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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 지역에서 철폐연대 동지들은

 

절망에서 희망으로 패배에서 치유를, KT새노조 이야기

김미영 (KT새노조 부위원장, 철폐연대 후원회원)

 

 

어용에서 국가전복세력으로, 다시 어용으로

 

KT노조의 원래 이름은 한국통신노조로 1958년 창립되어 5.16 쿠데타 이후 재건된 전국체신노조에서 분리된 태생부터 어용의 뿌리를 둔 노동조합이었다. 1982년 전화국이 분리되면서 한국전기통신공사로 바뀌어 한국통신노조가 됐고, 1994년 직선제를 통해 유덕상 민주 집행부가 당선되면서 어용의 굴레를 벗고 노조민주화를 이루어 냈다. 당시 한국통신노조는 5만 조합원을 둔 남한 최대의 단일노조로 노동운동 역사의 한 획을 긋는 민주노총 창립의 중심에 함께 있었다.

당시 김영삼 정권은 전국에 거세게 불었던 민주노조 물결에 찬물을 끼얹을 제물로 한국통신노조를 찍어 국가전복세력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공안몰이를 펼치며 활동가들에 대한 지명수배와 구속, 검거에 나섰다. 정부는 활동가들 구속시키고 사측은 해고와 징계, 발령 등 각종 악랄한 방법을 동원하며 노조를 와해시켜 나갔다. 몰아치는 공안 분위기에 현장은 얼어붙었고, 민주노조 활동에 조금이라도 가담하면 조직적인 차별과 징계가 이어졌다. 이렇게 수많은 활동가들을 주저앉힌 탄압의 결과, KT노조(2001년 민영화되면서 한국전기통신공사에서 KT로 회사명 변경)는 2009년 민주노총을 탈퇴하여 다시 어용의 길로 들어섰다. KT 현장은 “죽음의 KT”, “노동현장의 아오지”라는 오명까지 얻으며 얼어붙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활동가들은 회사로부터의 차별과 괴롭힘을 넘어 동지들로부터의 따돌림과 배신 등으로 상처받고 지쳐가며 깊은 패배감에 빠져들었고, 과연 KT 현장에 희망이 있겠는가 하는 회의 역시 깊어져갔다.

 

 

패배감을 딛고, 새로운 노동운동의 고민을 담아 출범한 KT새노조

 

그러던 중 몇몇 동지들이 서로를 격려하며 힘이 되기 위해 모이기 시작했다. 고용안정과 임금인상이 노동계의 가장 큰 현안인 상황에서,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고민이 있으며 어떤 운동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1년여 동안 긴 토론이 이어졌다. 당시 우리들의 고민들이다.

“KT는 적자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내 손으로 사표 쓰지 않으면 잘리지 않는다. 그런데 고용안정 투쟁을 하는 것이 맞는가? 조합원 스스로 싸우지 않는데 우리가 대신 싸우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들의 투쟁방식이 조합원의 능동성을 훼손하는 것은 아닌가? 함께 투쟁을 만들어 낼 역량이 없는 게 아닌가?”

“ KT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는 정당한가? 절실한가? 정말 임금이 적은가? 정규직의 임금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위험을 외주화한 고혈은 아닌가?”

“위험의 외주화로 KT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증가하는 추세인데 이들이 KT를 바꿀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계열사의 무기계약직과 외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연대하는 것은 왜 어려운가? 왜 안 되는가? 우리들의 어깨가 높은 건가? 말로는 연대하자고 하면서 돌파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시혜적으로 내 아래 있는 노동자로 비정규직 동지들을 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1년 여의 토론 과정에서 고용안정, 임금인상, 비정규직 연대와 관련한 3가지의 고민이 정리되었다. 우리들의 결론은 “정규직의 고용안정, 임금인상을 넘어서는 운동을 하자. 통신공공성 확보, 통신비 인하라는 사회적 의제를 가지고 사회적 노동운동을 만들어 보자. 그리고 비정규직(불안정 노동자)과 함께하는 노동인권 만들어 보자”라는 것이었다. 2011년, KT새노조라는 이름으로 복수노조를 설립했다.

