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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 지역에서 철폐연대 동지들은

 

일상의 반복, 노뉴단 30년

배인정 (노동자뉴스제작단, 철폐연대 후원회원)

 

 

동료

 

10년도 더 전에, 노뉴단이 꽤 긴 시간 한참 어려울 때의 일이다. 노뉴단, 그곳에서 활동을 하던 우리 모두가 활동을 유지하기가 너무 힘들고, 우리의 활동을 하면 할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늪과 같을 때, 그곳에 또 가야하는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하던 때. 그 늪에서 쉽게 빠져나오기 힘든 것을 알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가야 하는 것을 알기에, 그 시기에 일상이 무섭고 두려웠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도, 사무실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것도, 사무실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일도, 모두 그만 두고 싶었던 때이다.

그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지방에 출장을 가거나 아주 불기피한 날을 빼고는, 아침에 노뉴단의 사무실을 향해 집을 나섰다. 오히려 전날의 야근으로, 몸이 상당히 무리함에도 나는 아침에 집을 나섰다. 무엇이 아침에 그곳, 노뉴단을 향해 가게 만들었을까. 그리 힘들지 않았을 때는 몰랐던 것을,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문득 알게 됐다.

그것은 대단한 열정이나 철저한 이념도, 깊은 책임감과 헌신성도 아니었다. 노뉴단, 그곳에 가면 점심을 함께 먹을 누군가가 있었다. 그곳에 점심을 함께할 동료가 있어 나는 집을 나선 것이다. 어려웠을 때 뿐 아니라 처음 설레는 마음을 갖고 노뉴단 활동을 시작할 때나, 가장 풍요로울 때에도 나는 그런 것을 반복했다. 30년 동안이나. 점심을 함께할 동료가 있는 일상의 반복, 노뉴단의 30년은 그런 반복되는 일상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1 노동자뉴스 [출처 노뉴단].jpg

<노동자뉴스> [출처: 노뉴단]

 

 

노뉴단의 출발, 속보영상

<노동자뉴스 1호>(1989년) ➔ <96,97 총파업 속보1.2>(1996년,1997년)

 

속보영상 제작은 노뉴단이 만들어진 이유다. 노뉴단이 만들어진 1989년이라는 시기는 1년여 전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자대중투쟁이 터져 나오던 때이다. 노동자가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세력으로 급속하게 부상하고 있었던 때였다. 그런데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이 노동자투쟁을 제도권 미디어들에서 다루고 있지 않거나, 왜곡해서 다루기 일쑤였다.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노동자투쟁은 당시 노동운동에 별 관심 없던 영화운동 활동가들에게도 이목을 끌었다. 노동자투쟁이 고립되지 않고 들불처럼 번져나가는데 필요한 일을 뭘까? 놓치지 않고 촬영하고 신속하게 편집해서 지체 없이 노동자를 만나는 뉴스작업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당시 필요한 교육선전 내용을 다양한 형식으로 만들어 하나의 비디오테이프에 넣은 작업이 <노동자뉴스 1호>였다. 이런 속보영상을 노뉴단 초창기에 가장 많이 했고, 가장 요구도 많았고 반응도 좋았다. 수십 편의 작업을 했는데, 역할 측면에서나 반응의 측면에서나 가장 좋았던 속보영상은 <96,97 총파업 속보1.2>였다.

이 작업을 끝으로 노뉴단은 하나의 완성된 형태로 속보영상 작업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당시는 다른 단체에서 이러한 성격의 영상물을 우리보다 더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했고, 그 단체도 더 이상 하지 않을 때 즈음에는, 인터넷이 발달하여 어떤 속보영상도 인터넷보다 빠르게 노동자에게 갈 수 없었다.

 

 

노뉴단의 장기(長技), 역사영상

<민주노조 87에서 95까지>(1995년) ➔ <우리들의 역사 노동자의 역사>(1999년) ➔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10년, 미포만의 붉은 해 3부작>(1999년) ➔ <노동자역사, 백년의 기록 4부작>(2013년)

 

노동운동에서 역사 정리는 확실히 그 어떤 행위보다 목적성이 분명하다. 민주노총 건설이라는 조직적 과제를 두고 그 행위의 정당성을 찾으려고 한 것은 당연하다. 이런 속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하나의 완성된 역사물인 <민주노조 87에서 95까지>를 만들었다. 첫 작업에 주요 노동운동가와 지도자의 인터뷰를 넣으면서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키기는 했지만, 이 작업 이후 우리는 많은 역사물 작업을 했다.

인터뷰 없이 30여 분의 짧은 시간에 한국의 자본주의의 시작과 백년에 가까운 노동운동사를 압축한 <우리들의 역사 노동자의 역사>를 거쳐서, 현대중공업 노동자투쟁의 역사를 5시간에 걸쳐서 담아낸 본격적인 역사물을 만들었다. 우리의 역사영상 제작의 최고점은 100년의 한국노동운동사를 인터뷰 없이 정리한, <한국노동운동사, 백년의 기록 4부작>이다. 이후에 이어진 역사물들은 주로 산별이나 단위 사업장의 요구에 의해서 보다 다양한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이제 노뉴단에게 노동자 역사영상을 만드는 일은 그것이 한국노동운동 전체이든, 한 산별노조이든, 조그만 단위 사업장의 짧은 시간이든, 한 주제에 관한 역사이든, 가장 자신 있는 장르가 됐다. 오랜 시간 축척해 온 것에 대한 결과물일 것이다.

