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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률포커스

 

합법파견에서의 고용 불안 문제

 

윤지영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철폐연대 집행위원

 

 

 

 

그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꾸준히 파견법 폐지 운동을 벌여 왔다. 그러나 파견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넘어가면서 파견법 폐지에 대한 관심은 예전보다 많이 사그라졌다. 특히 대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를 중심으로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이 불타오르면서 파견법 투쟁은 불법파견 투쟁으로 옮겨 갔다. 그러나 불법파견만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제조업은 법상 파견이 금지되기 때문에 불법파견 투쟁을 벌일 수 있지만, 합법파견이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초기부터 우려했듯이 합법 파견의 영역은 점점 넓어지고 있으며, 합법파견이라는 미명 하에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문제는 방치되는 현실이다. 이하에는 합법파견에 있어서의 고용 불안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02 법률포커스.JPG

[출처: 철폐연대]

 

1. 파견 허용 업무의 경계 모호

 

파견법은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를 제외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무’의 파견을 허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법상 허용되는 파견 업무는 총 32개다. 숫자만 놓고 보면 많지 않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사실상 제조업을 제외한 전 산업에 걸쳐 파견을 허용하는 것이다. 또한 ‘컴퓨터 관련 전문가/준전문가의 업무’, ‘사무 지원 종사자의 업무’, ‘고객 관련 사무 종사자의 업무’, ‘기타 교육 준전문가의 업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구체적으로 어디까지가 합법 파견인지 경계가 모호하고 광범위하다. 결국 파견 허용 업무라고 주장하면 합법파견이 되어 버리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이유로 합법파견의 파견계약서에 “단순 생산 보조”, “단순보조”, “단순노무”로 업무를 기재하는 사례가 매우 많다.

엄밀히 따지면 제조업도 예외는 아니다. 제조업에서 직접생산공정업무와 그렇지 않은 업무를 나누기가 만만치 않다. 직접생산공정업무라고 하더라도 일시적, 간헐적으로 인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파견이 허용된다. 그 결과 중소 제조업체가 몰려 있는 산업단지에서는 3개월 계약의 초단기 파견이 횡행하고 있다.

파견 허용 업무로 둔갑시키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그런데 법적으로는 합법파견이 되어버리면 파견노동자는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된다.

 

 

2. 합법파견에서의 고용관계 실태

 

합법파견에 관한 실태조사는 많지 않다. 따라서 합법파견 노동자들이 어떤 현실에서 일을 하고 어떻게 고용관계를 맺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다만 파견노동자 상담 등을 통해 몇 가지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고용관계의 순서가 바뀌어 있다. “근로자파견이란 파견사업주가 근로자를 고용한 ‘후’ 그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근로자파견계약의 내용에 따라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아 사용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파견법 제2조 제1호).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파견업체가 노동자를 고용한 후 파견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사업주가 사람을 뽑으면 이후에 파견업체가 근로계약서만 쓰는 셈이다. 즉 파견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사용사업주가 채용공고를 내고, 면접을 진행하고, 원하는 사람을 뽑는다. 그러고 나서 파견업체가 해당 노동자와 근로계약서를 쓰는 것이다.

둘째, 근로계약서에는 “파견계약이 해지되는 경우 근로계약은 자동 종료되는 것으로 한다”라는 문장이 들어 있다. 이 문장은 이런 의미다. 사용사업주가 마음에 안 든다며 파견노동자에게 출근하지 말라고 명령하면, 파견노동자는 파견업체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짤리는 것이다.

셋째,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고용관계는 사용사업주가 주도하며 파견업체는 브로커에 불과하기 때문에 파견노동자가 파견업체를 상대할 일이 없다. 처음 근로계약서를 쓸 때 파견업체 직원을 만나는 게 전부다. 파견업체는 철저하게 사용사업주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상황이 이렇다면 근본적인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럴 거면 사용사업주와 노동자 간에 직접 근로계약을 맺어야 하는 것 아닌가. 도대체 파견계약은 왜 필요한 거지?

 

 

3. 합법파견에서의 고용관계 

 

파견법에 따른 계약 관계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사용사업주와 파견업체 간에 맺는 파견계약, 다른 하나는 파견업체와 파견노동자 간에 맺는 근로계약이다. 사용사업주와 파견노동자 간에는 법상 아무런 계약도 성립하지 않는다. 법상 아무런 계약도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사용사업주는 법상 사용자 책임을 지지 않는다. 파견노동자를 지휘․명령하고, 파견노동자로부터 노무를 제공 받는 주체는 사용사업주인데 사용사업주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파견법은 사용사업주에게도 일부 사용자 책임을 부과하고 있으나 정작 중요한 책임은 누락하였다. 대표적으로 해고에 관한 규정이 그렇다. 파견법은, 해고에 관한 근로기준법 제23조는 파견업체에만 적용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발생한다. 분명 해고를 한 주체는 사용사업주인데, 파견노동자와 근로계약을 맺은 것은 파견업체이기 때문에 해고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지 판단이 필요한 것이다.

관련하여 두 가지 참고할 만한 판결이 있다. 대법원은 “사용자가 주차관리 및 경비요원을 필요한 곳에 파견하는 것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회사로서 그 근로자와 사이에, 근로자가 근무하는 건물주 등과 사용자 간의 관리용역계약이 해지될 때에 그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의 근로계약도 해지된 것으로 본다고 약정하였다고 하여 그와 같은 해지사유를 근로관계의 자동소멸사유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09. 2. 12. 선고 2007다62840 판결). 이 판결대로라면 사용사업주가 해고를 하였을지언정 파견업체와 파견노동자 간에 근로계약은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사용사업주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두 번째 판결은 올해 초 나온 하급심 판결(서울중앙지법 2020. 2. 11. 선고 2019가단5138071 판결)이다. 사용사업주가 파견노동자의 교체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파견노동자를 해고한 데에 대해 파견업체와 함께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책임은 있지만 어디까지나 금전적 배상책임만 지면 된다는 것이다.

결국 법률도, 법원도 사용사업주에게 해고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은 묻지 않고 있다.

 

 

4. 파견법 폐지 투쟁이 필요하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보자. 우리가 합법파견이라 부르는 것이 실제로 합법파견이 맞기는 한 건가. 파견업체가 노동자를 고용한 후 그 고용관계를 유지하면서 근로자파견계약의 내용에 따라 사용사업주의 지휘․명령을 받아 사용사업주를 위한 노동에 종사하게 하는 것이 법상 근로자파견의 의미라면,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파견은 위장파견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노동관계의 실질에 따라 사용사업주와 노동자 간에 묵시적 근로계약을 맺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묵시적 근로관계의 법리는 제조업의 불법파견에서뿐만 아니라 합법파견에서도 당연히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합법파견에서는 묵시적 근로관계에 관한 논의가 없다. 위장파견의 논의도 없다. 파견을 둘러싼 투쟁이 불법파견을 따지는 투쟁으로 흘러가면서 정작 파견이 가지는 실질에 대해서는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대공장의 사내하청이 문제되는 것은 파견 금지 업종에서 파견이 이루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실제 노동자를 부리는 사용자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진짜 사장이 책임지라는 것이 핵심이다. 합법파견도 마찬가지다. 진짜 사장이 책임져야 한다. 진짜 사장이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파견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법제 하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애초에 노동자를 상품으로 다루는 것을 허용하는 파견법 폐지 투쟁을 다시금 상기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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