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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운동을 생각한다

 

국립대병원 직접고용 정규직화 투쟁과 합의의 의미

엄진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1. 자회사 전환 흐름을 막아 세운 노동자들의 투쟁

 

2017년 7월 20일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이 발표된 이후, 공공기관에서의 간접고용 정규직 전환은 자회사 방식의 전환이 확고해지는 듯 했다. 인천공항, 잡월드 등에서 자회사 고용을 막아내지 못하면서 자회사 전환은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흐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 흐름을 멈추어 세운 것은 바로 노동자들의 투쟁이었다.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의 투쟁이 자회사 전환에 맞선 거센 투쟁의 흐름을 만들었고,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이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투쟁했다. 그리고 철도공사의 자회사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자회사의 문제점을 드러내며 투쟁을 만들었다. 앞서 자회사로 전환된 노동자들도 목소리를 내어 자회사의 문제점, 용역과 다를 바 없는 간접고용 상태에 대해 증언하며 자회사 전환이 결코 정규직 전환이 아님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9월 3일, 서울대병원에서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전원 직접고용을 쟁취하는 노사합의가 이루어졌다. 이를 시작으로 10월 22일 경북대병원, 11월 21일 강원대병원 등 연이은 국립대병원에서의 직접고용 합의가 만들어졌고, 현재까지 국립대병원 14개 가운데 7개의 직접고용 합의가 완료되었다. 첫 사례를 연 서울대병원 등 국립대병원 노동자들의 투쟁과 직접고용 합의는 의미가 남다르다. 자회사 전환에 맞서 직접고용 정규직화라는 결과를 이끌어냈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런 결과가 있기까지 외주화에 맞선 투쟁의 역사와 정규직․비정규직이 하나되어 싸울 수 있기까지의 비정규직 조직화와 공동투쟁의 경험, 민주적인 노동조합 운영 등 하나하나 조망되어야 할 것이 많다.

   

 

2. 국립대병원 직접고용 정규직화 합의가 정부 정책에 대해 가지는 의미

 

가장 먼저, 현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대해 가지는 의미를 짚어보려 한다. 정부는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직무급제를 (사실상) 강요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에서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지속가능하고 합리적인 임금체계 설계를 동시에 주문하면서 임금 인상을 억제하도록 했다. 또한 2017년 9월 22일 나온 추가지침에서는 재정부담이 크지 않도록 ‘직종별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으로 임금체계를 설계할 것을 요청, 사실상 저임금을 기반으로 한 직무급을 설계할 것을 권고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자회사 전환이 아니라 직접고용을 하더라도 기존의 정규직과는 구별되는 직제와 임금체계를 가진 별도의 무기계약직 노동자군을 만들라는 주문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서울대병원과 경북대병원 등에서는 차별화된 무기계약직, 차별화된 임금이 아닌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이루었다. 기존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는 기존 직군으로 편제하고, 그렇지 않은 업무는 별도 직군을 신설하되 정규직과 유사한 승진 및 승급체계를 적용하거나 기본급 외 수당과 복리후생을 동일한 기준 등으로 적용하여 차별을 최소화하였다. 당사자들은 완전히 동일한 조건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을 한계와 아쉬움으로 남기기도 하지만, 이 역시 이 투쟁이 끝이 아니라 계속해 권리의 확장과 평등으로 나아갈 것이기에 한계보다는 의미와 성과로 기록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투쟁을 일구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그간 정부는 노동정책에 있어서 노동자 내부의 양극화를 이야기하면서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종종 대립하는 양 당사자로 위치 지웠다. 그러면서 비정규직의 이해를 대변하는 세력이 없다는 전제 하에 정책을 구상하면서, 비정규직의 대변자로 정부 스스로를 위치 지웠다. 정부가 그린 10:90의 구도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세력화나 주체로서의 등장은 없고, 정책 시행에서 정부 주도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그런 정부 정책 속에서는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의 반대편에 세워졌고, 현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규직 노조가 노사전문가협의체에서 한 당사자로 호명되었지만, 이는 ‘노동’의 주체로서가 아니라 대립할 수 있는 이해관계의 한 축으로 간주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정규직 노동조합이 비정규직과 연대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많은 결과의 차이를 불러왔다. 정규직 노동조합은 때로는 자회사 전환을 강하게 주장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하기를 거부했고, 때로는 침묵하는 방식으로 자회사 전환에 동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대병원 등에서의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 구도를 거부하고, 정규직-비정규직이 단일한 주체로 노동자 모두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존재라는 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비정규직 문제를 노동조합 전체의 과제로 삼아 투쟁했고, 그를 통해 정규직-비정규직을 분리 통제하려는 정부 정책에 균열을 내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은 움직였다. 결국 그것이 자회사 전환을 막아낸 가장 큰 원동력이 된 것이다.

