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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 지역에서 철폐연대 동지들은

 

와인 한 잔 든 우아한 육아휴직, 꿈이었습니다

이서용진 (금속노조법률원 노무사, 철폐연대 후원회원)

 

 

“이 참에 나도 육아휴직하면서 책도 보고 공부도 하려고….”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남편(공유 연기 분)이 육아우울증 등으로 인해 빙의되는 병에 걸린 짝꿍(여전히 양성평등 관점에서 올바른 호칭을 모르겠다. 난 적어도 아내, 부인, 집사람은 아닌 것 같아 짝꿍으로 부른다.)에게 위로하듯이 한 말이다.

돌이켜 보니 나도 그랬다. 육아휴직에 들어가기로 계획한 2018년 12월이 되기 한 달 전부터, 그동안 활동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보자는 결의로 업무 관련 서적, 노동판례, 심지어 엑셀‧파워포인트 관련 서적 등을 집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1년 동안 쉬엄쉬엄 아기 돌보면서 2회독 정도는 할 수 있겠다며 흐뭇해하기도 했었지.

이런 헛된 기대와 욕심은 육아휴직 돌입 후 1주일 만에 무너졌다. 공부는 무슨 공부, 늘어난 것은 육아 능력에 더하자면 와인에 대한 안목 뿐.

 

15개월 아이 아침밥 삼찬에 국과 밥 준비해서 먹이고, 흘리고 쏟은 음식들 정리, 뒷정리만 해도 1시간은 훌쩍 지난다. 그나마 아침 정찬을 잘 즐기는 아이 덕에 보람되지만, 매끼 다른 반찬 고민을 해내야 하는 부담도 있다. 아침이 다 가기 전에 밖에라도 나가려면 준비가 한참이다. 치카치카(양치질), 씻기고, 기저귀 갈고, 옷 갈아입히고, 가방에 물‧기저귀‧물티슈‧손수건‧간식거리‧아가용 식기세트 등을 챙기는 데에도 또 1시간. 아침부터 땀이 난다. 나도 샤워를. 문 열어두고 샤워하는 건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 지나가며 아기가 ‘히힛’ 웃는다.

 

이제 아기를 데리고 문화센터니 미술관이니 도서관이니 간다. 월요일에 식물원, 화요일에 도서관, 수요일에 문화센터 식으로. 집에서만 아이를 돌보기 힘들고, 아이도 지겨워하니 출근하듯 나간다. 문화센터가 사교육이라지만 “엉클짐~ 선생님” 아니었으면 큰일날 뻔했다. 아이도 한 번씩 번쩍번쩍 들어주고, 육아하는 엄마들과도 인사하고, 아이가 “엉클짐” 노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망토를 둘러주면 그리 신나한다. “근육빵빵 엉클짐! ~ ”은 내 최애곡 중 하나가 되었다. 신나는 문화센터 길에도 복병은 있다. 냄새가 솔솔~ ‘아~ 응가??!!’ 울고 싶다.

우여곡절 끝에 문화센터나 미술관이나 가면 아기들 데려온 엄마들은 많은데, 아빠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아빠 육아휴직이 많이 늘었다고 하지만, 아직 한참 멀었다. 하긴 여성이고 남성이고 육아휴직 자체를 쓰는 일이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2019년 12월 1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일·가정 양립 지표'에 따르면, 육아휴직 사용 가능자(284만 7,721명) 중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비율은 4.7%(13만 2,893명)에 불과하다. 특히 남성의 경우 공무원·공공기관까지 포함한 육아휴직 사용 가능자가 192만 2,585명인 것에 반해 실 사용자는 2만 3,131명으로 사용률은 1.2%에 불과했다. 여성 육아휴직 사용률도 11.9%(10만 9,762명)에 머물렀다.).

 

그래서 그럴까, 평일 낮에 아기를 데리고 여유롭게(남들이 보기에만) 마트 등을 활보하는 아빠를 보면 왜 이렇게 참견들을 하시는지(주로 어르신들). “아기가 추워보인다”, “아기가 배고프나 보네”, “어린 아기한테 왜 영상을 보여주지?”, 심지어 “엄마는 어디 가고 왜 이 시간에 아빠 혼자… 쯧쯧.” 안 그래도 계속 찡찡대고 해달라는 게 많은 아기 때문에 힘이 드는데, 오지랖과 참견에 짜증지수 상승. 우리 아기 대신 봐주실 거 아니면 제발 신경들 좀 끄시라.

아무리 짜증이 나도 점심때가 되면 배가 고파온다. 아침에 아기 밥해서 먹이면 내 밥 먹을 시간도 없거니와 입맛도 없다. 아기를 데리고 식당에 들어가서 아기의자에 앉히고 전용 식기를 꺼내어서, 맵지 않고 짜지 않게 물로 씻겨서 먹이고 나면, 정작 나는 코로 먹는지 귀로 먹는지 그냥 허기를 채우기 위해 욱여넣기 바쁘다. 식욕도 없어 많이 먹지도 못하는데, 살이 안 빠지는 이유가 다 있다.

 

집으로 오는 터널 길은 아이가 잠에 빠져드는 소중한 장소다. 음악 소리를 낮추고 속도를 낮추어 잠이 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아이의 낮잠시간은 소중한 자유시간이니까. 이불까지 조심조심히 옮기는 미션을 성공하면 그리 기쁠 수가 없다. 책을 읽을까? 영화를 볼까? 생각 없이 TV를 볼까? 아, 오전 체력을 방전한 아빠는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든다. 자다가 깨면 잠이 들었다는 사실이 어찌나 억울하고 아까운지.

