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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정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전략과 실천

 

창작노동도 노동이다!

- 웹툰‧웹소설‧일러스트 창작노동자를 대변하는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하신아 (웹툰/웹소설 창작노동자,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부지회장)

 

 

“2019년에도 웹툰 원작 드라마‧영화 봇물”, “네이버 웹툰 작가 평균수입 연 2억 2천만 원 ‘대기업 임원급’”, “요즘 신입 웹툰 작가들의 수입은 대기업 초봉 수준이다”, “’빌딩’ 살 수 있을 만큼 벌었다”, “웹툰 작가 복지 확대… ‘정기 건강검진‧출산선물’도”

연일 신문 방송을 장식하는 내용이다. 방송만 보면 웹툰 작가는 꿈의 직업이다. 자유롭게 일하며 명성과 돈을 얻을 수 있으며, 플랫폼들이 작가 복지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니, 이만큼 좋은 직업이 없다. 화려한 말잔치 속에 하루 평균 12시간 이상 일한다는 창작노동자들의 비명, MG(Minimum Guarantee: 미니멈 개런티)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제도 속에서 임금이 아니라 대출금을 받고 있는 창작노동자들의 현실은 가려진다. 같은 플랫폼에서 웹툰과 함께 서비스되고 있지만, 웹소설과 일러스트는 관심조차 받지 못한다.

 

 

압정의 하단부

 

디지털콘텐츠 창작노동자의 현실은 거꾸로 뒤집힌 압정과도 같다. 언제 사람의 발바닥을 찌를지 모르는 압정이다. 방송에 나오는 ‘잘 나가는 그들’은 압정의 뾰족한 침 끝에 올라선 자들이다. 대다수의 웹툰, 웹소설, 일러스트 노동자들이 압정의 하단부에 깔려 신음할 때, 장밋빛 환상을 대중에게 뿌리며 현실을 왜곡한다.

현실은 이렇다. 2018년 콘텐츠진흥원에서 실시한 ‘만화‧웹툰 작가실태 기초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일 평균 노동시간 10.8시간, 주 평균 노동일수 5.7일, 주 평균 노동시간 61.56시간. 이 중 하루 12시간 이상 일한다는 응답자가 45.3%다. 대다수의 웹툰 창작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수면시간과 식사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일하고 있다는 의미다.


자료1_웹툰작가 하루 평균 창작 활동시간.jpg

 

자료2_웹툰작가 수입.jpg

 

자료3_웹툰작가 창작활동 비용.jpg

 

그렇다면 돈은 얼마나 벌고 있을까? 68.7%에 해당하는 만화‧웹툰 작가들의 2017년 연간 총 수입이 3천만 원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24.7%는 연간 1천만 원 이하로 벌고 있다고 한다. 노동시간 대비하여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보수를 받고 있다. 그런데 연 평균 창작활동 비용은 1,127만 원가량이다. 도구, 장비 구입, 보조인력 인건비, 작업실 대여료 등을 포함한 값이다. 실질적으로, 버는 돈 대부분을 다시 비용으로 쓰고 있는 셈이다. 그보다 더 나쁜 것은, 대다수가 그 대가를 ‘고료’가 아니라 ‘MG’로 지급받고 있다는 점이다. 


 

임금이 아니라 빚

 

MG, 미니멈 개런티란 유료플랫폼에 수익 분배 계약을 맺고 연재하는 창작노동자들이 낮은 수익을 올리더라도 최저 수익, 평균 200만 원을 지급한다는 시스템이다. 일견 창작노동자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이와 같다.

창작자는 플랫폼과 5:5로 수익을 나누기로 했다. 얼마의 수익이 날지는 모른다. 플랫폼은 완성원고를 받아 서비스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200만 원의 MG를 창작자에게 지급한다. 자, 이 달의 수익이 400만 원 났다고 치자. 창작자는 얼마를 분배받을 수 있을까?

답은 0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미 지급된 200만 원을 제하고, 추가 수익 200만 원에 대해서 50%인 100만 원을 창작자가 받아야 한다. 그러나 플랫폼의 논리는 이러하다.

“너와 나는 대등한 독립사업자로서 수익 분배 계약을 맺었고, 나는 너의 작품을 유통하는 플랫폼에 불과하다. 계약에 따라, 나는 50%의 수익을 가져가야 한다. 너는 이미 200만 원을 가져갔다. 200만 원을 50%라고 보았을 때, 나도 200만 원을 가져간 다음부터 진정한 수익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이 달에 난 수익이 390만 원이라면? 플랫폼은 주장한다.

