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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 2%

 

 

‘안전한 일터’ 위해 전차선 노동자들이 뭉쳤다

 

배정만 • 전국건설노동조합 경인지역본부 전차선지부장

 

 

 

‘철그렁 철그렁 띠리릭 띠리릭’

철로 옆 강관주(편집 주: 전봇대)에 매달려 곡예사가 곡예 하듯 분주히 몸을 놀리는 사이, 캄캄한 밤하늘 아래 쇳소리가 울려 펴진다. 밤을 꼬박 새고 온몸에 피곤이 몰려올 때면 수평선 너머 영롱한 태양이 떠오른다. 찰그락 찰그락 자갈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이십 년 철길 위 인생이 서럽게 다가온다.

팔, 다리 온 마디마디가 쑤시는 듯 하고 욱신거리는 건 이미 오래다.

 

약동하는 단결의 기운

 

어느 날 전화벨 소리가 울린다.

“여보세요? 아~ 형님 웬일이십니까?”

“네…. 그런 게 있어요?”

2019년 5월, 가슴이 꿈틀거리며 심장은 터질 듯 했다. 여기저기 전화로 소통하며 결론 내린 ‘노동조합’. 뭔지 모르지만 꼭 해야 할 것 같았다.

가장이란 무게감에 짓눌려 좀체 벗어날 수 없었던 ‘일용직’ 신세! 이번 현장 일이 끝날 무렵이면 난 또 어디로 가야 하나? ‘가라면 가야 하고 주면 주는 대로’인 인생이 버겁고 힘겨웠다.

 

2019년 6월 어느 날, 인천 부평에 있는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1층 강당에 전차선 노동자들이 모였다. 오랜만에 본 얼굴도 간혹 보였고, 서로 모르는 사이도 많았다. 그렇지만 왠지 기분이 좋다.

괜스레 미소가 흘러나오고 온몸에는 힘이 솟구쳤다. 사회자의 진행 순서에 맞춰 노동조합을 설명하는 멘트 하나하나가 귀에 쏙쏙 꽂힌다.

“지금부터 전차선 노동조합 준비위원회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잠시 후 준비위원장 선임을 해야 하는데 이 조직을 이끌어 갈 역할에 직접 나서거나 추천하실 분, 혹시 계십니까?”

나도 모르게 ‘저요!’ 하며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렇게 엉겁결에 난 준비위원장이 되어버렸다.

그 후 40명이 60명으로, 100명으로 계속 노조 준비위 가입자 수가 늘어났다. 2020년 1월 11일 노동조합 창립 총회는 200여 명 조합원들의 열화와 같은 참여 속에 진행되었다. 이날 노동조합 준비위원회는 ‘전국건설노동조합 경인지역본부 전차선지부’로 공식 출범하였고, 나는 전차선지부의 초대 지부장으로 선출되었다.

첫 발을 뗄 때 40명으로 시작한 노동조합의 조합원 수는 현재 320명 규모로 확대되었다. 현재 전차선 직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수는 전국 400명가량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전차선지부의 노조 조직률은 80%까지 치솟은 것이다.

 

그림자처럼 지내온 50년 세월

 

우리 전차선 노동자들은 지하철, KTX 등 모든 열차가 전기로 달릴 수 있도록 철도 전기 시설을 신설하고 정비하는 노동자들이다. 주로 기차와 전철이 끊긴 새벽부터 첫차가 다니기 전까지 일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야간노동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전차선 노동자들은 항상 ‘오늘도 무사히’라는 바람을 가슴에 안고 출근길을 나섰다. 새벽이슬 맞으며, 여름에는 피할 길 없는 더위를, 겨울엔 뼛속을 스미는 추위를 견디며 일해 왔다. 전국 현장을 돌아다니며 일하기 때문에 가족과는 떨어져 지내는 게 다반사였다.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 또한 곁에서 지켜볼 수 없었다. 돼지우리 같은 허접한 숙소에서 지친 몸을 누이고 남는 시간에는 술로 쓸쓸한 마음을 달래며 세월을 보냈다. 도무지 사람 사는 게 아닌 것 같았다. 하루하루가 위험천만하고, 날이 갈수록 체력의 한계도 느껴졌다. 그럼에도 전차선 노동자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철도를 이용하는 승객들의 안전과 편의도 갖출 수 있었다는 자부심으로 견뎌 왔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목숨을 내건 채 고되게 일하는 전차선 노동자들의 삶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인간적인 대우는 물론이고 생명을 담보하는 기본적인 안전 문제조차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추락하는 동료의 소식을 접해야 했고, 로프 한 가닥에 목숨을 부지한 채 밤을 지새우는 노동조건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아야 했다.

우리는 더 이상 국가기간교통망인 전기철도 시설물 시공에 앞장서 ‘전기 철도화 시대’를 열었다는 자부심만으로 먹고살 수는 없었다. 게다가 공기업 발주처인 국가철도공단, 철도공사, 전국의 지하철 운영사들, 그리고 공사를 시공하는 업체들은 하나같이 전차선 노동자에 대한 존중은커녕 자기들의 돈벌이 수단 정도로만 취급했다.