 

 

노뉴단의 한계, 교육영상

<동지여 노동악법 철폐 대열로!>(1989년) ➔ <노동자의 단결로 미래를 노래하라>(2002년) ➔ <금속노조의 정세교육물 수십 편>(2005년~2019년) ➔ <세상을 살아가는 한 가지 안내서>(2012년) ➔ <결국은 나와 노동조합의 이야기-4차 산업혁명>(2018년)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자가 자신의 계급의식을 자각해나가고 있을 때, 노동자대중교육이 얼마나 절실했겠는가. 노동운동 내에서도 가장 시급하게 했던 일이었고, 우리도 활동을 시작한 바로 그해에, 자각해나가는 노동자와 커져나가는 노조를 탄압하는 노동법에 대한 교육물, <동지여 노동악법 철폐 대열로!>를 만들었다. 최초의 교육영상이었다.

노뉴단이 출발한 지 불과 6개월 됐을 때 만든 교육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매체에 대한 경험도 적었지만, 무엇보다 논리적인 설득을 위한 내용을 만들어내는 일이 어려웠다. 거의 주변 노동운동가들이나 교육담당자들이 전달해준 내용을 가지고 영상이미지를 붙이는 식의 작업이 되다 보니, 어렵고 일방적이고 모호했다. 고개를 못들 정도로 평가가 혹독했다. 필요한 작업인데 우리는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세는 우리를 기다려 주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교육영상에 대한 요구는 높아지고 우리는 계속 준비가 안 된 채로 만들었고, 당연히 평가는 계속 안 좋았다. 이런 시행착오의 시간이 꽤 오랫동안 지속됐다. 이 시기 동안에 우리는 많은 교육물을 만들었는데, 주요 테마는 정세에 대한 교육영상이었다.

우리가 교육영상 작업에서 한 단계 뛰어넘기 시작한 것은 10년이 훌쩍 넘은 뒤에 나온 <노동자의 단결로 미래를 노래하라>부터였다. 이 작업에서부터 우리는 내용을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노뉴단 내부에서 온전하게 완성시킬 수 있었다. 내용에 대한 장악력이 생기고 나서부터 그것을 표현해내는 형식에서도 자유로워지고 다양한 방식을 구사할 수 있는 힘도 생겨났다. <세상을 살아가는 한 가지 안내서>나 <결국은 나와 노동조합의 이야기, 4차 산업혁명> 같은 우리의 대표적인 교육영상은 그동안의 긴 시행착오 없이는 만들어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3 결국은 나와 노동조합의 이야기-4차 산업혁명 [출처 노뉴단].jpg

<결국은 나와 노동조합의 이야기-4차 산업혁명> [출처: 노뉴단]

 

 

노뉴단의 과제, 노동자집회영상의 메인영상

<자본의 위기를 노동의 희망으로 전진>(1998년) ➔ <노동절 또는 11월 전국노동자대회 메인영상들> ➔ <철도노동자가 뿔났다>(2019년)

 

최근에, 일반 노동자대중이 노뉴단의 영상을 가장 쉽게 접하는 통로는 메인영상이라는 이름으로 만나게 되는 집회 현장에서다. 갈수록 노동자들이 모이는 집회에서 영상을 많이 활용하기도 하지만, 막상 단협에서 교육시간을 확보해낸 민주노조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어떤 노동자에게는 일 년에 한두 번 참석했던 집회에서 본 우리의 영상이 전부이기도 하다. 집회에서 만나는 하나의 영상이미지나 그 영상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어떤 것으로 남게 된다. 노동자들이 겪는 이 소중한 경험은 노뉴단의 과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집회에서 노동자를 처음으로 만난 것은 김대중 정부 때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맞선 공공노동자 총력투쟁 집회였다. 대규모 집회에서 상영한 이날의 메인영상, <자본의 위기를 노동의 희망으로 전진>은 집회의 분위기를 돋우거나 시간을 때우는 식의 바람잡이 역할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영상은 ‘왜 이 집회를 하지?’, ‘왜 내가 이 집회에 있지?’를 생생하고 명확하게 보여주는 교육선전의 가장 중요한 도구였다.

집회영상이 이런 식으로 쓰여지는 것에 대해 우리는 큰 의미를 뒀다. 집회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좀더 의미 있는 영상의 이미지와 이야기를 경험하기를 바랐고, 이것을 성취하려고 꽤나 노력해왔다. <철도 노동자가 뿔났다>는 우리의 이런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영상이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집회에서 영상이 더 이상 바람잡이 역할이 아닌, 가장 중요한 교육선전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했고, 실내에서 하는 교육영상을 밖으로 끌어내는 데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 주로 실내에서 이루어지는 영상 경험들을 더 많이 밖으로 끌어내는 것은 앞으로도 우리의 주요한 일이 될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함께 사는 반려묘의 밥을 주고. 어젯밤 쌓아두었던 설거지를 하고. 식구들 아침거리를 챙기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집을 나서서 사무실로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나의 동료도 지금 그럴 것이다.

아침에 같은 곳을 향해 집을 떠나서, 일터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내일 일을 말하면서, 각자의 집으로 헤어지는 일. 이 일을 나와 나의 동료들은 30년간 반복해왔다. 이 반복적인 일상을 통해서 우리는 3백여 편의 크고 작은 결과물들을 만들어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점심을 함께할 동료가 있는 한 노뉴단의 일상은 계속 반복될 것이다. 지금,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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