 

 

3. 정규직 비정규직의 공동투쟁을 가능하게 한 지난 시간의 투쟁

 

어떻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똘똘 뭉쳐서 흩어지지 않고 정규직화를 위한 투쟁을 해낼 수 있었을까. 많은 노동조합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내부의 갈등을 실제로 겪고 있기도 한데, 서울대병원이나 경북대병원에서는 어떻게 이런 투쟁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오랜 시간 동안 비정규직 확대에 맞서 투쟁해 온 노동조합의 활동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은 이번 합의가 ‘20년 투쟁의 종지부’라고 이야기한다. 외주화에 맞선 투쟁이 20년을 경과했다는 이야기다. 1999년 소아급식 외주화 저지투쟁을 시작으로 외주화 반대 투쟁, 기간제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투쟁, 간병노동자들의 투쟁 등 외주화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해 노동조합은 단 한 번도 이를 외면하지 않았다. 경북대병원 역시 마찬가지다. 1993년 법인화 과정에서 세탁․청소 업무부터 외주화가 시작되었고, 이에 맞선 투쟁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었다. 외주․용역을 투쟁으로 철회시키기도 했고, 기간제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성과도 있었다. 물론 그 시간 동안 늘 승리해 온 것은 아니지만, 외주화 철회와 비정규직 철폐라는 분명한 목표를 노동조합이 놓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당연히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갈등이 없을 수 없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조직하고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에 불만을 느낀 정규직 조합원이 생겨나기도 했고, 정규직-비정규직이라는 차이가 낳는 경험의 차이는 늘 노동자들이 한곳을 같이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다른 시각으로 비추기도 했다. 그래서 당연히 노동조합도 많은 굴곡을 겪어 올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끊임없이 현장의 조합원들과 소통했다. 교대제로 돌아가는 일터에서 조합원들을 일일이 만나면서 토론하고 설득하는 과정은 상상을 초월하는 인내를 요구한다. 전 조합원과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모두 토론을 하는 데는 수개월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고, 그렇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 경험이 하나씩 쌓여왔다. 서울대병원, 경북대병원의 원․하청 공동파업은 그런 시간이 만들어낸 민주노조 운동의 소중한 성과이다.

이러한 성과를 만들고 있는 곳은 국립대병원뿐만이 아니기도 하다. 도시철도나 서울교통공사, 철도노조 등에서도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의 갈등을 겪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지속적인 논의와 토론, 설득의 과정을 통해 상황을 극복하고 있다. 함께 같은 소속이 되어 일을 하면서, 또 함께 노동조합을 운영해 나가면서 경험의 차이를 극복하고, 하나가 되어 간다. 여전히 반대가 있더라도 토론하고, 합의점을 찾기 위한 노력을 수행하면서 노동조합을 이끌어가고 있다. 노동자들은 때로 갈등하고 대립하지만, 노동조합이 그것을 핑계 삼지 않고 단결을 위한 노력을 이어간다면 노동자는 계속해 단결과 연대의 폭을 확장해가는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당사자들의 움직임은 더 말할 것 없이 중요하다. 정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책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서울대병원과 경북대병원의 경우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파업을 비롯한 투쟁을 주체적으로 전개했다. 원청 노동자들이 마련해 준 교섭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라, 교섭과 투쟁 모든 장면에서 주체로 등장했고, 정규직 노동자들과 공동파업, 공동투쟁으로 함께 움직였다. 정규직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문제이기에 스스로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보다 잘 인식하고 있었고, 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이를 외면하지 않고 정부 정책의 한계를 넘어 외주화된 업무의 직영화로 나아가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로 움직였다. 노동조합이 비정규직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주체가 되어 함께 싸우고, 그 힘으로 단결과 승리를 이끌어 낸 것이다.

 

 

4. 많은 투쟁의 승리로 확산되도록 하기 위한 과제

 

서울대병원이나 경북대병원과 같은 국립대병원의 사례를 접할 때 많이 듣는 이야기는 “국립대병원이라서”, “병원이라는 특성으로”, “서울대병원이니까” 등이다. 해당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활동을 얼마나 ‘빡세게’ 해 왔는지를 잘 아는 이들일수록 더 그렇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사례가 다른 모든 사업장으로 확산되고, 다른 투쟁에서의 승리로 확산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예외적인 부분에 집중하기보다 “노동자의 투쟁이라면 이러해야 한다”는 기본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보다 중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 승리의 주요한 요인은 노동자들의 단결과 그런 단결이 가능하게 ‘노동조합의 운영구조가 살아있도록’ 해 온 부단한 노력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서울대병원 등의 투쟁은 비정규직 철폐 투쟁에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민주노조 운동 전체에서 가지는 의미 또한 크게 새겨지고 확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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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6. ‘서울대병원․경북대병원 간접고용 비정규직 직접고용 정규직화 의미와 교훈’ 토론회 현장 [출처: 철폐연대]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시선이 이 투쟁을 향해 있었다. 자회사 전환 당시에 투쟁을 만들어내지 못했던 노동자는 자회사에 맞선 투쟁들을 보면서, ‘우리도 이제부터 시작해야지요’라는 결심을 내보인다. 노조 활동 1년차 비정규직 노동자가 앞서 투쟁하는 노동자들로부터 가야할 길을 얻고 그 길로 나아가려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시선을 아우르며, 용역업체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 자회사 간접고용을 막아낼 투쟁의 전선을 형성해내는 것은 여전히 ‘아직’이다. 지난해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천의 한국도로공사 본사 농성에 돌입했을 당시, 현장에서 노동자들은 절절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 투쟁으로부터 자회사에 맞서는 투쟁의 전선을 형성해 달라고 민주노총을 향해 요구했었다. 톨게이트뿐만이 아니다. 가스공사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 정부출연연구기관 노동자들 역시 자회사 전환에 맞서서 싸우고 있으며, 3단계 정책 단계에 들어서서 민간위탁으로 분류되었던 노동자들이 다시 자회사로 내몰릴 위기에서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는 ‘아직’이어서는 안 된다. 이 투쟁들을 엮고 엮으며, 이 가운데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을 외면하지 않도록,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동자에게 애원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주체로 싸울 수 있도록 더 큰 투쟁의 전선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것이 지금, 노동운동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지워진 과제이고 숙제이며, 서울대병원과 경북대병원 노동자들의 투쟁이 열어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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