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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운동을 생각한다

 

고 문중원 기수의 죽음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2019년 11월 29일 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일하던 문중원 기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산경남경마공원이 2005년에 본격 개장한 이래 무려 일곱 번째 죽음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토록 많은 기수와 말관리사가 세상을 버려야 했던 것일까. 고 문중원 기수가 남긴 세 장짜리 유서에 마사회의 문제가 세세하게 담겨있다. 문중원 기수는 유서 말미에 “복사본을 남긴다. 마사회 놈들을 믿을 수가 없어서”라고 썼다. 마사회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준다.

 

 

다단계 고용구조와 비리

 

이 유서에는 그동안 경마기수들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이 담겨 있다. 고 문중원 기수는 “미래가 없다”고 했다. 마사회의 교육과정을 거쳐서 기수면허를 받아야 기수로 일할 수 있다. 기수들은 경마에서 감독의 역할을 하는 조교사와 기승계약을 체결하고 말을 훈련시키고, 경주에 임한다. 몸무게를 48킬로그램 이내로 유지해야 하고, 거세게 달리는 말을 통제해야 하므로 몸에 무리가 가고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산재율은 일반 사업장의 50배에 달하지만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산재보험도 가입되어 있지 않다. 이렇게 몸을 혹사하니 20년 이상 일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문제는 임금이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기수의 임금은 기승계약을 체결하고 말을 훈련시키면서 받는 비용과 경마에 나가 받는 상금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여기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상금이다. 부산경남경마공원은 ‘선진경마’라는 이름 아래 기본급 비중을 거의 없애고 경쟁성 상금 비율을 높였다. 기수들은 개인사업자로 되어 있다 보니 상금으로 미래도 준비해야 하고 몸관리도 해야 하며, 각종 장구도 구입해야 한다. 그런데 기본급이라고 할 것이 거의 없으니 말을 많이 타지 못하는 기수들은 생계에 곤란을 겪게 된다.

기수들이 말을 탈 수 있을지, 어떤 말을 탈 것인지는 조교사의 권한이다. 기수는 ‘독립사업주’라고 불리지만 조교사와 맺는 기승계약서를 보면 조교사의 지시에 따르도록 되어 있다. 설령 부당한 지시라고 하더라도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그 기수에게는 말을 배정하지 않거나 혹은 상태가 좋지 않은 말을 배정한다. 경주에 나가 상금을 받아야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기수의 입장에서 보면 생계 자체를 박탈당하게 되거나 혹은 부상의 위험을 안고서라도 경마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기수들은 조교사의 부당한 지시도 따를 수밖에 없다.

고 문중원 기수는 이것이 너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교사가 되고자 노력한다. 시험을 통해 조교사면허를 따고 해외 연수도 다녀왔다. 조교사가 되더라도 마사회로부터 마방을 대부받아야 마주들과 계약하여 말을 관리하고 훈련하며 경마에 나갈 수 있다. 그런데 마사대부의 권한을 가진 마사회는 마사대부 심사를 투명하게 하지 않았다. 문중원 기수는 높은 사람에게 잘 보이라는 충고를 들었지만 그러지 않았다고 한다. 마사대부 심사에서 번번이 떨어지고 ‘누구가 된다더라’ 소문이 돈 사람이 마사대부를 받았다. 이런 현실에 고인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1 2019.12.31. 추모문화제 이후, 정부서울청사 앞 [출처 철폐연대].JPG

2019.12.31. 추모문화제 이후, 정부서울청사 앞 [출처: 철폐연대]

 

 

투쟁에 나선 유가족과 시민대책위원회

 

고 문중원 기수의 죽음 이후 유가족들이 나섰다. 유가족들은 고인이 가입해있었던 공공운수노조에 일체의 권한을 위임하고 장례를 미뤘다. 그리고 2019년 12월 27일 열사의 시신을 서울로 모시고 정부종합청사 옆에 분향소를 차렸다. 그날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한국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이하 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동료 기수들도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2020년 1월 8일, 그동안 공공운수노조에 개별로 가입했던 기수들은 노동조합을 만드는 설립총회를 했다. 그리고 민주노총은 1월 10일 ‘경마기수 문중원 열사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및 사람 죽이는 공공기관 적폐청산 민주노총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투쟁을 결의했다.

