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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정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전략과 실천

 

밖으로는 경제보복, 안으로는 노조파괴

일본 자본 히타치케미컬의 노조고사 작전

정현철 (경기금속지역지회 수석부지회장)

 

 

2019년 3월 31일, 한국히타치화성전자재료(이하 회사)에 다니는 생산직 노동자들이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금속노조 경기금속지역지회 한국히타치화성분회(이하 노조)는 “회사의 일방적 지시와 노동자들의 의견이 무시되는 현실을 극복하고, 노동자가 존중받는 회사를 만들고자” 노동조합의 문을 두드렸다.

안산 반월공단에 위치한 회사는 전자기판 관련 소재를 납품하는 일본계 기업이다. 지난 1995년 일본 굴지의 재벌인 히타치그룹에 의해 설립되어 매출액 1,581억 원에 당기순익 50억 원이 넘는 알짜배기 회사로 성장했다. 지난 회기에는 당기순이익보다 많은 72억 원이 주주배당 형식으로 모기업인 일본 히타치케미컬로 넘어갔다. 회사가 올린 영업이익이 국내 투자나 고용으로 이어지지 않고 전액 일본으로 흘러갔다.

 

현장은 인원이 적어 노동강도가 높았다. 노동자들과 소통도 부재했고 회사는 노동자 의견을 무시했다. 이에 대한 개선과 회사 측에서도 동의하고 있는 불필요한 주야간 교대 근무를 없애고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하자는 안을 주요한 요구로 회사에 교섭을 요청했다.

하지만 회사는 처음부터 노조를 인정하지 않았다. 교섭창구단일화 과정을 마친 후 교섭을 요청한 노조에 회사는 “회사 밖에서 근무시간 외에 교섭하자”는 답변을 보내 왔다. 어디서 많이 보던 익숙한 풍경이었다. 2016년 촛불항쟁 이전에 회사에 노조가 생기면, 많은 회사들은 일단 노조를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대해 그러했다. 그 대표적인 양태가 “회사 밖에서, 근무시간 외에 교섭하는 것이 우리 회사의 ‘원칙’이다”는 주장이었다. 현장에 노조를 발붙이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 뒤의 모습은 대체로 불성실교섭(노조요구안 수용 불가), 파업, 직장폐쇄로 이어지는 노조파괴 시나리오였다. 일본 자본 한국히타치화성전자재료도 똑같은 수순을 밟고 있다.

 

 

2 [출처 필자].jpg

[출처: 필자]

 

 

노조 설립 이후 한 달이 지난 5월 8일에야 겨우 회사와 대면할 수 있었다. 교섭 장소는 호텔이었다. 회사는 노조와 교섭이 아니라 ‘세미나’, ‘HR회의’ 등의 이름으로 호텔 회의실을 대관했다. 한 번 대관에 수십만 원이었다. 2주 1회(1회당 4시간), 노사가 제안한 장소에서 번갈아가며 교섭을 하기로 하고, 8월 8일까지 7차례에 걸쳐 교섭을 진행했다.

회사는 불성실교섭으로 일관했다. 교섭안을 제시하기로 한 날 교섭안을 제시하지 않고, 정작 제출한 교섭안은 최저수준이었다. 노조의 요구는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였다. 8월 8일 교섭에서 사측의 교섭태도는 최악이었다. 전차 교섭에서 이미 합의한 사항을 번복하는가 하면, 교섭위원들은 “결정권한이 없다”면서 결정을 미루었다. 이미 합의된 사항도 “결정권한이 없다”고 하다가 노조에서 반발하자 마지못해 수용하였다. 그동안 결정권한도 없이 형식적 교섭만 해 온 것이다.

