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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인권

 

감염병과 수용시설 장애인의 인권

 

변재원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

 

7 보통의 인권_01.jpg

 

 

국가적 폭력이 낳은 시설의 역사

한국 사회의 시설 운영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는 시설이 ‘수용소’로서 기능하였으며, 청소 이데올로기 속에서 운영되었다. 일제는 1923년 조선감화령을 통해 거리의 부랑인을 감화원에 수용 및 보호하였는데, 이에 적합한 논리를 만들고자 길거리 부랑인 청소를 통해 ‘불량한’ 이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식민지 안보를 지키고 자본주의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고자 하였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부랑인들의 정신박약이 범죄를 배양하는 근본이라고 하거나, 부랑인의 뇌수는 일종의 이상 상태에 놓여있다는 등 우생학적 관점을 서슴없이 내세웠다. 독립 후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급증한 전쟁 난민과 고아에 대한 ‘돌봄’을 위해 시작된 고아원은 길거리의 부랑인과 장애인, 정신질환자 등 산업 사회의 취약계층들을 비가시화하는 목적으로 세를 확장해나갔다. 더 이상 시설이 부랑인 청소를 위한 수용소로서의 역할만을 하지 않고, 호혜와 동정의 시각으로 사회 소수자를 주변화하는 시각 속에서 세를 키웠다. 특히 전두환 독재정권이 복지국가 기조를 내세우며, 시설 운영을 제도화하고 ′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거리의 부랑인들을 모두 사회복지시설에 무차별적으로 격리시켰다. 사회적 소수자를 격리시키는 시설 문화가 한국 근대화 역사에서 늘 함께 하였으며, 그곳에는 노동의 조건에서 탈락된 이들이 격리되고 사라져갔다. 커뮤니티 케어라는 말이 유행하는 오늘날 시대에 시설의 존재는 잊히는 듯 보였으나, 코로나19 확산 속에서 다시금 유행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의 집단 확산 및 집단 사망 사례가 대부분 수용시설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왜 수용시설 입소 장애인은 감염병 재난을 피할 수 없었는가?

가령 국내 코로나19 집단 확산 사례로 일컬어지는 ‘청도 대남병원’만 하더라도, 코로나19로 인하여 희생된 환자들이 매우 열악한 신체 근육량과 영양실조 상태를 보일 수 있으며(이소희, 2020), 충분한 수준의 일상 건강관리를 받지 못했다는 의견이 여러 언론을 통해 증언되었다. 청도 대남병원 전체 입소자 101명 중 100명이 감염되었으며, 정신병원에 근무하는 직원 12명 중 9명이 감염되었다. 즉 정신병원에 있는 전체 입소자 및 직원 113명 중 95%가 감염되었으며 환자 중 7명은 사망하였다. 청도 대남병원에서 발견된 총 7명의 사망 사례는 국내 코로나19 사망 사례 중 1,2,4,5,6,7번째 초기 사망 사례에 해당했다. 국내에서 청도 대남병원 집단 감염 사례가 발생한 이후 칠곡 밀알사랑의집, 예천 극락마을 등의 시설에서 집단 감염 사례가 연달아 발생하였다. 3월 말부터 시작된 대구 제2미주병원의 경우, 196명의 확진자가 발생하였으며 이중 입소환자의 수는 약 130여 명으로 전체 환자 285명 중 약 45% 수준의 환자가 코로나19에 집단 감염되었으며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시설 내 집단 감염 추세를 막고자, 정부 및 지자체는 ‘코호트 격리’ 체제에 돌입하였으며 이로 인해 집단 시설 내 입소자는 ‘하나의 단일 클러스터’로 취급되어 집단 통제되었다.

코호트 격리 체제의 가장 큰 문제는 시설에 관한 시설 내외 간 정보 격차가 심각해지고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코호트 격리 기간 중 시설 내 출입 및 관리 감독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시설 종사자와 환자와의 관계를 명확히 파악하기 어려워 폭력을 비롯한 추가적인 문제 발생에 대해 감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실제 코호트 격리 시설 운영 현황 및 세부 지침에 대해 명확히 공유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도 현재의 수용시설 코호트 격리는 결국 다양한 환자를 하나의 군집으로 취급하여 상이한 장애 유형을 지닌 환자를 일원화한다는 문제를 갖고 있다. 이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해칠 뿐만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의 보건 및 건강의 권리에 대한 제약도 우려된다.