이렇듯 사용자들의 비용 절감 논리와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전차선 노동자들은 50년 세월을 그림자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지내 왔다.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위험의 일용직화’가 지난 십수 년간 진행되어 온 현장이 바로 전차선 직종이지만, 우리의 노동 현실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고 누구도 제대로 알려고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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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23. 안전한 작업환경 조성을 촉구하는 건설노조 전차선지부 노동자들의 울산 태화강역 결의대회 모습. [출처: 전차선지부]

 

과거로 회귀할 수 없다는 각오

 

그런 분노들이 모여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업체들 눈치 보면서 살아온 세월이 억울하고 분해서 더 이상은 예전처럼 무력하게 지내고 싶지 않다는 각오가 우리 스스로를 단단히 결속시켰다. 이 나라 대표적인 대중교통수단인 철도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 우리 전차선 노동자들의 삶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고, 우리의 노동이 전국 철도를 움직이고 있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또한 철도, 지하철의 전차선 관리가 다단계 하도급으로 얼마나 썩어가고 있는지, 공공기관의 탁상행정이 전차선 노동자들의 삶을 얼마나 갉아먹고 있는지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공공재인 철도ㆍ지하철 열차에 전기를 공급하는 설비 사고 발생 시 전차선 노동자들의 노동으로 복구와 정상 운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온갖 비리와 갑질이 판을 치는 시공 현장의 민낯도 방송을 통해 알려 나갔다.

 

전차선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결성을 통해 임금을 올리고, 안전한 현장을 이야기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이런 변화들이 좋기는 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큰 변화를 더 가져올 수 있을지 아직은 상상하기 어렵다.

나는 여전히 일용직 노동자로서,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으로서 일을 찾아 전국을 떠돌며 객지 생활을 이어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열악한 숙소 생활에 몸과 마음이 지칠 때도 많지만, 이따금씩 쉬는 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만큼은 마냥 흥겹다.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날 생각에 온통 들뜨게 된다. 엉금엉금 기어 다니던 아이가 어느덧 아장아장 걷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토록 사랑하는 가족들과 떨어져 객지 생활을 해야 하는 전차선 노동자들의 삶은 애틋하고 쓸쓸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힘든 객지 생활을 마다할 수 없는 이유는 생계를 꾸려야 하는 절실함이 무엇보다 크기 때문이다. 그동안 무작정 위험한 작업으로만 여겼을 뿐 전차선 노동 현장에서 한해 13~15건의 추락 사고가 발생한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했다. 전국에 400명이 채 되지 않는 노동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갖가지 사고로 다치거나 죽는다는 비참한 현실을 제대로 몰랐다. 실제 전봇대에 올라 고소작업을 하는 기술자들은 전체 전차선 노동자 중 230명에 불과한데, 이렇게 적은 인원만으로 전국 철도 현장의 안전을 책임지며 위험작업을 감내해왔다는 사실도 뒤늦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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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9. 안전 문제와 다단계 불법 하도급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국가철도공단 앞 결의대회’에서 발언 중인 배정만 전국건설노동조합 경인지역본부 전차선지부장. [출처: 건설노조]

 

야간노동 없는 안전한 일터 만들기

 

그러나 이제 한 가지는 확신한다. 예전처럼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살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노동조합으로 뭉치니 하늘 같이 높게만 보였던 공단과 전차선 업체가 우리를 무시하지 못하는 것을, 현장에서 온갖 갑질을 부렸던 소장들도 우리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당장 우리의 야간노동과 위험한 작업환경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린 야간노동을 없애기 위해 외국처럼 주간에 철도를 멈출 수도 있다는 점을 시민들에게 알릴 것이다. 낡고 위험한 장비들을 당장 바꾸라고 요구할 것이다. 배전 노동자들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 임금도 올리고, 가급적 거주지와 가까운 현장에서 일하며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일에도 힘을 기울일 것이다.

 

이제 노동조합을 알게 된 지 2년여가 되어 간다. 전국 320명의 조합원들이 모두 똑같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힘이 얼마나 크고 대단하지 하나, 둘 느끼기 시작했다. 아직 완성된 조직은 아니지만 임금인상과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안동에서, 울산에서 힘찬 투쟁을 하면서 승리를 맛보았던 조합원들은 다시는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이런 투쟁이 가능했던 건 우리의 힘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건설노조라는 전국조직이 우리와 함께했고, 전기분과, 경인본부 동지들이 우리 투쟁을 함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조합원들과 함께하기 위해 울산으로 내려간다. 전국 어디가 됐든 전차선 조합원들과 함께하는 현장이라면 마다하지 않는 지부장으로, 조합원으로, 더 나아가 이 땅 당당한 노동자로 살아갈 것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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