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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속으로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 함께 만들어요!”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양한웅 ・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 ‘알’ 소주 동지 인터뷰


 

<전국순회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평등버스>(이하 ‘평등버스’)가 지난 8월 17일부터 29일까지 전국 26개 도시를 누비며 모두의 평등과 인권을 위한 여정을 무사히 마쳤다. 코로나19의 확산과 함께, 장마와 연이어 상륙한 태풍의 영향으로 12박 13일간의 평등버스 일정은 유독 험난했다. 평등버스가 향하는 도시 곳곳에서는 혐오선동세력의 방해가 어김없이 이어졌다. 이러한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평등과 인권을 외치는 저마다의 외침을 하나로 결집하고 확산하는 데 평등버스는 소중한 디딤돌이 되었다.

평등버스를 기획하고 2주간 26개 도시 순회 일정에 하루도 빠짐없이 결합했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가 중 ‘찰떡 호흡’이 돋보였던 두 동지를 만나 보았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대표이자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인 양한웅 동지,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 ‘알’ 소주 동지가 그 주인공이다. 두 활동가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가로막고 나중으로 미루는 세력에 맞서 앞으로도 평등버스와 같은 법 제정 촉구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져야 한다고 인터뷰 내내 힘주어 말했다. 평등버스와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관한 두 활동가의 진솔한 이야기는 지난 9월 15일,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사무실에서 나누었다.

 

인터뷰 ‧ 정리 임용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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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9.15. 성소수자 운동의 상징인 무지개 깃발을 양한웅 동지와 소주 동지가 나란히 들어 보이고 있다. [출처: 철폐연대]

 

평등버스 2주 동안 라이브방송에서 두 동지가 보여준 ‘환상의 케미’ 소문이 자자했다. 상대방에게 평소 하지 못했던 덕담과 미담을 이번 기회에 전해 달라.

 

양한웅: 성소수자 차별 반대를 위해 결성된 연대체인 ‘무지개행동’ 회의에서 소주 동지를 처음 만났다. 원래는 회의 뒤풀이 자리에서나 가끔 인사 나누던 사이였는데, 이번에 평등버스를 함께하면서 12박 13일간 룸메이트가 됐다. 매일 밤 차별금지법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면서 소주 동지의 남다른 책임감과 진정성을 느꼈다. 날이 갈수록 멋진 활동가로 성장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어 정말 기뻤다.

 

소주: 라이브방송에서도 고백했지만, 사실 제가 잠들면 이를 갈고 코골이도 심한 편이다. 게다가 침상에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종일 뒤척이며 자곤 했는데, 평등버스 기간 중 한 침대를 사용할 때도 간혹 있어서 아마 굉장히 불편하셨을 것 같다. 그런데도 불편한 기색 하나 없이 저를 친밀하게 대해주신 점이 내내 고마웠다. 양 동지와 룸메이트로 함께 지내면서 “성소수자의 삶에 대해 많이 이해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라는 게 느껴졌다. 특히,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와 차별금지법 제정 필요성을 이야기하실 때 진심이 뚝뚝 묻어나서 고맙고 존경스러웠다.

 

평등버스를 출발하기 전부터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고 들었다. 평등버스를 기획하게 된 배경과 준비 과정에서 가장 고심했던 대목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양한웅: 원래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이하 ‘차제연’)가 전국적인 네트워크망을 가진 연대체 기구는 아니었다. 138개 단체가 차제연 안에서 함께하고 있지만 다소 느슨하게 연결돼 있는 형태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차제연 지역모임이 없었기 때문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세력이 막강한 상황에서 어떻게 전국적인 활동을 벌여낼 수 있을지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제가 처음에는 한 달가량 제주에서 서울까지 도보행진을 추진하자는 제안을 냈는데, 취지는 이랬다. 전국 각지를 순회하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에 함께할 지역 동지들을 만나고 이를 계기로 차제연 지역모임도 결성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덮친 상황에서 도저히 소화하기 어려운 일정이다 싶었다. 결국 기획단 동지들과 상의한 끝에 평등버스를 전국순회 방식으로 진행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다들 처음 해보는 일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엄두가 나질 않았다고 하더라. 그래도 평등버스를 준비하는 동안 이 일을 돕겠다며 자청해서 나서는 분들도 점점 늘어났고, 시간이 지날수록 기획단 역시 초반의 우려보다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소주: 아무래도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가장 염려됐던 부분은 평등버스 일정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확진자가 나오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만약 코로나19 확진자가 우리 가운데 발생하게 된다면 그땐 진짜 ‘망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저만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라, 사실 준비하는 사람들 모두 똑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기획단 내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클 경우엔 이번 기획을 폐기해야 하는 건가, 걱정도 많이 했다. 나중에 전체회의에서 거리두기 등 방역지침을 철저히 지키면서 평등버스를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겨우 안도할 수 있었다.

