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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이야기

 

 

“외롭지 않게, 기꺼이 함께”

 

오은주 후원회원 인터뷰

 

살아가는 이야기_01.jpg

 

2021.11.04. 마사회를 상대로 싸웠던 100일간 고 문중원 기수의 유족들이 함께 머문 '꿀잠'에서 오은주 님을 인터뷰했습니다. [출처: 정택용]

 

문중원 경마기수가 마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며 세상을 등진 지 2년이 지났습니다. 문중원의 죽음은 갑을관계, 승자독식의 다단계 하청구조로 운영되는 공공기관 마사회의 적폐를 우리 사회에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지난 11월 17일에는 문중원 기수가 유서에 남긴 마사대부 심사 비리 관련 재판이 열렸지만, 법원은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부정과 탐욕이 지배하는 시스템 안에서 노동자의 생명과 존엄이 온전히 지켜질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고 문중원 기수 2주기를 앞두고 그의 옆지기이자 철폐연대 후원회원인 오은주 님을 11월 4일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에서 만났습니다.

 

Q. 안녕하세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A.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얼마 전부터 아이들 학교도 전면 등교가 가능해졌어요. 그 전까지는 집에서 아이들이랑 꼼짝없이 붙어 지냈었죠. 아이들 아침밥 차려 주고 등굣길 바래다주고 나면, 이런저런 집안일을 챙겨요. 그렇게 지내다 보면 한 생각에 머물진 않더라고요. 요즘 들어서야 ‘벌써 11월이구나’, ‘2주기가 다가오네’, ‘아… 시간 참 빠르다’ 이런 생각들이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 같아요.

 

Q. 말씀하신 대로 문중원 열사 2주기가 얼마 남지 않았네요. 어떤 마음으로 2주기를 준비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A. 2주기가 다가오니까 작년 1주기 때 상황이 많이 떠오르더라고요. 일반적인 경우라면 보통 추도식을 크게 열거나 그렇진 않잖아요. 저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 보니…. 그래서 일단 2주기 행사라고 표현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방식으로 진행이 될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한편으로는 2주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 부분도 있고요. 어쨌든 당시 상황을 되새겨야 하는 시간이잖아요. 참 많이 울겠구나, 이런 생각도 들죠.

 

Q. 마사회 적폐세력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인데요. 유족으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요.

 

A. 마사회 내부에 켜켜이 쌓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저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세상에 알려진 내용들이 실은 전부가 아닐 거예요. 어찌 보면 적폐는 마사회 전체가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지금으로서는 처벌 대상으로 법정에 선 사람은 고작 세 명뿐이잖아요. 그들이 문중원의 죽음에 직접 연루돼 있긴 하지만, 마사회가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한 상태이기 때문에 유족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는 답답함이 있어요.

지난 재판에서 검사 구형이 있었잖아요. 남편 유서에도 실명으로 거론됐던 부산경남경마본부 김용철 경마처장은 징역 2년, 조교사 두 사람은 징역 1년의 구형을 받았었죠. 검사 구형이 있은 뒤 판사님께서 이 사람들에게 최후진술 기회를 주었어요. 경마처장이 당시 이렇게 말했어요. 마사회 내부에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고, 자기는 이제껏 경찰서 한번 간 적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살아 왔다, 그래서 억울하다는 거예요. 그때 법정 참관석에서 숨죽여 가면서 많이 흐느껴 울었어요. 남편이 유서에서도 밝힌 것처럼 김용철 경마처장은 당시 (조교사 개업을 위한) 마사대부 심사 비리를 저지른 장본인이잖아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이번에 재판을 받고 있는 경마처장과 두 명의 조교사들은 십년도 넘게 알고 지내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어요. 마사대부 심사 항목 중에는 사업계획 발표가 있어요. 이 발표 자료 초안을 심사위원회에 제출하기 전 경마처장에게 카톡으로 미리 보낸 거예요. 사전 검토 요청을 받은 경마처장은 초안을 보고 나서 보완 의견을 그 두 사람에게 전달했고요. 조교사 발탁을 결정짓는 중요한 평가에서, 그것도 심사위원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 특혜를 제공한 거잖아요. 당시 경마장 내에서도 소문이 파다했어요. 이번 조교사 개업 심사에서는 경마처장과 이렇게 결탁한 두 사람이 될 것 같다고요.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설마 했었는데 결국 소문대로 당락이 판가름 났죠. 그런데 지금 김용철 처장은 그저 친한 사이라서 조언한 것뿐이지 양심에 어긋날 만한 부정한 일은 저지르지 않았다고 항변하잖아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에요.

 

Q. 재판 상황을 보더라도 마사회의 책임을 강화하고 경마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싸움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열사 투쟁을 계기로 만들어진 <마사회 적폐청산을 위한 대책위원회>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요?

