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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투쟁/이슈

■ 기고

 

 

‘어쩔 수 없다’를 넘어선 여성 노동자들과 또록의 빛나는 발걸음

 

이젊은 • 철폐연대 회원

 

 

 

<회사가 사라졌다> 책을 받았다. 폐업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어느새 예쁜 표지를 달고 세상에 나왔다. 폐업이라니. 석사학위 논문을 쓰던 때가 생각났다. 소규모 사업장에서의 노조 경험을 연구했는데, 노동자들이 아무리 단합하고 잘 싸워도 사업주가 회사 문을 닫아버리면 답이 없었다. 물론 몇몇 노동자들은 계속 싸웠지만 회사로 돌아가지 못했다. 돌아갈 회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답이 없는 건 논문을 쓰던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업장 폐업 사례를 연구의 한계로 남겨두고 논문을 끝낸 게 아직도 마음에 숙제처럼 남아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용기가 없었던 것 같다. 나조차 사업장 폐업은 노동자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라 생각했던 것이다. 정부의 제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마저도 사업주가 피해버리면 그만이지 않나, 하는 패배주의적인 마음도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받아 들었을 때 용기 없던 지난날의 나를 떠올리며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회사가 사라졌다>는 길이 없다고 멈춰선 내 앞에 나타난, 없는 길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싸우는 여자들’의 이야기라 느껴졌기 때문이다.

 

<회사가 사라졌다>는 림보, 시야, 하은, 희정으로 이루어진 ‘싸우는여자들기록팀 또록’에서 사라진 회사를 상대로 싸웠던 성진씨에스(자동차 시트 제조), 신영프레시젼(핸드폰 부품 조립), 레이테크코리아(문구용 스티커 제조) 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노동자들에게 폐업이 어떤 의미인지,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여성 노동은 어떤 대우를 받아왔는지, 폐업은 어떻게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짚어낸다.

폐업. 보통은 경영상의 이유로 회사가 문을 닫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적으로 회사의 입장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게 된다. 뉴스에서도 드라마에서도 회사가 폐업해 어려워진 노동자의 삶을 비추기보다는 회사를 폐업할 수밖에 없는 사업주의 안타까운 사연을 보여준다. 사업주에 대한 동정을 불러일으키다 보니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에겐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위로가 전부다. 그래서 또록은 묻는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까.

 

“우리가 사는 사회는 이 둘을 구분하지 않고, 폐업을 사업자 개인의 흥망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말한다. 그 회사는 사장 혼자 키운 것이 아니라고. 우리 회사였다고. 가진 것이라고는 성실한 몸뚱이밖에 없는 사람들의 억지가 아니다. 사장 홀로 키운 회사가 아니라는 것은 진실이다. 정부의 각종 지원금과 대출 없이 유지되는 기업은 거의 없다.”(책 5p.)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면 회사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고용이라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며 정부와 지자체가 다양한 혜택을 주지 않았더라면 회사가 어려운 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을까. 그런데도 회사를 사업주 마음대로 운영할 수 있는 개인의 사유재산으로만 볼 수 있을까. 또록은 노동자들을 만나며 ‘어쩔 수 없다’는 말로 감추려 했던 진실을 들여다본다. 당신들 노동은 천 원짜리(110p.)라고 폄하했던 회사는 정규직을 계약직으로 전환하려는 데 노동자들이 동의하지 않자 서울 공장을 안성으로 이전시키는 방식으로 인원을 감축했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포장부를 외주화하여 없애고 포장부 노동자들을 전원 해고했다. 그렇게 일자리를 없앴다.

10년 넘게 일한 여성 정직원이 남성 노동자들과의 임금차별을 문제제기하자 당신들은 그런 걸 요구할 수 없다(118p.)는 회사는 경영상의 이유로 명예퇴직을 시행했다. 이어 노동조합이 결성되니 하락한 매출액과 가족들로 이루어진 이사회가 진행한 청산 동의 절차를 증거로 폐업해버렸다. 그 뒤 노동자들이 농성을 풀자 3개월 만에 청산 절차를 철회했다.

당신들 돈 벌어 주려고 회사를 운영하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133p.)고 호통을 치던 회사는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자 물량이 없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회사를 폐업했다. 20년간 단 한 차례도 원청에서 주문이 끊긴 적이 없었던 물량이었다. 책을 읽을수록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누구를 위한 말이었는지 선명해진다.

 

‘어쩔 수 없다’는 말에는 여성 노동을 존중하지 않고 부차적인 활동으로 여기는 우리 사회의 편견도 담겨져 있었다. 해고당했다는 말에 봉사활동이나 하면서 쉬라고(125p.) 말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폐업으로 해고를 당한 남성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여성 노동자, 특히 중년 여성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무게는 너무도 ‘당연하게’ 다르다. 그 무게가 비단 폐업에서만 드러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을 시켜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기라는 태도는 군소리 없이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견디라고, 그러다가 회사가 어려우면 가장 먼저 내보내도 그런 줄 알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여성의 노동뿐이겠는가. 청(소)년 노동도 마찬가지다. 용돈벌이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만으로 감사히 여기라는 태도로 반말을 하고 최저임금도 주지 않고 언제든지 자를 수 있다는 행태도 마찬가지다. 사업주의 이런 태도를 책에서는 ‘노동시장 가족주의’라 지적한다. 가부장적인 가장이 가족 구성원 위에 군림하며 자신의 뜻대로 희생을 요구하면서도, 가장이기 때문에 모든 이익을 취하는 방식이 꼭 같기 때문이다. 여러 번 강조하지만 사업장의 성장은 사업주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거나 막대한 돈을 투자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럴 수 있다면 사업주는 왜 혼자서 이윤을 독차지하지 않고 노동자들을 고용할까. 어느 하나 사회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런데도 회사의 안위를 걱정하고 성장만 우선시했던 사회에 오랜 시간 살았던 탓일까. 그동안 여성의 노동을, 청(소)년의 노동을 착취하고 쉽게 버리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는 사업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왔던 게 현실이었음을 다시금 되돌아본다.

 

책을 덮고 나니 돌파구를 찾은 것처럼 한구석에 있던 패배주의적인 마음이 흩어졌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말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체념해왔던 것인지, 온몸으로 맞서 싸운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깨닫는다. 그러면서도 이런 나의 깨달음은 싸우는 여자들의 ‘행보와 생각을 좇았던’ 또록의 활동이 없었다면 꽤 오랜 시간 동안 마주하지 못했을 것임을 알기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래서 ‘이 책은 자신의 인생에 들어온 폐업이라는 사건에 온몸으로 맞선 여자들의 싸움을 응원하며, 이들이 사회에 던지는 물음을 보다 선명히 드러내기 위해 쓰였다’(8p.)는 문장을 다시 한 번 소리 내어 읽으며 나의 삶과 나의 활동도 그러하기를 바라본다. 이제 나도 그 길을 좇아보려 한다.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아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싸우는 여자들과 또록의 빛나는 발걸음을 떠올리며 ‘어쩔 수 없는 것’을 넘어서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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