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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투쟁/이슈

■ 오늘, 우리의 투쟁

 

하청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 위장폐업과 폭력탄압에 결코 꺾이지 않는다!

 

김은섭 • 전국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서진이엔지 조합원

 

 

 

서진이엔지는 현대중공업 계열사인 현대건설기계 사내하청업체다. 굴착기의 구동부에 해당하는 암, 붐, 휠로더 등의 용접과 사상(그라인더) 작업이 주된 업무이다. 건설기계 업무는 자동차 라인 생산공정과 유사해서 노동시간과 작업배치, 휴게시간 부여 등 작업에 관한 모든 권한을 원청인 현대중공업이 행사했고, 하청노동자들은 한낱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 원하청 자본

 

건설기계 하청노동자들은 조선소에서 일하는 다른 용접사들에 비해 비교적 안전한 작업환경과 상대적으로 낮은 노동강도를 빌미로 저임금을 강요당했다.

2008년도 현대중공업 건설장비사업부 소속 사내하청업체에 입사한 나는 당시 최저시급보다 천 원가량 더 높은 5,300원을 받았다.

당시 조선소 용접사들이 받는 임금 수준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낮은 액수였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도 건설장비 부문 용접은 취급조차 하지 않는 분위기였으니 회사의 대우는 오죽했겠는가.

건설기계 업계 특성상 한창 무더운 하절기에 일이 많아서 주야간 근무를 하며 월 400~500시간 가까이 일하는 게 일상이었다. 대신 일이 없는 동절기에는 기본 근무시간밖에 하지 못하거나 무급 순환휴직이 당연시되었다. 이렇듯 노동자들은 회사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수동적인 존재였다.

그러던 중 2008년 말 회사는 건설경기가 나빠졌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에게 한 달간 무급휴가를 종용했다.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하니 우리는 제대로 된 항의의 목소리조차 낼 수 없었고 일방적인 무급휴가 공고를 받아들였다. 한 달간의 무급휴가 기간이 다 지나갈 즈음 현장 반장은 무급휴가 중이던 노동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업체폐업을 통보했다. 그리고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당시 성과금 비슷하게 나온 돈 100만 원을 수령하지 못한다고도 했다. 우리는 돈 100만 원이라도 받고자 반장이 가져다준 용지에 동의 서명을 하고 자연스레 퇴사를 선택하게 되었다. 되돌아보니 월차 정산조차 해주지 않았고 퇴직금 역시 받지 못했다.

더 기가 막힌 일은 당시 회사는 폐업하지도 않았거니와, 소수의 인원으로 업무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땐 몰랐지만 이것이 ‘위장폐업’이었음을 서진이엔지 노동자들은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2009년 8월 재입사했고, 나머지 노동자들은 다른 업체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그 뒤 2020년 8월 24일, 10여 년 전 그때와 마찬가지로 서진이엔지는 경영난을 핑계 삼아 다시금 폐업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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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8.20. 서진이엔지 사측의 불법파견 증거인멸을 저지하기 위해 현장순회투쟁을 진행 중인 서진이엔지 노동자들. [출처: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지긋지긋한 차별과 착취

 

그동안 4번이나 업체 명을 바꾸고 사장도 바뀌었지만, 건설기계 하청노동자로 청춘을 바쳐 일해 온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승계는 변함없이 이루어졌었다. 아무리 하청업체 간판을 바꿔달고 바지사장을 교체한들 생산의 주역인 우리 노동자들만큼은 손쉽게 갈아치우기 어려웠을 것이다.

서진 노동자들은 적게는 3년, 길게는 20년 이상 현장에서 함께 오래도록 헌신적으로 일해 왔기 때문에 내 일터를 가꾸며 회사를 성장시켰다는 보람과 긍지를 공유하고 있었다. 물량이 많을 땐 월차도 마음껏 쓸 수 없게 하면서 주야, 토요일, 일요일까지 풀full 근무를 시켰고, 물량이 없을 땐 무급휴가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 전전긍긍하면서 그렇게 일터를 지켰다. 불안정한 근무 여건과 열악한 처우에 걱정과 불만이 산더미처럼 쌓여갔지만, 날로 경쟁이 심화하는 건설기계 세계시장 흐름상 어쩔 수 없다며 분을 삭였다.

하지만 토요일 주차(유급주휴수당) 문제로 서진 노동자들의 인내심은 결국 한계에 도달하고 만다. 기존에는 토요 근무를 하지 않아도 회사는 주차 8시간을 당연히 지급해왔다. 그런데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5년차 이하 노동자의 임금이 당시 법정 기준에 미달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든 손해는 보기 싫었던 회사는 이들 노동자 시급 몇 백 원을 올려주는 대신 토요일 8시간 주차를 미지급하는 방식으로 상황을 유야무야 넘기려 했다. 그 결과 서진이엔지에서 용접과 사상 업무를 하면서 5년 넘게 일한 노동자들은 최저시급보다 50원 내지 100원 정도 더 받으면서 일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신규 입사자의 경우 숙련된 그들보다 돈을 더 많이 받고 입사했다. 12년 가까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고참 급에 속하는 나 또한 신규 입사자와 시급 차이가 별반 나지 않았다.