 

8월 19일 경기지방노동위원회(이하 지노위)는 조정중지 결정을 내렸다. 지노위는 “회사 내 교섭, 조합비 일괄공제(조합원의 동의를 얻어 조합비를 월급에서 공제하여 노조 통장에 입금)를 받아들이면 조정기간을 연장하겠다”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이 정도는 노동조합을 인정하는 최소한의 요구이므로 회사에서 수용하면 파업을 하지 않고 노사 간에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회사는 거부하였다. 노조 사무공간, 활동시간 보장, 조합비 공제 등 노동조합 활동 일체에 협력할 수 없다며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노조는 8월 20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거쳐 21일부터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파업 3일째인 8월 23일, 노조 조합원들은 30도가 넘는 불볕더위를 피해 이전부터 사용하던 회사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자 회사 총무부장 및 대표이사는 “휴게실에서 나가라”고 했다. 휴게실은 쟁의행위 전부터 조합원들뿐만 아니라 생산직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사용하던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을 조합원들만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나가라”고 하는 것은 조합원들에 대한 차별이며 부당노동행위다. 또한 휴게실에 있는 정수기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상황에서, 한여름 30도가 넘는 더위를 피해 휴게실을 찾은 조합원들에게 대표이사가 “나가라고 했는데 왜 안 나가느냐”고 한 것은 반인권적 행위이며,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직장 내 괴롭힘이다. 그리고 대표이사가 “다음 카드 알지. 직장폐쇄” 운운한 것은 회사가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성실하게 교섭하기보다는, 그 악명 높은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가지고 노조 파괴공작을 시행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했다.

 

결국 9월 20일 열린 교섭에서는 그동안 합의했던 내용도 모두 뒤집는 안을 가지고 나왔다. 해볼 테면 해보라는 것이다. 일본대사관 앞 일인시위, 납품업체 투쟁, 회사 앞 집회, 국회 기자회견, 사장집 시위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투쟁하고 있다. 회사가 조합원들을 자극하고 단련시키고 있다. 조합원들은 줄기차게 노조 인정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12월 말이면 전면파업 130일이 된다. 많이 힘들지만 ‘회사보다 하루라도 더 버티면 승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이겨내고 있다. 조합원들간의 동지애와 의리, 지역의 연대도 큰 힘이 되고 있다.

 

2016년 촛불항쟁 이후 한국 사회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노동현장에도 촛불의 영향은 깊숙이 끼쳤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 사회’ 표방도 노동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숨죽였던 노동자들이 기지개를 켰다. 반월시화공단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5년 이후 단 한 건도 없던 노조 설립이 2016년 말부터 우후죽순처럼 일어났다. 반월시화공단에 16개의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이 새로 만들어졌다. 특징적인 것은 사용자의 저항이 적어진 점이다. 일단 노동조합은 인정하고 세부적인 내용을 조율하는 방식으로 변했다. 노동조합 자체를 부정하던 촛불 이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던 것이 한국히타치화성전자재료에서 탁 막혔다. 이것이 노조혐오가 있는 일본 자본 탓인지, 대표이사 개인의 일탈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노동존중 사회’를 표방했던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 친기업 편향으로 후퇴하면서 나타난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태도가 그러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새로운 노조를 안착시키는 데 있어 고용노동부의 역할이 매우 컸다. 처음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충격을 받는다. 고용노동부가 그 충격을 완화시키는데 많은 영향을 끼친다. 고용노동부는 노사 간의 큰 마찰(파업) 없이 노동조합을 안착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 고용노동부는 기계적 중립을 지키고 있다. 이 모습 역시 촛불 이전 행태의 데자뷔다. 눈치 빠르고 감각적인 사용자들은 정부의 태도에 민감하다(이것은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합리적 노사관계, 상생의 노사관계는 사용자의 막무가내 앞에서 막힌다. 노동조합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촛불항쟁 이전으로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퇴행이다. 결국 이 퇴행을 막아내는 힘도 노동자에게 있다. “단결하는 노동자는 패배하지 않는다”는 구호를 등에 새기고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가는 노동자의 발걸음을 막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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