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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이슈

■ 법률 포커스

 

노동자의 알 권리를 파괴하는 산업기술보호법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임자운 (반올림 활동가, 법률사무소 지담 변호사)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

지난해 8월, 국회가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산업기술보호법)에 새로 추가한 조항이다. 이로써 이 법이 시행되는 올해 2월부터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사업장에 관한 정보는 대부분 은폐될 전망이다. 설령 그 사업장의 유해물질 노출에 관한 정보라도, 그래서 노동자의 생명․건강 보호를 위해 마땅히 공개되어야 하는 정보라도 마찬가지다. 일 안 하기로 소문난 20대 국회가 이런 법은 또 뚝딱 만들어냈다.

종래 산업기술보호법은 “산업기술의 불법 해외 유출”을 방지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2006. 10. 27. 제정이유). 그런데 언젠가부터 삼성은 이 법을 반도체 공장의 유해한 작업환경을 은폐할 목적으로 악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목적에 맞게 법이 바뀌었다. 이 글에서 그 과정을 짚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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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0. 산업기술보호법 개악 규탄 기자회견, 발언하는 필자 [출처: 생명안전시민넷]

 

 

 

삼성전자 부사장 “국가기밀 보호법에 의해 판단한다”

 

산업기술보호법이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16년 3월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삼성 반도체 기흥 공장 <안전보건 진단 보고서>에 대한 정보공개 소송에서다. 고용노동부가 공장의 안전보건 관리 실태 전반을 점검한 보고서였다. 직업병 관련 산재소송에서 법원은 이 보고서의 제출을 거듭 요청했었다. 하지만 삼성과 고용노동부는 삼성의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제출을 거부했다. 그래서 반올림은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이 보고서에 대한 정보공개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의 ‘영업비밀’ 주장이 법률적으로 옳은지 따져보자는 것이었다.

소송 중, 고용노동부가 난데없이 산업기술보호법을 꺼내들었다. 요컨대 삼성 반도체 기흥공장은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라 지정된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관련 정보가 기재된 이 보고서는 공개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 황당한 주장의 출처는 그해 가을 국회에서 드러났다.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삼성전자 정재륜 부사장이 증인으로 불려나왔다. 산재소송에서 벌어진 삼성의 자료 은폐 문제 때문이었다. 더불어민주당 강병원․신창현 두 의원은 삼성이 지금껏 소송에서 은폐한 자료들이 어째서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정 부사장은 이렇게 답했다.

“(무엇이 영업비밀인지는) 저희가 판단하는 게 아니라 국가기밀보호법에 의해 판단합니다. 40나노 이하 3D 적정 제품에 관련된 공정과 거기에 관련된 화학약품 모두가 국가기밀보호법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 2016. 10. 13. 국회 회의록

두 가지가 틀렸다. 첫째, ‘국가기밀보호법’이란 법은 없었다. 산업기술보호법을 잘못 얘기한 것이었다. 둘째,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르더라도 그 자료들이 곧 삼성의 영업비밀이 될 수는 없었다. 이 법은 기본적으로 어떤 자료의 공개여부에 관하여 정하는 법이 아니었다. 더욱이 법원의 자료제출 요청을 거부할 때 근거로 삼을 수 있는 조항은 이 법 어디에도 없었다. 공장 작업환경의 유해성에 관한 자료들을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라고 주장하는 것도 억지였다.

 

 

법원 “사람의 생명․건강에 관한 정보는 공개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황당한 주장은 이후 산재소송, 정보공개소송에서 계속 나왔다. 이를테면 2017년 1월, 삼성은 어느 백혈병 사망 노동자의 산재소송에서 법원이 작업환경 관련 자료에 대한 문서제출 명령을 내리려 하자,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라 해당 자료에 대한 제출의무가 면제된다”고 주장했다.

한때 이 주장은 소송에서 효과를 보기도 했었다. 수원지방법원은 2017년 1월, 앞서 언급한 <안전보건 진단 보고서>에 대한 공개소송에서 “삼성전자 사업장은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른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사업장이므로 다른 기업에 비해 영업비밀을 넓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며 보고서의 ‘총평’ 부분을 제외한 모든 내용을 비공개하도록 했다(수원지방법원 2017. 3. 15. 선고 2015구단32302 판결).

 

하지만 다행히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서울고등법원은 같은 해 10월, “삼성전자 사업장은 국가핵심기술 보유 사업장으로서 영업비밀을 넓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하면서도 “그러나 근로자 및 지역주민의 생명 건강 보호를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에 대한 알 권리는 삼성의 영업비밀에 대한 이익을 앞선다”며, 수원지법의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안전보건 진단 보고서> 내용 대부분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서울고등법원 2017. 10. 13. 선고 2017누41988 판결). 정보공개법의 명문규정(제9조 1항 7호 가목. 사람의 생명․건강 보호를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는 기업의 영업비밀에 해당하더라도 공개되어야 한다)에 따른 당연한 판결이었다.

