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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포커스

 

민주노조운동은 어디에 서 있는가*

 

김혜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이 글은 2020년 8월 31일, 공공운수노조 대경본부, 공무원노조 대경본부, 전교조 대구지부가 주최한 ‘전태일열사 50주기 기념토론회’ <2020 전태일을 말한다>에서 발제한 내용을 수정한 글이다.

 

1.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최근 민주노조운동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몇 가지 장면이 있다.

 

○ 코로나19로 ‘해고를 금지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사회적 대화의 주된 쟁점도 ‘해고 금지’였다. 그런데 이렇게 말이 무성한 것과는 별개로 해고되어 투쟁하고 있는 아시아나KO 노동자들의 농성장은 많은 연대로 채워지지 못했다. 말은 무성했으나, 정작 그 해고에 맞서 투쟁하는 이들은 연대와 지원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채 고군분투하고 있다.

 

○ 국민건강보험공단 정규직 조합원 76%는 사실상 ‘고객센터 정규직화에 동의하지 않는’ 입장에 투표를 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서로를 같은 계급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많은 공공부문 정규직들은 ‘공정성’을 주장하며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반대하고, 노동조합을 탈퇴하겠다고 압박하여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과 연대하지 못하게 한다. 평등과 단결의 정신은 조합원들에게 이미 철 지난 가치로 인식되곤 한다.

 

○ 사회적 교섭이 노조 내부에서 쟁점이 되어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되었다. 노조가 조합원의 힘보다는 정치적 협상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법에 기대어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최소한의 기준이었던 법이 노동자들의 권리 쟁취를 위한 수단이 되고, 우리 투쟁도 합법적인지 아닌지가 중요해진다. 그러다보니 노조에서 조직담당자보다 법률가의 판단이 중요해지기도 한다.

 

○ 차별금지법 제정연대에서 평등버스를 타고 전국을 순회했다. 많은 노동자들이 평등버스에 참여했지만 노동조합의 참여가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민주노총은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이나 차별금지법 등 한국사회 주요 사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연대활동을 하지만, 여전히 ‘연대단체’ 중 하나로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조합원들에게 이 사안들을 설명하며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려는 노력도 아직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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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6.2. 아시아나항공 비정규직 코로나 해고 한 달, 시민사회 기자회견. [출처: 철폐연대]

 

이 몇 가지의 사례를 통해 우리 운동이 어디에 와 있는지를 질문하게 된다. 민주노조운동은 양적으로 성장했을지 모르지만, 조합원과 함께하는 집단적 힘은 약화되었고, 상층의 교섭력과 정치적 영향력이 중요해졌다. 조합원 내부에도 위계가 형성되어 있으며, 조합원들의 이해와 요구에 따라 민주노조운동 내부에서 갈등하고 갈라지는 일도 많이 생겼다.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기 위한 사회적 책임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이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근원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

 

 

2. ‘조합원의 이해를 대변하는 운동’을 넘어서야 할 필요

 

‘민주노조’는 어용노조에 맞서, ‘자본의 이윤’이 아니라 ‘노동자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는 조직이었다. 정부와 자본에게 탄압을 당하더라도, 개별 조합원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를 위해 투쟁한다는 자부심을 담은 표현이었다. 그런데 ‘노동자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한다’는 민주노조의 정신이 ‘조합원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둘은 완전히 다른 의미이다. 노동자들이 분화하고 위계화되어 노조 할 권리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있을 때, ‘조합원’만의 이해와 요구를 위해 활동하면 이 위계구조를 고착시키는 데 일조하게 된다. 그것은 운동이 아니다.

이것은 ‘투쟁이냐 타협이냐’는 쟁점이 현재는 핵심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기 조합원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전투적으로 투쟁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전체 노동자의 이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투쟁 또한 자본의 분할전략이 작동하는 한, 노동자 모두의 보편적 권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조합원’만의 이해를 중심으로 투쟁하면 누군가는 권리에서 배제되고 위계화되는 일은 반복된다. 노조 할 권리조차 빼앗긴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민주노조운동이 함께 투쟁하지 않는다면 ‘조합원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가’, ‘전투적 투쟁을 하는가’가 지금 시기 ‘민주노조운동’의 의미를 담을 수는 없다.

