가까이 정상 출근하며 업무를 봤던 걸로 기억한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아침 늦게 일어나 창밖을 보니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 정도 폭설이면 재난 비상근무 호출 메시지나 전화가 왔을 텐데……. 그 많이 오던 대리운전 스팸문자 하나 남겨져 있지 않은 걸 확인하면서 현실을 조금씩 자각하기 시작했다.

 

1994년 사회복지직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맡고 있는 업무의 특성상 민원인은 주로 생활 형편이 어려운 주민들이었다. 일회성 민원으로 그치지 않고 상담과 가정방문을 지속하다 보니 관계가 돈독해졌던 것 같다. 업무와 관련된 주민 다수는 해고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사무실을 찾아와 물어봐도 같이 근무했던 직원들이 차마 “잘렸다”고는 말할 수 없어 “인사 이동으로 다른 곳에서 근무한다”, “휴가 갔다” 하는 식으로 대충 얼버무렸다고 한다. 대신 5년 가까이 사무실이 아닌 장소나 전화로 민원 상담을 하는 공무원 행세를 계속했다.

 

총파업 후 대다수의 해고자들은 2~3년 지나면 복직할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고, 조직 내에서 주요 직책을 맡고 있던 사람들이라 한동안은 자신감을 갖고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희망을 가졌던 시간이 지나면서 ‘긴 병에 효자 없고, 세월에 장사 없다’고, 역할은 축소되고 현직 조합 간부와 해직자 사이에는 현실과 원칙에 대한 이해와 인식 차이가 갈수록 벌어지게 됐다.

모든 해고자들의 아픔과 고통이 그러하듯, 우리 공무원 해고자들 또한 일상생활로부터의 이탈이 지속되면서 소외와 고립이 심화되어 갔다. 길어지는 해고 생활에 공황장애, 우울증, 대인기피증 등 감정 기복과 조절 장애가 깊어지는 동지들이 적지 않다. 해고 전까지만 하더라도 조직에서 신망 받던 사람들이었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YTN, MBC, 건강보험공사, 코레일, KTX 승무원 등을 비롯한 해고자들이 현장으로 돌아갔고, 며칠 전에는 9년 동안 30명이 목숨을 잃는 아픔을 겪으며 싸워온 쌍용차 해고자들의 전원복직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정부를 상대로 하는, 즉, 특별법을 적용받고 있는 공무원노조와 전교조 해직자들에 대한 복직 전망은 아직은 그리 밝지 않다.

 

공무원노조는 산별노조 중 가장 많은 136명의 해직자가 있고 그 기간도 10년이 훌쩍 넘어 가장 길다. 해직자 중 3명은 암과 사고로 이미 죽음을 맞았고, 25명은 정년이 지나 특별법이 제정되더라도 더 이상 공무원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3년 이내에 40여 명이 추가로 정년을 맞이하게 된다.

 

1 2018.4.10. 청와대 앞 단식노숙농성 중인 필자 [출처 철폐연대].jpg

 2018.4.10. 청와대 앞 단식노숙농성 중인 필자 [출처: 철폐연대]

 

공무원노조는 지난 4월 청와대 앞에서의 노숙농성을 통해 당‧정‧청으로부터 ‘올해 안에 공무원 해직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이후 한 차례 당과 정부, 노조 간 협의가 진행되었지만 입장 차가 워낙 크고, 정부의 해결 의지가 미약하여 더 이상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1차 협의를 통해 확인한 바, 공무원 해직자 복직을 위해서는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한다는 입장은 같지만 노동조합 활동으로 해고된 사유에 대한 인식과 특별법 내용에 있어서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당시 징계가 불법적인 노조활동에 대한 정당한 법 집행이었다는 입장으로 노사관계 회복 차원에서 해직자 복직 문제를 접근하는 반면, 공무원노조는 공직사회 민주화 운동이었으며 당연한 권리인 노동기본권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탄압이므로 당시의 징계를 취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민주화보상법)은 민주화운동을 “1964년 3월 24일 이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하여 헌법이 지향하는 이념 및 가치의 실현과 민주헌정질서의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공무원노조 설립은 경직되고 비민주적이며 권위주의적인 공직사회에 대한 항거였으며, 이를 통해 박탈당한 노동기본권을 회복하고자 한 것이었다. 공무원들은 자신이 몸담은 공직사회를 민주화하기 위해 대량 징계와 해고 등 극심한 탄압을 감수하며 투쟁에 나섰다. 노조 설립과 투쟁 과정에서의 극심한 탄압은 치열한 저항을 불러왔고, 공무원노조는 징계와 구속, 연행 등 최다 피해기록을 보유한 조직이 되었다. 이러한 피해는 고스란히 해고자들의 삶에 스며들어 흐르는 시간과 함께 깊어지고 있다.

 

공무원 해직자 복직을 위한 특별법은 18대, 19대 국회에서 홍영표 의원이 대표 발의하였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다. 사실 폐기된 게 아니라 발의 의원조차 제정 의지가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2012년 10월 20일, 5만 조합원이 모인 공무원노조 총회에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대량 해고 사태가 헌법적 권리인 노동기본권 쟁취 과정에서 발생한 부당한 희생이었다는 역사인식과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참여정부와 자신의 책임이 있음을 명확히 밝혔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도 공무원노조와 정책 협의를 통해 해직자 원직복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표명했다. 이번 20대 국회에서는 진선미 의원 등 24인이 공동 발의하여 현재 행정안전위원회 계류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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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9.12. 국회 토론회 [출처: 공무원노조]

 

얼마 전 국회에서 ‘노동존중 사회에서 공무원 해직자 원직복직의 의미’라는 주제로 특별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발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단결권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특별법을 제정하고 대량 징계와 해고를 한 당사자가, 1989년에는 공무원 노동 3권을 보장하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18대, 19대 원직복직 특별법을 대표 발의한 의원이 현재 집권여당의 원내 대표를 맡고 있다. 이제는 최소한의 진정성을 보여줘야 할 시기다. 또다시 이러저런 사정을 들어 차일피일 미룬다면 이들은 자신들의 권력 획득과 유지를 위한 도구와 수단으로 공무원 노동자를 농락했다고 단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해고 이후 수십 차례 농성장을 ‘폈다 접었다’ 반복해 왔다. 8월 21일 또 다시 청와대 앞에 농성장을 펼쳤다. 16년 공무원 노조 활동의 정당성과 국가 폭력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받아낼 때까지 접을 수 없는 마지막 농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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