통신공공성, 통신요금 인하운동은 사회적으로는 많은 지지를 받았으나 KT 내부 노동자들로부터는 “해사 행위를 하는 조직이다, 정치 조직이냐?” 등의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개의치 않고 밀고 나간 결과 통신공공성과 통신요금 인하는 모든 대선 후보들의 공약이 될 만큼 국민적 이슈가 되었고 미약하지만 통신비 인하의 단초가 되었다. 또 인공위성 팔아먹고 가짜 국제전화로 제주 7대 경관 전화 투표 사기를 벌인 이석채 회장 퇴진운동의 승리를 통해, 비록 해고자는 발생했지만 소수노조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KT새노조는 이러한 활동으로, 꽤 큰 사회적 지지를 받으며 실험적인(?) 사회적 노동운동의 길에 성공적으로 한발을 내딛게 되었다.

 

 

KT새노조, KT 계열사 동지들을 만나다

 

그러던 중 2016년 촛불혁명이 터졌다. 대중들의 의식 변화는 KT계열사 노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KT 계열사 노동자들의 임금과 복지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우리들이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계열사 노동자들은 위험하고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되어 있었으며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었다. 심지어 산재의 사각지대가 많았고 임금체불과 성희롱 등의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조사와 활동 과정에서, 여러 계열사 노동자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몇 안 되는 KT새노조 동지들은 각자 임무를 나누어 맡았고, 시간을 쪼개 전국의 계열사 동지들을 만났다. 그렇게 시작된 만남으로 KT스카이라이프지회, KTCS 손말이음센터지회, KTCS지회, KTS 등이 KT새노조와 함께하고 있다.

 

2 KT스카이라이프지회 선전전 [출처 KT새노조].jpg

KT스카이라이프지회 선전전 [출처: KT새노조]

 

- KT스카이라이프지회

KT스카이라이프는 2년 이상 근무 시 정규직 전환을 피하기 위해 쪼개기 계약을 일삼았다. 3년 동안 4번의 쪼개기 계약을 당해야 했던 염동선‧김선호 동지가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노조를 만들자 해고시켰다. 이에 KT새노조와 KT스카이라이프지회는 각종 언론 제보와 국감 투쟁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문재인 후보가 가는 곳을 다 쫒아다니며 손편지를 전달했고 특히 홍대 프리허그 행사에서 김선호 동지가 문재인 후보와 프리허그하며 자신의 상황을 호소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답을 들으며 투쟁의 호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복병은 KT스카이라이프 정규직 노조였다. KT 사측은 원만한 문제 해결 의지를 보였으나, 오히려 정규직 노조가 KT에 경영 간섭하지 말라는 요구의 외피를 쓰고 사실상 두 동지의 정규직 전환을 막았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 소속인 KT스카이라이프노조에서 두 동지의 복직에 반대하는 전 조합원 서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참으로 막막했다. 정규직 전환과 복직이 해결되는가 싶었는데 정규직 노조의 반대로 다시 긴 투쟁이 예고됐다. 그러나 두 동지는 포기하지 않고 낮에는 전국공무직노조 상근활동가로, 저녁에는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꾸려 나갔고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투쟁을 이어 나갔다. 그러던 중 2018년 5월 8일 김선호 동지가, 6월 1일 염동선 동지가 정규직으로 전환되어 스카이라이프로 출근을 시작했다. 숙제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 두 동지는 오늘도 힘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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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손말이음센터지회 창립총회 [출처: KT새노조]

 