더욱이 코호트 격리 중 시설 관리 지침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환자 및 의료인의 권리 침해에 대해 예측할 수 있는 바가 없다. 가령 경기도의 경우에는 코호트 격리에서 나아가 “예방적 코호트 격리” 실시 계획을 발표하고 연장까지 공언한 바 있으나, 예방적 코호트의 연장을 발표한 날(3월18일)까지 실제 장애인 시설 중 참여하는 곳은 단 한곳도 없었다. 이러한 “선제적 코호트”에 대한 “선제적 외침”은 실제 정책적 실효성을 갖는 것인지 의심하게까지 만들었다. 단지 시설 내 입소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이용한 차별과 분리 정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현 시설 입소 장애인은 WHO/ECDC/KCDC/ICMC에서 정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가이드라인에 부합하는 환경을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환자들과의 분리 및 선별 진료인데 시설 입소 장애인들은 현 코호트 격리 속에서 집단으로 묶여 개인적 수준에서의 보건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로 감염병 관련 행정 통제 관점에서 환자 대 의료인의 비율 및 충분한 간호사 인력 수급이 필요한데, 초기 코로나19 확산 시 장애인 거주시설 및 요양병원에서 환자 대 의료인의 비율은 중앙정신건강지원단이 개입하기 전까지 불균형을 이루었다. 또한 감염병 진단 및 예방 차원에서 전문적으로 훈련받지 못한 ‘시설 종사자’에게 감염병 대책의 책임이 전가되었다. 세 번째로 환경 및 기술을 통제하는 관점에서, 충분한 환기구 설치와 1인실 거주 공간 조성, 1미터 이상의 거리 유지 규칙 등 다방면에서 현 시설은 이를 준수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청도 대남병원의 경우에도 언제일지 모를 환기구 고장과 오작동으로 인해 감염 상황에 대한 부정적 환류(negative feedback)가 가중된 바 있다. 환기 안 되는 폐쇄병동 및 집단생활에 대한 감염 취약성은 제2미주병원 사례(마인드포스트, 2020)에서도 동일한 양상을 보였다. 시설에서 준수되지 못한 ‘감염병 예방 가이드라인’은 단지 실무의 미숙함이라고 해석청하기보다, 시설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중증 장애인을 집단적으로 몰아넣고 제도적으로 방치했다는 근본적인 문제로부터 시작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재의 시설 체계는 필연적으로 집단화의 논리와 위계화의 논리에서 통제된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시설 집단화의 논리란 모든 시설 입소자가 하나의 동일한 클러스터로 취급되어 하나의 일상 스케쥴을 동일한 수준에서 통제받고 이행되어야 함을 의미하며, 시설 위계화의 논리란 시설 입소자와 종사자 간의 위계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단화의 논리는 시설 내 입소자 간의 집단 감염을 증폭시켰으며, 위계화의 논리는 시설 내 입소자와 종사자 간의 집단 감염률의 불평등에 대한 실질적 확진 수치의 격차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시설 패러다임을 넘어서

시설 내 감염 관리의 근본적 한계에 대해 기선완 가톨릭관동대학교 교수뿐만 아니라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단 또한 정신질환자의 치료 환경 속 불평등 개선을 위해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탈원화 정책을 고려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부는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주요 실무 지침으로 ‘시설 입소자 대상으로 하는 음압병동 아닌 시설 내 보호자 대기실에서의 간이 검사’, ‘시설 보강’ 등 시설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한 대책만을 제시하였다. 아직까지 시설 밖을 벗어나는 ‘커뮤니티 케어’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클러스터 감염을 막기 위한 주요 정책 방향은 탈시설과 지역사회의 통합, 개인별 맞춤 의료 서비스 제공이지, ‘시설 내 검사’, ‘요양병원 코호트 격리’, ‘시설 보강 예산 지원’ 등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우리사회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은 장애인 입소자가 국제적 표준에 맞는 ‘치료 가이드라인’을 제공받고, 기본권으로서 인권을 존중받는 일에 있다. 장애인을 객체화하지 않고 집단화하지 않는 탈원화와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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