 

A. 대책위에 바라는 점이라기보다는… 어쨌든 대책위가 마사회법 개정을 통해서 마사회 구조 개혁을 이루겠다는 목표로 출범했잖아요. 물론 법을 개정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어렵더라도 마사회 적폐에 맞서 싸우기로 다짐했던 그 마음만은 놓지 않았으면 해요.

그래도 2주기 준비 과정에서도 그렇고, 대책위 분들이 항상 함께해 주신 덕분에 외롭지 않았어요. 열사 투쟁이 일단락된 이후에도 재판이 진행되었고 그 밖에도 대응해야 할 일들이 드문드문 있었거든요. 재판부에 제출할 탄원서를 조직하는 일에도 대책위 활동가 분들이 많은 도움을 주셨고요. 남편 장례도 못 치르고 무작정 서울 올라갔을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대책위 분들의 아낌없는 지지가 있었기에 유족들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한 일이죠.

 

Q. 마사회 투쟁을 통해 알게 된 소중한 인연들이 참 많지요. 그간 쉽지 않은 과정을 함께 거치면서 쌓아 온 우정과 신뢰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A.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날 일이 터지고 난 뒤 어디론가 숨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고, 날 좀 이대로 내버려뒀으면 좋겠다고만 생각했죠. 소중한 사람을 그렇게 잃고 나니 내가 가진 모든 게 몸에서 빠져 나가고 빈 껍데기만 남은 느낌이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인가 자연스레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하게 됐어요. 내가 겪은 일들을 굳이 내 입으로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이미 주변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싸움이 끝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이따금씩 안부를 전하면서 제 소식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이제는 너무 반가워요. 같은 마음으로 함께 싸워주었던 사람들의 마음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것 같아요. 제게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그래서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웠는데, 이렇게 같이 눈물 흘리고 한목소리로 외쳐 준 이들이 있어서 너무 든든하고 고마웠어요. 그날 이후 껍데기만 남은 제 몸과 마음을 가득히 채워준 온기 같은 분들이죠. 그동안 저 스스로 많은 사람들을 밀어내기도 했지만, 진짜 선물 같은 이들을 더 많이 얻었다고 느껴요.

 

Q. 살아가는 이야기꼭지 공식 질문이기도 한데요. 철폐연대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A. 이 일이 생기기 전까지 제가 철폐연대를 어떻게 알았겠어요. 그동안은 저와는 상관없는 다른 세상의 일이라고만 여겼던 것 같아요. 비록 남편의 일로 만난 인연이긴 하지만, 혜진 언니가 시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이었고 그러다 보니 유가족과 소통하는 일도 많았죠. 그래서 언니랑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그만큼 관계도 깊어지게 되었죠. 언니가 많이 안아 주었고 언니 품 안에서 많이 울었죠. 그러면서 언니의 동료들도 만나게 되었고, 용현 같은 경우엔 남편과 동갑이었고 유족인 저를 허물없이 대해 주어서 편했어요. 철폐연대도 그렇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노력하는 여러 단체나 노동조합을 너무 뒤늦게 알게 되어서 죄송한 마음도 들더라고요. 그동안 제가 받은 고마움도 있고, 또 제가 봤던 안타까움, 억울함도 있었기 때문에 철폐연대를 후원하게 되었어요.

 

Q. 앞으로 은주 님이 하고 싶은 일들은 무엇인지 이야기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A. 사실 뭘 해야 할지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혼자서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는 게 막막하기도 하고요. 지금은 제가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게 딱히 없지만,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고 연대할 수 있다는 게 제게는 큰 기쁨이더라고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이라기보다는 그동안 제가 받은 도움을 이런 기회를 통해 되돌려 줄 수 있어 좋은 것 같아요. 하지만 이게 늘 좋은 일로만 만나는 건 아니라 마음 아플 때도 있어요.

최근에는 웹포스터를 만드는 일에 조금씩 흥미를 붙이고 있어요. 제가 디자인한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많지만, 동시에 즐거움도 생기더라고요. 앞으로 잘 만든 웹포스터도 일부러 찾아보고 모방도 하면서 배움에 힘써볼 생각이에요!

 

Q. 끝으로 <질라라비>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A. 지난 달 <질라라비>에서 저는 월담노조 출범 소식이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뭐랄까…. 당장 많은 인원은 아니어도 공단 지역을 바꾸겠다는 그들만의 간절함, 진심이 묻어나더라고요. <질라라비>를 통해서 어디에나 있는 불안정노동자라는 존재, 어디서도 찾기 힘든 불안정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어요. 그래서 매달 빠짐없이 읽으려고 노력 중이에요. 글쓴이와 엮은이의 노고를 생각해서, 또 나무에게도 미안하지 않도록요. 그러니 여러분들도 냄비받침, 컵받침 하지 말고 꼼꼼히 잘 읽어 보시길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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