 

2주간의 여정에 함께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언제였나.

 

소주: 다른 무엇보다 평등버스 참가자들의 발언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평등버스에 탑승한 활동가들의 발언도 좋았지만, 우리가 만난 지역 활동가들, 시민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향한 각자의 열망이 또렷하게 느껴져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한 번은 광주에서 문화제를 열고 있는데, 중년의 어떤 여성 한 분이 우리 쪽으로 가까이 오시지는 못하고 주변을 계속 서성이던 장면을 목격했다. 그래서 제가 평등버스 유인물과 굿즈를 직접 전해드렸는데, 나중에 다른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그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문화제를 광주에서 열어줘서 너무 고맙다”고. 자세한 사연은 못 들었지만, 이렇게 차별금지법 제정이 절실한 사람들을 평등버스로 인해 만날 수 있었다는 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양한웅: 사실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평등버스와 함께할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버스를 타고 지역을 돌 때에도 혹시나 지역이 휑하면 어쩌나 좌불안석이었다. 다행히 대부분의 주요 도시에서 문화제나 간담회, 선전전, 기자회견 등 다채로운 방식으로 평등버스 순회단을 맞이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인권활동가들뿐만 아니라 노동단체 활동가, 간혹 철폐연대 회원들도 이 자리를 채워주었다. 이렇게 사람이 모이고 의지가 모여서 여러 행사들이 꼴을 갖추어 나가는 걸 보면서 한 번 해볼 만한 싸움이 되겠구나, 확신이 생겼던 것 같다. 그간의 근심, 걱정이 씻은 듯이 사라졌던 순간 하나하나가 전부 기억에 남는다.

 

즐거웠던 에피소드도 있었을 텐데.

 

소주: 많은 분들의 후원 덕에 저희가 잘 먹고 다니긴 했는데, 촘촘한 일정 속에 회포를 제대로 풀지는 못했었다. 하루 일정이 마무리되면 보통 회의를 자정께, 늦으면 새벽 두시까지도 하니까. 다음날 일정이 일찍 시작되니 저녁 만찬을 즐길 여유는 대개 주어지지 않았다.

어느 날엔 평등버스를 탄 동지들이 낙지를 너무 먹고 싶다고 아우성이었다. 평등버스가 목포로 향할 때였다. 마침 그날 저녁식사 담당이 저였다.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양 동지가 갑자기 저에게 “여기서 내리자”고 하는 것이다. 솔직히 ‘왜 여기서 내려야 하지? 이게 무슨 상황이지?’ 그때는 감도 오지 않았다. 내리자고 해서 일단 양 동지를 따라 내렸다. 그리고는 둘이 목포 수산시장에 함께 가서 낙지 가격도 흥정하고, 식당 예약도 했다. 평소와는 사뭇 다르게 여유로운 저녁식사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때가 가장 즐거웠다. 맛있었어요!

 

양한웅: 그냥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면 안 되나? 제가 노동운동을 하면서 이렇게 순회 일정이 빡빡한 경우는 정말 처음 겪었다! 보통 노조에서는 저녁문화제를 마치면 하루 일과를 정리하면서 뒤풀이도 하고 자유시간도 갖고 하는데, 여긴 그런 게 일절 없었다. 일정을 마치면 이튿날 아침 일정을 진행하는 지역으로 바로 이동하기 때문에, 서둘러 버스 타고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 지역에 도착하면 숙소에 짐 풀고 또 회의…. 회의는 또 쉽게 끝나는 법이 없다. 열두시나 한시에 회의를 마치는데, 숨 돌릴 틈을 안 준다. 평등버스 단장을 맡은 두 동지가 있는데, 제가 그 동지들한테 농반진반으로 이렇게 말했다. “단장이 사람 잡는다”고. 그래서 소주 동지랑 회의 마치면 숙소에서 같이 캔맥주 한 잔 간단히 하고 이야기 나누다가 잠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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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8.28. 평등버스 11일차 수원지역 저녁 일정으로 진행된 ‘평등문화제’에서 공연하는 소주 동지의 모습. [출처: 세연]

 

평등버스를 진행하면서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처한 어려움은 없었나.

