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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 지역에서 철폐연대 동지들은

 

소수노조 상관없다, 현장권력은 우리에게!

- 대한항공비행기청소노동자 총파업투쟁에 부치는 반성문

정찬무 (공공운수노조 조직쟁의부실장, 철폐연대 후원회원)

 

 

십수 년 전 구로동의 한 노동상담소에 걸려 있던 액자에 이런 글귀가 적혀있었다.

“보일락 할 때가 눈머는 때라, 온몸으로 보거라”

세계 변혁의 포부도 없으니, ‘보일락’ 할 때가 내게 있을 리 만무하지만, ‘눈머는 일’만큼은 늘 경계해야겠다는 주의를 심어준 글이었다. 현장을 접고 올해로 만 7년을 산별노조의 상근간부로 활동하면서, 의외로 ‘정통관료’로서 상당한 자질이 있다는 슬픈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덜 아둔하고 좀 깨어 있는 활동가이기 위해 노력한다고 자위하여 왔는데, 그 자위는 어디까지나 자위인 것뿐임이 이번 대한항공비행기청소노동자 파업에서 확인되었다. ‘보일락 하는 것도 없이 눈머는 일’이 어떤 것인지 본보기를 만들었다고나 할까.

 

지난 9월 17일, 53일간의 총파업투쟁을 마치고 추석 명절을 쇤 비행기청소노동자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 동지들이 현장으로 복귀하였다. 16일 최종조인을 한 노사합의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총파업 직전 현장에서 벌여온 준법투쟁을 빌미로 한 1억 2천만 원의 손배가압류 철회, 복수노조 제도 악용과 손배가압류 등 노조파괴 행위 당사자인 공항소장의 교체, 공항소장 외에 부당노동행위·직장 내 괴롭힘을 자행한 당사자가 검찰 기소되는 시점에서 회사징계위 소집, 파업을 이유로 한 민·형사상 불이익 금지, 그리고 2019년 임금과 정년자에 대한 촉탁직 고용보장이 골자이다. 복귀한 현장은 또 다른 투쟁의 장이 되겠지만, ‘손배 철회와 노조파괴 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을 묻고’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7월 말 총파업에 나서면서, 이번 투쟁이 2018년도 1월 파업보다 훨씬 길어질 것이라는 점을 조합원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비행기청소노동자들의 원청인 한국공항(주)의 관리하에 진행된 노조파괴 행위는 ‘교섭 지연 → 친사용자 노조 결성 → 교섭지위 무시하고 우대교섭 진행 → 민주노조 조합원 인사불이익 및 징계 남발 → 원청 지휘하에 손배가압류 청구 → 교섭대표 권한 박탈 → 현장 탄압’의 순서로 제도를 악용한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그대로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진그룹의 계열사이며 대한항공의 자회사인 한국공항(주)는 대한항공으로부터 비행기가 뜨고 내리기 위해 필요한 항공기 지상조업 업무 전체를 도급받아, 일부 업무를 자신들이 수행하고, 나머지 업무를 비행기청소노동자들의 회사와 같은 12개의 (재)하청업체를 통해 작업하는 항공운수보조업을 하는 회사이다. 이 원청은 매분기마다 12개의 협력사를 소집해 자신들이 주관하는 회의를 진행하여 왔다. 가관인 것은 협력사 회의가 원·하청의 소통을 통한 업무효율성이나 안전 강화 등을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청에 대한 노무관리를 하는 자리였다는 게 확인됐다는 것이다. 2018년도 4/4분기와 2019년도 1/4분기의 회의 자료에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의 동향을 보고하고, 친사용자 노조의 조합원 수가 몇 명이며, 민주노조를 상대로 손배가압류를 청구할 예정임이 적시되어 있었다. 실제로 2019년 3월에 5천 2백만 원의 1차 손배가압류가 진행되었다. 이렇게 원청의 개입과 제도 악용을 통한 노조파괴를 확인하고 있었으니, 총파업이 간단하지 않을 것임을 모두 알고 있었다.

 

총파업에 나서기 전에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는 간부들을 중심으로 대한항공 본사 앞 농성투쟁에 돌입하였다. 4월 17일 원청 개입 노조파괴를 규탄하며, 4명의 간부가 삭발을 하고 대한항공이 사태 해결에 책임질 것을 요구하였다. 이미 현장에서는 2018년도 말부터 쟁의지침에 따라 ‘중량물’ 조업 기준 준수, ‘중식시간 등 휴게시간’ 준수 등 준법투쟁에 돌입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현장에서 ‘작동한다’는 것을 확인한 원·하청은 공식적으로는 무대응이었으나, 현장에서는 지속적으로 민주노조 개별조합원들에 대한 회유와 괴롭힘, 징계 남발을 이어가고 있었다. 손배가압류조차 노조 또는 지부에게 책임지운 것이 아니라 12명의 지부 간부 개개인의 통장에 대해 압류조치를 하였는데, ‘죽든 말든’ 최저임금 노동자 개개인의 목줄을 옥죄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400명 직원의 과반을 훌쩍 넘겼던 민주노조의 조합원 수는 친사용자노조와 역전이 되었고, 총파업 초반이던 8월에 대표교섭노조의 지위도 빼앗기고 말았다. 이러니 총파업을 선언하고 거리로 뛰쳐나온 조합원들의 울분과 각오는 남다른 것이었다.