이렇게 된 이유는 자본이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방식이 변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노동조합이 사회경제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97년 총파업 이후 경제위기에 맞서는 투쟁전선이 와해되고, 개별 사업장 차원의 투쟁으로 전환한 후, 조합원들은 각자도생을 체화했다. 노동조합도 노동자 전체의 이해와 요구가 아니라 ‘조합원’의 이해와 요구를 우선하게 되면서 이러한 각자도생의 시스템에 편입되었다. 따라서 이 운동은 아무리 전투적이어도 비전을 가진 운동이 될 수 없고 일부 노동자의 생존권 투쟁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경제위기 이후 총전선을 만드는데 실패하고, ‘정치세력화’로 방향을 잡아갔지만 ‘정치세력화’마저 실패한 지금 다시 돌아보건대, 그 당시에 이후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그를 위해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가치와 방향은 어떻게 자리잡혀야 하는지를 토론해왔다면 양상은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논쟁이 노동운동의 지향에 대한 토론이 아니라 ‘사회적 대화냐 투쟁이냐’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 민주노조운동의 한계가 놓여 있다.

 

 

3. 권리의 보편성을 향한 운동은 어떻게 가능한가?

 

‘조합원’의 이해와 요구를 지키는 것으로 왜곡된 민주노조운동을 다시 복원하려면,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즉 권리의 보편성을 위해 싸울 수 있어야 한다. ‘권리의 보편성’이라는 것은 단지 임금과 노동조건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경쟁과 이윤 중심으로 재편하는 자본에 맞서 사회적 권리를 회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민주노조운동의 지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지금 민주노조운동은 비전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촛불투쟁 과정과 그 이후에도 민주노조운동은 새로운 사회의 전망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했고, 코로나19로 시대의 전환이 요구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여전히 ‘해고 금지’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더 많은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이 민주노조운동의 방향에 대해 자기 입장을 내게 하자. 우리 사회의 변화 전망에 대해 토론회를 열도록 하자. 그것을 민주노조운동에서부터 적극 추동하자. 그런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을 때 민주노조운동의 방향도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다.

노동조합의 조직적 과제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민주노조운동은 조직적 과제로 산별노조를 제기했지만 산별노조가 세워진 곳도 여전히 기업별 체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도화된 산별교섭이 이루어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산별교섭의 기본 가치인 한 산업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통일하고 모든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함께 투쟁한다는 기본 정신을 구현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산별노조의 정신이 아니라 산별노조라는 조직형식만 남은 상황에서 산별노조운동을 지속해나가도 좋은지 질문해야 한다.

둘째, 민주노조운동이 전체 노동자의 대표체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민주노조운동은 전체 노동자의 이해와 요구를 중심으로 자신의 운동을 해나가야 한다. 노조의 조직체계와 예산 사용방식, 중심적인 투쟁의 의제를 모두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즉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로 초점을 맞춰서 그렇게 조직된 노동자를 대표하겠다는 발상을 바꾸어서, 불안정한 노동자들이 조직이 되든 되지 않든 상관없이 민주노조운동이 전체 노동자들의 평등과 권리 확보를 위해 싸우겠다는 선언이고, 그것을 위해 투쟁과 사업의 방식과 내용을 재조정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내부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투쟁에서처럼 조직된 조합원들, 특히 정규직 조합원들의 반대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활동가들이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조합원들을 설득하면서 전체 노동자를 대표한다는 원칙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해보자. 그리고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노동조합이 있을 때 다른 노조들이 그것을 응원하는 목소리를 함께 내보자.

셋째, 사회적 과제에 대해 책임 있게 역할을 해야 한다. ‘노동운동’은 노동조합만이 아니라 ‘노동’을 자신의 과제로 하는 많은 활동가와 단체들의 힘으로 이루어진다. 지금까지의 민주노조운동은 여전히 자신의 문제에 대해 다른 단위들의 연대를 기대할 뿐, 다른 활동단체나 활동가들에게 적극적으로 힘을 보태는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많은 활동가들이 노동운동의 영역에서 떠나가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민주노조운동은 노동운동의 전 영역에서 다른 활동을 지원하고 연대해야 한다.

또한 자본의 영향력은 전 사회적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 전체를 파괴하고 있다. 견제받지 않는 기업의 탐욕이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교육과 의료 등 보편적 권리가 필요한 영역도 이윤 중심의 경쟁체제로 만들었다. 민주노조운동의 지향이 현장에만 머물지 않고 새로운 사회를 구성하기 위한 활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회적 과제를 ‘연대투쟁’ 방식으로가 아니라 자신의 과제로 받아 투쟁에 나서야 한다. 그러려면 이제는 조합원들이 사회적인 과제로 눈을 돌리게 해야 한다. 그래야 조합원들의 시야도 넓어지고 현장에서의 활동도 제대로 할 수 있다.