 

단체교섭 중 느닷없는 폐업 공고

 

이 같은 회사의 불합리한 처우로 묵묵히 일만 하던 나와 동료들은 서서히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지만, 소수 의견은 힘을 갖기 어려웠다. 2019년 여름, 빼앗긴 주휴수당과 열악한 작업환경을 조금이나마 개선하기 위해 서진 노동자들 30여 명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되었다. 시작하는 게 어려웠을 뿐 그간 회사의 갖가지 만행에 불만이 있었던 터라 과반수의 인원이 순조롭게 노동조합으로 뭉칠 수 있었다.

그 이후 회사의 법 위반사항들을 하나하나 바로잡아 나갔다. 수없이 자행되었던 무급휴가 강행 역시 노동부에 신고하여 사측이 유급으로 지급해야 할 의무를 확인했고 이내 휴업수당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회사와 단체교섭을 시작하면서 그동안 빼앗긴 주차에 대해서도 돌려줄 것을 요구했고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9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던 교섭에서 사측 대표는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하기 일쑤였고, 회사가 정한 빡빡한 교섭일정 탓에 퇴근 후 40분 남짓한 교섭시간 내내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다 자리를 파하곤 했다.

 

이에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는 울산지방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신청에 나섰고, 마침내 쟁의권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지회는 사측이 불성실한 교섭 태도를 하루 빨리 바꾸기를 기다리며 전면파업을 서두르지 않았다. 투쟁 초반에는 지부 파업 일정에 맞춰 한 달에 한두 차례 파업 투쟁에 참가하는 정도에 그쳤다.

이런 서진 노동자들의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사측은 회사 물량을 조금씩 외주업체와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넘겨버렸다. 그로 인해 서진 노동자들은 출근을 해서도 할 일이 없어 평소 업무의 절반조차 소화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회사는 경기침체와 코로나19를 핑계로 우리 노동자들에게 또 다시 무급휴업을 강요했다.

현대건설기계의 다른 사내하청업체의 경우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속히 신청하여 정부의 재정적 지원 속에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에 힘썼지만, 서진이엔지 사장은 ‘여건이 맞지 않는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이조차 신청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습적으로 연 노사협의회 자리에서 미리 준비해온 서면을 읽으며 업체 폐업을 선언하고, 노사협의회 자리가 파하자마자 전 공장 탈의실 문에 폐업공고가 나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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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9.14.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서진이엔지 노동자들이 고용승계를 주장하며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출처: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다

 

이에 분개한 서진 노동자들은 천막농성과 파업투쟁으로 맞섰으나, 원청 현대중공업과 사전 교감 속에서 이루어진 위장폐업은 물 흐르듯 진행되었다.

8월 24일, 서진 노동자들은 해고되어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다. 그러나 서진 노동자들은 투쟁의 끈을 놓지 않았다. 노동자들을 공장 밖으로 쫓아내면 당장 모든 게 끝일 거라 자본이 판단했다면 그건 오산이다. 사내하청지회는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에 불법파견 진정을 냈다. 현대건설기계 정규직 노동자들과 하청노동자들이 함께 일했던 현장은 불법파견의 온상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법파견 범죄를 회사는 이 증거들을 없애기 위해 공장 전체를 창고로 만들고 있는 중이다. 현대중공업 원하청 자본은 증거 인멸을 막기 위해 현장에 진입했던 서진노동자들을 산업보안대를 동원해 폭력으로 막아섰다. 불법부당한 자본의 탄압에 맞서기 위한 서진 노동자들의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산업보안대와 구사대를 앞세워 폭력적으로 제지한 것이다. 이날 투쟁에서 10여 명 이상의 동료들이 산업보안대와 구사대의 폭력에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 서진 노동자들은 해고자 신분으로 명절조차 마음 편히 지낼 수 없는 상황이다. 근심걱정을 안은 채 일부는 고향으로, 일부는 울산에 남아 현대중공업 앞에 차려진 천막농성장에서 이번 명절을 보냈다.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수십 명이 위장폐업으로 인해 길바닥에 나앉았다. 수십 명의 노동자들은 물론이거니와 그 가족들은 대체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인가?

서진 노동자들은 명절로 인해 잠시나마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투쟁의 현장에 다시 복귀했다. 이 투쟁은 단지 서진 노동자들만의 싸움이 아니다.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 데 모여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그날까지, 서진 노동자들이 단결투쟁의 물꼬를 틀 것이다.

비록 이 투쟁의 끝이 언제일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거대 자본에 맞서 끝까지 싸울 것이다.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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