 

소주: 예컨대 수원 지역의 경우 원래는 문화제를 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준비 과정에서 선전전으로 변경되었다가, 태풍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또다시 실내 행사로 변경하는 일이 있었다. 이렇게 지역 프로그램이 행사 하루 전에 바뀌는 일들이 허다했다. 아무래도 코로나 재확산이 우려되는 시기였기 때문에, 많은 일정들이 온라인 방송으로 대체되거나 행사 규모를 축소하는 일들이 계속 생길 수밖에 없었다.

 

양한웅: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태풍이나 장마 같은 악천후도 우리를 난관에 빠트리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매일매일 평등버스에 함께한 동지들의 놀라운 의지와 열정으로 어지간한 어려움은 다 뚫고 나아갈 수 있었다.

반드시 차별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굳은 각오가 있었기 때문에 코로나를 비롯한 어려움들도 잘 이겨낸 것 같다. 제가 평소에 ‘몸은 본래 없는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평등버스에 탄 동지들에게 그렇게 몇 번이나 강조했더니, 우리 동지들도 저만 만나면 “양 동지, 몸은 원래 없는 것이니까요.”라고 되뇌면서 정말 열심히 뛰더라(웃음).

 

소주: 전국 26개 도시를 방문하기 위해 평등버스에 올라탄 사람들도 물론 걱정이 많았겠지만, 각 지역에서 평등버스를 맞이하는 동지들 역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충을 겪어야 했다. 특히 지역사회에서 “코로나 상황에 굳이 지금 해야 하나?”라는 관공서나 지역 사람들의 문제제기에 직면한 활동가 분들은 막중한 부담감을 짊어지고 프로그램들을 조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들었다. 지역 활동가들의 이런 사정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이 못내 죄송스러웠다.

또 버스에서 탑승자들이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받은 지역도 있었다. 결국엔 최소한의 인원으로 두세 명만 내려서 잠깐 선전전을 진행했다. 평등버스에 탄 활동가들과 지역 활동가들이 가진 높은 열망과 의지가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과 맞물려 생긴 해프닝이었던 것 같다.

 

코로나 확산세가 멈추지 않아서 만나지 못한 사람, 가보지 못한 현장도 많았을 것 같다. 부득이하게 취소된 일정 중에 가장 아쉬움이 컸던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양한웅: 여러 지역에서 집회 형식의 문화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불가피하게 규모를 축소한 것이 가장 아쉽다. 문화제뿐만 아니라 간담회나 기자회견도 마찬가지로 참석자가 애초 예상 참석 인원의 반절 이하로 뚝 떨어졌다. 여튼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쉬웠다.

 

소주: 부산에서는 김진숙 지도위원과 한진중공업 복직 투쟁에 함께하려고 했는데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평등버스가 한진중공업 앞으로 가려던 날 이틀 전에 공장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아침선전전을 취소하는 대신 김진숙 동지와의 간담회로 일정을 대신했지만, 함께 투쟁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져서 아쉬웠다.

 

혐오선동세력이 곳곳에서 잡음을 일으키지는 않았나.

 

소주: 기자회견이나 어떤 행사를 할 때마다 혐오선동세력이 어디선가 나타나 출력이 엄청나게 좋은 앰프로 방해하는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가령 우리가 ‘차별금지법 제정하라’는 구호를 외치면, 그에 맞춰서 ‘반대한다! 반대한다!’는 구호를 제창하는 식이다. 또 이들은 혐오를 조장하는 문구를 적은 피켓들을 일제히 들고 맞불집회를 열기도 한다. 차별과 혐오를 선동하는 표현들이 이런 식으로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대부분 성소수자와 HIV/AIDS감염인에 대한 혐오를 기반으로 한 피켓 문구였다. 누군가는 계속 보다 보면 무뎌지지 않겠냐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평등버스 참가자를 포함해서 동료들이 상처받진 않을까 신경이 쓰였다. 집요하게 평등버스의 꽁무니를 좇아다니면서 멸시와 경멸로 가득찬 언어를 내뱉는 모습에 굉장히 안타깝고 화가 났다.