넷째, 현장운동을 재구성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활동이 ‘지침에 따른 조합원 동원 활동’이 되고 있다. 노조 활동의 기술은 익혔으되 노동운동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집행부는 노조 활동을 임단협 수준으로 축소하게 된다. 조합원과 집행부가 분리되고, 조합원들을 위한 교육과 실천이 자리잡지 못하면서, 조합원들은 자본의 위계구조를 수용하고 노조가 자기 이익만 위해 활동하도록 요구하게 된다. 노조의 지침과 집행부 중심의 활동을 넘어 현장조합원과 함께 노동운동의 방향을 고민하는 현장 활동이 필요하다.

현장운동은 현장에서 자본의 현장통제에 맞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는 운동이었다. 임단협에서만이 아니라 현장에서 노동자가 주체가 되고자 하는 운동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현장에서의 ‘운동’이 사라지면서 지금은 현장운동이 집행부를 잡기 위한 모임으로 왜곡되기도 한다. 지금 현장에서 벌어지는 자본의 공세는 ‘노동자의 분할과 위계화’이다. 능력주의가 현장 조합원들을 갈라놓아 단결의 정신을 무너뜨리고 경쟁을 부추긴다. 새로운 현장운동은 노동자들의 평등과 단결을 도모하는 운동이어야 하고, 조합원들을 설득하여, 현장에서부터 자본의 분할 전략을 무너뜨리는 사례를 만들어나가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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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우리 손으로!” 2020.9.10.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국민동의청원 참여 호소 비정규직 당사자 기자회견’ 모습. [출처: 김경봉]

 

 

4. 2020년 하반기부터 시작하자

 

우선, 코로나19로 인해 피해를 당한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일부터 시작하자. 정부는 이전 경제위기 국면에서처럼 코로나19 국면에서도 기업에 대한 지원을 대규모로 진행하면서 ‘기업 살리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조조정은 어려운 노동자들에게 더 집중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평등과 연대를 위한 투쟁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집행부가 농성장에 찾아가거나, 기금을 전달하거나, 지침으로 대규모 집회를 조직하는 관행을 넘어서는 방식이면 좋겠다. 자발적으로 이 투쟁에 연대하는 모임을 만드는 등 적극적인 현장 실천을 시도했으면 좋겠다.

또한 코로나19로 피해를 당하는 미조직 노동자와 함께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조직된 노동자들은 투쟁이라도 하지만 조직이 없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민주노조운동이 전체 노동자들을 대표하고자 한다면, 설령 조합원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코로나19로 피해를 당하는 이들의 어려움을 듣고 행동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만나야 한다. 적극적으로 상담 창구를 열어 목소리를 듣고, 민주노조운동이 이 의제를 자신의 과제로 삼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노동자들에게 실감이 나는 대책을 만들어나가고, 그 과정에서 미조직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노동자들에게 누가 희망인지를 보여야 할 때이다.

또한 노조 할 권리, 안전하게 일할 권리 보장을 위한 입법 투쟁에도 힘을 다해야 한다. 노조 할 권리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는 주체가 되도록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권리이다. 그런데 특수고용 노동자는 전속성을 근거로 노조 할 권리가 박탈당했고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원청에게 사용자 책임을 묻지 않는 구조 때문에 노조 할 권리가 박탈당했다. 이것을 제도적으로 바꾸기 위한 입법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까지 묶어서 ‘전태일 3법’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10만 국회입법동의청원이 성사되더라도 이 법이 통과되기까지는 많은 투쟁이 필요하다.

 

이 과제가 자신의 현실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정규직 조합원들이 많다. 그리고 코로나19로 투쟁의 조건이 만만치 않아 더욱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런 조합원의 상태를 탓할 것이 아니라, 바로 그렇기 때문에 왜 투쟁하는 이들에 대한 연대가 중요한지, 왜 권리를 보편화하는 운동이 필요한지, 왜 아직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우리가 함께 움직여야 하는지를 알리면서 조합원들이 움직이게 하는 활동을 시도해야 한다. 운동의 변화는 교육과 토론만이 아니라 작은 실천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노총 선거가 다가오면 소위 ‘정파적 질서’에 따라 후보들이 나오고 또다시 현장의 상태와는 관련 없는 허구적 쟁점으로 논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이 민주노조운동의 비전이라고 한다면, 선거 때야말로 노조운동의 이념과 지향에 대해 전 조합원 토론을 할 수 있는 때이다. 활동가들이 열린 마음으로 그 토론을 조직하는 데 나서야 한다. 그런데 그 토론이 집행부에 대한 비판에만 머물고 우리 자신을 포함한 전체 운동의 한계와 과제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논쟁을 많이 해도 운동을 변화시키는 동력이 되지는 못한다. 자신의 활동을 새롭게 만들겠다는 결의가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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