“아~빠~ 으앙~” 아! 아이가 벌써 깨서 아빠를 찾는다. 아이가 낮잠 안 자고 계속 놀아달라고 찡찡거리는 날도 종종 있다. 이런 날은 정말 힘들다. 몸이고 정신이고 뭐고 저녁 되기 전에 버닝!

짝꿍이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서 나름 맛난 저녁식사를 준비해보려 한다. 든든한 육아 동지니까. 하지만, 아기가 끊임없이 곁에서 책 읽어 달라, 놀아 달라 보채는 통에 저녁식사 준비도 만만치 않다.

 

짝꿍이 퇴근해서 함께하면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 육아는 두 명이 해야 한다며 한 숨 놓다보면 육아휴직 전 새벽에 출근해 밤늦게 퇴근한 내가 떠오르기도 했다. 밤늦게 빼꼼히 문 열고 들어서는 나를 싸늘히 쳐다보던 짝꿍. 그녀의 손엔 맥주 한 캔이 늘 들려 있었다. 그래서 육아휴직 초기엔 ‘속죄육아’하는 심정이었다. 그 당시엔 엄마만 찾던 아이가 이젠 아빠만 찾는다. 울며 아이 방에 들어가던 짝꿍 모습처럼 이번엔 내가 그랬다.

이제 아이를 재워야 할 거룩한 시간. 좋아하는 치약 묻혀 치카치카, 오리 넣어가며 목욕 시키고, 발버둥치는 아이 겨우 기저귀 채워 사투하듯 옷 갈아입히고, 외울 지경인 수면용 책과 30곡 메들리 자장가로 겨우 재운다.

그렇게 재운 아이가 2~3시간 만에 한 번씩 깨서 아~빠~를 찾아대면…… 짜증과 화가! 짝꿍의 손에 들려있던 맥주 캔처럼 나는 와인잔 들 때 그리 좋을 수가 없는데. 내가 익힌 와인 품종, 원산지, 와이너리 안목은 필사적으로 찾은 휴식시간의 산물이다.

 

이렇게 1년을 살았다. 3개월 이상 지나고 나니 육아우울증이 오더라. 집이 그리 답답할 수 없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나서 짝꿍에게 화를 냈다. 퇴근 후 생기가 돌고 밥맛이 생긴 짝꿍이 그리 부럽고. 주중과 주말의 경계가 없는 게 좋은지 나쁜지. 아이가 자다 깨서 울면 혼자 딴 방에 들어가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왜! 아빠 찌찌만 찾냐며!! 웃기고 슬프지 않은가.

돌아갈 일터가 있는 나도 이럴진대, 평생 육아와 살림을 전담하는 사람(특히 여성)들은 어떻게 삶을 감당해갈까. 양성평등을 지향한다는 운동진영에서도 아직 육아와 살림을 업무나 활동보다 힘들지 않다고 여기는 인식이 있다. 육아휴직 들어간다고 하니 ‘잘 쉬다오라’고 하고, ‘일 안 하니까 좋겠다’고 하고, ‘부럽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분들 지금이라도 육아휴직 들어가보시거나, 활동을 그만두고 집에서 육아와 살림을 전담해 보시라. 적극 권한다. ‘육아전쟁’이라는 말, 아이가 어질러 놓은 집안이 세계대전 노르망디 같다는 말이 왜 생겨났는지 절실히 느끼시게 될 것이다.

 

아직 운동진영에서도 육아휴직을 쓰는 남성 활동가들이 드물다. 너무 바쁘다 보니, 함께 활동하는 동지들이 힘들어질 것이 뻔하다 보니 그렇다고 할 수도 있다. 주말에 워크숍, 저녁 회식. 아이는 누가 돌보나. 보통 여성의 육아로 아이는 쑥쑥 자랐을 테지만, 보이지 않는 육아 노동을 우리는 가려서는 안 된다. 육아와 가사를 평등하게 분담하여 가정에서 평등을 이루는 것. 운동의 시작과 완성이 아닐까.

1년 육아휴직. 많이 힘들었지만 아이랑 1년 동안 함께 부대끼면서 생활한 것은 너무 행복했다. 함께한 수많은 사진을 넘겨보다 보니 다시 못 올 소중한 경험을 한 것 같아 가슴 뭉클하다. 아기가 이쁘고 사랑스럽다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니까.

 

육아 스트레스가 가득한 날 영화 <툴리>를 보고 엉엉 울었다. 독박육아로 지쳐가는 세 아이 엄마의 생활을 공포스럽도록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다. 주인공 여성은 “못 이룬 꿈이라도 있었다면 세상을 향해 화라도 냈을 텐데, 그런 것도 없으니 나한테 화풀이를 해요.”라고 한탄한다. ‘툴리’(주인공이 결혼 전에 불렸던 이름, 영화 속에선 주인공에게 구세주가 되는 야간 육아도우미)는 이렇게 격려하더라.

“실패한 삶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꿈을 이루신 거예요. 매일 일어나서 같은 일을 하는 것, 당신이 그렇게 싫어하는 그 단조로움이 가족에겐 선물 같은 것이라고요. 그게 실은 멋진 거예요. 별 탈 없이 성장해서 이렇게 아이들을 잘 키우는 일. 정말 대단한 거라고요.”

이 말을 인용하며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는 동지들(특히 여성들)에게 경의를,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동지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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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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