 

총파업 2주가 지나자, 회사로부터 손배가압류 철회의 이야기가 나왔다. 허나 조합원들에게는 당연한 원상 회복에 불과한 것이었고, 논의를 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한 달이 지나면서 비행기청소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는 남현영 노무사를 통해 한진그룹사 쪽의 중재가 전달되어 왔다. 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가해진 손배가압류 철회, 노조파괴와 괴롭힘에 대한 책임 조치, 정년 등 2019년 임금요구 성실교섭의 세 가지 요구를 전달했다. 원청과 대한항공은 사실상 책임당사자였으나 그룹사의 중재에 응했고, 저들 내부 겹겹의 논의가 어찌되는지 모르나 말단의 하청회사(청소노동자의 사용자)가 교섭안을 들고 나왔다. 길게 진행하지 않은 논의에서, 앞서 이야기한 최종 합의의 주요 골자가 정리되었고, 조합원 보고를 위한 총회가 파업 43일 만인 9월 6일에 소집되었다. 이때만 해도 나는 내가 ‘눈머는 일’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공공운수노조 교육원에서 열린 조합원 총회는 성토대회에 가까웠다. ‘공항소장 교체를 위해 한 달이나 말미’를 줄 수 없다거나 ‘검찰 기소가 되지 않으면 행위자 처벌이 되지 않는 것 아니냐’는 것과 같은 설명과 설득이 필요해 보이는 사안도 있었고, ‘이 참에 하청회사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결정적으로 성토된 사안은 현장 복귀 이후 조업하는 작업조건과 관련한 내용이었다.

총파업에 나서기 직전 쟁의지침에 따라 수행해온 준법투쟁은 ‘중량물 조업 기준 준수, 출근 4시간 이후 중식시간 준수’였다. 이것 중에 출근 4시간 이후 중식시간 준수에 대해 회사는 임의적인 근무시간 변경이라 주장하고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청구한 사안이기도 하다. 반면 준법투쟁을 진행한 업무들은 남녀차별의 근거가 되거나, ‘제 때 밥 좀 먹자’는 조합원들이 현장에서 겪고 있던 어려움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때문에 파업 후 현장에서 준법투쟁으로 시행한 일들에 대한 업무조건을 정돈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해당 사안은 ‘중량물 조업은 희망자에 한하며, 중량물 기준은 5kg으로 하고, 중식시간에 대한 대안은 합의 이후 2개월 내 노사 논의로 대안을 마련한다’는 것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조합원들이 가장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은 5kg이하 물품을 들어야 하는 조업을 한다는 것이었다. 조합원들은 회사가 남녀 임금차별의 근거로 물품 운반 여부를 주장해왔었고, 희망자에 한한다고 했으나 현장에서는 작업을 강요받고 결국 모든 중량물 조업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이야기하였다. 이런 우려 뒤에는 회사의 주장을 인정하고 작업수당을 받으며 물품 운반을 하고 있는 친사용자노조 조합원들과의 현장에서의 투쟁이 있었고, 이를 비열하게 악용하여 현장 분열을 조장하며 민주노조 조합원에게 불이익을 벌여온 사용자에 대한 항의가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현장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5kg’이 과연 중량물인지 여부만 생각했던 것은 한 달을 넘게 파업을 함께하고도 사실상 ‘눈이 멀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쏟아지는 조합원들의 질타에 쩔쩔매면서 문득 깨달았다. 비록 소수노조가 되었으나, 현장에서 떳떳하게, 민주노조의 조합원답게 일하겠다는 각오를 조합원들은 이미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추석을 앞두고 재교섭과 총회가 이뤄졌고, 해당 사항과 관련하여 ‘특정업무’를 제외하고는 조업을 강제하지 않는다는 합의로 조합원들의 추인이 이뤄졌다. 추석을 가족들과 보낸 조합원들은 9월 17일부터 현장으로 순차 복귀하여 업무를 시작했다. 물론 한국의 노동현실에서 교섭권조차 없는 민주노조 조합원들의 현장에서의 생활이 순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원청이 작심해서 벌여온 일의 결과가 이랬고, 원청은 아마도 문제 많은 하청을 정리하고 민주노조의 싹을 아예 도려내려는 시도도 할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 그래도 노조파괴 행위자의 처벌을 만들고 최소한의 업무조건을 확보한 조합원들은 꿋꿋하게 현장에서 버텨나갈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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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23. 대한항공청소노동자 총파업승리를 위한 결의대회 [출처: 공공운수노조]

 

 

끝으로 파업 기간에 있었던 이야기 한 가지를 덧붙인다.

그것은 조합원 실태조사로 확인한 직장 내 괴롭힘의 심각함이다. 파업 2주차에 들어서면서 조합원들을 상대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7월 16일 제도 시행을 앞두고서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실태조사 방법을 활용하여 진행하였고, 그 결과 값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분석하였다. 결과는 심각했다. 직장갑질119가 조사한 결과 값도 우리 사회의 직장 내 갑질 풍토가 이미 만연하고 심각하니,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제대로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괴롭힘 경험’이나 ‘직장 내 괴롭힘으로부터 자신의 안전함’ 같은 문항의 답은 일반 직장인 1000인과 비교하여 무려 3배나 높은 값이 나왔다. 그 결과에 당황했고, 처음에는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에 대해 이해하게 된 것은 2016년에 진행한 금속노조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조사 결과를 보게 되고 나서이다. 창조컨설팅이 개입된 대표적인 노조파괴 사업장인 유성기업의 조합원들은 회사로부터 업무 괴롭힘 경험, 고소·고발 및 인사불이익, 신체적·정신적 건강 악화 등의 항목에서 비행기청소노동자들의 결과 값과 거의 유사한 비율을 기록했다. 노조파괴가 진행된 사업장에서는 일상적인 차별과 배제, 징계와 구조적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서글펐고, 이제 더 이상 이런 폭력이 어느 현장에서도 없기를 바랐다. 부당노동행위와 한 몸통인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일체는 고용노동부에 고발하였고, 해당 건은 수사 중에 있다. 최종합의서에는 이 건이 검찰 기소되면 징계위를 소집하는 것으로 정리되어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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