 

양한웅: 혐오선동세력들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모욕적인 언사를 하는 것이 정말 분노스러웠다. 이들이 곳곳에서 활개 치는 걸 보면서 혐오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다시 한 번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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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8.27. 평등버스 10일차 천안버스터미널 조각공원 앞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거리선전전에서 방송 인터뷰 중인 양한웅 동지의 모습. [출처: 불교방송 BTN뉴스 화면캡처]

 

평등버스가 남긴 성과와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양한웅: 여전히 차별금지법에 대해 모르는 분들이 많고, 활동가들조차 만들어지면 그저 좋은 것 정도로만 이해하는 분들도 짐작건대 적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이런 상황에서 평등버스가 저변을 훑으면서 차별금지법 제정 필요성에 공감하는 동지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연대 틀을 만들어낸 것이 가장 중요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과제에 있어서는, 혐오선동세력만이 아니라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기성 정치권들의 공고한 연합이 만만치 않음을 재확인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치지 않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은 반드시 이뤄지리라 확신한다.

 

소주: 양 동지 말씀에 공감한다. 평등버스가 12박 13일을 다니면서 연일 행사를 하니까 지역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계속 뉴스가 나왔다. 저는 차별금지법 제정운동 관련 소식이 매일매일 미디어를 통해 보도된다는 것 자체가 적지 않은 성과라고 생각한다. 또 혐오선동세력의 훼방이 있었지만, 무사히 안전하게 평등버스를 치러냈다는 것도 이후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활동에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본다.

이제 평등버스 후속 사업들을 준비해야 하는데, 26개 도시에서 만난 전국의 활동가들, 시민들과 어떻게 더 큰 싸움을 잘 만들어갈 것인지가 남은 과제일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이끌어낼 수 있는 우리 사회 변화의 지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양한웅: 차별금지법 제정은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적지향・성별・장애・나이・학력 등 모두 25개의 차별금지 사유를 담고 있고, 고용・교육・행정서비스 등 4개의 차별금지 영역도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은 관행과 제도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온갖 차별과 혐오를 문제로 인식하고 줄여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혐오하는 언행은 결국 남을 업신여기는 교만한 마음에서 비롯한다. 만약 법제도가 혐오 표현을 금지토록 한다면, 뭇사람들 마음에서도 혐오 표현에 대한 경계와 주의가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소주: 한국사회는 기존에 존재해왔던 차별을 차별이라고 인식하는 것 자체가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다. 문제를 가시화하기 위한 발화 자체가 어렵다보니 문제를 바로잡기도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된다면, 성소수자 문제나 난민, 이주민까지 차별금지사유에 해당하는 그 모든 이유로 발생하는 차별을 비로소 차별이라고 목소리 낼 수 있는 제도적 근거가 마련된다. 이렇게 차별을 차별이라고 당당히 말하고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차별금지법이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각오와 다짐을 전해 달라.

 

양한웅: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진 뒤 우리 사회도 장애인권 문제에 대해 더디고 미약하지만 성찰과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이러한 개별법을 넘어서 모든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다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우리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무쪼록, 세상의 진보를 바라는 모든 개인과 단체들이 금년 하반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싸움에 적극 동참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제 개인적으로도, 철폐연대와 조계종 사회노동위 차원에서도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때까지 끝까지 함께할 것을 약속드린다.

 

소주: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이후의 세상에서는 새로운 감각이 깨어나고 키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성소수자인 동시에 비정규직 노동자라거나, 여성인 동시에 장애인이라거나, 청소년인 동시에 감염인이라거나, 이렇게 각 사람은 복합적인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 당연히 차별의 구조나 원인도 단일하지 않을 것이다. 차제연이 줄곧 강조해왔듯이 차별을 누군가의 우연한 불행으로 치부하지 않고, 차별의 경험을 포괄적으로 바라보는 것, 나아가 평등의 감각을 키우는 계기가 바로 차별금지법 제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당장 마법처럼 차별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법제정이 된 이후에도 투쟁은 계속될 테니까. 저 역시 모두의 존엄과 평등을 위해 계속 활동해나가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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