- KT손말이음센터지회

어느 날 긴 머리에 여리디 여려 보이는 여성 한 분이 찾아 왔다. KTCS 소속의 손말이음센터는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외주를 받아 청각‧언어 장애인 대상으로 문자 또는 수화로 비장애인들과 통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통신 중계 일을 하고 있는데, 내부에 문제가 많으니 노동조합을 만들게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실태조사 및 조합원 면담을 했는데 아직도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책상과 책상 사이는 40cm가 조금 넘어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열악한 노동 환경이었다. 거의가 최저임금인데다 체불임금도 발생하고 있었다. 많은 중계사들이 현장을 떠나고 있어 적정 인력 관리도 안 되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성희롱 및 음란중계로 인해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이 최악의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이용득 의원실과 사회활동가와 노동자 심리치유 네트워크 ‘통통톡’이 공동 실태조사를 했는데 70%의 노동자가 사적 만남을 강요 받고 80% 이상의 노동자가 신체 노출을 요구하는 음란 중계에 노출되어 있었다. 현재는 5명의 조합원이 정신과 상담치료를 받고 있고 1명의 노동자는 정신과 산재를 받고 치료 중이다. 지금은 문제의 센터장 징계와 발령, 한국정보화진흥원으로 직접고용 전환을 협의 중이다.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더미 같지만 조합원들이 한 명씩 늘고 있고 조합원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특히 타 노동조합 조합원들에게 수화를 가르치며 연대를 넓혀가고 있다.

 

4 KTS 기자회견 [출처 KT새노조].jpg

 KTS 기자회견 [출처: KT새노조]

 

- KTS좋은일터만들기운동본부

 

KTS는 인터넷 일반전화 등을 가설 또는 AS하는 현장 조직이다. 종사자 2,100여 명 중 조합원이 1,490명에 관리자들이 600명 이상으로 엄청난 노무관리가 일상이고 현장에 대한 불만도 많은 곳이다. KTS좋은일터만들기운동본부를 만들어 건강한 노동조합을 만들어 보겠다는 몇몇 동지들이 모여서 공부하고 토론하던 중, 2017년 11월 말 KTS 남부 선거에 출마를 결의하고 치렀다. KT의 노무관리는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각종 부당노동행위와 선거 개입이 있었고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노동행위로 판정했다.

KTS 노동자들은 같은 일을 하는 희망연대노조 조합원들보다 1.8배 더 일한다. 토요일도 근무하고 일요일은 격주로 쉰다. 이제는 주당 52시간 근무로 조금 더 쉴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그러나 각종 산재에 노출되어 있다. 고객에게 칼 맞아 죽고 전봇대에서 낙사하는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고,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KTS좋은일터만들기운동본부는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한 상태이지만 외주화 반대와 표적징계 발령 철회 등을 요구하는 1인시위도 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아직은 그 힘이 미약하지만 안전하게 일하고 일한 만큼 받는 좋은 일터를 반드시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비정규직 동지들과 더불어 치유되고 성장하는 중

 

KT새노조는 2011년 조합원 10명으로 출발해 현재 정규직 30여 명이 되었다. 당연히 전임도 없고 사무실도 없다. “소수노조로 뭘 할 수 있을까?”, “현장을 포기한 거다”, “1사 1노조 원칙을 포기한 분열적 행위다” 등의 비판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희망을 이야기한다. KT새노조의 활동, 특히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은 동지들와 조합원들에게 받았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되기도 했다. 물론 가지 않은 길을 가야하기에 부족함이 드러나고 모르는 길을 가야 하기에 두렵다. 실수도 한다. 매일 실수하고 매일 성장한다. 그리고 매일 넘어진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팀추월 게임과 같다. 함께 똘똘 뭉쳐 함께 결승점을 향해 나아간다. 누구 하나 동료를 버리고 앞으로 달려 나가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맨 앞에서 바람을 맞으며 싸워내고 어떤 사람은 맨 앞에 나선 동지 뒤에서 밀어주고 어떤 사람을 뒤에 처진 사람이 더 처지지 않도록 붙잡아주고 너무 힘들어 쉬고 싶으면 괜찮으니 내가 앞으로 가마 내 뒤로 쉬라고 도닥이는 게 노동조합이고 동지다.

8년 전 상처 많고 지쳐 있던 KT새노조 동지들은 지금 없다. 뭔가를 계속하자 하고 왜 이것밖에 못하냐고 한다. 작은 잘못의 지적에도, 어렵지만 인정하고 머리 숙일 줄 안다. 그래서 계열사 동지들과의 조직화 과정이 KT새노조 동지들에게는 치유이고 성장이다. 감사하고 벅차다. 그래서 고맙다. 이 모든 것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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