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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정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전략과 실천

 

아줌마에서 건설노동자로!

김미정 (전국건설노동조합 경기중서부건설지부 부지부장)

 

 

“아줌마! 남편 뭐하는데 이런 험한 일을 하러 왔어?” 건설현장에 들어가서 가장 진지하게(?) 들은 말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현장에 돈을 벌러 들어갔는데 남편은 뭐하는지 이런 험한 일을 왜 하는지 묻는다.

 

건설현장은 그런 곳이다. 여성이 들어오면 안 되는데 오죽하면 여기까지 왔느냐는 얘기다. ‘오죽하면’이란 남편이 오죽 못나고 칠칠치 못했으면 이런 곳에 아내를 일하러 보냈느냐는 뜻이고, 험한 일이라는 말에는 거칠고 힘든 일이라는 의미 외에도 또 다른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것은 바로 여성을 함부로 대하는 곳, 여성이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건설현장에, 여성들이 기능공으로 일하고 있다. 전국건설노동조합 경기중서부건설지부 소속 여성 형틀목수는 40여 명이다. 형틀팀에 속해 형틀목수 작업을 하고 있다. 양성공부터 작업반장까지 나름대로의 기량을 발휘하면서 일하고 있다.

   

경기중서부건설지부는 건설기능학교를 운영한다. 안산건설기능학교다. 애초에 건설노조가 생기면서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는 특성, 하루하루 일을 찾아다녀야 한다는 특성 때문에 기술을 연마하고 소위 ‘잘 팔려나가기’ 위해 기능학교를 자체적으로 운영했었다.

그러다가 외부 기관으로부터 위탁을 받아 훈련사업을 하게 되면서 2009년 형틀, 용접, 제관을 가르치는 경기중서부지역건설기능학교를 설립하였다. 지금과 같은 형식의 건설근로자공제회 기능훈련 사업을 하게 된 것은 2014년부터다. 기능훈련을 이수하고 현장에 양성공으로 투입되고 그 일자리가 제법 안정적으로 운영되자 입소문을 통해 훈련을 받겠다는 이들이 늘어났다. 이젠 줄을 서 순번을 기다려야 훈련을 받을 수 있다.

 

여성이 처음 찾아온 것은 2015년 하반기 어느 날이었다. 연세가 60이 거의 다된 여성 한 분이 찾아와서 기술을 배우겠다고 했다. 처음엔 긴가민가하면서 취업에 대한 불확실성을 이야기했지만 수료한 이후 형틀팀에 배치하였고, 그 여성이 현장에서 버텨내면서 한 명 한 명 더 들어오게 되었다. 건설현장의 일이 그러하듯 기능훈련도 입소문을 타고 돌다 보니 훈련을 받고 일하고 싶다는 여성들이 꾸준히 들어왔다. 그래서 지금은 40명이 넘는 여성이 형틀목수로 일하고 있다.

 

처음부터 용이하지는 않았다. 여성들이 팀에 속해 일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부지부장이나 간부들이 팀장인 현장으로 먼저 배치하면서 추이를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잘 적응을 해주었고, 팀장이 상집간부가 아닌 현장에도 여성을 배치할 수 있게 되었다.

 

건설현장은 성희롱이 일상화되고 체질화된 곳이다. 여성의 자리가 없다. 남성이 기준이고 일반인이다. 여성은 그저 보조역할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어쩌다 한 명씩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어쩔 도리가 없어 호구지책으로 들어온 사람은 무슨 기구한 사연이 있어야 하는…… 그런 곳이다.

 

조합팀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어땠을까. 노동조합에서 배치한 조합원이니 해고의 위험은 줄어들었으나, 초기 작업을 시키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허드렛일이나 심부름을 시키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고, 혹시 팀을 잘 만나 기능을 배우게 되어도 남성에 비해서 턱없이 늦었다. 남성에게 주는 배움의 기회를 여성에겐 안 주고, 성별이분법에 의해 ‘여자는 ~~ 해야 한다’는 생각들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생각은 작업의 형태로 나타나고 여성들은 상처를 받거나 혹은 ‘이거라도 해야 먹고살지’라며 현실과 타협하고 버텨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초기에 현장에 들어간 여성조합원에 대한 성희롱 사건이 터졌다. 지부에서는 초기 대응에 미흡했다. 처음엔 설득을 하려고 하였고 그 과정에서 2차 가해가 발생하고 결국 뒤늦게 행위자에 대한 처벌을 하면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그 여성조합원은 현장에서 생존할 수 없었다. 뼈아픈 경험이었다.

