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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의 투쟁

 

 

 

드라마 제작 현장의 비정규직,

방송스태프 노동자들의 투쟁

 

 

김기영 •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 지부장

 

 

 

최근 <오징어게임>으로 대표되는 한국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사극 좀비물 <킹덤>도 있었죠. 코로나19로 드라마 제작이 뜸했던 것을 메꾸기라도 하듯,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드라마가 지상파, 케이블, 종편, OTT를 가리지 않고 쏟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거 알고 계시나요? 현재 한국에서 제작되는 드라마는 거의 모두 법을 어겨가며 제작되고 있고, 그 드라마를 보시는 시청자들 모두 범죄를 방조하는 셈인 것을요.

 

이렇게 많은 수준 높은 드라마들이 제작되는데, 과연 그 드라마들을 실제로 제작하고 있는 환경은 어떨까요? 드라마 촬영 현장의 스태프들은 법적으로 노동자일까요? 아니면 프리랜서일까요? 이미 3년여 전 드라마 현장의 방송스태프들은 고용노동부로부터 노동자성을 인정받았고, 작년에는 영화와 드라마 현장의 감독급 스태프까지도 법원으로부터 노동자성을 인정받았습니다.

 

고용노동부와 법원에서 노동자성을 인정받았다는 것은 드라마 스태프들이 일을 할 때, 4대 보험이 적용되고 근로기준법에 따라 일의 시작시간과 종료시간, 휴식시간 등이 정해진 근로계약서를 체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과연 현장에서는 그런 계약서가 얼마나 잘 사용되고 있을까요?

 

작년 10월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가 330여 명의 방송스태프를 대상으로 실시한 노동실태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아직도 근로계약이 현장에 전혀 자리 잡지 못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근로계약서 체결의 경우 약 20%에 불과했습니다.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이유는 77.5%가 방송사나 제작사의 요구 또는 관행이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약 85%가 본인들은 노동자이기 때문에 근로계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4. 본문사진1.jpg

2022.04.16. 여의도 3번출구 앞 출근선전전 모습. [출처: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

 

 

현재 드라마 제작 현장의 계약실태를 KBS가 제작 중인 드라마를 사례로 살펴보면,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의 경우,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스태프들에게 감독급을 사용자로 하는 턴키(일괄)계약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KBS의 <꽃피면 달 생각하고>는 계속해서 현장에서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연모>, <꽃피면 달 생각하고>, <달리와 감자탕> 등 여러 드라마가 몬스터유니온이라는 KBS의 자회사를 통해 제작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하청, 재하청을 공동제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다른 제작사들이 제작을 담당합니다.

 

이것은 KBS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SBS의 <사내맞선>도 역시 마찬가지로 턴키계약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CJ ENM과 같은 다른 방송사들의 경우에도 방송사가 설립한 자회사와 또 다른 제작사가 공동제작하는 형태로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스태프들의 계약은 본 적도 없는 제3의 하청업체와 계약을 강요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제작 자회사들이 설립되거나, 기존의 제작사들이 주식인수의 형태로 자회사로 편입되고 있습니다. 구조는 점점 복잡해져 가고 있고, 사용자의 책임은 점점 찾기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장시간 노동으로 유명한 드라마 현장에서 하루에 일하는 시간은 얼마나 줄어들었을까요? 주 52시간 제도를 지키기는커녕, 노동시간의 적용기준을 바꿈으로 법을 피해가려는 꼼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노동시간에 촬영지까지의 이동시간과 촬영을 위해 장비를 준비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있고, 또 촬영을 마친 후 장비를 정리하는 시간과 다시 출발지로 복귀하는 시간도 제외되고 있습니다. 이 시간들을 실제 촬영시간과 합하면 여전히 하루에 20시간 가까운 노동시간을 강요당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방송스태프지부 노동실태 조사 결과, 노동시간이 12시간 이내라고 답한 사람은 10%도 안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KBS의 경우는 1.4%에 불과합니다. 산업안전에 대한 교육을 받은 사람도 채 20%가 되지 않습니다. 거기에 KBS는 95.9%가 교육받은 적이 없다고 답을 해서, 안전에 대한 불감증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장시간 노동이 가장 큰, 그리고 독보적인 문제로 꼽혔고, 정부가 추진해야 할 가장 중요한 대책도 75%가 장시간 노동 방지, 그리고 63.1%가 근로계약 의무화라고 조사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공영방송인 KBS를 비롯한 다른 방송사들은 여전히 하루 14시간 이상, 심지어는 2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면서 방송스태프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무시한 채 불법적인 드라마 제작을 강행하면서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법을 아예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지금 현장에서는 주 52시간 제도가 시행되고 노동자성이 이미 인정받았음에도, 근로계약은 왜 아직도 제대로 도입되지 않는지, 왜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고 있는데 아무런 처벌이 없는 건지, 정부는 대체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한 불만이 폭발 직전입니다.

