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질라라비

조회 수 4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오늘, 우리의 투쟁

 

 

여전히 프리랜서

 

 

최태경 • 경남CBS 프리랜서 아나운서

 

 

 

연휴를 앞두면 방송사는 더욱 분주해집니다. 연휴 동안 송출될 방송을 사전 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쫓기듯 일주일을 보내고 한숨 돌릴 때쯤, 작년 이맘때가 떠올랐습니다.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던 그때. 그제야 제가 복직했다는 것이 실감 났습니다. 2021년 12월 31일, 저는 2년 8개월 동안 일했던 회사로부터 해고를 당했습니다.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고, 해고된 지 9개월 만에 회사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반쪽짜리 복직을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경남CBS에서 ‘여전히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최태경 아나운서입니다.

 

제 방송 경력은 10년이 넘습니다. 모두 프리랜서로 일을 했고, CBS에서만 일한 기간이 7년 4개월입니다. 부산CBS에서 2년, 울산CBS에서 1년, 경남CBS에서 1년 8개월, 다시 경남CBS에서 2년 8개월. 스스로 CBS 사람이라고 자부할 만큼 회사에 대한 애정이 컸습니다. 연인 사이에도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을이 된다고 하죠. 이미 갑과 을의 관계, 여기에 회사를 사랑하기까지 했으니 저는 그야말로 슈퍼 을이었습니다. 경남CBS에 첫 출근을 하자마자 정규직 업무를 맡았습니다. 정규직도 피하는 광고 편성 업무를 하루 다섯 번씩 했고, 사옥 이사를 앞두고는 직원들과 먼지를 마셔가며 이삿짐을 싸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방송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서울에서 온 엔지니어로부터 밤 10시가 넘도록 교육을 받기도 했고요. 방송통신위원회에 방송국 재허가 서류를 제출하기 위해 밤샘을 하기도 했습니다. 정규직 아나운서들이 입사와 퇴사를 반복할 때마다 모든 정규직 업무는 저에게 돌아왔습니다. 그 모든 일에 보상은 없었지만 해내야 했습니다. 왜냐면 저는 CBS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경남CBS는 다시 정규직 아나운서를 채용했습니다. 그리고 2년 8개월 만에 저는 해고를 당했습니다.

 

해고를 당한 뒤 저는 ‘아나운서’에서 ‘아나운서 지망생’이 됐습니다. 프리랜서라면 아나운서와 아나운서 지망생을 오가는 삶은 피할 수 없습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아나운서가 된다 하더라도 짧으면 몇 개월, 길어도 2년을 일하지 못합니다. 방송사는 부품을 갈아치우듯 새로운 얼굴로 화면을 채우고,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은 또다시 의자놀이에 등 떠밀립니다.

 

이 살벌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춰야 할 경쟁력은 외모입니다. 때문에 프리랜서 아나운서에게는 ‘내돈내방’ 즉, ‘내 돈 들여 내가 방송한다’가 불문율입니다. 프리랜서 아나운서는 방송 한 편당 출연료 혹은 방송단가가 책정돼 있습니다. 물가가 아무리 올라도 출연료는 오르지 않습니다. 방송 한 편에 출연하기 위해 들이는 준비시간과 대기시간, 녹화시간 등을 따지면 출연료는 최저시급을 한참 밑도는 수준입니다. 때문에 헤어와 메이크업, 의상 비용과 식대, 교통비까지 충당하려면 자비를 들여야 방송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런 관행을 당연시하는 것이 방송계의 현실이고요.

 

 

4. 본문사진1.jpg

2023.01.25. 최태경 아나운서. 경남과 서울에서 CBS 규탄 릴레이 1인 시위가 진행 중이다.

[출처: 경남CBS 아나운서 정상적 원직복직을 위한 대책위원회]

 

 

출연료를 올려 달라고 하면 되지 않느냐고요? 담당 PD로부터 돌아오는 답변은 ‘너 말고도 방송하고 싶어 하는 사람 많다’입니다. 저 역시도 최저시급을 밑도는 방송 단가를 올려 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20만 원 정도의 월급이 깎였습니다. 프리랜서 아나운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시키는 일을 해야 하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급여도 주는 대로 받아야 합니다.

 

저는 겁이 많고 소심한 사람입니다. 저를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제가 아나운서가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 평생 처음으로 용기를 내서 아나운서에 도전했고, 취재리포터를 거쳐 아나운서가 됐습니다. 그렇게 10년이 넘게 방송 생활을 했으나 제게 돌아온 건 해고통보였습니다. 해고통보를 받고, 그동안 함께 방송을 했던 취재리포터와 아나운서 선후배들이 떠올랐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방송국에 남아 있는 건 저 하나뿐이었습니다. 방송 잘한다고 소문났던 분들이었고, 방송국이 원하면 명절도 휴일도 없이 언제든 일을 했습니다. ‘방송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진심으로 방송을 사랑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결혼과 임신, 출산을 앞두고 그들은 ‘관행’이라는 명분 앞에 무릎을 꿇고 방송국을 떠나야 했습니다.