 

어느 현장에선 여성조합원이 반장으로 임명된 것이 중요 이슈가 되어 조합원들 사이에 회자되었고, 어떤 남성조합원은 그 여성조합원을 표적삼아 모욕에 가까운 험담을 해대며 공격했다. 같은 조건의 남성조합원에겐 하지 않던 일이었다. 이에 대해서도 지부에서 성별의 차이가 능력의 차이가 될 수 없으며, 여성조합원에 대한 공격적 언사에 대해 엄중 대처할 것이라고 결정하면서 일단락되었다.

 

이제 만 4년이 넘게 일한 조합원부터 얼마 전 기능학교를 수료한 조합원, 현장 경력이 있는 여성들도 들어와서 여성조합원들은 나름의 경력들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여성조합원들이 늘어나면서 경기중서부건설지부는 여성위원회를 준비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준비팀을 꾸려 매월 회의를 하고 모임과 교육, 수련회을 통해 여성들의 현실에 대해 인식하고 그 출발점 위에서 여성들의 의지를 모아 성평등한 현장을 위해 노력하자는 결의를 다졌다.

 

여성조합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평등한 일터만들기 10대 선언’을 만들어 현장에 부착하고 전체 현장에 민주노총의 반성폭력규정을 부착하면서 성평등의 필요성을 알려내었다. 현장에서의 안착을 위해 지역별 간담회를 하여 조합원들을 챙기고 현장에서의 어려움을 조합원 스스로가 풀어가기 위한 노력들도 기울이고 있다. 특히 호칭 제대로 부르기는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아줌마”, “아가씨”, “이모”, “누님” 등 공식성이 결여된 호칭들을 거부하고 “00 목수”, “00 동지”로 호칭을 요구하고 실현시켜 나가고 있다.

 

건설산업연맹 여성위원회 사업의 결과로 정부로부터 건설일자리 지원 대책을 이끌어내었고, 여성 화장실 및 휴게실 설치와 성평등 교육을 의무화하는 성과도 이루어냈다. 실제 현장에서는 각 조합팀이 사측에 요구해 여성 휴게실이 속속 설치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성희롱 사건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조합원들의 공식 소통방에 성인용 영상이 올라오거나 공공연하게 차별과 폭력을 넘나드는 발언들이 나와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경중을 가려 사과문을 게시하거나 교육을 받도록 하고, 벌칙위원회를 통해 벌칙을 주기도 한다.

얼마 전엔 현장에서 양성공인 여성조합원에게 성희롱을 한 간부에 대해 징계를 한 사건도 있었다. 과정에서 2차 가해가 발생하여 그에 대한 대비책으로 ‘2차 가해자는 즉시 분리 배치한다’는 결정도 합의해냈다. 이전의 아픈 경험들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조직적 조치는 단호하게 속도를 내고 있다.

 

지부 간부 전체에 대한 성평등 교육을 실시하고, 전체 조합원 교육을 위해 성평등 교육 영상을 약 4개월여에 걸쳐서 제작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조합팀을 이끌고 있는 팀반장 정기 교육에서 함께 공존하는 현장을 만들어가기 위한 방안을 토론 주제로 제시하고 함께 고민하였다.

 

 

4 여성위원회 준비팀, 민주노총 2019 여성활동가대회 참석 [출처 필자].jpg

여성위원회 준비팀, 민주노총 2019 여성활동가대회 참석 [출처: 필자]

 

 

많이 왔지만 갈 길은 아직 멀다. 아직도 ‘여성조합원은 기능공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조합원들이 있고, 여전히 여성들은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게 맞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올해 상반기엔 여성위원회를 공식 출범할 것이다. 여성위원회는 여성조합원들이 기능인으로 성장하고 조합팀의 일원으로, 건설노동자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는 노력들을 기울일 계획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지금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고 때론 언덕을 올라야 하는 험난한 길일지라도 결국 스스로 깨치고 나가는 이들이 승리하리라는 희망을 품고 갈 길을 가고 있다. 결국은 우리가 바꾼다는 사실을 알기에 여성에게도 안전한, 모든 노동자가 안전한 현장을 꿈꾸며 힘을 낼 수 있다. 성평등한 건설현장을 위해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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