 

한국 사회의 산업현장에서는 계속해서 사람이 죽고 다치는 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산업안전 감독을 하지 않고,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항만에서, 지하철에서, 물류센터에서, 배달하는 도로 위에서, 출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심지어 집에서 잠을 자다가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방송 현장도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세트를 설치하다 떨어지고, 화재로 다치고, 위험한 촬영 중에 차량에 끼이는 이런 사고의 위험을 드라마 제작 방송스태프들도 늘 안고 살아갑니다.

 

드라마 제작 현장의 스태프들은 이미 노동자임을 인정받았습니다. 이는 이들이 근로계약서를 체결하고, 그 내용으로 근무시간과 장소, 시작시간과 종료시간이 확인되어야 하며, 4대 보험 적용, 초과근무수당, 야간근무수당 등이 책정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드라마 제작 현장 어느 한 곳도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곳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노동조합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서 목소리를 모으고 있습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 문화예술노동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함께 모여 ‘드라마 방송제작 현장의 불법적 계약근절 및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공동행동’을 구성했습니다.

 

공동행동은 그동안 현장을 바꾸기 위해 KBS, CJ ENM,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등을 대상으로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함께 기자회견을, 정부 부처들과 함께 국회 정책 토론회도 가졌습니다. 그리고 작년 9월에는 고용노동부에 KBS 드라마 6개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발했습니다. <국가대표 와이프>, <신사와 아가씨>, <연모>, <태종 이방원>, <꽃피면 달 생각하고>, <학교 2021>이 그 드라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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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6. “KBS드라마 근로기준법 위반 처벌촉구! 노동부 고발 기자회견” [출처: 드라마 방송제작 현장의 불법적 계약근절 및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공동행동]

 

 

하지만 7개월이 지나도록 고용노동부의 수사는 진척이 없고, <태종 이방원>을 제외한 다섯 개의 드라마는 방송이 끝났습니다. 방송이 종영되었다는 것은 이미 노동 현장이 사라졌고, 그 현장에서 일하던 스태프들은 여전히 아무런 법적인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와 같습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여전히 서류를 검찰로 보내 수사지휘를 받는다고 하며 시간만 끌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방송스태프들은 또 다른 불법 현장으로 가서 일을 해야 하고요.

 

방송사들과 외주 제작사들은 그동안 불법적으로 스태프들을 고용해 왔기에 이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합니다. 방송스태프 노동자들도 기본적인 인권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방송사와 제작사, 그리고 한류열풍이라면 없어지는 것이 맞습니다. 한국 방송제작 현장의 가장 중요한 주춧돌인 방송스태프 노동자들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조차 존중하지 못하는 방송사와 제작사라면, 오직 방송사의 이익만을 탐하는 제작 현실이라면 더 이상 한류를 이끄는 드라마 왕국의 허울은 없어져야 마땅합니다.

 

이런 현실이 바뀌기 위해선 방송사가 바뀌어야 합니다. 하지만 방송사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정부도, 국회도 아닌 바로 시청자들입니다. 화려한 스타 연예인과 아름다운 화면 뒤에 가려진 비정규직 방송스태프들의 처우에도 관심을 가져 주세요. 그리고 이미 존재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요구해 주세요. 시청자 여러분의 관심이 보다 나은 방송 현장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우리 시민사회단체 공동행동도 끝까지 함께 싸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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