 

그 이듬해 2월, 대전고등법원도 가장 논란이 컸던 삼성 반도체 공장 <작업환경 보고서>(산업안전보건법 제42조에 따른 ‘작업환경 측정 결과 보고서’) 공개소송에서 같은 정보공개법 규정을 적용하여 보고서 대부분을 공개하도록 했다(대전고등법원 2018. 2. 1. 선고 2017누10874 판결). 그러자 고용노동부도 입장을 바꿨다. 이 판결들의 취지를 수용하여 앞으로는 공장의 작업환경에 관한 자료(안전보건자료)를 적극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2018. 3. 6. 보도자료).

 

 

산자부 “삼성 작업환경 보고서는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다”

 

이렇게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알 권리 투쟁은 한 고비를 넘는 것 같았다. 여전히 공장의 작업환경에 관한 많은 자료들이 은폐되고 있었지만, 그중 이미 정부에 제출된 자료들에 대해서만은 알 권리가 보장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삼성은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를 끌어들여 다시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2018년 3월, 직업병 피해 노동자들은 각자 일했던 공장의 <작업환경 보고서>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했고, 고용노동부는 앞서 했던 약속대로 이 보고서들을 모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삼성전자는 고용노동부의 공개 결정에 대해 행정심판을 제기한 후, 산자부에 이 보고서를 ‘국가핵심기술’로 판정해 달라고 신청했다. 역시 황당한 신청이었다. 공공기관이 어떤 정보를 공개할지 여부는 정보공개법(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판단된다. 산업기술보호법상의 ‘국가핵심기술’ 지정 절차는 정보공개법에 따른 정보공개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리고 특정 ‘기술’이 아닌 ‘문서’에 대한 국가핵심기술 지정 신청은 산업기술보호법 명문 규정에 반하는 것이었고 당연히 선례도 없는 것이었다. 즉 삼성의 국가핵심기술 지정 신청은 그 목적과 절차 면에서 모두 위법했다.

 

하지만 산자부는 그 위법한 신청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신속하게 심사했으며, 2018년 4월, 급기야 그 보고서들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하고 말았다. 그리고 중앙행정심판위원회(행심위)는 그 국가핵심기술 지정을 주요 근거로 삼아 해당 보고서들에 대한 공개 결정을 취소했다. 그로써 직업병 피해 노동자들은 다시금 자신이 일했던 공장의 작업환경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국회, “국가핵심기술 관련 정보 비공개” 법안 가결

 

2018년 10월, 반올림은 행심위 결정에 대한 취소소송을 다시 제기했다. 끝을 알 수 없는 소송전이 또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전혀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저들이 끌어들인 것은 산자부만이 아니었다.

산자부가 삼성의 <작업환경 보고서>를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한 직후인 2018년 5월, 자유한국당 윤한홍 의원은 “정보공개청구 절차에서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는 공개되어선 안 된다”는 법안(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리고 반올림이 행심위 결정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한 직후인 2018년 11월에는, 자유한국당 윤영석 의원이 “(절차를 불문하고) 국가핵심기술에 관한 정보는 공개되어선 안 된다”는 한발 더 나아간 법안을 발의했다.

 

2019년 7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산자위) 위원장인 자유한국당 이종구 의원은 윤영석 의원의 법안과 다른 9개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모두 통합한 법안을 대안으로 발의했고, 산자위는 이를 그대로 채택했다. 그리고 2019년 8월, 그렇게 만들어진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다른 175건의 법안과 함께 단 한 명의 반대표도 없이 가결되었다(더불어민주당․정의당․민중당 포함 206명 참석).

 

 

1,000여 개의 악플과 250여 개의 선플

 

2017년 11월, 국회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발의된 적 있다. 현장 노동자들은 자기 일터의 작업환경에 관한 각종 자료들, 이를테면 앞서 언급한 <안전보건 진단 보고서>, <작업환경 보고서> 등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자료들에 대한 기업의 영업비밀 주장은 사전에 엄격한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우리는 이 법안을 ‘노동자 알 권리법’이라 불렀다. 노동건강권 투쟁에 함께 해온 활동가와 변호사 들이 초안을 만들었고,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이 이를 대표발의했었다.

이 법안이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입법예고되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단 하루만에 “강력반대”, “절대반대”를 외치는 1,073개의 악플(반대 댓글)이 달린 것이다. 그 내용들도 복사+붙여넣기를 한 듯 비슷비슷했다. 의심의 여지없이 조작된 여론이었다. 누구의 조작인지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 법안은 작년 12월에 극적으로 통과된 산안법 개정안에 ‘영업비밀 비공개 심사’ 제도 정도만 일부 반영되었을 뿐, 나머지 내용들은 모두 폐기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2018년 11월, 자유한국당 윤영석 의원이 “국가핵심기술 정보 비공개” 조항을 골자로 하는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을 때,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는 어떤 의견들이 올라왔을까. 역시 하루만에 “당연찬성”, “적극찬성”을 외치는 250여 개의 선플(찬성 댓글)이 달렸다. 우리는 이런 법안이 발의된 것도 몰랐는데, 누군가는 잘도 알아서 뜨겁게 찬성까지 했던 모양이다. 아마 그 누군가가 이번 산업기술보호법 개악을 처음부터 기획하고 로비하고 추진했던 자일 것이다. 그 자가 누구인지를 추측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아마 앞서 산안법 개정안에 대한 여론을 조작했던 자와 같은 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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