시민대책위원회와 공공운수노조, 그리고 유가족들은 마사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요구한다. 형식적으로는 마사회가 기수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인다. 기수는 조교사와 기승계약을 체결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마사회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만든 형식일 뿐이다. 1993년까지 마사회가 단일마주였고 조교사와 말관리사와 기수 들을 고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개별마주제로 전환하며 말관리사는 조교사와 고용계약을 맺는 노동자로, 기수들은 특수고용 노동자로 전환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마사회는 기수의 면허권과 면허갱신권을 갖고 있고, 기수들에 대한 징계 권한을 갖고 있으며, 상금의 규모와 배분방식을 결정한다. 그러기에 마사회가 실질적인 사용자이다. 마사회는 고 문중원 기수의 죽음에 대해 책임자로서 유가족에게 진심으로 사죄해야 한다.

마사회는 고 문중원 기수가 사망한 이후 자신들은 책임이 없으며 유서에 남긴 부정과 비리에 대해서는 경찰에게 수사를 의뢰했다면서 책임을 회피했다. 그리고 갑자기 부정비리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겠다면서 기수들에게 통장사본과 개인 통화기록을 내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고 문중원 기수는 자신의 죽음으로 ‘마사회가 책임자’라고 증언하는데, 책임을 회피하던 마사회가 느닷없이 기수들을 범죄자로 만들어 자신들이 조사를 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그래서 민주노총과 시민대책위원회는 마사회에 ‘노사 양측에서 추천하는 공정한 진상조사단’을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죽음의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고 책임자가 처벌되며, 왜곡된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제대로 된 진상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민주노총과 시민대책위원회는 제도 개선도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마사회가 가장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징계를 하는 재결위원회나 마사대부를 심사하는 위원회이다. 그런데 이런 위원회가 과연 공정하게 진행되는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위원회의 구성원이 공개되고 외부 인사가 참여할 뿐 아니라, 회의의 내용이 공개되어야 한다. 이의제기가 가능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마사회 외부에 이런 기구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기승계약서도 평등하게 다시 만들어져야 하고, 서울경마공원의 부가순위상금 제도처럼 부산경남경마공원과 제주경마공원에서도 기본급이 보장되어야 한다.

 

 

더 이상 죽음이 없도록

 

1월 10일 마사회장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만났다. 고 문중원 기수의 죽음 이후 한 달 반 가까운 시간이 흐른 후였다. 그리고 1월 13일부터 집중교섭이 시작되었다. 민주노총과 시민대책위원회는 설 이전에 고 문중원 기수를 편안히 모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집중행동 일정을 잡았다. 공공기관인 마사회에 대해 제대로 권한을 행사할 것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으로 매일 행진을 했고, 1월 16일, 고인의 49재에는 조계사에서부터 시민들과 함께 행진했다. 매일 저녁 추모문화제도 열고 청와대까지 행진하여 해결을 촉구했다. 그리고 1월 17일부터 21일까지 과천에 있는 서울경마장에서부터 광화문 정부종합청사까지 오체투지 행진도 이어졌다. 많은 이들의 마음으로 문제 해결에 한걸음 다가서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마사회는 경쟁을 신봉하며 구조적인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경마는 말들의 빠르기를 겨루는 경주일 뿐 아니라, 마권을 판매하고 그것을 통해 수익을 얻는 일이 연결되어 있다. 경마는 사행성 산업이기 때문에 비리로 이어지거나 도박중독 등 경마 이용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엄격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마사회가 공공기관인 이유는 투명한 관리의 필요성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사회법에 의거하여 마사회에 강력한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 그런데 마사회는 소위 ‘선진경마’라는 이름으로 경마 노동자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몰아 생존은 건 도박을 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고용구조를 외부화함으로써 권한에 따르는 책임은 회피하고 있다.

공공기관은 정부가 운영하는 기관이다. 당연히 이윤이 아니라 공공성의 가치가 기업 운영의 기본가치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바로, 경마를 위해 일하는 이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 경마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이 이곳에서 자신의 미래를 꿈꿀 수 있다. 또한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힘이 생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마사회가 실질적인 사용자로서 교섭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비리에 대해 현장에서부터 견제할 힘이 생긴다. 그리고 그 힘이 있어야 마사회의 왜곡된 구조를 바꿀 수 있다. 동시에 폐쇄적인 마사회의 여러 구조에 대해 시민사회가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

   

고 문중원 기수의 죽음에 대해 마사회와 민주노총이 교섭을 통해 합의에 이르더라도, 이 문제가 이대로 끝날 수는 없다. 공공기관으로서 마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마사회의 상급기관인 농림축산부는 과연 관리감독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했는가, 고용노동부는 말관리사와 기수 들의 노동조건에 대해 제대로 관리감독을 하고 문제에 대해 대응을 했는가.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다면 앞으로라도 해야 한다. 농림축산부를 비롯하여 국회 등 책임 있는 기관들, 그리고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시민사회단체가 마사회의 구조 개선에 대한 논의에 나서야 한다. 더 이상 이런 공공기관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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