 

저는 제 평생 두 번째 용기를 냈습니다. 그분들과 함께한다는 마음으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습니다. 거대한 방송사를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두려웠습니다. 누가 봐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차근차근 부당해고 구제절차를 준비하면서 확신이 생겼습니다. ‘나는 이름만 프리랜서였지 노동자였구나.’ 하고요. 9개월 동안 부당해고 구제절차를 밟았고, 경남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 모두 저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CBS에 저를 ‘원직복직 시키라’는 구제명령을 내렸습니다.

 

9월 초, 사측은 저에게 복직이행명령서를 보냈습니다. 복직이행명령서를 받은 날, 눈물이 났습니다. ‘이제 회사의 일원으로 인정받으며, 정규직으로 떳떳하게 일할 수 있겠구나.’ 싶었거든요. 하지만 그때는 몰랐습니다. 제가 사측을 상대로 다시 한번 투쟁에 나서게 되리라는 것을 말입니다.

 

지난 10월 4일, 저는 회사로 복귀했습니다. 그런데 제 책상에 있어야 할 컴퓨터가 치워져 있었습니다. 총무국장은 ‘앞으로 컴퓨터 등 비품을 지급할 수 없으니 노트북을 가지고 와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제 고정좌석도 프리랜서 공용좌석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근로계약서는 언제 작성하는지 문의를 했습니다. 돌아온 답변은 ‘원직복직을 시키라고 했으니 우리는 너를 예전에 일했던 프리랜서로 복직시킨다. 때문에 근로계약서는 작성하지 않는다. 프리랜서 계약서도 작성할 필요가 없다. 마지막으로 썼던 6개월짜리 프리랜서 계약서를 연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측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전환됐다’는 노동위의 판단은 무시하고, ‘원직복직’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저를 프리랜서로 복직시켰습니다. 노동위에 이 사실을 알렸지만, 노동위는 뒷짐만 지고 있었습니다. 이후 사측은 차례차례 저의 근로자성을 지워 갔습니다. 편성팀장은 방송원고 결재 라인을 없앴습니다. 제게 직접적으로 업무지시를 하지 않기 위해 회사에는 제 전용 서류함이 생겼습니다. 제게 지시할 사항이 적힌 서류를 서류함에 두면 제가 수거해 가는 겁니다. 늘 참석하던 아침 직원예배에도 참석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오후 6시까지 남아서 업무를 처리하는 것도 제지당했습니다. ‘아나운서’라는 이름도 방송에서 쓰지 못하게 했습니다. 서울 본사는 경남CBS에 ‘최태경과 한마디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출근인사도 퇴근인사도 무시당했습니다. 복직 후 근로환경은 더 후퇴했고, 저는 불가촉천민이 됐습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냈습니다. 이미 방송 비정규직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판정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속속 원직복직 소식도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프리랜서 원직복직’은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자칫 제가 나쁜 선례로 남을 수 있었고, 방송사들이 악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세 번째 용기를 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11월 10일 서울에 있는 CBS 본사 앞에서 ‘정상적인 원직복직을 이행하라’는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기자회견 날, 저는 기자들 앞에서 마스크를 벗고 이름을 공개했습니다. 적극적으로 투쟁하겠다는 제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어딘가에서 홀로 싸우고 있을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미디어오늘’과 경남의 지역일간지인 ‘경남도민일보’에서 제 투쟁을 적극적으로 보도해 줬고, 하나둘 연대체가 늘어났습니다. 이후 기자회견과 토론회 등을 통해 프리랜서 원직복직의 부당함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사측은 중앙노동위의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끝을 알 수 없는 저의 투쟁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4. 본문사진2.jpg

2022.11.10. “부당해고 판정에도 프리랜서로 쓰겠다는 CBS 규탄한다!”

[출처: 경남CBS 아나운서 정상적 원직복직을 위한 대책위원회]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너무나 외롭습니다. 거대 방송사를 상대로 싸운다는 두려움도 크지만, 무엇보다 ‘앞으로 방송계에서 일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각오로 꿈과 미래를 걸고 싸워야 합니다. 노조의 도움을 얻기도 어렵습니다. 비정규직이기에 애초에 노조에 가입할 수 없습니다. 언론노조는 방송 비정규직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렵습니다. 방송 비정규직들에게 업무 지시를 하고 감독하는 것이 바로 언론노조에 속한 정규직 노동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노동위는 사측이 구제명령을 잘 이행했는지 감독하는 데 소홀합니다. 전화 한 통으로 확인하는 형식적 절차에 그칠 뿐입니다. 이를 잘 아는 사측은 꼼수를 써서 ‘원직복직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 정점에 ‘프리랜서 원직복직’을 한 제가 있습니다.

 

사회에 정의를 요구하던 언론이 이제는 정의를 요구받는 시대가 됐습니다.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누구도 가 본 적 없는 투쟁의 길을 홀로 걷고 있습니다. 때문에 저희에겐 거대 방송사라는 험준한 산을 함께 넘어 줄 셰르파가 필요합니다. 산속 지리를 잘 알고, 산을 넘어 본 경험이 있는 셰르파 말입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등잔 밑을 밝혀야 할 때입니다. 카메라 밖에 있는 수많은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카메라 앞에 서지만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의 손을 잡아 주십시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언론개혁의 첫걸음일 것입니다.

 

 

 

위로