“나는 너보다 10만 원을 덜 가져갔다. 내가 손해를 보고 있다. 너는 MG도 채우지 못하는, ‘저수익 작가’다. 우리는 잘 팔리지 않는 너를 굳이 연재 시키느라 큰 희생을 치르고 있다. 감사하라.”

현실은 이보다 가혹하다. 대다수의 플랫폼이 창작자 대 플랫폼의 수익분배 비율을 3:7로 잡고 있다. 월 200만 원의 MG를 받았다면, 그 작품은 월 667만 원의 수익을 올려야만 한다. 668만 원의 수익을 올려야, 작가는 3천 원을 나누어 받을 수 있다. 아, 원천징수 세금 3.3%를 떼고.

 

 

1 MG제도.jpg

 

 

갑들의 착취는 끝이 없다. 채우지 못한 수익을 다음 달 수익에서 제하는 ‘누적 MG’ 제도가 등장했다. 200만 원 MG 5:5 계약에서 이 달에 390만 원밖에 수익을 올리지 못했다면, 다음 달에 올려야 할 수익은 410만 원이다. 작품 연재가 종료될 때까지 계속 그 수익을 채우지 못했을 때, 다음 작품에서도 채워야 한다는 것이 ‘작가 MG’ 제도다. 한 작가가 채우지 못했을 때, 그 부족분을 같은 에이전시에 소속된 모든 작가들의 공동 책임으로 돌린다는 ‘브랜드 MG’ 제도까지 나타났다. 창작자들은 받은 MG의 두 배, 보통 세 배를 벌어주지 않는 한, 플랫폼에 묶인 노예가 된다. 플랫폼은 결코 손해를 보지 않는다. 모든 부담은 창작자들에게 돌아간다. 갑자기 일방적으로 연재 중단을 당해도, 전송권을 돌려주지 않는다. 그들에게 창작노동의 결실인 ‘작품’은 이미 값을 지불하고 산 ‘상품’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노동자가 아니다. 우리는 동등한 사업자다.”

이것이 그들의, ‘전가의 보도’다.

 

 

어둠 속에서 손을 맞잡다

 

그나마 웹툰 창작노동자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웹소설 창작자들은 아예 MG나 선인세조차도 받지 못하고 ‘언젠가 수익이 날 때까지’ 무료로 연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웹소설 표지와 삽화를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최저가에 저작권을 넘기고 있으며, 서지정보에 이름조차도 명기되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페미니즘 서적을 읽은 여성 가수의 트윗을 리트윗했다는 이유로 악플에 시달리고 부당해고를 당한다. 갑은 을들끼리의 싸움을 조장한다. 글 작가와 그림 작가, 웹소설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 사이에서 이간질을 한다. 우리는 뭉쳐야 했다. 이기기 위해. 세상을 좀 더 낫게, 혹은 덜 나쁘게 하기 위해.

   

전국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는 2018년 12월 출범했다. 나름의 준비를 거쳐 2월, 출범 선포와 가입 유도 홍보에 나서자 하루 만에 100여 명의 창작노동자가 가입했다. 지금도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곧 전체 업계인구 대비 10%의 조직률을 달성할 수 있을 듯하다. 그만큼 창작노동자들이 절박한 상황이었다는 뜻이다.

이 문제에 대해 대표성을 갖고 논의할 만한 상대를 찾던 행정부와 입법부가 면담을 요청하고 있다. 밀려드는 외부 연대와 내부 조직 정비, 그 와중에 터지는 각종 갑질 피해 사례에 대처하기 위해, 지도부는 인원을 보충하고 매일 회의를 거듭하며 달리고 있다. 우리의 지도부는 이미 노조 결성 전부터 레진코믹스불공정행위규탄연대와 여성일러스트레이터연대 활동을 통하여 수차례 갑들과의 전투에서 이겨 온 사람들이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누구도 허울 좋은 작가라는 이름 아래 착취당하지 않는 세상이다. 창작노동이 노동으로 인정받는 세상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크고 작은 승리를 쌓아나갈 것이다. 그 승리는 다만 창작노동자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승리가 될 것이다. 전여노조 디콘지회의 활약을, 지켜봐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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